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05
504화
제대로 몸을 일으킨 투룬아르의 전신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아마 오랜 시간, 동굴 속에서만 지낸 탓인지 굉장히 야위어 보이는 기다란 팔과 몸뚱이.
물론 원래 모습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재호는 그럴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잃고 싸우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팔은 전혀 안 쓰고 있었으니까.’
제대로 힘을 쓸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날개였다.
뼈만 남은 여덟 쌍의 날개들은 낱낱이 보면 볼품이 없었으나, 신기하게도 드래곤 특유의 위용은 분명히 살려 주고 있었다.
아마 저 날개들이 멀쩡했다면 굉장히 멋졌을 터.
왜 알드리온이 투룬아르의 날개가 드래곤 중, 손꼽힐 정도로 멋지다고 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시뻘겋던 눈동자도 붉은 기가 사라지고 희미하게나마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미친 거미 괴수로만 보이던 투룬아르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지고 대륙 최강의 생명체에 더 가까워진 모습.
하지만 그런 외적인 변화는 다 제쳐 두더라도,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지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쿠웅-
곧 비틀거리더니 투룬아르는 벽을 짚고 섰다.
-떠, 떠나라…….
“뭐?”
-나는 정상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너희들은 물론… 제국……. 제국……?
그 순간, 투룬아르의 눈동자들이 거세게 요동쳤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걸 인지한 모양.
“투룬아르!!”
재호는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넌…….
“날 알아?”
-기억난다…….
아무래도 정신 놓고 있을 때의 기억이 남아 있는 모양.
다만 좋지 않은 쪽으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감히… 악마들이 이곳을 넘보는 거냐…….
“어?”
재호는 흠칫하며 키노와 눈빛을 교환했다.
생각해 보니 둘 다 악마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다 투룬아르를 공격할 때 특유의 구린내 나는 기술들을 잔뜩 사용했다.
그러니 악마로 오해하는 것도 당연한 일.
재호의 경우엔 자세히 뜯어본다면 단순히 마기만을 다루지는 않단 걸 알 수 있겠지만, 방금 정신 차린 드래곤이 그걸 알아볼 것이란 건 쓸데없는 기대였다.
쿠구구구-
자신의 힘을 끌어올리며 당장에라도 재호 일행을 터뜨려 버릴 기세.
“정령화장아. 아무래도 제국은 포기하고 여기서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키노는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선 여유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린 투룬아르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젠장! 대륙의 위기 후보 중, 이게 정답이었다고?’
제국을 통째로 날려 먹은 뒤, 혼란해진 대륙에서 과연 제대로 꽃집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꽃을 찾을 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여유가 있을까?
NPC들은 절대 엘리시아 화원을 찾지 않을 테고, 플레이어들은 오직 꽃템의 기능성에만 주목할 것이다.
그런 팍팍한 꽃집은 재호가 원하는 게 절대 아니었다.
“투룬아르! 오해다!!”
일단 설득을 시도했다.
“우리가 악마의 힘을 쓰긴 했지만, 절대 불순한 목적을 갖고서 여길 찾은 건 아니다!!”
-헛… 소리…….
한마디로 일축해 버린 투룬아르.
“아니, 사실입니다!”
그때, 재호 앞으로 날아오른 알드리온이 대신 소리쳤다.
아기자기한 날개로 날아오른 알드리온은 투룬아르가 자신을 잘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이 날아올랐다.
“투룬아르 님.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알… 드리온…….
“맞습니다. 저 알드리온입니다.”
아는 얼굴을 만났기 때문인지 투룬아르의 노기는 한층 누그러들었다.
-너는… 상태가 왜… 그런 것이냐……?
“제가 수호하던 왕국의 지도자가 악마의 꾐에 넘어가며 큰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재호와 키노를 향해 살기 어린 눈빛을 보내는 투룬아르.
재호는 얼른 두 손을 흔들며 오해임을 어필했다.
“하지만 저기 있는 정령화장 알시아. 그 덕분에 저주로부터 해방되어 현재는 그를 도와 대륙의 안전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다행히 알드리온도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정령… 화장…….
“아마 투룬아르 님께서는 모르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령화장이란 존재는 대를 이어 대륙의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들입니다.”
투룬아르가 활동하던, 그리고 수호신이 되어 맨 정신을 유지하던 시기는 정령화장보다 한참 앞서 있었기에 모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평화는……. 아니지, 어떻게 보면 진정한 의미의 평화일지도.’
종족 가리지 않는 미친 친화력은 재호나 틴라이트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저자에게 특유의 마기가 느껴지는 것은 착각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특한 목적이 아니며, 오로지 선을 위해서만 사용하고 있다고 제 이름을 걸고 말씀드립니다.”
“알드리온…….”
그의 확신에 찬 변호에 재호는 코끝이 찡해졌다.
자신은 지금까지 알드리온이 힘을 회복하는 걸 은근슬쩍 방해하기나 했었는데, 그 속도 모르고 자신을 위해 저런 낯간지러운 이야기도 하고 있었으니…….
-뭘 그렇게까지 생각해. 그냥 이 상황이 조진 것 같으니까 저러는 거지. 아까 주머니에서 나올 때 표정을 네가 못 봐서 그래.
그 감동에다 꼰대가 찬물을 확 끼얹어 주었다.
-맞아. 알드리온이 있던 주머니에 들어왔는데 엄청 축축해. 땀 맞겠지?
어느새 도망갔던 징징이도 돌아와 한마디 보탰다.
어쨌든 알드리온의 필사적인 변호는 효과가 있었다.
자신들과 달리, 투룬아르에게 제법 신용 있는 이름이었던 모양.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왜… 여기서 날 공격하고 있던 것이지……?
“?”
자신을 알아보기에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 줄 알았던 재호.
그런데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모르시겠습니까?”
알드리온은 착잡한 목소리로 말했다.
“투룬아르 님은 현재 대륙의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손을 쓰지 않으면 바로 위 지상에 자리한 제국은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릴 것입니다.”
-…….
“죄송한 말씀이지만… 투룬아르 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 도움이 희생이라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알드리온.
침묵에 빠졌던 투룬아르는 천천히 고개를 내려 자신의 몸을 살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나가 마구 들끓는 몸뚱이.
통제를 하려고 해도 통제되지 않는 폭주는 결코 온전한 상태가 아니란 걸 알려 주고 있었다.
-그래……. 그랬었지…….
자신이 이성을 잃었을 때 벌어졌던 일들을 다시 상기한 그.
-돌이킬 수… 없게 되었군…….
회한으로 가득 찬 중얼거림과 함께 투룬아르는 천천히 재호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날… 어찌할 셈이었지……?
“…우리가 파악하기론 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자폭을 하게 돼. 그게 사실인가?”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이 장소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둘 순 없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려던 참이었어.”
만약 오기크 때와 마찬가지의 상황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재호가 준비한 작전, B플랜이 바로 그것이었다!
멀리 안전한 장소로 투룬아르를 옮긴 뒤, 자폭시키기!
그런데 키노가 드래곤을 강제로 텔레포트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던 중, 이 사달이 일어나 버렸다.
흑역사를 보면 힘이 쭉 빠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 일이었으니… 누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이나 했을까?
-그렇다면… 안전한 장소를… 따로 알고 있는… 것이냐……?
“준비해 놓은 장소가 있어.”
투룬아르의 반응을 보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이 풀릴지도 모른다 싶었다.
그다음 말을 듣기 전까진 말이다.
-내가 폭발한다면… 그 일대가 폭파에 휩쓸리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내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무한한 마나……. 그것은 대륙을 다시 더럽힐 터……. 그 어떤 생명체라도 없는… 장소여야 한다…….
“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 투룬아르 탓에 재호는 미간이 구겨졌다.
“사람이 안 사는 곳을 찾기도 어려운데, 생명체가 없는 곳? 그런 곳이 대체 이 세상 어디에 있어!”
-그것이… 나의 조건이다…….
“그런 조건 따질 시간이 없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인데 여유롭게 부동산을 알아보고 다닐 시간은 없었다.
-내가 어느 정도는… 버텨 줄 수 있다…….
“버텨 준다고?”
-길게는 아니지만… 이 폭주하는 마나를… 조금은 진정시킬 수 있다……. 너희들이… 생각할 시간으론 충분하겠지…….
그건 꽤 좋은 소식.
하지만 그것 자체는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
재호의 질문에 투룬아르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이곳에서 그냥 터져 죽겠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데, 그건 투룬아르가 내건 조건에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으니까.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오류였지만, 드래곤이나 되는 존재가 그걸 생각 못 했다는 점에서 그의 상태가 아주 나쁘다는 걸 재차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사람들은 다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해 줄게. 그 정도면 어때?”
재호가 먼저 절충안을 내놓았다.
“아, 물론 엘프나 다른 이종족들도 포함이야. 단, 몬스터는 양보 못 해.”
“투룬아르 님. 그의 말은 믿으셔도 됩니다.”
알드리온도 재차 재호를 옹호하며 나섰다.
“그는 누구보다 편견이 없는 자입니다. 그의 동료들을 보십시오!”
알드리온은 재호 뒤에 선 티나, 그리고 저 멀리서 지켜보는 드렐리어와 쉰들러를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보다 다양한 종족과의 교류 중인 재호!
심지어는 악마와도 친구(?)를 할 정도였으니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플 뿐이었다.
그 누구보다 편견이 없으니 악마의 힘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악마랑 친구라면서 왜 날 가리키는 거야?
징징이는 짜증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저자에게서 진한 생령의 힘과… 신성력 또한 느껴지는군…….
알드리온의 적극적인 변호에 투룬아르도 마침내 재호의 복합적인 힘을 알아챘다.
-드래곤의 힘 또한…….
‘앗, 드래곤은…….’
하지만 자신이 드래곤의 힘을 받아들인 것에 투룬아르가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다 싶었기에 재호는 살짝 긴장했다.
-블랙 드래곤인가……. 그들은 천성이 난폭한 자들…….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다행히 투룬아르는 그 점을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정신이 나간 상태라고 하더라도 블랙 드래곤의 성질머리가 더러웠단 건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모양.
-…좋다. 너희들의 결정을… 아니… 알드리온을 믿고 따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투룬아르에게서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 * *
재호가 전투를 시작한 이후, 지상에선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최근 늘어난 지진… 아니, 지금은 그보다 몇 배는 더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쿠르르르-
끝없이 흔들리는 제국.
불안함을 떠나 공포에 빠질 정도로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
황성에서는 이 불안함을 통제하기 위해 기사와 병사들을 내보냈지만, 문제는 불안한 건 그들 역시 마찬가지란 점이었다.
황성에서는 이 사태에 대해 어떠한 발표도 없었다.
제국에 뭔가 말할 수 없는 심각한 일이 일어났다는 의심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런 불안은 황성 내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정확한 사정을 황족들이 아닌 다른 이들은 모르는 상황.
그리고 먼저 사태 수습을 위해 나섰던 1황자 헤라리는 다시금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폐하! 지금 알시아 그자에게 속고 계십니다!”
그는 황제 앞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지하에 드래곤은 없습니다! 교단에서 직접 확인한 사실입니다! 그자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제국의 아래에서 아주 끔찍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헤라리 황자 처지에서는 그렇게 말할 법했다.
정황만 봐도 뭔가 이상한데, 흑마법사까지 제국의 심장 아래로 데리고 들어갔으니…….
하지만 황제는 진짜 드래곤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황제에게만 전해지는 황실의 진짜 역사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소란이 멈추지 않았느냐?”
그러나 그 이야기를 할 순 없었기에 황제는 다른 말을 했다.
실제로 조금 전부터 지진은 더는 발생하지 않고 있기도 했고…….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이라도 기사들을 동원해 알시아와 그 일당이 지하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그자는 폭파광이라고 들었는데… 망설이다 제국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면,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습니다!”
황제 앞에서 감정을 격하게 토로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훗날 절대 권력자가 되어 세상을 발아래 두어야 할 자신이거늘… 제국이 무너진다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하지만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네게 충분한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헤라리 황자는 실패했다.
“이제는 다음 사람의 기회다.”
그가 말하는 다음 사람은 당연히 5황자 젠트르노.
그 사실을 깨달은 헤라리 황자는 울컥했다.
“실패가 아닙니다! 저는 처음부터 이 작전이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냈습니…….”
“폐하-! 알시아 대왕이 폐하께 알현을 요청하셨습니다!”
그 순간, 바깥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