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54
453화
테일러는 헬트리버들을 이끌고 오래된 하수도를 통해 솔아이의 성으로 진입을 시작했다.
녀석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 덕분에 어둠은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열기 탓에 땀은 쉴 새 없이 흘렀다.
게다가 그 열기 탓에 주변이 엄청나게 습해져 이동하는 내내 숨이 턱턱 막혔다.
“헉… 헉……. 나, 나가고 싶어…….”
시스템과 상관없는 생리적인 갑갑함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솔아이의 탐지 영역 바깥쪽에서 출발한 탓에 아직 한참 나아가야 했으니…….
그렇게 약 20분 정도 이동하니 어느새 귓속말도 차단이 되었다.
‘솔아이의 성 내부로 진입한 모양인데?’
더는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할 수 없는 상태로 지도에만 의지한 채 다시 10분…….
‘잠깐……. 이 느낌 뭐지? 왜 이렇게 고독한 거지?’
그런데 문득 알 수 없는 외로움이 그를 감쌌다.
암살자로서 늘 그림자 속에 숨어 다녔던 자신에게 그런 감정은 너무나 낯선 것.
하지만 곧 그런 생각이 든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어느새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한국으로 온 뒤, 러시아에 있을 때와 달리 늘 주변엔 사람들과 함께였다.
굳이 재호의 인맥이 아니더라도 길을 가다 테일러를 알아보고 인사해 주는 일반인들도 정말 많았던 것이다.
게임 내에서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작 작위를 얻은 이후로 자신은 굳이 암살자로서의 활동을 할 필요가 없었던 그.
몬스터를 상대로나 관련 스킬들을 사용할 뿐, 더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일이 없었다.
즉, 불곰 길드에서 생활하던 그때의 쓸쓸함…….
그게 지금 이 타이밍에 갑자기 느낀 것이다.
‘이렇게 낯선 느낌이었나?’
새삼 깨달은 ‘친구’들의 빈자리에 테일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매일 하던 일을 하려던 것뿐이야. 어차피 혼자 가는 삶.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재호가 알았다면 쓸데없는 궁상이라고 한소리 들었을 혼잣말을 멋지게 중얼거리는 테일러.
“음?”
그렇게 고독에 취했던 그는 자신을 빙 둘러싼 헬트리버들에게 시선이 향했다.
왈!
그리곤 불댕댕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굳은 표정으로 테일러를 향해 짖었다.
“…뭐냐? 설마 날 걱정하는 거냐?”
테일러는 이 의외로 정 넘치는 마수의 행동에 코를 쓱 문질렀다.
“흥! 건방지게 무슨……. 하지만 나쁘진 않군. 좋아, 가자!”
다시 기운을 차린 테일러는 힘차게 앞으로 달렸다.
재호가 늘 말했듯, 불댕댕이는 아주 똑똑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만약 대화까지 가능했다면 “닥치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라고 똑똑히 들렸을 테지만, 어쩌면 테일러가 들을 수 없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 * *
혼자 모노드라마를 찍고 다시 이동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 테일러.
[시기의 대공 솔아이의 성채에 잠입했습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당신의 모든 잠행 스킬이 더욱 강화됩니다.] [은신 시, 들킬 확률이 낮아집니다.]대악마의 본거지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얻어지는 큰 보상들에 테일러는 만족하며 주변을 살폈다.
‘지키고 있는 악마는 하나도 없군.’
사육장 내에는 지키고 있는 악마들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꽁꽁 묶인 헬트리버들은 테일러의 존재를 눈치채고 쳐다보고 있었지만, 무기력한 표정으로 테일러를 멍하니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미 모든 걸 포기한 눈빛.
“걱정하지 마라. 네 친구들은 내가 반드시 구해 줄 테니.”
아직 모노드라마에 심취한 테일러가 불댕댕이를 향해 듬직하게 말했다.
“그럼 시작하자!”
파앗-
솟아오른 테일러는 가장 먼저 사육장과 통하는 유일한 통로를 점했다.
그 위에 자리를 잡은 채 모습을 지웠고, 불댕댕이와 다른 헬트리버들은 뛰어 올라와 솔아이의 헬트리버들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무기력하게 있던 헬트리버들은 난데없는 소란에 깜짝 놀라 커다래진 눈알로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이 난리에 악마들이 나타나 해코지를 할까 겁이 난 듯한 모습.
하지만 뭔가 통한 게 있는 것인지 점점 표정은 굳어졌고, 곧 다 같이 마구 짖기 시작했다.
벌컥-
“뭐야? 이것들이 갑자기 왜 지랄들이야?”
그 소란에 바깥에 있던 악마가 사육장 내에 나타났다.
“응? 뭐야? 갑자기 똥개들이 왜 이렇게 많…….”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다리고 있던 테일러가 순식간에 공격을 가했다.
[당신의 악명에 상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악명 수치가 대상보다 높을 시, 3초간 100% 행동 불능으로 만듭니다.]촤악-!
악마를 상대로 사용하기엔 위험할 수도 있는 스킬이었으나, 테일러는 확신이 있었다.
‘악마라고 해서 무조건 악명이 더 높진 않단 건 이미 예전에 확인했다!’
과거 엠베이 숲의 투기장에서 악마들과 싸워 보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딱히 악행을 하지 않았다면 악마라 하더라도 악명이 높지 않다는 것을…….
‘대악마도 아닌, 마계에만 처박혀 있던 악마라면 악명이 낮을 게 뻔해!’
[대상이 3초 동안 움직일 수 없습니다.]“헉?! 뭐냐!!”
당황한 악마가 발버둥을 치려 했으나, 온몸이 돌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테일러의 몸이 순식간에 새카만 꽃잎처럼 흩어지더니 악마의 전신을 빠르게 난도질했다.
“?”
하지만 정작 악마는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당황했다.
사아아-
그 그림자 꽃잎이 뭉쳐지며 악마 앞에 나타난 테일러.
“헉? 넌 뭐야?!”
악마는 소리쳤지만, 테일러는 쿨하게 몸을 돌리며 나직이 말했다.
“넌 이미 죽어 있다.”
“뭔 미친 소리를…….”
하지만 3초가 지나고 몸이 다시 자유로워졌을 때, 악마는 테일러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
발아래 드리운 그림자.
분명 그 그림자의 주인은 자신인데도 불구하고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난도질당해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것처럼…….
“커헉?!”
털썩-
다른 말은 잇지 못한 채 고꾸라진 악마는 숨이 멎었다.
“역시 먹히는군.”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묶인 헬트리버들을 풀 수 있는 열쇠를 방금 악마가 가지고 있었느냐인데…….
“젠장! 없잖아?”
아무리 뒤져 봐도 보이지 않는 열쇠.
그렇다면 다른 악마들이 더 나타나길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끌수록 어려워진다.’
암살자라는 특성 탓에 그 한계는 더 크게 와닿을 터.
테일러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며 집중했다.
‘문이 열렸으니 열쇠를 가진 놈을 직접 찾아서 노리자.’
적들이 아직 자신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을 때 열쇠를 탈취해야 했다.
* * *
소란을 듣고 몰려드는 악마들.
그 악마들 사이를 은밀하게 다니며 관찰한 끝에 허리춤에 열쇠 뭉치를 단 녀석을 찾아냈다.
그리고 녀석을 처치 후, 열쇠를 손에 넣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5분.
하지만 이젠 테일러까지 악마들에게 완벽히 노출되었다.
‘하지만 이대로 탈출만 하면 된다!’
다시 사육장으로 돌아온 테일러는 악마들과 전투 중인 불댕댕이와 헬트리버들을 빠르게 지나쳤다.
“부탁한다!”
그리곤 묶여 있는 다른 헬트리버들의 사슬을 빠르게 풀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어? 저 자식! 무슨 짓이냐!!”
“그만둬라! 이 헬트리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
철컹-
그러거나 말거나 암살자답게 엄청난 민첩성으로 헬트리버들을 풀어 주는 테일러.
풀려난 헬트리버들은 그간 억눌렀던 분을 제대로 쏟아 내겠다는 듯, 곧장 악마들에게 달려들었다.
“헉?! 피, 피해!!”
“으아악!!! 뜨거워!”
헬트리버는 충격을 받으면 덩치가 커지고 강해지는 특성 탓에 하급 악마들만으론 쉽게 상대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물론 힘을 쓸수록 반대로 약해지긴 하겠지만, 이곳에 있는 악마들로는 헬트리버의 힘을 제대로 빼는 것도 무리였다.
“이 똥개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냐!!”
“저기! 저놈! 저놈을 먼저 잡아야 해! 저놈이 이 일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테일러를 지목하며 소리를 질러 댔지만 조그만 헬트리버도 상대하지 못하는데 테일러를 잡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 잠깐만……. 저거 인간 아냐?”
그 난장판 속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의문.
그걸 똑똑히 들은 테일러는 아차 싶었다.
아무리 변장 아이템을 하고 있긴 하다지만, 이렇게 격하게 날뛰고 있으니 하급 악마들도 자신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기는 느껴지긴 하는데……. 뭔가 느낌이 인간 같은데…….”
“너 인간 본 적 있어?”
“으응? 보, 본 적 없는……. 으아악!!”
계속 의심을 하는 악마들이었지만, 이제는 테일러를 신경 쓸 순 없었다.
주변에서 날뛰는 헬트리버들의 공세가 더욱 매서워졌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 이건 우리만으론 수습이 안 된다!!”
“기사들을 불러야 해! 우린 안 된다!!”
그 외침을 들은 테일러는 슬슬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야! 슬슬 돌아가자!!”
왈왈!!
테일러의 외침을 들은 불댕댕이는 힘껏 짖으며 다른 헬트리버들에게 전달했다.
타다닷-
명령을 전달받은 헬트리버들은 침투했던 배수로를 통해 빠르게 현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개중 몇몇 헬트리버들은 덩치를 너무 키운 탓에 좁은 통로를 지날 수가 없었는데, 사방에다 불을 뿜어 대는 과격한 방식으로 급히 덩치를 줄이기 시작했다.
콰과광-!!
성채를 뒤흔드는 폭음.
“헉!!”
테일러는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되는 소음과 충격에 얼굴을 굳혔다.
이렇게 되면 성 내의 모든 악마가 이 소동을 알게 될 게 분명했다.
‘일단 탈출을…….’
하지만 아직 배수로로 서로 꾸역꾸역 몸을 밀어 넣는 헬트리버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녀석들 사이로 같이 비집고 들어가기엔 모양새가 영 별로였기에 고민이 되는 상황이었다.
‘조금만 더 버텨보자. 한 1분 정도만…….’
하지만 상황은 테일러가 바라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파앗-
붉은 섬광과 함께 허공에서 나타난 심상치 않은 외모의 악마.
[시기의 대공 솔아이와 마주했습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중간은 훌쩍 건너뛰고 바로 끝판왕이 나타나 버린 것이다.
‘미친?! 이렇게 바로?’
하지만 솔아이는 어떠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한 듯싶었다.
“야! 너!”
테일러는 아직 자신의 옆에 남아 헬트리버들이 모두 들어가길 기다리던 불댕댕이를 불렀다.
“먼저 가라.”
…왈!
“훗.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름 없는 악마1, 악마2에게 두들겨 맞아 죽는 것보단, 대악마 솔아이를 상대하다 죽는 것이 훨씬 가치 있고 멋진 일이리라.
“가라! 난 신경 쓰지 말고!”
테일러는 혹시나 불댕댕이가 미련을 가질까 싶어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
‘매정하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우린 다시 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테일러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었다.
이미 불댕댕이는 진작 자리를 뜨고 없었으니까.
“하압!”
혹여나 불댕댕이를 노릴까 싶어 먼저 솔아이를 향해 달려든 테일러.
하지만 대악마는 대악마였다.
[악마 귀족 솔아이의 존재감에 압도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대폭 하락합니다.] [솔아이의 시선이 당신의 움직임을 옥죄어 옵니다.]테일러의 공격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큭……!”
온몸으로 느껴지는 묵직함.
솔아이를 상대하기 위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었기에 디버프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네놈.”
쇳덩이를 긁는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솔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충격적인 한 마디를 뱉었다.
“인간이로구나.”
“?!”
당황하긴 했지만, 상대는 대악마였으니 그럴 수 있는 일.
“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내 공격이 네 눈을 노리긴 했지만 말이야.”
테일러는 금방 침착함을 되찾곤 비아냥댔다.
하지만 솔아이는 테일러의 [붉은 악마 뿔 머리띠]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으니, 인간이라는 걸 확신한 듯싶었다.
“그런 어설픈 장난감으로 감히 날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그리고…….”
쿠구구-
무너질 듯 요동치기 시작한 성채.
분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마왕의 안식처를 헤집어 놓은 것도 분명 네놈이겠지.”
“??”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이렇게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편히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네놈에게서 알아내고 싶은 게 한둘이 아니니 말이다.”
“…….”
테일러는 생각보다 일이 꼬였단 걸 직감했다.
원래라면 장렬한 전투 끝에 멋지게 죽는 것이 목표였다.
마계에서 쫓겨나게 될 것 자체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의 업적과 멋진 그림은 만들어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솔아이의 자신을 생포하겠다고 말했다.
‘아… 망했다.’
그 순간, 테일러는 고문에 대한 두려움보다 재호의 잔소리에 대한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