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37
536화
말로만 듣던 키노를 실제로 마주하자 자존심이 상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는 장로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을 장로들도 느낀 것이다.
“그만. 여기까지만 하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아이시클이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그녀 역시 갑작스럽게 난입한 키노의 행동에 상당히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그런 것으로 신경전을 벌일 때가 아니었다.
현재 모든 장로가 모두 모여 의논 중이던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이죠? 급한 것이 아니라면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아이시클의 냉랭한 목소리는 무서웠지만, 재호도 급했다.
그리고 아마 장로들이 모인 것도 자신이 급하게 찾은 것과 비슷한 이유일 거라고 확신했다.
“성물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
역시나 움찔하는 아이시클.
하지만 외부인인 재호 입에서 난데없이 성물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장로들 사이에선 소란이 일어났다.
“탑주님. 저자가 왜 성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겁니까?”
“설마 청탑의 문제를 외부인의 손에 맡긴 거요?”
“웨이포인트만으로도 모자라 이젠 청탑의 명운까지 외부인에게 맡기겠단 겁니까?!”
장로들의 거센 항의가 아이시클을 향해 쏟아졌다.
자신들과의 상의 없이 멋대로 저지른 일에 크게 분노하는 장로들.
“시끄럽소!!!”
그 순간, 의외의 곳에서 이 소란을 잠재우는 호통이 터져 나왔다.
“지금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요? 그는 우리 중 누구보다 지금 사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거라 나는 확신하오!”
재호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선 이는 바로 시니스 3장로였다.
재호와 마계 구경도 다녀왔던 시니스 장로.
이후 그는 재호의 행보에 본격적인 기대와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청탑으로 돌아온 뒤, 재호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았다.
사람들 입을 통해 들어오는 소문들이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조사한 것은 처음.
그리곤 충격에 빠졌다.
“한 명의 인간이 어떻게 이 엄청난 사건들을 다 겪을 수 있단 말인가?”
크게 감명 받은 그는 좀 더 진지하게 재호를 믿어 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던 와중에 성물 이터널에서 이상 현상이 발견되었다.
거칠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한기가 청탑을 뒤덮은 것이다.
그런데 주변의 해자는 도리어 얼음이 더 녹아내렸다.
더 선명해진 이상 현상.
시니스 장로는 이 일이 분명 재호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재호가 한 거라곤 스노우코튼과 함께 얼어 버린 바다를 데리고 마계로 간 게 전부였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성물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재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순간,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시니스 장로는 적극적으로 재호를 비호하고 나섰다.
급하게 온 만큼, 뭔가 중요한 일이 있으리라.
“아니, 시니스 장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청탑 내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니스 장로가 먼저 재호를 옹호하고 나서자 다른 장로들은 당황했다.
심지어 그는 현 탑주인 아이시클과 경쟁했었으며, 지금까지도 사이가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말이다.
이 사태에 누구보다 열을 내야 할 것 같은 인물이 도리어 옹호하고 있으니 다른 장로들은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아이시클과 시니스 장로가 한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랜 시간, 두 사람의 다툼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아 온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니오. 알시아 대왕은 명실상부 대륙의 영웅. 그가 지금까지 해결한 수많은 대륙의 위기들을 보면 청탑의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오.”
“하, 하지만…….”
시니스 장로에게 차마 적극적인 반박은 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장로들.
“거기까지. 시니스 장로도 그쯤하고 다른 분들도 진정하세요.”
“크흠…….”
아이시클의 말에 장로들은 불편한 얼굴로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맞습니다. 성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번 마탑 연합 회동 당시, 저는 알시아 대왕에게 개인적으로 요청했어요.”
“아니, 어찌 그런 중요 사안을 왜 장로회엔 언급도 없이…….”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장로회에 공식적으로 제안을 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그건 어쭙잖은 핑계일 뿐이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애초에 아이시클의 성격도 보통이 아니었다.
늘 존대로 대하지만 날카롭기론 시니스 장로 못지않은 그녀였고, 자신들이 반대해도 강대로 밀어붙이고도 남았을 인물이었다.
결국 아이시클이 재호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숨긴 건, 그저 괜한 감정 소모가 귀찮았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대체 시니스 장로는 왜 탑주를 도운 것이지?’
‘설마 정말로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알시아 대왕.”
더 이상의 추궁은 받지 않겠다는 듯, 아이시클은 단호한 목소리로 재호를 불렀다.
“그대는 어떻게 성물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았죠?”
그녀는 재호가 오자마자 성물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물었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호는 엘라스트라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빠르게 전달해 주었다.
성물의 정체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 말도 안 되오!!”
“청탑의 성물이 정령왕이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연히 장로들 사이에선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지키고 있는 청탑의 성물이 사실 정령왕의 봉인이라고 하면 누가 좋아할까?
가뜩이나 정령사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마법사들인데!
“성물 이터널은 청탑이 생겨나기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 와서 정령왕과 관련이 있다는 건 우리를 모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알시아 대왕! 아무리 대륙에서 추앙받는 영웅이라 하더라도 우리 청탑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니오?!”
진정하라던 아이시클의 말도 잊은 채 성을 내는 장로들을 향해 재호는 말로 더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 슬슬…….’
사전 설명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 실제 증인을 데려올 차례였다.
‘사람은 아니지만.’
재호는 엘라스트라와 맺은 소환 계약을 활성화했다.
[를 소환합니다.]소환 동시에 날아가 버리는 마나.
“흡?!”
재호는 훅 느껴지는 탈력감에 크게 휘청거렸다.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라면 가성비가 대체 얼마나 나쁜 거야?’
꼰대와 징징이는 따로 소모되는 자원 없이 계속 유지되는 것과는 비교되었기에 더 나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재호가 정령 소환에 대해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였다.
아무리 꼰대나 악마초가 정령왕급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유명 원소 계열 정령들과는 엄연히 급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의 정령은 손꼽힐 정도로 강력한 정령들이었다.
그리고 정령왕보다 아래라는 엘라스트라의 힘도 꼰대보다 몇 배는 더 강할 정도.
원래라면 아무리 가계약이라 하더라도 재호가 엘라스트라를 소환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근접 육탄전을 주로 하는 플레이어는 보통 마나통이 크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호는 워낙 잡캐(?) 스타일로 능력치를 골고루 찍은 덕에 간신히 소환할 수 있었다.
촤르르르-
아무런 기척도 없이 재호 앞 허공에서 나타난 투명한 액체 소용돌이.
“으음?!!”
“무, 무슨 짓이오!!”
장로들이 깜짝 놀라 보호 마법을 빠르게 시전 했다.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다 보니 반사적으로 나오는 과격한 대응.
특히 뛰어난 마법사들답게 방어 마법을 시전한 마법사 뒤에 몸을 빠르게 숨긴 뒤, 공격 마법도 준비했다.
아차-하는 순간 바로 공격을 퍼부을 분위기 속에서…….
프스스-
그들이 준비해 놓은 마법들이 갑작스레 통제력을 잃고 흩어져 버렸다.
“헉?! 무, 무슨!!”
그 사태에 당황한 장로들이 주춤하는 사이, 와해된 마법은 액체가 되어 소용돌이로 모여들었다.
사아아아-
하나가 되어 뭉쳐진 커다란 물방울.
그것이 서서히 인간의 형체를 갖추었다.
그리고 그것에서 서서히 가공할 만한 힘과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마법사들의 안색은 파리해졌다.
차박-
마침내 두 발로 지상에 내려선 엘라스트라.
[돌아왔군.]진짜로 나타난 정령의 모습을 확인한 마법사들은 창백해진 얼굴로 서로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봐도 앞에 나타난 정령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재호가 최고위 물의 정령이라고 똑똑히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완전히 믿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그저 그런 정령이 아니란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내 이름은 엘라스트라. 그대들은… 느껴지는 기운을 보아하니 마법사들이군.]엘라스트라!
“지, 진짜… 최고위 정령!!”
“커, 커헉!!”
심지어 기절하듯 엉덩방아를 찧는 이들까지 나타나자 도리어 재호가 어리둥절해졌다.
사실 재호는 엘라스트라에 대해 큰 감흥이 없었다.
바로 그게 잘못된 반응이었다.
보통의 정령들은 개체 수에 제한이 없었다.
자연이 필요로 하면 그때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 정령들.
하지만 태초부터 딱 하나씩만 존재해 온 정령들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정령왕과 최고위 정령들.
이론상 무한히 존재할 수 있는 다른 정령과 엘라스트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현재 정령사 플레이어 중, 정령왕을 소환할 수 없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알려진 단 네 명의 플레이어만이 최고위 정령과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생기의 정령이나 악마초 정령이란 근본 없는 녀석들이 있는 점을 생각하면, 정령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최고위 정령 계약자가 네 명이란 건 그만큼 난이도가 높단 뜻이며, 동시에 정령사란 클래스의 특수성을 보여 주었다.
그렇기에 정령사 플레이어는 인구수가 아주 적기도 했다.
단, 대정령과 계약만 성공한다면 확실한 성능을 자랑했다.
12명의 장로들이 펼친 마법조차 단번에 무력화시켜 버릴 정도로 말이다.
수많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낼 가치가 있을 정도였다.
어쨌든 엘라스트라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정리되었다.
재호가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이 엘라스트라 덕분에 증명된 것이다.
“…정말 성물 이터널이 실은 정령왕이 봉인되어 있나요?”
아이시클도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최고위 정령 엘라스트라는 대마법사조차 긴장하게 할 만한 존재.
그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 투명한 천장 너머로 보이는 성물 이터널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는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그리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뱉었다.
* * *
돌이킬 수 없다.
다른 이도 아니고 엘라스트라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들이라고 하더라도 대정령의 발언을 무시하고 넘길 수 없었다.
“정녕… 끝이란 말인가…….”
머리 위, 성물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는 엘라스트라를 쳐다보며 장로들은 중얼거렸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대체 정령왕이 왜 저기 있다는 겁니까?”
“그런데 저 말을 진짜 믿어도 되는 겁니까?”
믿지 않을 수 없지만,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게다가 성물 이터널을 살피기 위해 엘라스트라가 나가기 전, 그는 무서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이 일대의 사람들을 미리 피신시키는 게 좋을 거다.]바꿔 말하면 만빙하곡을 버리라는 소리였다.
다른 것보다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청탑의 역사와 함께해 온 만빙하곡을 버리고 도망가는 굴욕의 역사를 자신들이 남긴다?
“정령이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성물의 변화는 분명 뭔가 이상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죠. 어쩌면 정령이 돌아와 다른 이야기를 해 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엘라스틴 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정령왕과?”
재호의 물음에 엘라스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봉인이 풀렸다는 뜻이지. 머지않아 엘라스틴 님의 봉인은 풀리고 얼었던 마력은 다시 활동을 시작할 거다. 이대로 느긋이 있다간 이곳의 모든 인간은 꼼짝없이 몰살을 당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