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61
560화
지금까지 재호가 보여 준 수많은 대형 이벤트들.
그것들은 모두 경이롭지 않은 게 없었지만, 이번 역시 역대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불타는 하늘과 그 아래 살아 있는 듯, 요동치는 파도.
하늘을 수놓는 바닷길에 올라탄 수백 척의 배까지…….
아무리 온갖 것이 다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지나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전투가 이어졌다.
-엄청납니다! 그야말로 천지가 들썩이는 장엄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니, 바다이니 천해라고 해야겠군요!
-정말 엄청납니다! 먼저 죽은 플레이어들은 이 방송을 보면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뉴월드를 즐기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거대하고 웅장한 전투를 향한 욕심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 보입니다. 지금 저곳에서 황재호 선수와 함께 전투를 하는 이들의 얼굴들을 보세요!
하나같이 이를 꽉 물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
하지만 그건 현 전투의 어려움 탓에 나오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저 상황에 완벽하게 과몰입했기 때문에 나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표정!
이미 말했듯, 최전방의 함대에 지원한 이들은 최정상급 플레이어들이 아니었다.
그들처럼 눈치를 볼 여유가 없는 이들이 대부분.
헬릭스의 힘을 빼놓는 것이 목표라고 발표하는 그 순간, 모든 플레이어는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렸다.
그리고 나온 공통적인 결론은 후방에 있을수록 유리하다는 점이었다.
괜히 전방에 섰다가 일찍 죽으면 부활 시간을 기다리다 헬릭스 공략이 끝나 버릴지도 몰랐다.
그럼 기여도도 못 쌓고, 자신의 희생은 또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물론 아예 모르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살아서 계속 활약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최정상급 플레이어들, 그리고 대다수 플레이어는 후방 대륙에서 대기하는 걸 선택했다.
계산에 따르면 후방이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지금처럼 최전방에서 예상 이상으로 더 잘 버텨 준다면?
그걸로도 모자라 혹시라도… 헬릭스를 저지하는 데 성공해 버린다면?
-에이 그런 일은 없을 듯. 지금 정령왕도 사라졌잖아.
└그런데 없어진 뒤로 오히려 더 잘 싸우고 있는 거 아님? 엘라스틴이 있을 땐 실제로 헬릭스 공격을 감당 못 하기도 했었고.
└위에 놈들처럼 황재호 빠들 행복회로 자꾸 돌리는데 이거 노답임. 그냥 기다렸다가 대륙에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으면 됨.
-야, 너희 중요한 걸 놓치고 있음. 황재호는 애초에 헬릭스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는 거! 쉽게 말해 그냥 탈진시키는 게 목적임.
└그거나 죽이는 거나 똑같지. 그냥 말장난 아니냐?
└머리 안 돌아가는 놈들은 좀 다물어라. 힘 뺀다는 게 뭔 의미인지 모르겠냐?
└힘 빠지면 죽는 거지. 너야말로 능지 떨어지는 거 인증하지 마라.
└아오! 이것들은 이 정도로 말해 줘도 모르겠냐? [빡세게 싸운다=힘이 빠진다] 이 정도면 힌트 다 줬다!
커뮤니티 쪽에서도 이 전투의 본질을 깨닫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었다.
헬릭스가 격렬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대륙 쪽에 남은 이들에게는 기회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그에 대해 해설진이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맞습니다! 최전방의 전투가 가슴을 웅장하게 만드는 것과는 별개로, 분명 필사적이고 열세로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헬릭스 역시 이전보다 훨씬 격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죠. 그거 다시 말해 헬릭스 역시 이 전투에 필사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헬릭스 또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뜻이죠?
-바로 그겁니다! 황재호 선수는 이미 사전에 확실히 말했습니다. 헬릭스 공략은 죽이는 게 아니라 힘을 빼서 잠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표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의미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차이는 컸다.
-막타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보통 보스나 네임드 몬스터들의 기믹을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대부분은 가면 갈수록 강해지며 마지막 순간, 죽기 직전의 광폭화 타이밍 등이 있기 마련이죠. 그러나 헬릭스는 그 마지막 발악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말 그대로 점점 타들어 가는 양초와 같은 것이죠.
점점 약해져 가며 최후의 순간이 되면 피시식 꺼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건 없죠. 그래서 대륙 쪽에 남은 플레이어들은 더 애간장이 타는 겁니다!
한편 이 경이로운 전투가 가능한 건 역시 뭐니뭐니 해도 서루발 용왕 덕분이었다.
파도를 직접 조종하며 플레이어들의 배가 공격을 피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건 물론, 모든 방어까지 전담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과 관련한 억지 논란도 커뮤니티 쪽에서 종종 나오고 있었다.
-솔직히 사기 아니냐? 용왕 데려올 거면 미리 알렸어야지.
└가디언이냐?
└가디언이 뭔데?
└커뮤 하면서 가디언이 뭔지 모른다는 거 보니 빼박 가디언이네.
-아, 근데 좀 억울하긴 하다. 나도 큰맘 먹고 헬릭스 공략전에 참가했는데……. 저럴 줄 알았으면 후방에 안 남고 전방 갔지.
└그건 네가 선택한 거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지금 저기서 박 터지게 싸우는 사람들은 뭐 알고 간 건가?
└알고 갔을지도 모르지. 실제로 지금 황재호 배에는 친한 사람들 다 타고 있지 않음?
└야……. 유치하게 그런 것까지 트집 잡지는 말자. 친구들 데리고 가는 게 뭐가 문제냐?
└아! 나는 왜 미국인으로 태어난 거냐! 황재호랑 친구 못 먹게!
└나 한국인인데 친구 아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방송 화면 속, 고잉헬 호에 승선한 이들은 전원 갑판 위로 올라와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은 헬릭스를 계속 괴롭혔고, 근접 클래스의 경우엔 버프나 방어 스킬 등으로 공격을 방어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 것도 안 되는 이들은… 별수 없이 시베리아 바다호랑이 길드원과 함께 삽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최선을 다해 잘 싸우던 중.
끼이이이-
헬릭스의 괴성이 터져 나올 때마다 반복되어 온 파괴적인 범위 공격.
그때마다 서루발 용왕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적절히 방어해 주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어?”
공중에서 날개를 웅크리며 자신의 전신을 감싼 헬릭스.
그러더니 태양처럼 둥글게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지?”
서루발 용왕과 엘라스틴의 합동 공격을 막아 냈던 보호막과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재호의 예리한 눈썰미는 그것과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점점 커지고 있는데?”
미세하지만, 분명 화염 구체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뭔가 큰 게 올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 전투 중인 플레이어들은 크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큰 거 터지기 전에 무력화시켜야 하는 거 아냐?!”
“괜히 공격해서 변수 늘리는 것보다 지켜보는 게 나아!!”
재호는 후자였고, 고잉헬 호의 공격은 중단됐다.
다른 배들은 지휘권을 가진 선장이 없다 보니 저마다 행동이 갈렸는데,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곧 알 수 있을…….
쿠르르르-
급속도로 커지는 화염구.
“헉?!”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정답은 알아냈다.
“공격을 흡수한다!!!”
하지만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버렸다.
파앗-!!
갑자기 화염구가 확 쪼그라들더니 세상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잠시 후…….
찌이이잉-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실처럼 가는 광선들.
그것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난도질했다.
* * *
서루발 용왕은 말했었다.
바다는 아무리 강한 힘으로도 부술 수 없으며,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로도 벨 수 없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게 갑작스러운 헬릭스의 공격으로 확인되었다.
기이이이잉-
콰과과과-!!!
모든 걸 갈라 버리는 파괴 광선.
그건 바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헬릭스의 광선이 지나간 자리엔 푸른 바다가 아닌 붉은 화염이 차올랐고, 바다는 그 화염을 꺼트리지 못했다.
플레이어들의 배를 태우고 하늘을 누비던 높은 파도 역시 헬릭스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악!!! 추락한다!!”
“꽉 잡아!!”
힘을 잃은 바다는 급기야 주변까지 불길을 전이시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불바다!
“마, 맙소사!”
서루발 용왕조차 경악하게 만드는 헬릭스의 끔찍한 힘.
설마 바다조차 불태울 수 있으리라곤 그 역시 상상을 못 했었다.
콰아앙-!!!
콰과광!!
광선에 적중당해 터져 나가는 배들.
게다가 불바다 닿는 순간 선체가 타오르기까지…….
꽈앙-! 꽈광!!
추락해서 그대로 박살이 나는 배도 물론 있었다.
“사, 살려 줘!!!”
“으아아악! 죄다 불바다잖아!!”
정상적인 경우라면 비교적 멀쩡한 배에 오르거나, 부서진 배 파편에라도 의지할 수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라면?
안전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건 고잉헬 호 역시 마찬가지!
콰아앙-!!!
힘을 잃은 파도와 함께 추락한 고잉헬 호 곳곳에서 뭔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배보다 훨씬 튼튼하기 때문에 간신히 버텨 냈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 확실했다.
게다가 역시나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어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잠항!!”
일단 재호가 택한 것은 수중으로 대피.
치이이-
빠르게 잠수하자 바다 아래 상황이 한눈에 보였다.
“!!”
순간 세상이 거꾸로 된 것인가 착각이 들었다.
수면을 기준으로 불타오르는 불의 장막.
바다와 섞이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과 수면 반대편에서 타오르는 불꽃까지 합쳐지니 기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게다가 화염을 바라보는 쪽으로는 후끈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다른 부분은 바닷물의 차가움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바깥보다는 상황이 낫다는 점이었다.
바다를 불태우는 화염은 충격이었지만, 바다를 전부 태우는 건 역시 불가능한 일.
“알시아 대왕!”
서루발 용왕도 재호에게 급히 다가왔다.
“용왕님! 괜찮습니까?!”
“이 정도에 당할 내가 아니지. 그나저나 엄청나군. 설마 헬릭스가 이 정도까지 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놀랍긴 하지만 아직은 괜찮네. 바다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으니. 다만…….”
우려되는 것 하나가 있었다.
“지금 헬릭스가 뿜어낸 화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종류로 보이는군.”
그는 바다의 해류를 조절하여 수중 화염을 꺼트리려고 했으나 전혀 소용이 없었다.
“모든 걸 불태우는 화염.”
“모든 걸……?”
“그렇다네.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무(無)로 불태워 버리는 것.”
“예?”
언뜻 이해되지 않는 설명.
하지만 잠시 생각해 본 재호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이미 그것과 관련한 비슷한 현상을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상이 지닌 생령조차 얼려 버렸던 성물 이터널의 힘.
그리고 모든 걸 불태워 버리는 헬릭스의 힘.
“이만한 힘을 지금까지 아껴 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마 녀석 또한 심각한 위기감을 느꼈기에 나온 필사의 저항이라고 생각되는군.”
서루발 용왕의 추측은 헬릭스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 것 같다는 것.
그렇다면 정말 코앞에 도달한 것일지도 몰랐다.
해설진이 예상한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
“이 주변의 바다에는 [바다의 의지]가 닿지 않는다네. 그렇기에 바다의 도움을 조금 전처럼 적극적으로 받긴 어렵단 소리지.”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비슷한 속성을 지닌 서로 상극의 힘…….”
과연 이게 단순히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었다.
그것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면…….
“?!!!”
그 순간, 재호는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하나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련이 있을지 모르나… 적어도 불과 물, 그리고 두 물질이 지닌 상징적인 요소인 뜨거움과 차가움을 이어 주는 ‘그것’을!
“불꽁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