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3
52화
두 정령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 재호.
화원으로 들어서자 꼰대는 삽시간에 슈퍼스타가 되었다.
제법 나이가 있는 엘프들의 경우엔 꼰대와 구면인 이들도 많았고, 젊은 엘프들도 어른들에게만 듣던 정령화장의 파트너에게 큰 호기심을 보인 것이었다.
반면, 오는 내내 꼰대의 잔소리를 들어 혼이 나간 징징이는 완벽히 소외되었다.
엘프들이 아무리 정령에 대해선 관대하다고 하더라도, 마계의 정령보다 생기의 정령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본능 같은 거겠지.”
재호는 잔뜩 풀이 죽은 징징이를 대충 위로해 준 뒤,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이번에 만드는 것은 꽃반지.
게임 내 연인에게 고백하겠다고 제작 의뢰가 들어왔는데…….
‘아니, 게임 내에서 고백하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 굳이 꽃반지를?’
게다가 재호가 만드는 물건들의 성능에 대해선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혹여 알려졌다고 하더라도 사냥을 위한 능력치 뻥튀기에 대한 것이지, 이런 고백용 의뢰를 받을 이유가 없었다.
‘뭐, 안 될 건 아니긴 하지만……. 잠깐, 그러고 보니 최근 의뢰들이 죄다 이상한데?’
반지 의뢰 둘, 목걸이 셋, 꽃다발 다섯 등등…….
심지어 제작 목적도 비슷비슷했다.
고백, 장식, 패션…….
그 누구도 전투 관련 의뢰가 아니었던 것이다!
‘수상해…….’
느낌이 이상했다.
갑자기 작업이 이렇게 밀려들어 온 것도 그렇고, 하나같이 수상쩍은 의뢰라니.
‘설마 또 불곰 길드인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이것을 빌미로 침투 후, 자신을 암살하기 위한 작전일 수도.
‘엘프들을 대동하고 만나야겠어.’
그리 생각하며 재호는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 * *
“후우― 나 어때?”
잔뜩 긴장한 표정의 한 남자가 옆에 선 다른 여성에게 물었다.
“어쩌고 자시고…… 제발 그 양복 좀 벗으면 안 돼요?”
“아니, 비지니스맨이 양복을 안 입으면 뭘 입어?”
“현실에서나 좀 입으라고요. 뉴월드에서만 입지 말고!”
“쯧쯧, 이게 어디 보통 자리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남자를 만나는 자리인데?”
그리 말하는 남자의 시선은 저 멀리, 사막 가운데 보이는 푸른 대지를 향했다.
“알시아……. 드디어 만나는구나!”
큰 기대감을 보이는 그는 미국 최대의 프로게임단인 ‘쿠사(CUSA)’의 영입 팀장 ‘빌’이었다.
그리고 함께 따라온 이는 쿠사의 매니저인 ‘안나’.
두 사람은 재호에게 작업 의뢰를 해 놓았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
그들의 진짜 목적은 알시아의 영입이었다.
이전에도 영입팀에서 몇 번 접촉을 위해 엘리시아를 찾았으나 재호 근처에도 갈 수 없었다.
무작정 재호를 만나고자 하는 그들의 시도는 엘프라는 강력한 호위들에 의해 원천 차단되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콜센터를 통해 접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이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직원들이 ‘안녕하십니까. 저는…….’까지만 듣고 차단을 박아 버렸으니.
그래서 손님인 척 접근하는,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입 시도를 할 가치가 있는 플레이어가 바로 알시아였다.
엘리시아 화원에는 딱히 성벽이라고 할 게 없었다.
사막의 초원 그 자체가 엘리시아였으며, 재호의 꽃집과 화원이 위치한 곳은 그곳에서도 가장 중심부였다.
콜센터 직원과 엘프의 안내에 따라 그곳까지 이동한 빌과 안나.
엘프들의 적대적인 시선들이 연신 꽂히자 자신감 넘치던 두 사람은 잔뜩 위축이 되었다.
게다가 이따금 보이는 인간 노예들……!
‘이, 이정도로군. 플레이어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토로한 것도 당연해.’
하지만 빌은 전문가 중에 전문가였다.
이런 식의 과격 행보를 보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조련하는 게 자신의 또 다른 일이었다.
‘일단 영입에만 성공한다면…….’
척―
마침내 도착한 꽃집.
끼이이―
문이 열리자마자 흘러나오는 꽃향기는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로 진했다.
“아, 오셨군요.”
꽃집 안쪽에서 성큼성큼 모습을 드러낸 재호.
“…….”
멍하니 재호를 올려다보는 빌과 안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았다.
‘이, 이건……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압도적인 위압감!
도저히 평범한 사람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팀 내 에이스이자 미치광이로 유명한 ‘체어샷’을 처음 만났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 남자는 타고난 포식자다!!’
그런 확신이 드는 순간, 빌은 재호를 무조건 잡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남자는 무조건 흥행한다!
“음― 어느 쪽이 ‘최고매니저’시죠?”
노골적인 닉네임.
“아, 접니다. 반갑습니다.”
재호의 질문에 빌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에 나섰다.
“실제로 보니…… 더 멋지시군요.”
“……예?”
그게 갑자기 뭔 개소리냐는 듯한 재호의 표정에 빌은 잽싸게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우선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는 미국 최대 최강 게임단인 쿠사의 영입 매니저 빌 클린턴입니다. 편하게 빌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손님이 아니라요?”
“예. 이전부터 알시아님과 만나길 바랐으나…… 아쉽게도 연락을 할 방법이 없어 이런 식으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을 들은 재호는 혀를 찼다.
‘어쩐지 유난히 손님이 많다 싶더라니…….’
왠지 이 뒤에 찾아오는 손님들도 이런 경우일 것 같단 느낌이 팍팍 들었다.
“혹시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십니까?”
빌의 물음에 재호는 내심 거절하고 싶었으나…… 현실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게임을 계속 하려면 엄마한테 뭐라도 증명할 게 필요하니까.’
일단 들어나 보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 * *
“그러니까 저를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장장 한 시간에 걸친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빌.
“……아, 끝났어요?”
꾸벅꾸벅 졸다 한 박자 늦게 정신을 차린 재호가 고개를 들었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별 씨?”
“……빌입니다.”
“아, 빌 씨. 보자…… 그러니까 거긴 미국 게임단이라고요?”
“맞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쿠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단으로 뉴욕의 심장부인…….”
“죄송하지만 저는 한국인이라서요.”
“……예? 그…….”
“흠흠…….”
‘그 외모로?’라는 말은 간신히 삼킨 빌과 안나.
게임 속 아바타만 보면 전혀 동양계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험악하고 위협적으로 생긴 게 바로 재호였다.
“하하…… 어쩐지……! 과연 게임 강국답군요. 어떻게 한국은 늘 이렇게 뛰어난 플레이어들이 나오는 건지…….”
빌은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그래도 요즘 같은 글로벌 세상에 국적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최대한 편의를 봐 드릴 수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당장이라도 이민 절차를…….”
“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재호의 말에 빌이 반색했다.
그것을 동의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내가 왜 미국까지 가서 프로게이머를 해야 해요? 더군다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군생활도 2년 꽉 채워서 전역했는데! 차라리 군대 가기 전이라면 몰라.”
“……예?”
재호는 프로게이머에 그 정도로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꽃집을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
설명만 들었을 때, 리그에 도움이 되는 레벨링이나 퀘스트 정도는 진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꽃집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그림이 뻔히 보였다.
“어……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개인 활동은 얼마든지 보장을…….”
“아뇨.”
재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난 무엇보다 이 꽃집이 1순위입니다. 다른 일에 휘둘려 2순위로 밀려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리그 일정과 꽃집 손님의 약속이 겹친다면?
고민도 없이 재호는 후자를 택할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한테 프로게이머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오라고?
“하지만 이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난 프로게이머를 할 생각도 없었고, 지금 이대로 꽃집에 집중하는 걸 원합니다. 만약 대회에 나갈 일이 생긴들, 내게는 취미 수준밖에 안 되겠지요. 그런 식으로 프로게이머들의 열정을 모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
재호의 진심.
그리고 그것을 들은 빌은…….
‘보통내기가 아냐. 자신의 가치를 올릴 줄 아는 사람이다.’
단단히 오해에 빠진 상태였다.
‘아마 나 말고도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 온 이들이 많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는 것이고.
‘프로게이머에 대해 이 정도로 존중을 보이는 모습……. 말하는 것과 달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리 결론을 내린 빌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알시아님의 의사는 잘 이해했습니다.”
“아, 그런가요?”
“예. 알시아님의 배려와 존중……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욕심이 생기는군요.”
“예?”
“혹자들은 우리 쿠사가 항상 실력에 비해 한참 모자란 것이 매너라고들 하죠. 어쩌면…… 알시아님이 그것을 채워 줄 리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지만 알시아님의 연락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 기억해 주십시오.”
“????”
재호는 깨달았다.
‘이 인간……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라고.
“잠시 만요!”
재호는 떠나려는 그들을 불러 세웠다.
이들이 자신을 찾아온 건 유명세와 영상을 통해 본 짤막한 전투 장면들뿐.
진실을 알려야 했다.
괜한 오해나 여지를 남겨두는 건 질색이었다.
“여러분들이 하나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귀를 쫑긋 세운 빌.
“저 레벨 이제 100 갓 넘었습니다.”
“…….”
“…….”
꽃집 안에서 흐르는 정적.
“하……하하! 재밌는 농담이군요. 자신감의 표현으로 알겠습니다.”
빌은 웃으며 넘어가려 했으나, 재호는 자신의 정보창을 띄워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어차피 RPG 장르에서 레벨을 숨기는 건 컨셉이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다.
대다수의 랭커들도 자신의 레벨을 공개한 상태였고, 숨기는 건 스킬이나 아이템 정보에 대한 게 많았기에 전혀 문제될 것도 없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작 재호의 레벨을 확인한 당사자에겐 심각한 문제였다.
“??????”
빌은 눈을 벅벅 비비고 다시 확인해 보았으나, 재호의 레벨은 변함이 없었다.
“보신 대로 저는 그다지 강하지 않습니다. 게임 대회에 참가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죠. 그러니 이만 마음을 접고 다른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찾아보는 게 좋을 겁니다.”
재호는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 * *
충격을 받은 채, 엘리시아 화원을 떠나는 빌과 안나.
“어때 보여?”
“그른 것 같은데요.”
빌의 물음에 안나는 단칼에 잘랐다.
“쯧, 그래서 넌 아직 멀었다는 거야.”
“글쎄요. 사실 선배는 선수 관리를 잘하지, 영입 실적 자체는 영 별로잖아요.”
안나는 망설임 없이 치명타를 때려 버렸다.
“그, 그렇긴 하지만 내가 볼 때 알시아는 진짜 물건이야. 시작이 어렵지, 이 판에 끌어들이기만 하면 누구보다 전력을 다할 타입이라고.”
“제가 보기엔 정말로 프로게이머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데요.”
“뭐? 꽃집 이야기가 진심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처구니없단 표정의 빌.
“진심이고 자시고, 이미 꽃집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요?”
“당연히 위장이지! 뉴월드에 온갖 사람들이 다 있다지만 꽃집은 듣도 보도 못 했어. 넌 꽃집 사장이 테일러를 두들겨 패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것도 100 레벨밖에 안 되는데?”
“…….”
그에 대해선 안나도 할 말이 없었다.
직접 영상을 본 그녀도 말이 안 나올 정도였으니.
“알시아는 무조건 영입해야 해. 고작 그 정도 레벨로 최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다는 건…… 초대박 거물이란 소리야!! 프로게이머? 안 해도 돼! 그냥 데리고만 있으면 무조건 흥행 보증 수표야!”
“그래도…… 과연 그가 받아들일까요?”
안나는 여전히 부정적이었다.
빌이 재호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때, 그녀는 주변도 살펴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단순히 위장이 아닌, 진심으로 꽃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아무튼 두고 봐! 반드시 알시아를 쿠사로 영입하고 말 테니까!”
하지만 빌은 자신만만하게 큰소리쳤다.
반드시 손에 넣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