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36
535화
엘라스트라는 자신이 알던 세상과 현재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사제가 아닌 아나볼릭의 화신인 스트로앤 주교가 동시에 대악마란 지점에서 그의 상식은 완전히 무너지고 만 것이다.
스트로앤 주교의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나볼릭이란 신은 자신의 화신이 대악마가 되었음에도 가만히 있을 존재는 결코 아니었으니 말이다.
믿기지 않지만… 아나볼릭 신이 스트로앤 주교의 기행을 허락한 점에 비하면 재호에게서 느껴지는 혼돈은 애교 수준이었다.
[대체 세상이 어찌 되려고…….]“아직은 별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재호는 엘라스트라의 도움 안 되는 위안을 해 주었다.
“허허, 그렇습니다. 알시아 대왕님은 대륙에 자리 잡은 마왕을 마계로 패퇴시킨 것은 물론, 마계까지 직접 오셔서 마왕을 박살을 내 버리셨죠.”
스트로앤 주교는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대륙에 둘도 없는 영웅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알시아 대왕님입니다.”
조금은 낯 뜨거운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아슬아슬하게 남은 엘라스트라의 고집을 무너트리기엔 효과적이었다.
[후… 알겠습니다. 제가 받아들이도록 하죠.]-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령계에 있던 게 아닌가?
엘라스트라의 태도가 바뀌자마자 꼰대는 곧장 물었다.
아무리 정령이라 하더라도 대륙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는 게 이해가 안 되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전 정령계로 돌아가지 않은 지 한참 되었습니다.]-엥? 그랬어?
[아마 당신 또한 오랜 시간 정령계를 떠나 있었기에 모를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 말대로 꼰대는 틴라이트가 세상을 떠나고 재호를 만나기까지, 정령계에 있던 게 아니라 봉인이 되어 있었다.
그 봉인을 재호가 풀면서 지금처럼 자유가 된 것.
[엘라스틴 님이 오랜 시간 공석이었던 건 알고 계시겠죠?]-응. 그건 알지.
“뭔 스틴?”
재호는 당황하며 물었다.
-물의 정령왕 엘라스틴.
징징이가 그 이름의 주인을 대신 알려 주었다.
“엘라스틴…….”
탄력 넘치는 머리카락이 저절로 떠오르는 이름.
“그럼 정령왕이 없다는 이야기야?”
-공공연한 비밀이었지. 엘라스틴은 어느 순간부터 정령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
꼰대가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맞습니다. 실은…….]재호의 눈치를 힐끔 살핀 엘라스트라는 아주 짧은 고민 후, 결국 입을 열었다.
[현재 엘라스틴 님은 스스로를 봉인하시고 긴 동면에 들어갔다.]“봉인?”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재호는 뭔가가 떠올랐다.
“설마 성물?”
[성물?]재호는 만빙하곡에 있던 성물 이터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군. 인간들에게는 그것이 성물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인가?]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대의 추측이 사실이다. 그 안에는 엘라스틴 님이 봉인되어 있다. 하지만 인간들의 생각처럼 성물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스러운 상징이 아니다. 폭주하는 마력을 억지로 묶어 둔 것이니.]쉽게 말해 거대한 폭탄이나 다름없다는 뜻.
“…….”
머리 위에 그런 살벌한 걸 놓고서 성물이라고 떠받들어 온 청탑을 상상한 재호는 헛웃음이 나왔다.
‘뭐… 그런 사실을 대체 누가 알겠어.’
그렇다면 엘라스트라가 갑자기 여기서 튀어나온 이유가 궁금해졌다.
정황상 스노우코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아직 이유를 듣지 못한 재호.
[과거, 엘라스틴 님의 봉인구에서 불안한 변화가 감지되어 나 역시 대륙으로 나와야 했다. 그러나 최고위 정령은 함부로 대륙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는 일. 그렇기에 나를 소환할 매개체가 필요했다.]엘라스틴이 봉인된 성물 이터널의 힘을 이용해 엘라스트라가 중간계로 스스로를 소환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소환 계약이 그렇듯 매개체가 필요했고, 마침 성물에 붙어 있던 웬 생명체가 포착되었었다.
그것이 바로 스노우코튼.
-그래서 내가 이상하게 느꼈던 거군.
꼰대는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말했다.
스노우코튼을 관찰했을 당시, 꼰대는 그곳의 생령이 얼어 있으며 정령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었다.
그래서 성물 이터널의 한기는 그런 것까지 몽땅 얼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게 아닌가 추측했었다.
-그 추측도 아주 틀린 건 아니지만 핵심은 달랐던 거지.
꼰대를 착각하게 한 원인은 스노우코튼에 미미한 엘라스트라의 잔향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습니다. 다만 문제는 엘라스틴 님의 상태가 생각보다 더 나빴다는 점이며, 마력의 상태가 과거보다 불안정해졌더군요. 나도 봉인에 힘을 보태야 할 정도로…….]그렇게 반강제로 엘라스틴을 도와 함께 봉인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그대가 스노우코튼이라고 부르는 그 꽃에 내 힘을 실어 두었다. 정령사들을 통해 정령계에 이곳의 상황을 전달하려던 게 내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식이 없더군.]얼어붙은 정원에만 스노우코튼이 떨어져 내리는 이유도 설명이 되었다.
그건 바로 정령사들에게 보내는 엘라스트라의 신호였으니…….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청탑의 마법사들은 전혀 낌새도 못 느꼈는데?”
지금 들은 이야기들은 청탑의 마법사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정령과는 완전히 상극인 존재들이 마법사 아닌가?
-운이 없었지. 아마 적당한 수준의 정령사였다면 알아봤을지도 모르겠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꼰대가 대신 이야기했다.
“너도 보고 바로 알아채지 못했는데 정령사라고 한들 다를까?”
-아주 다르지. 정령사들은 정령들과 직접 교감하는 자들이니까.
“하지만 넌 정령이잖아.”
-내가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건 생령과 관련된 것들에 제한되어 있어. 원소 정령들과는 애초에 교류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 제대로 알아보는 게 힘든 건 당연한 일이야.
결국 마법사들과 정령사들이 조금만 사이가 더 좋았더라면 진작 사태의 원인을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럼 정령사들에게 알려서 뭘 하려던 거야? 마력 폭주를 다시 잠재울 다른 방법이 있던 건가?”
[아니. 방법이 없다.]“뭐?”
[내 목적은 하나.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으니 엘라스틴 님을 깨워 다시 정령계로 복귀하는 거다.]그럼 만빙하곡이 녹는 것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대재앙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일.
[그래서 아직 나와 엘라스틴 님이 봉인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인간들을 사랑했던 엘라스틴 님이 인간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던 일. 그분의 희생을 존중하기에 나 또한 봉인에 힘을 쓰고 있는 것.]쉽게 말해 엘라스트라가 정령사를 통해 전하려는 이야기는 다 죽기 전에 도망치라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따스한 배려라면 배려.
“뭐, 그럼 이렇게 된 이상 대피를 시작하면 될 테고…….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왜 마력 폭주가 다시 일어나는데 도리어 주변의 얼음은 녹고 있는 거야?”
[그야 폭주로 인해 발생하려던 화산 대폭발을 엘라스틴 님이 멈춘 것이니까. 하지만 그 봉인이 약해지면서 서서히 화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화산……?”
만빙하곡이 원래 화산이었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었다.
물론 지금처럼 자세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은데.”
재호는 미심쩍은 얼굴로 말했다.
단순히 화산의 열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접촉하면 대상을 얼려 버리는 스노우코튼이나 청탑 주변의 해자 등, 여전히 강렬한 냉기를 내뿜는 현상 등은 화산과 관련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군. 아마 불안정해진 봉인을 억누르기 위해 엘라스틴 님의 힘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자유를 얻으려 발버둥을 치는 지하의 봉인된 힘이 지상까지 직접적인 피해를 준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영향은 있었고, 엘라스틴의 힘도 거기에 대항해 점점 강해졌다는 뜻.
그래서 이해하기 어려운 기현상들이 청탑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망치는 거 말곤 방법이 없어?”
재호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일단 가장 확실한 방법이 도망이란 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만빙하곡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나, 청탑을 생각해 확인은 해야 했다.
[배부른 소리군. 사실 이미 틀렸을지도 모른다.]“응?”
[엘라스틴 님께 힘을 보태 주던 중, 쪼개어 놓았던 내 일부를 누군가 타락시키려는 것을 느꼈다. 그 행동에 나는 인과율을 감수하고 과감히 실체화한 것인데…….]그렇게 나왔더니 뜬금없는 마계.
즉, 만빙하곡 쪽에 엘라스트라의 본체는 남아 있지 않다는 소리였다.
“어? 그럼…….”
재호는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상상이 떠올랐다.
[당장 폭발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봉인은 급격히 약해질 것이다.]엘라스트라는 무거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만빙하곡이 붕괴할 수도 있음을…….
* * *
엘라스트라는 일단 정령계로 돌아갔다.
정령계 밖에서 머무르기 위한 매개체도 완전히 사라진 상황이라 계속 머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엘라스트라는 선물 하나를 재호에게 주었다.
[그대의 정령 교감력은 상당한 수준이군. 게다가 마력 수준도 그리 낮지는 않으니 간신히 나를 소환할 순 있을 거다. 엘라스틴 님이 있는 곳에 도착하면 나를 소환해라.]그러더니 대뜸 재호에게 정령 계약서를 내민 것이다.
이런 얼렁뚱땅 계약은 조심해야 하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재호는 그걸 받아들였다.
‘악마랑 계약하는 것도 아니니 괜찮겠지.’
정령이라고 해서 뒤통수치지 말란 법은 없겠지만, 다행히 재호에겐 정령 전문 변호사가 둘이나 있었다.
[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남들이 보면 기절할 소리.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생각할 여유 없이 재호는 바로 대륙으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키노를 찾아가 청탑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으음? 잠깐 못 본 사이에 또 이상한 것을 먹었구나.”
재호에게서 느껴지는 대정령 계약의 흔적에 키노가 흥미를 보였다.
“아, 이거? 그냥 일용직 계약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재호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키노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뭔가 또 재밌는 일을 저지른 것 같구나.”
“…하나도 재미없어.”
스으-
자리에서 일어난 키노는 가볍게 손을 휘저으며 순식간에 마법을 시전 했다.
하지만 재호와 티나만을 보낸 것이 아닌, 자신도 함께 만빙하곡으로 넘어와 버렸다.
심지어 아이시클의 집무실로 곧장…….
“이게 무슨…….”
냉기가 풀풀 느껴지는 아이시클의 목소리가 재호의 귓구멍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엇, 흠흠……. 미안합니다. 워낙 급한… 어?”
그런데 집무실에 있는 건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12명의 다른 마법사들도 있었는데, 시니스 장로나 글레이셜 장로도 있는 걸 보면 전부 장로란 걸 알 수 짐작할 수 있었다.
“네놈들은 뭐냐?!!”
“어떻게 청탑의 마법 결계를 뚫고 침범한 것이지!!”
파스스슥-
순식간에 마법을 시전하며 재호 일행의 손발을 얼려 버린 마법사들.
그 정도의 마법은 키노의 손짓 한 번이면 사라질 것이 분명했지만, 그녀는 그저 미소만 지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들을 깜짝 놀라게 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 주겠다는 뜻이었다.
“허… 허억?!! 그대는!!”
그리고 다행히 눈치 빠르게 키노를 알아본 이들이 있었다.
제국에서 투룬아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에 참석했던 장로 몇 명…….
그들은 키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흑마법사 키노!!”
“음?!”
“키, 키노?”
그 이름을 들은 장로들은 주춤했다.
얼굴은 몰라도 이름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마탑 연합이 진행 중이던 웨이포인트 연구에 끼어들어 주도하는 괴물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