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45
544화
청탑의 비상 회의가 소집되었다.
재호도 특별 초대자로 회의에 참석했는데, 구성원을 보며 참담함을 느꼈다.
‘상당히 초라한데…….’
재호와 티나, 아이시클을 제외하면 고작 두 명.
아이시클 쪽에 남아 있는 장로의 숫자였다.
이전보다 훨씬 줄은 숫자였는데, 홀라스 장로파에서 퍼트린 루머와 청탑을 사막으로 옮기겠다는 발언이 큰 영향을 미친 탓이었다.
“허허……. 이래서는 회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재호를 처음 만빙하곡으로 데려왔던 청탑의 1장로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 건 더더욱 안 될 말이에요. 특히 청탑 이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선 말이죠.”
조금 전, 청탑 주변으로 기현상이 발생했지만 그건 이제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청탑 이전을 위한 준비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 가는 중이었으니까.
“다만 시간을 조금 앞당길 필요는 있겠군요. 저 아래에서 끓고 있는 용암에 청탑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
청탑의 건물은 기본적으로 얼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머리 위의 성물 이터널의 영향을 받고 있다지만, 얼어붙은 화산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정도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다.
“저희야 여전히 탑주님을 믿곤 있으나…….”
1장로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홀라스 장로 쪽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번 사태로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쾅-!!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들려온 폭음.
하지만 이번엔 청탑 밖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이건…….”
아이시클과 장로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스으으-
미끄러지듯 열린 얼음문.
그리고 그 너머에서 능글맞은 미소를 띤 홀라스 장로가 서 있었다.
“다들 한자리에 모여 있군.”
그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쭉 훑어보며 말했다.
반면 그의 뒤에는 수십 명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서 있었으니…….
“상당히 무례하군요. 홀라스 장로.”
거친 방식으로 회의에 참석한 그를 아이시클이 질책했다.
“탑주. 장로 회의를 소집했으면 우리에게도 알려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홀라스 장로는 대답 대신 항의를 먼저 했다.
“마치 더는 우리를 장로로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네.”
“뻔뻔하게 잘도 그렇게 이야기하는군요.”
아이시클은 당연히 다른 장로들에게도 회의 소집을 명령했다.
하지만 거부한 건 그들이었고, 뒤늦게 나타나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회의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바깥에서 들렸던 굉음은 분명 열리지 않는 문을 부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르르 나타나 포위하듯 입구를 막아선 대형까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명백히 알 수 있었다.
슥-
홀라스 장로의 시선이 재호를 향했다.
“얼마나 상황이 궁색했으면 외부인까지 끌어들인 게인가?”
“적어도 이 자리에 오지 않았던 여러분들보다는 청탑의 일원으로 더 어울리겠군요.”
아이시클은 한껏 비꼬며 말했다.
“허허, 그런 섭섭한 이야기를. 그렇지 않아도 최근 탑주가 고민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네. 뭐, 가짜 정령이 말한 마지막 날이 가까워지고 있으니 그런 것도 이해는 된다만……. 해서 탑주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서 이렇게 왔다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말의 속뜻은 사실상 반역이란 뜻이었으니까.
“그래도 의외로 탑주가 얌전하게 있어 준 덕분에 피곤한 일은 없었군. 그 점을 생각해 마지막 체면은 지켜 주기로 모두가 합의했다네.”
다행히 테일러가 청탑의 중요 서적들을 싹쓸이하고 있단 건 알아채지 못한 모양.
“그래서 제안하겠네. 몇 안 남은 지지자들을 데리고 당장 조용히 떠나 주게나.”
“홀라스 장로!!”
대놓고 탑주 자리를 강탈하겠다는 뜻을 드러내자 1장로는 격노하며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탐욕에 눈이 멀어 뵈는 게 없는 것인가?”
“크레바스 장로. 그대야말로 눈치가 없는 것인가? 어울리는 연륜은 보여주지 못하고 한참 후배에게 쩔쩔매는 꼴이란.”
“후배가 아니라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선출된 탑주란 걸 정녕 몰라서 하는 말인가?!”
홀라스 장로는 아이시클을 애 취급을 하고 있었지만, 탑주란 자리는 애초에 가장 뛰어난 마법 실력을 지닌 자만이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방금 홀라스 장로의 발언은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으니, 곧 청탑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는 행동이었다.
“그 대단한 탑주의 노력 덕분에 청탑의 역사가 끊기게 생겼단 건 왜 인정하지 않으시오?”
“그게 무슨 헛소리! 지금 이 모든 사태가 탑주의 잘못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그렇소이다.”
“뭐라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청탑에 일어나기 시작한 이상 현상은 훨씬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아이시클 또한 과정에서 새로운 탑주가 되었을 뿐이었다.
그런 사실은 청탑의 마법사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허허, 하지만 최근 급작스럽게 상황이 심각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
그리 말하면서 홀라스 장로는 다시 재호를 가리켰다.
“저자를 탑주가 끌어들이면서 벌어진 사태 아닌가?”
“?!!”
크레바스 1장로는 말문이 막혔다.
분명 홀라스 장로의 주장은 인과관계가 잘못되었단 걸 알았지만, 표면적인 것만 놓고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재호가 마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돌아다니다 보니 엘라스트라의 봉인이 풀렸고, 그사이 만빙하곡의 봉인 또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약해져 버렸다.
딱 사실만 놓고 보면 그러했다.
그리고 홀라스 장로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의 핵심을 재호는 알아챘다.
‘악의적으로 소문 퍼트리기 딱 좋네.’
재호는 내심 혀를 차며 생각했다.
[알시아가 이 사태를 초래했다!]가뜩이나 마법사 세계에서 재호의 평판은 썩 좋지 않은 게 현실.
적탑을 제외한 나머지는 딱히 호의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기에 약을 팔기엔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탑주. 기회를 주는 것도 지금뿐이라네.”
홀라스 장로는 말했다.
“지금 바깥에 난리가 난 것을 본 마법사들의 불안과 분노는 이미 한계지. 여기서 더 맞서겠다면 몸 성히 이곳에서 나갈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순 없다네.”
“…….”
“그나마 그대와 청탑의 체면을 생각해서 내린 통 큰 결정이지. 아, 하나 따로 부탁할 것도 있네. 탑주가 알시아 대왕 탓에 미쳐 버렸다고 모두에게 이야기해 두었으니, 연기를 조금 해 주는 게 서로 좋을 듯하군. 멀쩡한 모습을 보면 그나마 있던 동정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그야말로 끔찍한 능멸이 따로 없었다.
뒤에 선 몇몇 장로들은 저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며 피식 웃기까지 했다.
‘이거 아무래도…….’
재호는 계속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실체화되려는 낌새를 느꼈다.
일이 너무 순조롭게 진행된 탓에 느꼈던 그 불안감이…….
탁-
가죽 소파 위로 손을 내려놓는 가벼운 소리.
“홀라스 장로.”
이어 아이시클의 차분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녀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노망이 난 모양이군요.”
사아아아-
아이시클의 발아래에서부터 엄청난 한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쩌저적-
얼음이 얼어붙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날 정도.
“내가 어떻게 탑주가 될 수 있었는지 있었나요? 날 그렇게 모욕하고도 감히 무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나요? 대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그런 망발을 보인 것인지 모르겠군요.”
차갑고 느릿느릿한 목소리로 말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엄청난 분노는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허허… 왜 모르겠나? 그대 또한 청탑 역사 속에서 손꼽히는 천재라는 걸 알고 있다네.”
아이시클의 기세에 홀라스 장로는 잠시 멈칫하는 것 같았으나, 금세 냉정을 회복했다.
“하지만 미쳐 버린 탑주에게 이대로 청탑을 맡겨 둘 순 없는 노릇.”
타다닷-
넓게 흩어져서 선 홀라스 장로파 마법사들 역시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노린 거구나.’
준비된 듯, 일사불란한 그들의 동작에 재호는 오히려 적들이 전투를 바라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청탑의 대표인 아이시클을 바닥까지 처박아 탑주의 상징성을 박살 내겠다는 의도가 명백했다.
‘어김없이 싸움이네.’
당연히 재호는 아이시클 편에 서야 했다.
청탑 장로회 대부분.
그리고 재호와 티나, 아이시클과 두 명의 장로.
머릿수로만 보면 홀라스 장로파가 훨씬 유리했지만, 실속으로 따지면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쪽은 규격 외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전설급 NPC가 두 명이나 있었다.
바로 티나와 아이시클.
아이시클의 전투 능력에 대해선 재호가 잘 모르지만, 티나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마법사들은 절대 티나의 움직임을 쫓을 수 없을 것이라고…….
“후회하지 말게나.”
“그쪽이야말로 조심하시지요. 난 절대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으니.”
파지지직-!!!
말이 끝나는 순간, 아이시클의 등 뒤로 순식간에 생겨난 고드름들이 동시에 마법사들을 향해 쏘아졌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그것에서 상대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똑똑히 느껴졌다.
“흐읍!!”
황급히 팔을 들어 올리며 실드를 펼친 홀라스 장로.
놀라운 시전 속도에 살짝 당황한 듯싶었으나 그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다는 듯 간발의 차라 막아 냈다.
“쳐라!!”
그것을 신호로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콰드드드-!
집무실 안쪽에 몰린 재호 일행을 향해 날아드는 다양한 마법들.
하지만 아이시클은 그것들을 무력화시키거나 실드를 펼치는 등, 완벽하게 방어를 해냈다.
두 장로 또한 어렵지 않게 방어에 성공.
자신들의 합공이 실패한 것에 마법사들은 조금 주춤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거기다 티나가 나서기 시작하자 그들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파사삭-
그녀는 검으로 날아오는 마법을 잘게 쪼개 버리는 묘기를 선보였는데, 그걸 본 상대를 충격에 멈칫했다.
마법을 검으로 박살 낸다는 건 다시 말해 검술의 경지가 절정에 다다랐다는 뜻.
“흥, 어중이떠중이들만 모았군요.”
그 짧은 멈칫거림은 대마법사로선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콰지직-!!
쾅!!
“크아아악!!”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기둥이 마법사 둘을 그대로 들어 올려 천장에 처박아 버렸다.
그래도 같은 청탑의 마법사이니 어느 정도 사정을 봐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재호.
하지만 끔찍하게 짓이겨 버리는 걸 보니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나도 싸우기 좀 더 편하긴 하지.’
아이시클이 거침없이 청탑의 마법사들을 조져 준다면 그만큼 재호도 손을 거침없이 쓰는 데 부담이 없었다.
촤르르-
사슬을 이용해 끌어온 마법사의 가슴에 모종삽을 깊게 박혔다.
“크헉?!”
장로들이 아닌 일반 마법사들은 재호의 무시무시한 공격력을 버틸 재간이 없었다.
종잇장 방어력을 지닌 마법사의 비애.
게다가 재호는 티나처럼 마법을 부수거나 하는 걸 보여 주진 않았으나, 압도적 전투 능력만큼은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그 능력으로 날카로운 얼음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피해 내는 놀라운 움직임을 보여 주었고, 상대 마법사들을 질리도록 만들었다.
“무, 무슨 움직임이……!”
“저 덩치에서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나올 수 있는 거냐!”
맞추기 딱 좋은 표적임에도 하나도 맞지 않으니 속이 터졌다.
푸욱-!
그렇게 접근한 재호는 어김없이 또 한 명을 쓰러트렸다.
“와… 알시아 괴물이란 건 알았지만……. 저 정도인 줄은 몰랐네.”
홀라스 장로파에 가담한 마법사 플레이어들은 전방에서 야수처럼 날뛰는 재호에게 공포를 느꼈다.
방송으로 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적이 되었을 때만 체험하는 희귀한 경험.
“뭣들 하는 것이냐! 고작 다섯 명을 어쩌지 못하는 거냐!!”
슬슬 상황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홀라스 장로.
그의 목소리에선 숨길 수 없는 당혹감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는 자신도 아이시클의 공세에 방어하기 급급한 상황.
“빌어먹을!”
완전한 오판.
하지만 그는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것 같나!! 탑주의 광기만 더욱 확실히 보여 줄 뿐이라네!!”
급기야 누가 봐도 궁지에 몰린 이의 허세로만 들리는 발악까지.
그 갈라진 외침 탓에 홀라스 장로파의 전투력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외침이 도리어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전장 전체에 똑똑히 전달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