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35
534화
최고위 물의 정령 엘라스트라.
정령왕 다음 서열의 정령으로, 그 엄청난 존재가 갑자기 마계에 나타난 것이다.
“대체 왜……?”
재호는 당혹감에 중얼거렸지만, 사실 지금 제일 놀란 건 다름 아닌 파이라였다.
[아주 은밀하게 숨어 있어서 전혀 느끼질 못했군. 이 재수 없는 놈.]촤르르-
그냥 물기둥처럼만 보이던 것은 서서히 찰랑이더니 서서히 또렷한 인간형으로 변해 갔다.
잠시 후, 남성 인어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 거대한 파이라와 마주 섰다.
[…교만의 대공 파이라.]깊은 바다처럼 무거운 목소리가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이토록 짙은 마기가 침범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찌 그대가 내 앞에 있는 것인가?]다시 보니 당황하긴 엘라스트라 역시 마찬가지인 모양.
[나야말로 묻고 싶군. 네놈이 대체 거기서 왜 튀어나온 거냐?] [그대에게 말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감히 자연의 힘을 탐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쿠르르르-
엘라스트라의 전신에선 거품이 일어나며 전투태세를 갖췄다.
당장이라도 한바탕할 듯한 모습이었지만 정작 파이라 쪽에선 심드렁했다.
파앗-
본체화를 풀고 다시 작아진 파이라는 손을 휘휘 저었다.
“서로 손해만 보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지. 어차피 네놈도 이곳에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파이라 입장에서도 정령왕 다음으로 강하다는 엘라스트라를 상대하기엔 부담이었다.
한참 요양을 해 줘야 할 시기에 얻을 거 없는 소모적인 전투로 힘을 뺀다?
하지만 그런 속사정은 당연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히 엘라스트라에게 자신이 약해진 상태라는 걸 노출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웃기는군. 그대가 싸움을 마다한다고?]“난 파지크처럼 무식하게 주먹부터 내지르는 멍청이가 아냐. 앞 글자가 같다고 해서 헷갈리면 곤란해. 그리고…….”
파이라는 재호를 향해 고갯짓했다.
“이 지경까지 오게 한 장본인은 저기 있는 녀석이니까 저쪽이랑 이야기해.”
[음?]그제야 엘라스트라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재호를 발견했다.
[인간? 인간이 어째서 마계에 있는 것이지?]“쯧.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군. 정령계에서 호의호식하고 있느라 대륙의 일은 하나도 몰랐던 것 아니냐?”
[뭐?]파이라의 비아냥에 엘라스트라는 발끈했다.
“대륙과 마계는 새로운 통로가 뚫렸다. 그리고 마계에 지긋지긋한 인간 놈들이 득실거리고 있지.”
[…날 놀리는 건가?]“놀려? 물론 놀리고 싶지. 하지만 사실이란 것이 날 열 받게 만드는군.”
[…….]“쯧, 흥은 다 깨졌다. 난 먼저 간다, 알시아. 일이 끝나면 그때 보지.”
힘을 회복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푹 꺼진 파이라는 미련 없이 뒤를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에 또 한 번 당황한 엘라스트라.
마계 한가운데서 고위 정령인 자신을 만나고도 무시한 채 자리를 비운다?
자신의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상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인간. 그대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거지?]스르르-
재호를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온 엘라스트라는 덩치를 줄여 눈높이를 맞췄다.
[음? 잠깐…….]그런데 가까이 온 그는 재호에게서 뭔가를 느끼곤 얼굴을 찌푸렸다.
[그대는 악마와 계약을 했구나. 심지어 평범한 악마가 아닌 것 같은데…….]그야 당연했다.
재호가 사도로 계약한 건 무려 파이라, 로두카 두 명의 대악마들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걸 엘라스트라가 알게 된다면 재호는 바로 찢겨 죽을지도 몰랐다.
재호가 단순히 악마의 수족이 아니란 걸 대부분 사람은 알고 있지만,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는 엘라스트라가 알고 있으리란 기대는 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엘라스트라는 무턱대고 힘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특히 재호 뒤에 선 엘프 티나와 모습을 드러낸 꼰대도 보았기에 단순히 나쁜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 중이었다.
[생기의 정령. 당신도 있군요.]-어… 안녕? 오랜만이야?
꼰대는 어색한 티를 팍팍 내며 인사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존재를 만났으니 당연한 반응.
[그대가 함께 있는 인간이라 하면……. 이자는 틴라이트의 후인이로군요.]바로 재호의 정체를 간파했다.
[보아하니… 틴라이트 못지않게 말썽꾸러기로군요.]“마…말썽꾸러기……?”
일상에서 전혀 들을 수 없는 낯선 표현에 재호는 당황했다.
-맞는 말이야. 어떤 면에서 보면 이 녀석이 틴라이트보다 심한 구석도 있지.
“…….”
[대체 어쩌다 마계에 있는 거지요?]-이래저래 일이 많았어. 일일이 설명하긴 어렵지만, 당장 파이라가 위협적인 대상이 아니란 건 사실이야.
[쉽게 믿기지는 않는군요. 하지만 마계에 당신이나 엘프족이 있는 건 분명 일반적으로 생각할 순 없는 일…….]저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자 재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묻고 싶은 게 많은 건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좀처럼 타이밍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보다 넌 대체 어쩌다 거기서 나온 거야?
재호의 그런 속마음을 읽은 꼰대가 눈치껏 대신 물어봐 주었다.
[…….]꽉 닫힌 엘라스트라의 입.
시선이 재호를 향하는 걸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엔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뜻.
‘뭐… 무리도 아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계는 악의 소굴이자 인간과는 절대 상종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일반적이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어.
그때, 꼰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곤 재호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징징이의 귀를 붙잡곤 쭈욱 끌어올렸다.
-아아악!! 뭐, 뭐해!!
-언제까지 숨어 있을래?
꼰대는 징징이에게 핀잔을 주며 말했다.
-자, 여기 이 악마 녀석도 있어.
-악마 아니라고!!
습관적으로 반발했지만, 엘라스트라는 꼰대가 정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슷하면서도 묘하게 다른 느낌이 든다 싶더니 악마초 정령도 있었군요.]-그뿐만이 아니야. 이 녀석은 심지어 드래곤도 데리고 다닌다.
이번엔 엘라스트라조차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스으-
재호의 앞주머니에 있던 미니 알드리온이 고개를 내밀자 그의 반응은 더욱 극적이었다.
[그, 그대는… 알드리온!!]“반갑군, 정령.”
알드리온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 어째서 대륙의 수호자인 그대가 이곳에…….]“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너에게 이야기를 한들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질문을 할 기회를 먼저 줘야 할 건 여기 있는 알시아인 것 같군.”
알드리온 또한 재호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어깨가 든든해지는 재호.
“뭐, 우리가 왜 여기 있는지 정도는 이야기해 주마. 네가 튀어나온 얼음덩어리에 갇혀 있던 동료를 구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어? 맞다!”
알드리온의 말에 그제야 떠오른 중요한 사실.
“바다는?”
엘라스트라 뒤, 얼음덩어리의 흔적만 남은 곳에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아… 그곳에 있던 인간 말인가?]당혹감으로 가득 찼던 그는 이어 머쓱한 표정으로 턱을 긁적였다.
[임모탈리언인 것 같던데… 괜찮지 않겠는가? 영원히 떠난 건 아니니…….]해석하면 죽었다는 소리.
“…….”
임모탈리언이라 하더라도 죽음은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엘라스트라도 알고 있었다.
[크흠… 미안하게 되었다.]그는 재호에게 사과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왔거늘, 자신으로 인해 그것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니 할 말이 없었던 것.
“뭐… 이미 벌어져 버린 일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
최상급 정령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재호가 윽박지를 순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파이라의 반응을 보면 세긴 엄청나게 셀 것 같으니까.’
바다에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에 대해서는 나중에 적절한 위로를 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대는 대륙에서 방법을 찾지 못해 악마의 도움을 받으려 했던 것인가?]“맞아. 얼어붙어선 풀려나질 않더라고.”
약간의 실험을 해 보려는 목적도 있긴 했었지만, 이 대화에서는 불필요한 이야기였다.
[미안하다. 설마하니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나 또한 예상하지 못했다.]이미 느낀 대로 엘라스트라는 지금껏 만난 흔한 NPC들처럼 막무가내가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재호를 완전히 신뢰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차분하게 대화는 가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해 줄 순 없는 거야?”
[그대의 고결을 증명할 수 있다면 좀 더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겠지.]“고결? 어떻게 하면 그런 걸 증명할 수 있는 거야?”
[…….]“?”
침묵하는 엘라스트라의 반응에 재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너는 자격을 다 갖추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거다.
꼰대가 대신 설명해 주었다.
“내가?”
-대정령사 수준의 정순한 정령 교감력을 가진 게 너다. 그건 엘라스트라도 처음부터 알고 있다. 하지만 네가 지닌 여러 특성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당황하고 있는 거다.
즉, 공존할 수 없는 다양한 힘들을 품은 혼돈 그 자체인 재호이기 때문에 아직 파악이 안 된다는 뜻이었다.
[…맞다. 만약 대륙에서 만났더라면 이렇게 경계하진 않았을 것이다.]엘라스트라도 결국 인정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마계에서 만났으니 더 의심된다는 것.
“지금 마계는 네가 알던 마계와는 확실히 달라.”
[믿을 수 없다.]“그래?”
주장만으로 증명할 순 없었기에 재호는 도우미를 부를 생각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내가 한 사람 데려올 테니까.”
재호는 엘라스트라를 잠시 둔 채, 파이라의 성을 떠났다.
* * *
눈을 지그시 감고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사태에 대해 생각 중인 엘라스트라.
‘틴라이트…….’
그는 틴라이트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정령계에선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에 알고는 있었다.
온갖 기괴한 짓을 다 하고 다니며 종족 불문하고 친구를 사귀는 별종.
사실 그 탓에 정령계 내의 보수적인 고위 정령들의 경우엔 생기의 정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비록 영향력은 원소 계열보다 밀리는 데다 고유한 이름조차 지니지 못하긴 했지만, 생기의 정령 또한 엄연히 정령왕급 존재.
그렇기에 스스로 계약 거부는 물론 소환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는 틴라이트와 함께하길 택했고, 정령계에선 정령들의 수치라며 과격한 표현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생기의 정령을 소환할 정도라면 자연과의 교감력이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긴 했다.
문제는 종족 가리지 않는 친화력이 악마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것.
‘심지어 그 후인조차 악마와 깊은 관련이 있다니……. 그간 대륙에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그때, 엘라스트라의 감각에 무언가 포착되었다.
갑작스럽게 파이라의 성 내에 생겨난 거대한 존재감.
‘신? 아니… 악마?’
재호만으로도 그의 머리가 어지러웠거늘, 지금 느껴지는 존재는 그 이상이었다.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저벅-저벅-
발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왔어!”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재호.
그 뒤로 티나와 아까 없던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재호 못지않은 엄청난 근육질에다 강철 팬티를 입은 상탈남.
그리고 마계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망토까지 걸친 인간이었다.
“오호……. 저기 계신 분이 엘라스트라 님입니까?”
정중하게 묻는 이는 바로 대악마 스트로앤 주교!?
그는 엘라스트라에게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위대한 아나볼릭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스트로앤 주교입니다. 정령계의 드높은 지고한 존재 엘라스트라 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아나볼릭……!”
누구보다 악마와 격렬하게 싸웠던 신 아닌가?
그런 아나볼릭을 모시는 자가 어째서 짙은 마기를 품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다시금 소개하겠습니다. 탐욕의 대공 스트로앤입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엘라스트라는 크게 비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