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27
526화
다른 장로들과는 달리 글레이셜 장로는 청탑 내에 살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만빙하곡 외곽의 도시에서 살고 있었는데, 바다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라고 했다.
“스승님은 마법사들하고만 부대끼면 성격이 점점 차가워지고 계산적으로 변해 가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게 좋다고 하셨거든. 더군다나 안 그래도 차디찬 환경이니 오죽할까 싶어.”
바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녀의 성향이 어떠한지 대충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바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상상한 이미지와 실제 그녀가 사는 거처의 분위기는 매칭이 잘 안 되었다.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었는데 온통 반짝이는 얼음으로 만들어져 굉장히 화려했다.
“뭐, 엄연히 취향이니까. 그리고 글레이셜 장로님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기도 하고.”
바다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대문 앞에 서서 복장을 정리했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내가 먼저 들어가서 말씀은 드리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그렇게 말한 뒤 바다는 먼저 글레이셜 장로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바다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밝은 표정으로 나타난 그는 재호에게 손짓했다.
“생각보다 더 좋아하시는 거 같네. 역시 이 만빙하곡에도 네 명성은 쫙 퍼진 모양이야.”
이미 얼굴에서 알 수 있었던 긍정적 대답.
바다를 따라 정원을 가로지르며 재호는 주변을 가만히 살폈다.
신기하게도 정원의 정원수들은 실제 식물이 아니라 얼음으로 조각된 것들이었는데, 디테일하게 굉장했다.
“스승님의 취미 생활 중 하나가 얼음 조각이야. 정원은 물론 건물 내부의 모든 것들도 직접 손으로 조각하신 것들이지.”
바다는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그래서 나도 조각 관련 스킬들을 제법 가지고 있기도 해. 스승님 취미를 따라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올랐지. 물론 아무 곳에도 쓸 일은 없지만.”
정원을 통과해 도착한 입구.
스르르-
역시나 얼음으로 만들어진 출입문은 서서히 녹아내리며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허공에서 다시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금세 문이 되었다.
“아까 글레이셜 장로님은 자격이 있다고 했지? 바로 저런 걸 보면 알 수 있어. 이 장소의 모든 건 그분의 마력으로 작동되는 거거든.”
다른 마탑의 탑주들이 마탑의 유지를 위해 자신의 힘을 쓰는 것처럼, 글레이셜 장로 또한 이 공간을 그렇게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자유를 원하는 아이시클과는 반대로 스스로 고생을 자처하는 글레이셜 장로.
‘이런 걸 좋아하나 보네.’
아무리 비효율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취향이나 취미 생활이라면 남이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었다.
“자, 이쪽으로. 글레이셜 장로님은 저 안에 계셔.”
역시나 다양한 얼음 조각들이 세워진 로비를 지나 도착한 응접실.
그곳은 바깥과 달리 따스한 훈기가 가득했다.
응접실의 외벽도 전부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벽난로에서 타오르는 불꽃에도 전혀 녹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선 새하얀 머리의 중년 여성.
“어머나… 정말 귀한 손님이 오셨구나. 보자마자 알겠어!”
바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글레이셜 장로는 재호를 정말 반갑게 맞이했다.
“반가워요, 알시아 대왕! 이미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난 글레이셜 장로라고 해요.”
“반갑습니다, 글레이셜 장로님. 알시아입니다.”
그녀의 기분 좋은 인사에 재호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호호, 소문으로만 들었었는데… 오히려 모자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과연 대륙의 영웅이랄까!”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듯 호들갑을 떨며 폴짝 뛰는 모습.
“어머! 그러고 보니 뒤에 있는 분은 엘프였네! 엘프는 처음 만나 보네요! 역시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라는 게 과언이 아니네요!”
옆에서 지켜보면 민망할 법도 한데 바다 역시 흐뭇한 모습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크게 기뻐하는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마치 오랜만에 효도한 것 같은 아들 같았으니…….
“아참!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와서 앉아요! 갑작스러운 만남이라 정신이 없었네. 많이 바쁜가요? 평소 궁금한 게 많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만나니 나도 잘 떠오르지 않네.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오호호- 잠시 기다려요. 차를 내어 올게요!”
그런 기분 좋은 환대를 받으며 재호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콕콕-
갑자기 재호의 어깨에 앉아 있던 꼰대가 재호의 귓불을 잡아당겼다.
-저 인간… 뭔가 느낌이 이상해.
그러더니 녀석의 입에서 찝찝한 이야기가 나왔다.
* * *
약 30분 정도는 글레이셜 장로의 일방적인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정말로 1대1 팬미팅이라도 된 듯, 재호에 대해서 사소한 것까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호기심을 해소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30분은 충분하지 않은 시간.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시간에 결국 바다가 나서 글레이셜 장로를 말렸다.
“스, 스승님. 슬슬 본론으로…….”
“어머! 나도 모르게 흥분해 버렸네. 미안해요, 호호-”
“아닙니다. 덕분에 저도 재밌었습니다.”
사실 재밌다기보단 민망함의 연속이었지만…….
그리고 재호는 꼰대가 한 이야기 때문에 마냥 순수하게 이 자리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
“그나저나 대왕도 내게 궁금한 게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드디어 용건을 물어보는 글레이셜 장로.
“네. 청탑에 관련해서 여쭐 게 있는데, 혹시나 불쾌하진 않으실지 걱정되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어차피 대왕은 외지인인데다 만빙하곡 자체도 외부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장소. 사소한 말실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염치 불구하고 여쭙겠습니다.”
꼰대는 글레이셜 장로에게 찝찝함을 느꼈다지만, 질문까지 눈치를 볼 필요는 없으리라.
“혹시 얼어붙은 정원이나 스노우코튼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들었으면 하는데…….”
재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
잠시 당황한 듯한 표정의 그녀.
“아, 역시 민감한 이야기인가요?”
재호의 물음에 글레이셜 장로는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요. 겁을 잔뜩 주기에 탑의 비밀이라도 요청하는 줄 알았어요.”
재호가 알고 싶어 하는 건 딱히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곳은 청탑을 방문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볼 수 있도록 개방된 곳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리고 애초에 청탑에서도 그리 많은 걸 알고 있진 않죠. 왠지 그 이유는 이미 들었을 것 같은데?”
“네, 제가 설명해 줬습니다.”
바다가 대신 대답해 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라고 해도 스노우코튼은 위험해요. 아차 하는 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죠.”
찻잔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하던 그녀가 힐끔 고개를 들어 재호를 쳐다봤다.
“그런데 대왕은 그걸 궁금해하는 이유가 뭔가요? 혹시 다른 임모탈리언들처럼 더 강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는 건가요?”
지금까지 다정다감했던 글레이셜 장로의 목소리에서 미미한 냉기가 느껴졌다.
“아뇨. 워낙 전에 본 적 없는 신기한 형태의 꽃이라서 관심이 생기네요.”
재호는 행여나 오해할까 얼른 덧붙였다.
“그리고 어쩌면 성물 이터널이 힘을 잃어 가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서 알아보는 중입니다.”
“음? 그게 어떤 점에서 관련이 있다는 거죠?”
긴장감은 한순간에 녹아 버리고 다시 당황한 듯한 글레이셜 장로의 의문이 돌아왔다.
그녀 역시 청탑의 역사에 빠삭하기에 얼어붙은 정원이 얼마나 오랜 시간 존재해 왔으며, 또한 그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외부인인 재호가 만고불변의 현상을 두고 수상쩍다고 하면 그곳에 사는 당사자 처지에선 당황하는 게 당연했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안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데요? 좀 더 자세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글레이셜 장로는 단칼에 쳐 내기보다는 재호의 주장에 관심을 보였다.
‘이야기해도 되려나…….’
재호는 차를 마시며 잠시 고민했다.
역시 마음에 걸리는 건 꼰대의 한마디.
‘…아니다. 뭘 고민하고 있어.’
어차피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야 나올 건 없었다.
일단 콕 찔러 봐야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얻을 수 있다.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해서는 답이 없는 것이다.
“제 정령이 스노우코튼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꽃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정령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더군요.”
“정령? 꽃에도 정령이 있나요?”
정령에 대해 보수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
특히 원소를 다루는 마법사들의 정령에 대한 편견은 더 심했다.
불의 정령, 물의 정령 등, 아주 기초적인 원소의 정령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꽃마다 다른 정령이 숨어 있다는 사실은 보통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연관성은 모르겠네요.”
글레이셜 장로의 말에 재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꽃과 정령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상 현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말 그대로 감이란 말이군요.”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사실 감으로 청탑을 조사하고 다니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어쨌든 탑주께서 허락을 했으니 가능한 거겠죠?”
“추천서도 받았습니다. 3장로님 앞으로 받은 거긴 하지만…….”
“푸훗- 설마 시니스 장로요?”
자못 심각한 표정이던 글레이셜 장로가 순간 웃음을 팍 터뜨리며 물었다.
“탑주님도 너무하시네. 누가 봐도 그건 대왕을 골탕 먹이려는 것 같은데.”
“네?”
뜬금없는 소리에 재호가 당황해하며 되물었다.
“골드 씨가 이야기하지 않던가요? 이 아이라면 분명 기겁했을 텐데?”
“아……. 듣긴 했습니다. 아이시클 님과 3장로님은 사이가 좋지 않다고.”
“그냥 안 좋을 뿐일까요? 시니스 장로를 얼어붙은 정원 관리자로 못 박아 버린 게 바로 탑주님인 걸요.”
“네?!”
전혀 몰랐던 사실.
바다도 3장로가 거기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긴 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아이시클의 악감정 탓에 그곳에 박힌 거라고?
주륵-
재호는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시니스 장로를 찾아가 추천서를 내밀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도 안 되었다.
분명 활활 타는 불길에 기름을 던져 넣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터.
‘왜지?’
재호는 의문이 들었다.
바다의 말대로 아이시클의 고약한 성격이 튀어나온 것일까?
자신이 그곳에서 했던 이야기가 사실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만든 것인가?
“그래도 재미있겠어요.”
그때, 글레이셜 장로는 한결 풀어진 표정으로 재호에게 말했다.
“실은 나… 아니, 청탑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스노우코튼에 대해 연구를 해 보고 싶을 거거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기에 잠자코 있었던 것이죠.”
그녀는 재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때요? 우리 함께 얼어붙은 정원과 스노우코튼에 대해 연구해 보지 않을래요?”
[*퀘스트*] [당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5장로 글레이셜 장로.그녀는 함께 과 에 대해 연구를 하고자 합니다.] [퀘스트 목표 : 1. 연구.
2. 조사.] [보상 : ???]
퀘스트가 떴다.
내용은 단순했고 보상은 물음표.
재호는 섣불리 그녀의 손을 맞잡진 않았다.
‘질문을 찔러 보는 거랑 손을 잡는 건 차원이 달라.’
꼰대가 무슨 뜻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는지도 들어 봐야 했고, 아이시클도 만나 따져 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레이셜 장로의 손을 잡는 순간, 최초 청탑 방문 목적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었다.
자칫 코를 꿰이면 아이시클의 퀘스트는커녕, 글레이셜 장로에게 붙잡혀 답 없는 노가다만 하게 될지도 몰랐다.
“흠흠, 일단 고민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은데요. 연구까지 하고 싶은 정도는 아니어서요.”
재호는 슬쩍 한발 물러났다.
“그래요? 정말 아쉽네요. 하긴 대왕은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순 없는 신분이니.”
다행히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
“그럼 혹시 대왕이 스노우코튼이나 얼어붙은 정원과 관련해서 새로이 얻는 정보가 있다면 내게도 공유해 주는 조건은 어때요? 대신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알려 주죠.”
…이는 줄 알았던 글레이셜 장로가 이번엔 정보 거래를 제안했다.
“뭐… 그 정도는 괜찮겠네요.”
정보를 주고받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기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