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25
524화
부담스러운 그녀의 진심에 재호는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서 성물은 어디 있죠?”
일단 물건이나 확인해 보고 견적을 내자란 생각.
스으-
“성물은 이터널은…….”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고 재호도 따라 고개를 들었다.
“…설마 저거요?”
투명한 천장 너머, 영롱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구체.
“저게 성물 이터널이라고요?”
아이시클은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시켜 주었다.
“…….”
재호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크기에 동정심이 살짝 열렸던 견적서를 다시 접었다.
저 거대한 걸 겨우 꽃 몇 송이로 뭘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시클이 기대를 걸고 있는 불꽁꽁화의 물량도 그렇게 많은 게 아니었고 말이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장소가 성물 이터널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더 가까이 접근하면 이터널은 모든 걸 얼려 버릴 테니까요.”
“…….”
지금까지 했던 다른 퀘스트들에 비해 쉽다고 했던 말은 취소였다.
‘노답이네.’
지금까지 겪어 본 그 어떤 대형 퀘스트 못지않게 눈앞이 캄캄한 퀘스트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애초에 성공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
…였지만 아이시클의 ‘죽기 전 마지막…….’ 같은 소리를 들은 탓이 딱 잘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다.
* * *
일단 아이시클도 당장 어떻게 해 주는 걸 바라진 않았다.
그녀는 느긋하게 머무르며 청탑을 구경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그 가이드로 막내 장로 김바다를 내어주었다.
“하하… 이렇게 뵙네요.”
국내 리그 당시, 악연으로 이어진 후 첫 만남.
물론 재호는 김바다에겐 딱히 감정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당시 감독이었던 백재진 개인의 트롤링이었을 뿐.
“오랜만이네요.”
재호는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재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더라도 해당 팀 소속이었던 김바다는 결코 마음이 편해질 수 없었다.
“그땐 죄송했습니다.”
그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도 그렇고 당시 선수들 모두 황재호 선수에게는 딱히 감정이 없었어요. 오히려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았었지…….”
바다의 민망한 사과에 재호도 덩달아 민망해졌다.
“별로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그저 한 마디였지만, 사과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생각에 바다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럼… 어디부터 구경해 보실래요? 혹시 청탑에 대해 전부터 궁금했던 거라든가, 오는 동안 궁금했던 것 없어요?”
“네? 딱히 그런 건 없긴 했는데…….”
“그래요? 그럼 이거 보면서 한번 생각해 보시죠!”
갑자기 웬 얇은 책자를 꺼낸 김바다가 재호에게 건넸다.
[청탑 명소 가이드북]“오? 청탑엔 이런 것도 있네요?”
“아, 이거요? 제가 만들었죠!”
사실 바다가 재호의 가이드가 된 건 스스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었다.
재호를 나름 소개(?)해 준 것도 그였고, 같은 임모탈리언이니 나쁘지 않겠다며 아이시클은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약 바다가 텔레포트를 익혔었다면 재호를 청탑으로 데리고 오는 것도 그가 했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는 재호가 올 것을 대비해 열심히 청탑을 소개하는 책자를 만들었다.
그건 전부 재호와의 악감정을 씻어내고 새로운 친분을 쌓기 위함이었으니…….
물론 그 이면엔 개인적인 욕심도 있긴 했다.
재호는 글로벌 스타이자 뛰어난 게이머.
그럼에도 재호는 주변 사람들을 늘 챙겼으며, 그만큼 동료들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모두가 그걸 부러워했으며, 바다 또한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길 바랐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이 그 기회일지도 모르지…….’
재호가 청탑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면?
당연히 마탑 내에서의 입지는 많이 늘어날 것이다.
물론 장로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지만, 바다는 더 높이 올라가길 원했다.
특히 백탑이나 적탑에 비하면 인지도가 한참 떨어지는 청탑이었기에 그런 욕망은 더 컸다.
‘제발… 마음에 들어 했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이 만든 가이드북을 유심히 살피는 재호를 긴장한 채 지켜봤다.
재호는 가이드북을 찬찬히 읽었다.
집중해서 읽고 있다기보다는 앞에서 잔뜩 기대한 표정인 바다 때문이었다.
‘뭐라도 읽는 시늉은 보여 주는 게 좋겠지.’
영혼 없는 시선으로 가이드북 페이지를 한 장 넘겼을 때.
“어?”
관심을 확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여기 가 볼 수 있습니까?”
“어디… 아!”
재호가 가리키는 걸 확인한 바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어붙은 정원 말이군요. 엘리시아 화원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역시 꽤 멋진 장소죠.”
가이드북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청탑에 내부의 역사 깊은 화원이라고 했다.
꽃이 있다고 하니 관심이 가는 게 당연한 일.
‘추운 지역의 꽃은 본 적이 없으니까.’
오랜만에 신규 도감 작업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에 재호는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바로 가 보시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럼 이쪽… 아, 그리고…….”
김바다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알아보니 황재호 선수와 저 동갑이더라고요. 이참에 서로 편하게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아, 그럼 저야 편하죠.”
재호는 흔쾌히 수락했고, 김바다는 돌아서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재호와 친구 먹었다!’
그는 잔뜩 신이 나 힘껏 손짓했다.
“그럼 이쪽으로 가자!”
다른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하나 더 생긴 김바다의 어깨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넓어졌다.
* * *
새로운 꽃을 볼 수 있으리란 재호의 기대.
하지만 그건 금방 무너졌다.
“자! 바로 저곳이 이야!”
화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
하지만 테라스는 사방은 물론 위까지 유리로 다 막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조금은 갑갑하게 느껴지는 환경.
“하하, 멋지지 않아?”
멋지긴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꽃이 있긴 한 거야? 내 눈엔 전혀 안 보이는데?”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그냥 눈밭.
“혹시 꽃밭 위에 눈이 덮인 거야?”
“그런 반응일 줄 알았지! 실은 저 눈처럼 보이는 게 전부 꽃이야.”
“?!!”
재호의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지금도 하늘에선 굵은 눈송이가 내려와 위로 쌓이는 중인데?
뉴월드에는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온갖 희한한 꽃들이 잔뜩 있다지만, 아무리 봐도 눈으로만 보이는 걸 두고 꽃이라니 쉽사리 믿기 어려웠다.
“그야 당연하지! 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자체가 꽃이거든.”
“…응?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아니고 꽃 자체가 눈처럼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슥-
재호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머리 위에 자리한 건 성물 이터널.
그것이 천천히 회전하면서 위쪽에 쌓였던 눈들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저 위에서 떨어지는데? 쌓인 눈이 아니라고?”
“아, 용케 발견했네. 맞아. 분명 저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건 눈이야. 하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지상에 떨어져 눈꽃으로 개화해. 그게 바로 저 아래에 펼쳐진 이지.”
바다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청탑에선 저 현상을 두고 이터널의 보살핌이라고 해. 신기하게도 저 눈은 오직 이곳 얼어붙은 정원에만 내리거든.”
“눈이 떨어지면서 꽃으로 변한다라……. 보통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의심부터 하지 않나?”
가뜩이나 현재 성물 이터널은 점점 힘을 잃어 가는 상황.
그런데 얼어붙은 정원처럼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외지인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청탑의 마법사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네 주장은 이해를 못 할걸?”
청탑의 오랜 역사 속에서 계속 존재해 온 얼어붙은 정원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재호는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이 도감에 등록되었습니다.]도감에도 새로 등록된 신규 꽃.
[현재 에 대해 확인된 정보가 없습니다.]하지만 이름뿐이었고, 분석을 통해 자세한 정보를 얻으려면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저 밖으로 나갈 순 없어?”
“응? 아……. 그건 좀 어렵겠는데.”
뭐든 다 들어줄 것 같던 바다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저긴 좀… 위험한 장소거든.”
“위험해?”
아이시클에게 성물 이터널 가까이 가면 꽁꽁 얼어 버린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다.
하지만 얼어붙은 정원은 청탑의 꼭대기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으니 문제가 될 게 없어 보였다.
“저 꽃송이들은 성물에 붙어 있던 눈으로 만들어진 거야. 저기에 담긴 마력은 상상 이상이라 300레벨 정도 플레이어만 되어도 닿는 순간, 얼어서 즉사할 정도야.”
“즈, 즉사?”
저 포슬포슬한 눈송이가 맞으면 즉사라니…….
그렇다 해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흠흠…….”
-?
재호의 시선이 꼰대를 향했다.
-방금 못 들은 거냐? 즉사라고.
“정령은 죽지 않는다며?”
-아니, 나야 죽진 않겠지만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날 쳐다보는 네가 마음에 안 들어.
“에이, 한번 보고나 와 줘. 겸사겸사 스노우코튼의 정령이랑 대화도 좀 해 보고.”
-후…….
한숨을 푹 내쉰 꼰대는 재호의 어깨에서 날아올랐다.
“아! 잠시만. 그러면 밖으로 이어지는 곳으로 몰래 안내해 줄게. 재호 너는 여기서 기다릴래?”
“응? 왜?”
“그쪽은 통제 구역이라서……. 아무래도 너랑 같이 그쪽으로 가는 걸 남들 눈에 보여 봐야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아아, 알았어. 그럼 꼰대 너만 바다랑 다녀와.”
-쯧.
혀를 찬 꼰대는 바다의 망토 속으로 몸을 숨긴 뒤, 아래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자 곧 얼어붙은 정원 안으로 들어간 꼰대를 발견한 재호.
녀석은 또 어디서 구한 건지, 커다란 잎을 우산처럼 쓰고는 안을 유유히 날아다녔다.
“음?”
그때, 멀리서 지켜보고만 있던 재호는 특이점 하나를 발견했다.
“정령들이 안 나타나네.”
꼰대가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도 반갑게 모습을 드러내는 정령들.
식생에 깃든 모든 정령의 최상위 존재인 꼰대가 나타났는데도 반응이 없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꼰대가 바다와 함께 돌아왔다.
-이상하다.
역시 꼰대도 재호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야기는 조금 아리송했다.
-분명 꽃은 맞다. 그런데 그 속이 비어 있다.
“조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껍데기만 남아 있을 뿐, 그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생령이… 얼어 있다고 하는 게 맞을 거 같군.
“……?!”
이름 그대로 얼어붙은 정원.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몰랐다.
바다는 저 눈꽃엔 닿으면 즉사할 정도로 엄청난 한기가 담겨 있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의문이 생겼다.
‘각 현상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데?’
꽃과 정령이랑 아주 가까운 사이인 재호는 이게 결코 평범한 상황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 그래? 그 정도라고?”
반면 바다는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마법사 플레이어다 보니 자신의 클래스 이외의 분야에 대해선 잘 알기 어려웠다.
특히 장로까지 되기 위해 한 우물만 팠기에 더더욱.
“혹시 스노우코튼에 대해 더 자세히 알 방법이 없어?”
이게 청탑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