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64
463화
솔아이야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한들, 당장 문제는 결국 나머지 대공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네. 마왕이 피를 토했는데 어떻게 그 정도로 무관심할 수가 있어?”
“뭐, 마왕과 우리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이니 가능한 것이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마왕이 마계를 대표하는 권력자인 것은 사실이나 우리가 그 권력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 재호는 문득 마왕 토벌전 당시, 마왕의 호출에 칼리토가 응답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인간 세계의 왕과 귀족의 관계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솔아이는 다른 카드를 꺼낸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다 죽어 가는 내가 뜬금없이 키메라를 완성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놈들은 절대 가만히 있지 못 할 테니까.”
“이상한 녀석들이네.”
마계가 당장 망할지라도 다른 대공보다 먼저 죽지만 않으면 된다란 느낌.
“그런 맥락에서 보면… 딱히 솔아이와 다른 대공이 뭐가 다른지 모르겠는데?”
“키메라가 그만큼 매력적인 생명체이다. 오랜 시간 우리가 연구해 온 궁극의 마수였으니…….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하면 뒤집히는 게 당연하지.”
“…뭐, 어쨌든 날 급하게 찾은 걸 보면 그 헛소리가 확실히 먹힌 모양이네.”
“그래. 실제로 조금 전까지도 한바탕 휩쓸고 간 참이다. 네가 이곳에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리스피롤로 가지 않았다면 엉망이 될 뻔했다.”
재호 일행이 파이라의 성을 벗어난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증명해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날 부른 걸 테고.”
파이라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솔아이가 속아 넘어갔다고 하더라도 다른 대공들도 그러리란 법은 없다. 언뜻 네 모습이 그럴싸해 보이긴 해도 의심하는 놈은 분명 있을 테니까.”
“방법은 없어?”
“…있긴 있다.”
파이라는 이미 나름의 해결책을 세워 두긴 했다.
다만 선뜻 그것을 제안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내 힘의 일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음? 대체 뭘 하려는 거기에?”
“널 좀 더 마계 친화적인 생명체로 만드는 것이지. 네게서 느껴지는 지독한 생령과 신성력을 감출 수 있도록.”
“뭐?! 미쳤어?!”
바로 튀어나오는 거친 대답.
당연한 소리였다.
아무리 재호가 온갖 이질적인 힘이 뒤섞인 상태라 하더라도 본질은 정령화장.
그걸 포기해야 한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오해를 한 것 같군.”
파이라는 얼른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이건 애초에 너는 손해 볼 일이 아니다. 오직 나만 손해를 보는 것이지.”
파이라가 계속 고민을 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네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되, 나의 가호를 내려 다른 대공들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힘을 잃은 파이라 입장에선 굉장히 무리한 일.
어쩌면 대공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정도로 약해질지도 몰랐다.
“날 말려 죽이려고 발악을 한 ‘누구’ 덕분에 말이지.”
재호를 바라보는 파이라의 눈이 잠시 원망과 분노로 번들거렸다.
“눈이 왜 그래?”
빠드득-
모른 척하는 재호의 태도에 무서운 효과음도 추가되었다.
“흠흠, 어쨌든 결론은 날 신뢰하기 어렵다는 거네?”
“그래. 그래서 나는 너와 좀 더 확실한 계약을 했으면 한다.”
파이라는 잠시 심호흡한 뒤, 그 계약의 정체를 밝혔다.
“널 내 사도로 만드는 거다.”
“사도?”
전혀 예상 못 한 발언.
“그래. 혹시나 다른 녀석들이 그 사실을 알아채더라도 대충 핑계는 댈 수 있다. 또한 네 정체는 확실히 숨기는 방법이니 그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훨씬 낮다고 볼 수 있지.”
더 큰불을 질러 작은 불은 덮어 버리겠다는 계획.
“일단 이론은 알겠어. 그런데 나한테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어.”
사도가 되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냐?
“앞서 말했듯 넌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대악마와 사도 계약을 맺게 된다면 대륙에서의 악명이 많이 증가하겠지만, 이미 넌 별로 의미 없는 수준이지 않나?”
“그렇긴 한데…….”
말이 나온 김에 잠깐 확인해 본 재호.
[명성 : 15,500] [악명 : 21,050]근래에 나쁜짓(?)을 많이 하지 않아 꽤 좁혀진 명성과 악명의 차이.
‘다시 확 늘어나겠네.’ 사실 두 수치 모두 남들이 보면 경악할 수준이었다.
악명 또한 저 정도면 사실상 대륙의 공적으로 낙인이 찍히고도 남을 만했으나, 그 못지않은 명성 수치가 그것만은 막아 주고 있었으니…….
“그럼 사도가 되면 내가 보는 이득은 뭐가 있지?”
“내 힘을 끌어다 쓸 수 있게 된다. 또한 나의 대표 무기인 화염창을 쓸 수 있게 되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거 이미 내가 다 하는 것들 아냐?”
“…그렇군. 이 빌어먹을 자식!”
사도도 아닌 주제에 멋대로 파이라의 힘을 강탈해 쓰고 있었던 것이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달은 파이라는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그럼 굳이 사도를 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이미 네가 가지고 있던 정수도 내가 흡수해 버렸는데.”
“크흠. 그거론 모자라다. 지난번 솔아이도 네게서 나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었지 않나?”
“그건 솔아이가 눈이 뒤집힌 탓 아닌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걸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네가 가져간 건 미완성에 불과한 정수였다. 더군다나 내가 대륙에 본체를 강림시키기 위한 도구였고. 간단히 말해 넌 내 힘의 잔상을 가졌을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마기를 담고 있었기에 재호의 반쪽을 악마로 만들긴 했지만, 파이라의 근원적인 힘은 얻지 못했던 것이다.
“당장 네가 제대로 쓸 수 있는 나의 권능은 없지 않나?”
“권능? 하나 있긴 하던데?”
[] [교만의 대공 파이라의 권능을 빌려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당신의 모든 행위는 파이라의 업적으로 기록되며, 악명이 증가합니다.]다만 대악마의 권능이라기엔 다소 시시한 면이 있긴 했다.
일시적인 능력치 뻥튀기와 화염창의 강화 정도가 끝이었으니 말이다.
“훗, 맞는 말이다. 그건 사실 권능이 아니라 당연한 상호작용으로 보는 게 옳다.”
파이라는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사도가 되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다. 물론 그 정도만 해도 대단히 강한 힘을 얻을 수 있겠지만, 조금 아쉬운 게 사실이지.”
“그래서 더 좋은 걸 주겠다?”
“그렇다. 네게 을 주겠다. 나의 대표 권능 중 하나지. 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멋진 것이다.”
“그래? 그건 사용하는 데 제약이 없나?”
의 경우, 파이라의 건강 상태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없진 않지만 걱정하지 마라. 은 그렇게 효율 나쁜 능력이 아니니 큰 부담은 없다.”
파이라는 재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어떤가? 내 사도가 되어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생각이 있는가?”
“뭐,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처지기도 하니까.”
“후후, 잘 생각했다. 그럼 널 내 사도로 임명해 주지.”
텁-
재호가 파이라의 손을 마주 잡았다.
스으으-
파이라에게서 흘러나온 검은 기류가 손을 타고 재호에게 전해졌고, 이윽고 재호에겐 알림이 떠올랐다.
[교만의 대공 파이라의 정식 사도가 되었습니다!] [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악명이 증가합니다.]‘어? 생각보다 악명이 많이 증가하질 않네?’ 당연히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문구가 뜰 줄 알았는데 의외인 상황.
“헉… 헉…….”
그 원인은 앞에서 숨을 헐떡이는 파이라를 보니 알 것 같았다.
‘권위가 추락해서 그런 모양인데…….’
재호에게 심하게 털리고 쫓겨난 이후, 대륙에서의 영향력의 극도로 약해진 파이라.
이렇게 골골대고 있으니 그만큼 호구 대악마 인상이 강해진 탓으로 추측되었다.
“돼, 됐다……. 계약은 완료되었다.”
“너 괜찮은 거야? 진짜 권능을 써도 무리 없는 거 맞아?”
“…….”
저질러 놓고 보니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게 된 모양인지 파이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짠하게 보였기에 재호는 얼른 눈을 돌리곤 스킬을 확인했다.
[] [교만의 대공 파이라의 권능 중 하나입니다. 오직 파이라의 사도만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대상 : 목표 대상 눈앞에 투명한 거울을 생성해 시야를 방해합니다. 20초 동안 유지됩니다.] [NPC 대상 : 목표 대상의 기억 속, 가장 끔찍한 교만의 흑역사를 끄집어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실제 효과는 랜덤하며, 대상의 정신력에 따라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재호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왜 자신은 이런 요상한 스킬들만 얻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멋지고 화려한 스킬들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 된 게 자신은 온통 예능 스킬들밖에 없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말칸트에게 받은 정도가 멀쩡한(?) 공격 스킬.
“표정이 왜 그러지?”
재호의 찝찝한 표정을 본 파이라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응? 아니, 뭐…….”
“설마 내 권능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러는 거냐?”
“으응?! 아, 아냐! 아주 마음에 들어!”
땀에 푹 절은 그를 보고 있으니 차마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다 드러낸 속내에 파이라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쯧! 이래서 인간… 아니, 임모탈리언들은 안 된다는 거다!”
“왜 그래? 괜찮다니까?”
“괜찮은 표정이 아니니까 하는 말이다! 임모탈리언 놈들은 그저 펑펑 터지는 걸 좋다고만 하지!”
뜨-끔.
“생각해 봐라! 자신의 얼굴을 코앞에서 계속 마주해야 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일지!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키는 흑역사를 직접 마주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
말이야 맞는 말이긴 했는데… 별로 폼이 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정말 모르겠냐?”
“아니, 알겠어.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괜히 열 내서 힘 빼면 손해니까.”
힘들어 보이는 파이라를 제지한 뒤, 재호는 좀 전에 같이 떴던 칭호 알림도 확인했다.
[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파이라령 내의 백작급 귀족의 권위를 지닙니다.] [파이라령 내, 백작급 이하의 악마들은 당신에게 복종합니다.] [*파이라의 힘이 커질수록, 당신의 영향력과 모든 관련 스킬의 위력도 증가합니다.] [*사도 계약이 해지될 경우, 칭호가 사라집니다.]스킬보다 오히려 칭호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면 최상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뛰어난 효과였다.
‘단, 이 효과 자체가 마계 한정으로 발휘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륙에선 써먹을 곳도 없는 칭호였다.
또한 파이라의 힘을 공유하게 된다는 것도 언뜻 보기엔 좋아 보여도, 지금의 상태론 그다지 유의미한 건 아니었고…….
“후우- 아무튼 이걸로 대비는 끝났다.”
심박수가 어느 정도 안정화된 파이라가 말했다.
“이제 우리가 말을 맞춰 놓고 다른 대공들 앞에서 적당히 연기만 해 주면 되겠지.”
“거짓말을 하는 건 내 전문이니 걱정하지 마.”
재호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련히 그럴까? 아, 그리고 기왕이면 네 모습도 바꾸는 게 좋을 거다. 혹시나 칼리토 녀석의 귀에 들어가거나, 갑자기 나타나 널 본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솔아이는 이미 내 모습을 봤잖아.”
“내 사도가 되면서 네 모습이 변했다고 둘러대면 된다.”
“흠… 그럼 모습을 어떻게 바꾸지?”
“오콤이 이상한 장난감을 주지 않았나? 그걸 이용하면 간단한 일이지.”
“아!”
[붉은 악마 뿔 머리띠]별로 내키지 않는 짓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윽!”
반면 머리띠를 해야 한다는 말에 질색하는 티나.
“쯧, 넌 어차피 그렇게 해도 바로 들통이 나 버릴 거다.”
파이라는 혀를 차며 대꾸했다.
“여기까지 따라온 건 어쩔 수 없다지만, 행여나 대공들과 마주하는 자리까진 절대 못 온다는 걸 명심하도록.”
다행히 티나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았다.
“녀석들이 알아챌 위험은 없어?”
재호는 혹시나 해 물었다.
이제 티나는 전설급 NPC에 가깝다 보니 우려되는 것이 사실.
“아마 괜찮을 거다. 네가 데리고 온 사제처럼 신성력을 뿜어내는 것도 아니니까…….”
파이라는 그렇게 말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하게 느껴지는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