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11
510화
일단 재호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조.이.주.용.함.심.정.저.]여덟 글자와 ‘옵티마’에 대한 걸 고민하기엔 적합한 장소도, 때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입니까?”
그때, 재호가 떠날 듯한 모습을 보이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황실의 기사가 다가와 물었다.
“대충은? 폐하를 뵈러 가야 하지?”
“그렇습니다. 일이 마무리되면 바로 대왕을 정중히 모시라 하셨습니다.”
재호는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이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먼저 돌아가겠느니라. 무리했더니 온 삭신이 쑤시는구나.”
키노는 재호의 시선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제의 부름을 거절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재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게 해.”
이번만큼은 그녀의 말을 엄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대단하며 헌신적인 활약을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아마 그녀가 없었다면 제국은 지도상에서 사라지고 없었을지도 몰랐다.
‘황제를 만나지 않고 돌아갔단 걸 알면 누군가는 맘에 안 들어 할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황제는 트집을 잡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아, 그리고 네게 또 하나 빚을 지워 주자면 말이다.”
그때 키노가 재호를 향해 손짓했다.
족히 머리 세 개는 더 큰 키이니 좀 숙여 보라는 뜻.
“왜? 뭔데?”
재호가 허리를 숙여 높이를 맞춰 주자 키노가 귀에 대고 작게 말했다.
“헤라리라든가? 그 풋내기와 만났을 때, 내가 조금 장난을 쳐 놓았단다.”
“?!!”
키노의 장난만큼 무서운 게 과연 있을까?
“아마 네게 큰 도움이 되었을 거라고 자신한단다.”
그렇게 말한 키노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텔레포트로 자리를 떠났다.
물론 황성의 결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찢어 버린 채로 말이다.
“…….”
재호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뒤늦게 헤라리 황자를 보며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챘다.
‘뭔가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다 싶더니…….’
어지간한 사람의 정신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키노.
아마도 헤라리 황자와 잠깐 스쳐 지나갈 때, 은밀하게 수작을 걸었던 모양이었다.
‘과연 황제가 진짜 몰랐을까?’
재호는 잠깐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이미 일어나 버린 일, 돌이킬 수 없다며 애써 지워 버렸다.
“흠흠…….”
그때, 재호의 상념을 깨우는 올리브유의 헛기침.
“어… 저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될까?”
올리브유는 삐쭉거리며 물었다.
“엘리시아 화원 쪽으로 가 있으면 될까?”
“너희?”
재호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가는 김에 같이 가지 뭐.”
“헉?! 지, 진짜?”
그 제안에 올리브유와 쌀먹 길드원들의 눈이 똥그래졌다.
재호가 황제를 데리고 온 덕분에 결국 실제로 보긴 했지만, 황궁 안으로 들어가서 대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광.
“우, 우리가 그래도 될까?”
“안 될 거 없지. 어쨌든 너희도 제국을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잖아?”
재호의 말에 그들은 울컥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재호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벅차오르는 감격!
‘약속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이 정도 추가 보상은 주는 게 서로 좋지.’
나름대로 계산을 내린 재호의 결정이었고, 다행히 재호 앞에 선 기사도 쌀먹 길드가 함께 가는 것에 반대하지 않았다.
* * *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은 엄연히 비공식적인 일이었다.
제국의 숨겨진 역사와 관련이 있었기에 굳이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황제의 바람이었으나, 헤라리 황자 탓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의 착각에서 비롯된 무리수 덕분에 적어도 황성 내에서는 소문이 쫙 퍼진 것이다.
“세상에나! 황성 지하에 미친 드래곤이 있었다는군!”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하면 수호신 아닌가? 수호신이 미친 거야?”
“맞아. 최근 지진이 계속 일어났던 것도, 지난번에 황녀님과 알시아 대왕이 지하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것도, 다 그 미친 드래곤 때문이라는군.”
“그리고 그거 아나? 알시아 대왕이 그 드래곤을 죽였다는군!”
황성 내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의 내용은 그러했다.
동시에 헤라리 황자의 선 넘은 발언들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알려졌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황제의 권력을 향한 지나친 욕망…….
그래서 황제는 이참에 모든 것을 공식화하기로 했다.
“더는 감추어 둘 수 없다고 생각하네. 괜한 소리가 나오는 것도 막아야 하니 말이야.”
함께 온 쌀먹 길드는 황궁 관광을 하는 사이, 황제는 마주 앉은 재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그대는 두말할 것 없는 제국의 영웅. 그리고 제국의 수호신으로부터 나의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게도 해 주었지. 그러니 나 또한 그대에게 충분한 보답을 해 주어야겠다고 결심했다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황제는 재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앞으로 제국과 엘리시아 화원은 동맹을 넘어, 혈맹국으로 거듭날 걸세.”
“?!!”
황제의 입에서 나온 혈맹국 발언!
재호는 충격을 받은 동시에 젠트르노 황자와의 퀘스트도 떠올랐다.
[*제국 퀘스트*] [지금 이 시간부로, 당신은 5황자 젠트르노의 황위 계승을 위해 함께 싸우게 되었습니다.조심하십시오.
다른 경쟁자들인 황자들의 권력은 어지간한 국가보다 강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공 조건 : 5황자 젠트르노의 황위 계승] [보상 : 엘리시아 화원이 미드스트 제국의 혈맹국이 됩니다.]
이 퀘스트의 보상이 바로 제국과의 혈맹이었다.
단, 젠트르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이후에나 얻을 수 있는 보상.
그것을 황제가 당장 내어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보상을 내어줄 정도라면…….
황제가 따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재호는 그의 결심이 선 표정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황태자 경쟁이 마침내 끝이 났음을…….
그리고 다음 날, 재호는 제국의 공식 행사에 참석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제국의 행사에 사람들은 의아해했으나, 내부적으로는 대충 소문이 나 있었다.
“어제까지 지진이고 뭐고 난리더니 갑자기?”
“이거 또 황재호랑 관련 있는 거 아냐?”
제국에 머무는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그런 의심들이 나왔다.
아무래도 전날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을 NPC들보단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에이, 그거 진짜 황제 아니라며?”
“응? 누가 그래? 진짜 황제로 결론 난 지가 언제인데?”
“그 결론이란 것도 결국 추측 아냐? 그리고 딱 봐도 경사로 행사하는 것 같은데, 황재호가 어제 보여준 건 좋은 일이라고 하긴 어렵잖아.”
…라고 하는 순간, 대로로 화려한 꽃마차를 탄 재호가 나타났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이 행사에 초대를 받은 다른 이들도 있었는데, 쌀먹 길드는 물론이거니와 각 마탑의 탑주들도 근엄한 표정으로 함께 앉아 있었던 것이다.
“어? 저건…….”
마탑주들로 의심되는 인물들도 전날 사막에 있었다는 걸 플레이어들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찐 마탑주들이 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거란 건 쉽게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만백성 앞에 모습을 드러낸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보다 더 충격적이었으니…….
[지금 이 시간부로, 미드스트 제국과 엘리시아 화원은 혈맹이 되었음을 선포한다!]“미친?!”
“혈맹? 내가 아는 그 혈맹?”
제국과 피를 나눈 동맹이 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겐 다소 관심도가 낮았지만, 제국과 대륙의 정세에는 큰 영향을 미칠만한 다음 소식도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차기 황제가 정해졌다.
그리고 눈치가 빠른 플레이어들은 깨달았다.
엘리시아 화원의 혈맹과 젠트르노 황태자 소식이 함께 발표된 것엔 자신들이 모르는 숨겨진 이야기가 있으리란 것을 말이다.
-100% 황재호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황제가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했을 리가 없음.
└ㅇㅇ나도 그렇게 생각. 예전에 알시아 젠트르노 황자랑 같이 있는 거 목격담도 있고. 사실상 현 최강 권력과 차기 최강 권력까지 친목 제대로 해 놓은 거지.
-겜 망했네. 플레이어 한 명이 그냥 제국을 고대로 꿀꺽해 버리는 망겜 수준.
└근데 솔직히 황재호 게임도 늦게 시작한 편이잖아. 훨씬 일찍 시작한 자칭 고인물들은 뭐함?
└뭐, 보나 마나 미친 듯이 레벨업하고 템 파밍만 하고 다녔겠지. 안 그럼? 근데 황재호는 아직도 300레벨도 못 됨. 그리고 초창기에만 하더라도 헛짓거리하고 다닌다고 비웃는 사람 많았던 거 기억 안 남?
└위에 놈이 말 잘했네. 뉴월드 캐치프레이즈가 뭔데?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아님? 근데 대부분은 더 강해지는 것만 원한 게 팩트 아님?
└얘는 MMORPG 하는 거 맞냐? 당연히 강해지는 게 목적이지.
└니가 등신 아니냐? MMORPG 뜻 자체가 애초에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인데? 미친 듯이 레벨업만 하는 게 MMORPG 장르가 아니라고.
이 사태에 대한 사람들의 우려들이 컸지만, 이젠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불합리를 우겨 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황재호는 그럴 만하다.]뉴월드 최고의 이슈메이커다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늘 공개되다시피 했던 재호.
그간의 행보 대부분을 사람들이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배가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런데 쌀먹 길드가 뭐냐? 쟤들 꽃집 근처에서 본 적도 없는 놈들 아님?
└ㅇㅇ나도 엘리시아 화원에 뿌리박고 사는데 들은 적 없음.
└쌀먹 길드 그냥 대륙 돌아다니면서 환금성 좋은 퀘스트나 사냥을 주로 하는 애들임. 엘리시아 화원이랑은 상극이지.
└그럼 리얼로 제국 퀘스트 받아서 갔던 거야?
└대체 걔들이 어디서 제국 퀘스트를 얻은 거임? 그럴 급이 아닌데?
└난들 아나.
-어쨌든 개 부럽네. 황재호 라인 제대로 탄 것 같은데.
└너도 타면 되잖아. 전럭협 가입해.
└미쳤냐? 거길 뭐하러 가입해?
└마계도 보내 준다잖아.
└너 누가 전기장판 판다고 하면 조심해라.
그렇게 덩달아 스타덤에 오른 쌀먹 길드.
그들은 전례 없는 관심에 부담을 느낄 법도 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제국의 행사가 끝난 뒤, 페르마 사막으로 온 그들은 문제의 마나 오아시스를 직접 확인했다.
아름다울 정도로 푸르게 빛나는 호수.
그와 대비되는 주변의 새카맣게 죽어 버린 대지.
척 봐도 위험한 액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알 순 없는 노릇.
개중엔 일말의 의심을 품은 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확인을 위해 조심스레 손을 담갔다.
“진짜라면 생으로 마셔도 엘릭서 효과가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요?”
손으로 퍼서 한 모금 마셔 볼 요량.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 없었다.
털-썩.
손을 담근 이들이 그대로 털썩 쓰러져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헉?!!”
“기, 길마님? 저거 독극물 아니에요?”
충격적인 현상에 기겁했지만, 길드 내의 고레벨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즉사는 말이 안 되지. 내가 확인해 볼게.”
탱커 플레이어 한 명이 맷집을 높이는 각종 스킬을 사용한 뒤, 직접 손을 담가 보았다.
[초고밀도의 마나가 당신의 신체 구성력을 약화시킵니다.] [주의! 신체가 붕괴됩니다!] [체력이 초당 30% 감소합니다!]“헉?!”
무시무시한 디버프에 그는 기겁하며 손을 빼냈다.
퓨어 탱커인 자신이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이 즉사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거 진짜인데요? 뭐, 애초에 알시아 님이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것엔 이유 있었을 테지만…….”
올리브유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겠네요.”
지금부터 그들이 할 건 저 엄청난 마나를 가공할 수 있는 연금술사를 구하는 것.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닐 터였다.
연금술사란 클래스 자체가 귀족 중의 귀족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구한다고 하더라도 합당한 수익 배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약이 성립될 수 없었다.
‘다들 공백기를 버틸 여윳돈이 있다곤 했지만, 그래도 서둘러야지.’
올리브유는 주변에 선 길드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먼저 연금술의 도시, 오이미즈로 가 보죠.”
“이곳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진 않을까요?”
길드원들은 걱정했지만, 올리브유는 별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곳은 엘리시아 화원의 네잎클로버에서 경비를 서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그들이 떠나고 난 뒤, 텅 빈 사막의 지평선 너머에서 누군가의 망원경이 반짝였다.
몰래 지켜보는 한 남자.
그리고 과거, 오기크의 소재들을 회수하고 떠나던 재호 일행을 몰래 지켜보았었단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