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475
474화
칼리토는 여전했다.
지난번에 봤을 때와 비교하면 패션이 다르긴 했지만, 화려하고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파이라나 다른 대악마들과 달리 그는 덩치를 거대하게 키운 채로 재호와 마주했는데, 그것이 과시라는 걸 재호는 알 수 있었다.
“누후후… 설마설마 했거늘… 정말 그대구나.”
역시나 도착하자마자 자신이라는 걸 알아챘던 모양.
“칼리토. 오랜만이야?”
“그렇지 않아도 그대의 소식이 궁금했지만……. 그러나 지금 이 만남은 조금 당혹스럽군.”
그의 반응은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협상… 또는 그를 함정으로 끌어내기 위해 온 것.
그의 의심이 담긴 눈초리에 일일이 반응해 줄 필요 없었다.
“오히려 좋은 상황 아닌가?”
재호 또한 아는 바가 있다는 듯 말했다.
가늘어진 칼리토의 눈매.
그는 더는 웃고 있지 않았다.
재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평소처럼 가볍게 듣고 넘길 만한 것이 아니었으니…….
“무슨 의미로 말한 거지?”
“말 그대로의 이야기야. 마왕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너도 알지 않나?”
“…….”
그는 누구(?)처럼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재호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 묵묵히 바라만 보는 그.
재호가 감추고 있는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한 시선이었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재호의 표정에서 뭔가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얼굴에서 확인되는 건 ‘살벌함’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대악마의 힘으로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부분 악마들은 자신 앞에서 설설 길 테지만, 상대는 인간…….
그것도 보통 인간이 아니라 겁 없기로 유명한 임모탈리언이었다.
죽음조차 존재하지 않는 건방진 생명체들.
“누후후… 이렇게 기 싸움을 할 때가 아니군.”
결국 칼리토는 한발 물러섰다.
“말해 봐라. 대체 무엇을 근거로 지금을 좋은 상황이라고 하는 것인지.”
마침내 재호에게 온 기회!
“마왕이 지금 정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겠지?”
그야 당연한 일.
안 그래도 그 때문에 엉덩이가 움찔움찔하던 칼리토이지 않았던가?
“내가 한 거야.”
“…….”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일이지만 내심 놀란 건 사실이었다.
자신이 재호를 이용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며, 모종의 계획을 지시한 건 사실이지만 이토록 과감하게 할 것이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내가 다른 대공들의 힘을 먼저 빼놓기를 바랐지만, 상대는 마왕. 힘이 어느 정도 빠졌다고 하더라도 네가 그를 상대로 확실히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게다가 그 문제뿐이 아니었다.
“정작 마계에 와서 보니 마왕성을 지키는 장군들도 있던데? 그 녀석들까지 몽땅 혼자 상대할 수 있어?”
“물론! 난 그 정도의 힘은 가지고 있다!”
재호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 차려. 친구라서 하는 이야기야.”
“?”
“…친구 아냐? 저번에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 그랬었나?”
“…….”
재호는 그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뭐… 처음부터 진짜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니었을 테니까.’
그래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단 것도 기억 못 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나는 나름대로 조사 후에 결론을 내렸어. 이대로라면 칼리토 넌 무조건 계획에 실패한다. 하지만 네가 실패해 버리면 나도 난감해지지. 내 꽃집이 네게 걸려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과감한 계획을 세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머리를 바로 치는 거다. 다른 녀석들이 눈치채기 전에 빠르게 움직여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지!”
재호는 주먹을 불끈 쥐며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대의 의도는 알겠다. 하지만 왜 내게 진작 알리지 않았지? 이런 위험한 짓을 저지르려면 당연히 미리 알려야 했던 것 아닌가?”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알려? 지난번에 네가 사라진 뒤, 누가 나타났는지 알아?”
“누구였지?”
“프티머스. 프티머스 잘 알지?”
“…아주 잘 알다마다. 그 정의병자.”
어지간히 악명 높은지 칼리토 역시 얼굴을 잔뜩 구겼다.
‘아니지. 이 경우엔 명성인가?’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재호는 역시 악명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파이라의 말에 따르면 마계 또한 필요악으로 존재해야 하며, 프티머스는 세상이 어찌 되든 마계를 깡그리 밀어 버리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그건 인간들 입장에선 엄연히 해악이었다.
“그때 느껴졌던 그 느낌…….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다 싶더니 프티머스였던 거로군.”
“맞아. 프티머스는 보자마자 네가 날 훔쳐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던데?”
“그놈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야. 인정하지.”
칼리토는 그렇게 말했지만, 재호는 방심하지 않았다.
그가 인정한다는 건 어디까지나 재호가 먼저 칼리토에게 접촉할 수 없었던 이유에 한정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내 일이다. 감히 그대가 이런 식으로 멋대로 저질러도 될 일이 아니란 거다.”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솔직히 내가 마왕을 한 방 먹인 덕에 두근거리지 않아?”
재호는 슬쩍 떠보았다.
“그런다고 해서 해결될 건 없다. 오히려 마왕성 내의 경계가 더 강화될 테니 도리어 나빠졌다고 할 수 있겠지.”
원론적으론 맞는 말.
“하지만 그들을 밖으로 꾀어 낼 수 있다면?”
“?!!”
그건 예상하지 못했다는 칼리토의 눈이 부릅떠졌다.
“마왕을 완전히 노출시킬 수 있다는 건가?”
“가능성은 있지.”
물론 그쪽으로 합의된 바는 없었다.
장군들은 몰라도 다른 대공들의 경우, 파이라에게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않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한 상황.
하지만 재호와 파이라가 계획한 걸 대공들에게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전후 관계가 반대로 된 꼴.
구실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일단 칼리토가 먼저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해.’
재호는 숨을 가다듬곤 설명을 이었다.
“아마 최근 파이라 쪽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을 거야. 안 그래?”
“…정확하다.”
칼리토가 순순히 인정했다.
그 태도에서 칼리토의 욕심이 경계심을 조금씩 허물고 있다는 걸 느낀 재호.
“내가 거기 있다 왔거든.”
쿠웅-
하지만 그 말을 하자마자 칼리토의 분노가 터져 나와 재호를 압박했다.
“?!”
재호의 숨이 턱 막히는 순간.
사악-
어느새 검을 뽑은 티나가 허공을 갈랐다.
스스스-
그와 동시에 재호는 자신을 덮치던 압박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티나?!”
티나의 갑작스러운 행동보다도, 순간 보인 순발력과 무위에 재호는 놀랐다.
아주 잠시, 어지간한 엘프 이상의 반사신경을 지닌 재호조차 티나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얘… 더 세진 거야?’
분명 칼리토는 재호가 파이라와 모종의 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힘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기척도 없는 칼리토의 공격을 티나가 완벽히 저지해 버린 것이다.
다른 상대도 아니고 현 마계 실세인 칼리토의 무력 시위를 가볍게 저지해 버렸으니 말이다.
방금 보인 티나의 움직임은 분명 재호가 알던 것 이상이었다.
‘날 따라다닌다고 리스피롤에서 사냥도 별로 못 했는데…….’
가능성이라면… 그 짧은 시간,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다녔다는 것 정도?
악마와 마수들을 두들겨 팰 수 있으니 빅썬더, 스트로앤 주교와 함께 잔뜩 흥을 냈던 것이다.
한편 재호가 놀란 것 이상으로 칼리토도 당황한 상태였다.
말이 친구지, 칼리토는 재호를 자신의 노예 정도로나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
성 내에서 봤던 악마들에게서 느낄 수 있듯, 그는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것엔 아주 엄격했다.
그런데 그 소유물이 다른 대공과 접촉했다고 하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재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강한 압박을 통해 경고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엘프의 칼질 한 번에 무산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다른 대공이었다면 이 엄청난 짓에 분노를 터뜨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칼리토는 탐욕의 대공.
그리고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탐나는군.’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면 저 엘프 정도는 충분히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의 무력을 지닌 엘프는 절대 흔하지 않다는 걸 잘 알았다.
그 특별함이 욕심났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
일단은 더 급한 일부터 처리한 뒤,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될 일.
“크흠. 분위기가 이상해졌군.”
일단 칼리토는 이 민망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 파이라가 아무리 힘 다 빠진 놈이라 하더라도 나의 적. 그런 놈을 찾아가서 무슨 짓을 꾸민 것이지? 잠깐…….”
그 순간, 칼리토는 뒤늦게 깨달은 사실에 얼굴을 더욱 구겼다.
“그러고 보니 네놈에게서 파이라의 냄새가 진하게 나는군.”
파이라의 사도가 되었으니 당연한 일.
다행히 재호는 적당히 핑계 댈 만한 게 있었다.
“네 말대로 별 볼 일 없는 놈이지. 그리고 잊었나 본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나야.”
재호는 인벤토리에서 파이라의 화염창을 꺼내 보였다.
“그때 얻은 파이라의 창과 힘의 정수. 힘의 정수는 내가 사용하기도 했으니 파이라의 냄새가 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사도 계약을 하기 전부터 이미 재호는 반쯤은 사도라고 해도 될 상태였던 것.
그 이야기에 칼리토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왜 놈을 찾아갔지?”
역시 변명거리는 있었다.
“별다른 이유 아냐. 내가 마계와 소통할 방법이 파이라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재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사막에 남겨진 내 제단은?”
“프티머스가 끝장냈지.”
“…….”
더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난 내가 세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파이라를 구워삶아 여기로 넘어온 거야. 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정도면 경위는 해명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한 재호.
“칼리토.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 대공들을 대륙으로 불러내 빈집털이하겠다는 그 계획. 가능하다고 생각해?”
“?”
“대악마나 되는 놈들을 줄줄이 소환했다간 일이 잘 풀려도 난 발 못 붙이고 살아.”
“그걸 내가 왜 신경 써야 하지?”
“그러니까 글러 먹었다는 거야. 그사이에 차라리 내가 꽃집을 옮기고 말지. 꽃 장사할 거라는 사람한테 그딴 말도 안 되는 걸 시키면 어쩌자는 거야?”
“?”
칼리토는 난데없이 꽃집 운운하는 재호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깟 꽃집이 자신의 지시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것.
“너만 마왕 되고 대륙은 개판 나면 뭐해. 마계 내부의 일은 마계에서 끝을 내야지.”
“…뭐하는 거지?”
짜증이 담긴 칼리토의 목소리.
재호는 얼른 본론으로 넘어갔다.
“내가 파이라 쪽에 양념을 좀 쳐 놨어.”
“뭐……?”
“파이라가 돕기로 했다는 말이야.”
“??”
설마 파이라가 이 계획을 알고 있다는 것인가?
“네… 네놈…….”
분노가 들끓으며 폭발하려던 순간, 재호가 마지막 한마디를 보탰다.
“마왕성과 대공들. 그들 전원을 확실히 유인해 주기로 했어.”
“…….”
“어차피 대공들을 대륙으로 유인하려고 했던 건 마왕을 안전하게 치고 싶었던 게 가장 큰 이유 아닌가? 그리고 일단 마왕의 자격을 얻을 수만 있다면 사실상 다른 대공들이 널 어쩌지는 못할 테고.”
재호의 말에 칼리토는 당황했다.
“설마 파이라가 그것까지 말했나? 마왕의 권위가 어떤 의미인지도?”
재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절대적인 힘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려워. 당장 급하게 욕심을 내다 체하는 것보단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부터 얻는 게 맞지 않겠어?”
마왕이 되면 마계의 최고 권력자가 된다.
그럼 대공들 하나하나와 맞붙었을 때 확실히 이길 힘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재호의 말대로, 마왕만 된다면 아무리 대공이라 하더라도 감히 반발은 하지 못한다.
마계의 위계질서란 그러했으니까.
애초에 마왕의 자리를 탐내 이런 일을 꾸미는 칼리토가 별종이었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마왕의 자격을 빠르게 차지하는 것이었고, 재호가 지적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뭐, 원한다면 난 이대로 다시 대륙으로 돌아가 줄게. 그리고 기약 없이 대공들이 대륙으로 소환되길 기다리든가.”
아니면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마왕 자리를 차지하든가.
뒷말은 속으로 삼킨 채 재호는 몸을 돌렸다.
대악마를 앞에 두고 멋대로 자리를 벗어나려는 건 미친 짓이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일종의 시위.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한 행동이었고…….
“잠깐!”
탐욕에 눈이 먼 대악마는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