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42
541화
청탑이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진 재호도 궁금했다.
그리고 내심 엘리시아 화원 인근에 들어오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했었다.
물론 만빙하곡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극악의 환경이긴 할 테지만…….
‘애초에 만빙하곡 자체가 대륙 어디에도 없는 특수한 환경이니까.’
대륙 그 어디에도 이곳처럼 추운 곳은 없었다.
애초에 역사에 따르면 만빙하곡의 탄생도 성물 이터널로 인한 것.
즉, 어딜 가더라도 여기만큼 완벽한 장소는 없었다.
‘애초에 지금까지 확인된 아트리우스의 해도를 보면 현 대륙 자체도 중위도 정도에 있는 걸로 보였으니까.’
얼어붙은 세상은 한참 더 북쪽으로 가야 있을 터였다.
어쩌면 지금의 대륙과 위스트넌을 제외한 나머지 대륙 하나, 그곳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땅이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위스트넌도 베어고릴즈와 다키스트, 골드투스 세 사람을 제외하면 내륙으로 진입한 사람은 거의 없는 상황.
진작 발견된 위스트넌마저도 그런 마당에 북쪽의 신대륙은 오죽할까?
정체불명의 결계로 대륙이 감추어져 있어 진입한 사람도 한 명도 없다고 들었었다.
‘뭐… 거기에 관한 건 당장 생각하지 말자.’
당장은 신경 쓸 필요도, 아이시클에게 이야기하기에도 영양가는 없는 정보였다.
‘그 외에 청탑이 갈 만한 곳이라면… 역시 사막인가?’
그렇게 아무런 맥락도 없이 떠오른 재호의 제안이었다.
만약 아이시클이 이전지를 두고 고민 중이면 이야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침 타이밍이 온 것.
“…….”
재호의 미친 제안에 아이시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만 끔뻑였다.
그도 그럴 게 빙결 및 물과 관련된 마법을 연구하는 청탑에게 사막으로 올 것을 제안하는 건 너무 성의 없이 들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재호는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진 제안이 아니었다.
사막을 떠올린 뒤, 그럴싸한 이유를 열심히 만들어 둔 것이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라면 페르마 사막은 꽤 훌륭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막에 청탑을 세우는 건 무리수로만 들리는데요.”
아마 상대가 재호가 아니었다면 진작 쫓아냈을지도 몰랐다.
“지난번에 아이시클 님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재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설파했다.
사막에 있는 청탑만큼 완벽한 발상의 전환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페르마 사막은 예전과 달리 모래바람만 휘날리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은 황무지의 면적이 압도적으로 넓었지만,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운하 공사가 착착 진행 중이었다.
지안트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제 약 70%가 완료된 상황.
머지않아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사막은 자연히 줄어들고 초목으로 채워질 터였다.
“그렇다고 해도 청탑이 자리하기엔 썩 좋은 환경이 아닌 건 사실이지 않나요?”
“뭐, 어디까지나 임시로 거쳐 가는 곳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당장 대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갈 곳을 고민 중이라면 꽤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그리고 무엇보다 페르마 사막은 마법 연구를 위한 인프라가 잘 되어 있기도 하죠.”
엘리시아 화원에 있는 적색 마탑.
그리고 북쪽의 엠베이 숲엔 키노의 독사과 흑마법사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 또한 머지않아 흑마법사 탑으로 공식 선포가 이루어질 터.
그렇게 되면 페르마 사막은 그야말로 마법의 메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해질 것이라 확신했다.
“그건 청탑 입장에선 딱히 이득이라고 할 수 없어 보이는데요?”
“에이- 마탑들끼리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만, 서로 협력하면 얼마나 큰 시너지가 나오는지 아이시클 님도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키노도 뺀질거리긴 해도 흥미가 동하면 누구보다 열심히 나서는 타입이죠.”
키노에 대한 건 양심을 조금 팔아 주었다.
“그리고 엘리시아 화원에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장점들도 있습니다.”
바로 바닷속 인어들의 세상인 아트리우스와 마계를 갈 수 있다는 것!
“아이시클 님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자유롭게 세상을 구경하고 싶다고.”
“분명 그리 말했었죠.”
성물이 사라진 청탑은 이후 아이시클 의존도가 높아지게 될 테고, 그건 그녀가 바라는 미래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청탑의 이사 정리만 해도 쉽지 않는 일.
적어도 그동안은 제법 여유가 생긴다는 뜻이었다.
머리야 아프겠지만 청탑 유지에 쓰일 마력은 아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저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죠. 아시다시피 저 꽃집 사장입니다.”
보통 꽃집이 아닌 엘리시아 화원의 주인!
재호가 자신의 입으로 떠들진 않았지만, 페르마 사막으로 오면 가장 큰 메리트는 뭐니 뭐니 해도 꽃집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대륙 내에선 큰 인기를 자랑하는 꽃템.
적탑에서도 널리 쓰이고 있으며, 키노조차 그 성능을 인정했었다.
그것을 산지 직송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엄청난 장점이었다.
“흠…….”
꽃템의 성능을 자신이 직접 확인한 적은 없는 아이시클.
그러나 언젠가 뤼니오르가 귀가 아프도록 자랑하는 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 봐야 꽃에 불과하단 생각이 컸지만… 그래도 뤼니오르가 그리 말할 정도면 뭔가 있긴 하리라.
“…후우- 아니지.”
불현듯 아이시클은 중요한 걸 깨달았다.
“대왕 말이 맞아요. 지금 청탑은 물불 가릴 때가 아닌데 내가 너무 사정 챙기려고 했네요.”
이것저것 따질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명색이 청탑인 만큼, 전 대륙을 대상으로 물색을 해 보면 분명 좋은 조건을 내걸고 마탑을 유치하려는 왕국들로 줄을 설 것이다.
하지만 임시 마탑이란 걸 듣고도 과연 좋아할지는 미지수.
게다가 다른 왕국이나 귀족들과 접촉하며 대화를 나눌 시간은 더더욱 없었고.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임시 거처를 제공해 주겠다는 재호의 배려가 더욱 고마웠다.
“좋아요. 그럼 페르마 사막으로 이전을 준비하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재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막으로 간다고 하면 절 따르던 마법사의 절반이 더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겠군요.”
아이시클은 그리 말했지만 목소리에서 걱정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이번 일로 변별력 떨어지는 마법사들을 쳐 낼 수 있음에 만족할 정도로 냉정했다.
* * *
아이시클의 예상대로 이전지가 발표되자 청탑엔 또 한 번 폭풍이 몰아쳤다.
대부분의 마법사는 사막에 청탑을 옮기겠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얼음과 물을 연구하는 마법사가 사막에서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혹시… 탑주님이 미친 것 아닐까? 사실 지금 이 난리는 사실 거짓이었다거나…….”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고, 홀라스 장로파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탑주 아이시클은 청탑의 고대 마법을 연구하던 중,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본격적으로 그런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뻔히 보이는 추잡한 방식이었지만 아이시클은 굳이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옛날부터 다른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싫으면 말든가.’라는 게 그녀의 방식.
도리어 애가 달은 건 그녀를 따르는 다른 장로들이었다.
“탑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청탑을 사막으로 옮기려고 하는 것입니까?!”
“저희는 청탑이오, 청색 마탑! 그런데 완전 상극이라 할 수 있는 사막을 가겠다니……!!”
“이러면 홀라스 그 영감쟁이가 원하는 대로 주도권이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없지 않나요?”
아이시클을 믿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는 일.
“어차피 페르마 사막에 머무는 건 일시적일 뿐이에요. 알시아 대왕은 새로운 청탑을 위한 최적의 장소가 나타난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어요.”
“그… 그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하지만 사막이지 않습니까? 그런 메마른 땅에서 저희가 과연 제대로 된 마법 연구를 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거기서 얻는 게 많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어요.”
“새로운 경험이라면…….”
“다들 이야기는 들어서 알겠죠? 엘리시아 화원에는 여러 재밌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시아 대왕은 청탑 소속의 마법사들에게 그와 관련해 여러 편의를 봐주기로 약속했어요.”
“어떤 편의를 이야기했습니까?”
“전속 꽃템 제작사 지원, 마탑 연합에게 부분적으로 허가되었던 아트리우스 비자의 청탑 마법사 한정 발급 확대, 마계 우선 출입증.”
“?!!”
꽃템이나 마계는 그렇다고 쳐도 아트리우스 비자를 발급해 주겠다는 것에 장로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트리우스는 마법사들 모두가 궁금해하는 신비의 장소.
특히 마법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인어족이 살고 있다 보니 마법 탐구자로선 너무나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그러면 그런 내용을 마법사들에게 알리면 더 좋지 않습니까?”
“맞아요! 분명 그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동요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시클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변별력 없는 자들이 함께 가 봐야 분란만 일어날 뿐이에요.”
너무나 냉담한 대답.
“하지만 그들 또한 엄연히 청탑의 일원입니다! 그들이 사라지면 청탑의 크나큰 손실인 것도 부정할 수 없죠.”
“게다가 문제는 반수 이상이 홀라스 장로파에 가담하면 청탑 이전 자체가 가로막힐 위험이 큽니다. 청탑의 역사를 가져가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아이시클은 침묵했다.
장로들의 말대로 홀라스 장로파는 절대 청탑의 모든 기록물을 내놓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기록물들이 어찌 되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괘씸한 판단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키노는 절대 그렇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 관련된 계획을 장로들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아무도 몰라야 했다.
이 자리에 없는 재호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 * *
“너 요즘 한가하지?”
“으응?”
재호는 옆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바벨 스쿼트 중이던 테일러가 되물었다.
“원정 좀 나갈래?”
“어, 언제……? 가능하면 내일이었으면 좋겠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그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부터 재호를 따라 헬스장에 나오기 시작한 테일러.
게임 내에서 강해지는 것 외에 실제 신체 단련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시작한 일인데, 문제는 재호의 무료 코칭이 생각보다 더 하드코어 하다는 게 문제였다.
하고 나면 그날은 게임이고 뭐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안 들었으니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에휴- 그 타고난 골격을 가지고도 그거밖에 안 되냐?”
라고 놀리는 함완식 탓에 스트레스는 두 배.
하지만 재호 옆에 있는 것만 봐서 몰랐지만, 완식 또한 언더아머가 허락되는 실력자라는 사실 때문에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적어도 헬스장 내에서 테일러는 절대 약자였다.
결국 견디다 못해 절충안으로 월, 수, 금에만 운동하기로 했다.
그리고 금요일인 오늘, 누적된 피로 탓에 일찍 쉬고 게임은 내일 제대로 할 계획이었다.
“가능하면 빨리 출발하는 게 좋아.”
하지만 재호는 급하다는 듯 말했다.
“…무슨 일이기에?”
“도둑질 좀 해야 하거든.”
“…….”
급하다고 하면서 기껏 하는 이야기가 도둑질이라니.
들고 있는 바벨 무게가 갑자기 두 배는 된 듯한 느낌이…….
“청탑 쪽 일이거든.”
불-끈-!
갑자기 솟아난 호랑이 기운에 테일러가 우뚝 섰다.
“에이, 뭐야? 청탑 일이야? 진작 말하지 그랬어?”
안 그래도 청탑에 가지 못해서 아쉬웠던 차, 너무나 바라던 제안이었다.
“거기서 그럼 뭘 훔치면 돼?”
“좀 많아.”
“많아도 얼마든지 가능해! 내가 또 잠입의 달인이잖아?”
“그렇지. 그래서 내가 믿고 맡기려는 거지.”
재호가 인정해 주자 테일러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지금이라면 3대 측정 신기록을 세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
“책 몇 권 훔치면 돼.”
“책? 뭐야, 겨우 그 정도야? 하핫! 맡겨만 두라고!!”
하지만 그 좋던 기분은 그날 밤, 실제 청탑에 도착하자 싹 사라졌다.
‘그 자식이 그럼 그렇지…….’
혹시나 테일러가 거절할까 싶어 재호는 단위가 수천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