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51
550화
일단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잠시 한숨을 돌린 재호.
그리곤 곧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바다는 뭘 하고 있는 거지?”
엘라스틴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겠다던 그.
그런데 이렇게까지 일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골드씨 장로? 글쎄… 나도 못 봤군요.”
엘라스틴 또한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대체 뭐지?’
아무래도 개인적인 사정이 생긴 모양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걸 또 까먹은 것 같은데.’
짧은 사이에 워낙 바쁘게 대륙을 왕래했다 보니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후……. 급한 건 해결이 되었군요. 물론 진짜 문제는 남아 있지만.”
재호에게 다가온 아이시클이 말했다.
“고마워요, 대왕. 덕분에 이 엄청난 위기를 청탑 홀로 상대해야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다들 이게 청탑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에 공감했으니 가능했던 일입니다.”
재호는 손사래 치며 말했다.
“하지만 청탑 혼자였다면 불가능한 게 사실이죠. 이미 내부에서조차 이토록 분란이 생겼는데 말이죠. 이번 일이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내 명예를 걸고 대왕과 모두에게 은혜를 갚을게요.”
청탑의 임시 거처까지 마련해 준 재호에겐 특히나 고마움을 느끼는 그녀.
[청색 마탑의 탑주 아이시클의 호감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얼음처럼 차갑던 그녀가 마침내 재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었다.
뤼니오르에 이어 두 번째로 대마법사의 마음을 얻은 재호.
“그건 그렇고 홀라스 장로파가 모두 붙잡혔으니 지금이라도 최대한 청탑의 모든 걸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겠네요.”
이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아이시클도 자신의 힘을 최대한 사용해 중요한 것들을 직접 옮길 셈이었다.
“…아!”
그 순간, 재호는 번쩍 떠올랐다.
자신이 잊고 있던 게 무엇인지.
“테일러!”
“?”
지하로 내려간 테일러.
덤으로 시니스 장로 또한 홀라스 장로가 쳐들어왔을 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타, 탑주님!!”
재호의 깨달음을 기다렸다는 듯, 다급하게 아이시클을 찾는 한 마법사.
“크, 큰일입니다! 지금 서고 지하가……!!”
뭔가 또 귀찮은(?) 일이 터진 모양이었다.
* * *
서고 최하층에서 열심히 서적들을 털고 있던 테일러.
시니스 장로 역시 그런 테일러와 합을 맞추며 중요 서적들의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이 영감……!’
‘이 녀석…….’
그런데 의외로 두 사람의 호흡이 훌륭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보이지 않는 테일러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본 덕분일까?
시니스 장로는 척하면 척 빠르고 자연스럽게 서적을 살폈고, 테일러는 그의 움직임에 맞춰 날렵하게 물건을 훔쳤다.
그러면 시니스 장로는 다시 손을 놀려 티가 나지 않게 옆의 서적으로 가리기까지…….
꽤 호흡이 잘 맞는 도둑 듀오!
그렇게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며 빠른 속도로 털던 그때.
쿠르르르-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내부가 심하게 요동쳤다.
‘뭐, 뭐야?!’
정신없이 뒤흔들리는 공간에서 테일러는 혹여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까 봐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상황은 더 나빠졌다.
콰르르-
바닥과 벽이 갈라지고, 머리 위에선 깨진 얼음들이 쏟아지는 등, 심상치 않은 현상이 이어졌다.
“뭐, 뭐야?! 이거……!”
“젠장! 다들 대피해!!!”
내부 감시를 상주하던 마법사들은 기겁하며 도망쳤고 테일러 또한 빠르게 움직여 도망치려던 순간…….
‘영감?!!’
시니스 장로가 아직 빠져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직 남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은 테일러.
누구보다 청탑을 사랑하는 그였기에 아직 남아 있는 서적들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젠장!’
테일러는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비록 서로 적극적으로 합을 맞춘 건 오늘이 처음이지만… 왠지 지난 한 달 동안 자신을 몰래 도와줬던 상대라고 생각하니 도저히 두고 갈 수 없었다.
타앗-
콰르르르-!!!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만 내부 공간.
“크윽……. 젠장!”
별로 높지 않은 힘 스텟을 이용해 무너지던 얼음덩어리들을 간신히 떠받든 테일러는 신음을 흘렸다.
아래에 있는 시니스 장로를 보호하려다 보니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희생정신이 발휘한 그.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으응?”
그가 구하려고 했던 시니스 장로는 아래에 없었다.
“나를 향한 자네의 희생에 눈물이 날 것 같군.”
뒤에서 들려오는 ‘눈물과 거리가 먼’ 목소리에 테일러는 힘이 불끈 솟아났다.
“으아아아!!”
콰앙-!!
짓누르던 얼음덩이를 냅다 던진 테일러는 무표정하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니스 장로를 노려봤다.
저 무표정 너머에 왠지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만 같았으니…….
“아니, 이 영감탱이야!! 피할 수 있으면서 왜 그렇게 다급한 표정을 지은 거야?!!”
“쯧,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 입이 거칠군.”
“뭐?! 빌어먹을…….”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드잡이질할 수도 없는 노릇.
그리고 애초에 시니스 장로와 싸운다고 한들 승리를 장담할 수도 없었다.
마법사 대 암살자면 클래스 특성에 따르면 암살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상대는 마탑의 장로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제기랄. 됐어. 그냥 이 상황을 어떻게 할지나 고민해 보자고.”
결국 테일러는 이 순간의 짜증은 접어 두기로 했다.
“제멋대로군.”
시니스 장로도 성가시다는 듯 툴툴거렸지만… 사실 테일러의 도움이 없었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최대한 빠르게 텔레포트를 사용해 피하려고 했지만 아슬아슬한 타이밍.
그 찰나의 여유를 만들어 준 게 테일러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진 않았다.
그의 앞뒤 꽉 막힌 성격과도 어울리지 않았고, 왠지 모르게 덜떨어져 보이는 녀석에게 감사 인사를 해 봐야 귀찮아지기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든 탓이었다.
“그나저나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시니스 장로는 온통 컴컴한 주변을 마법으로 밝혔다.
“으음…….”
눈앞에 펼쳐진 난장판에 저절로 흘러나오는 신음.
테일러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곳은 청탑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곳.
가장 귀중한 자료와 기록들이 보관된 장소가 무너져 내렸다.
이미 꽤 많이 챙기긴 했지만, 남은 것들도 많았다.
“그래도 완전히 무너지진 않아 다행이군. 게다가 통로도 봉쇄되었으니 마음 놓고 수색을 할 수 있겠어.”
“…보통 이런 상황이면 갇힌 걸 먼저 걱정해야 하지 않나?”
“청탑의 마법사이니 청탑의 미래를 먼저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
뭔가 이상했지만, 마법사 NPC들은 나사 하나 풀린 사람들이 많다고들 하니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나가려면 그의 도움이 필수였으니 도울 수밖에…….
“그럼 필요한 거나 골라 줘 봐. 챙길 테니까.”
체념한 테일러는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뚝-
치이이이-
“음?”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책 하나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빛을 내는 물방울 하나가 책 위로 떨어졌다.
그것에 맞은 책은 시커먼 연기를 내더니 이윽고 화르륵 타올랐다.
“으악!! 이, 이거 용암이야?!!”
그제야 여기저기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붉은 물방울의 정체를 깨달은 테일러.
“흐음……. 조금 전의 진동은 역시나 지진이었던 모양이군.”
느긋하게 중얼거린 시니스 장로는 바로 자신과 테일러 주변으로 얼음 보호막을 만들어 냈다.
“느긋하게 하려고 했더니 서둘러야겠군.”
“영감의 그런 태도 자체가 느긋한 거 같은데…….”
머리 위에서 용암 방울이 떨어졌다는 건 다시 말해 머리 위는 이미 불바다라는 뜻.
그런 상황에서 계속 수색할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서고의 책들을 챙기겠다는 저 열렬한 의지가 존경스러울 정도.
‘쳇. 군말 없이 빨리 터는 게 낫지, 뭐.’
어김없는 호구 기질의 테일러는 묵묵히 시니스 장로가 알려 주는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편 재호와 아이시클도 서고로 내려왔다.
“이거… 큰일 난 거 같은데요?”
지하로 깊게 이어지던 서고.
거대한 우물과도 같던 그곳이 정말로 우물이 되어 있었다.
다만 그 안이 물이 아니라 붉게 끓는 용암으로 채워져 있단 게 문제였다.
“저 아래에 테일러와 시니스 장로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솔직히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운 풍경.
하지만 재호는 조금 전, 로그아웃해서 테일러가 혹시 죽었는지 확인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게임에 접속 중인데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사람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저 아래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다.
‘용암 아래에 있다는 게 쉽게 상상은 안 되지만…….’
주변의 얼음 구조물들이 엘라스틴의 힘 덕분에 용암에도 녹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시니스 장로가 있다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텔레포트를 쓸 수 있는 그는 공간의 제약이 없었다.
멀쩡한 상태라면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
아이시클은 아무 말이 없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아래를 응시하는 그녀.
“우선… 아직 무사한 서고의 물품들이라도 옮겨야겠군요.”
긴 침묵 끝에 입을 연 그녀는 역시나 침착했다.
마치 시니스 장로의 안위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다행히 재호는 금방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었다.
뒤늦게 소식을 전해 줘야겠단 생각이 든 테일러가 잠시 로그아웃하고서 메시지를 보내 놓은 것이다.
“흥, 노인네가 명줄은 정말 질기군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시클은 짜증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말은 매정하게 하지만… 사실 그녀는 재호에게 소식을 듣기 전까지 줄곧 서고를 지키고 있었다.
현장 감독이 이유라곤 하지만 어쩐지 재호 눈에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더군다나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곧장 서고를 떠나 버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복잡하구나. 남매란 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자란 외동아들은 쉽게 이해 못 할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 * *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행히 제국과 크루마, 그리고 트라이앵글 연합에서 주도하는 일이다 보니 대륙의 다른 군소 왕국들까지 소식이 전해지는 건 금방이었다.
그리고 그들도 협력하기로 성명을 발표했다.
아무래도 제국이 있다 보니 눈치가 있다면 이 사태에서 빠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만이 전혀 없을 순 없는 일.
개중에서도 특히 불만이 많은 건 재호의 엘리시아 화원과 줄곧 마찰이 있었던 룬가 왕국.
엘리시아 화원과 룬가 왕국 사이의 악연.
그 시작은 어디까지나 블랙 드래곤 오기크를 대동한 불곰국이었다.
재호는 키노가 있던 타프카 숲에서 볼일만 보고 떠나려고 했으나, 불곰국이 재호를 잡겠답시고 침략을 한 것이었다.
사실 그 과정에서 재호가 잘못한 건 별로 없었다.
쉽게 정리하면 여행객이 룬가 왕국 내에서 습격을 받았으며, 살아남기 위해 저항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룬가 왕국은 그 사태의 책임을 재호에게 뒤집어씌워 보상을 받아 내고자 했었다.
그 대가는 바로 재호가 잡았던 드래곤의 소재들.
그러나 키노 때문에 하나도 얻지 못했고, 대신 불곰국의 영토를 얻었다.
처음엔 그곳이 저주받은 땅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룬가 왕실 마법회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천재 마법사 무무만은 그곳의 오염된 마력을 이용할 방법을 찾아냈고, 룬가 왕국의 새로운 미래가 되는가 싶었다.
그런데 그것도 재호가 나타나서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으니…….
이제 그들에 남은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넓은 불곰국 옛터와 상처받은 자존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
자업자득이란 표현이 잘 어울렸지만, 룬가 왕국 쪽에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엘리시아 화원이 제안한 것으로 추측되는 연합에 힘을 보태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그들을 찾아온 한 무리가 있었다.
“우린 세계 최고, 최강의 가디언 길드다.”
중국 정부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가디언 길드.
그들이 룬가 왕국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