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582
581화
사막을 끝없이 가로지르는 거대한 대운하.
주변의 대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바닥과 벽면은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지안트는 자신이 뉴월드에서 쌓은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을 집대성한 걸작이라고 감히 자신할 수 있었다.
단, 아직은 대운하 일부 구간에만 물이 채워진 상태였다.
운하에 가해진 순간적인 과부하를 최대한 줄이며, 혹여나 공사에 허점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기 위해 구간별로 순차 유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에바트산에서 있었던 가디언 길드의 분탕질로 인해 강물 공급에 차질도 있었다.
“이대로라면 최소 한 달은 더 연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 공급이 끊긴 건 불과 며칠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대운하만 아니라 라셀 왕국 북부에도 있으니 말입니다.”
늘 물이 범람해 피해를 보던 리픈강 하류가 이젠 가뭄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
“그럼 제가 한번 손 써 보죠.”
“네? 어떻게……?”
지안트는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지만, 재호는 자신이 새로이 얻은 힘이라면 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 * *
현재 재호가 선 곳은 리픈강 상류.
“엘라스트라.”
그곳에서 재호는 자신과 강제(?) 계약이 되어있는 정령을 소환했다.
촤아아-
일단 계약으로 이어진 관계이다 보니 표정은 잔뜩 썩어 있어도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
이미 재호의 머릿속을 읽은 녀석은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수위가 평소보다 절반 정도에 불과한 그곳을 찰랑이도록 만들어야 하는 상황.
“할 수 있지?”
-없는 물을 어디서 가져오라는 것이냐?
“고위 원소 정령들은 물질을 다른 장소에서 불러올 수 있다고 하던데?”
재호의 말에 엘라스트라의 고개가 꼰대를 향했다.
-휘히~
모른 척 딴청을 피우는 꼰대.
하지만 서열상 꼰대가 엘라스트라보다 높았기에 더 항의할 순 없었다.
-물을 길어 오는 것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없는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계의 어딘가에서 빌려오는 것. 자칫 세계의 흐름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다.
물론 그에 대해서 재호가 준비해 놓은 핑계도 있었다.
“가디언 길드에서 뚫어서 멋대로 흘려보낸 호숫물 있잖아.”
에바트산 정상에서 반대로 흘러내린 많은 양의 물은 그 아래에서 새로운 호수를 만들어 냈다는 걸 확인했다.
“거기 둬 봐야 썩기밖에 더 하겠어?”
해서 재호는 그곳의 물을 이용해 다시 리픈강과 대운하에 물을 공급할 계획이었다.
-가능하긴 하다.
잠시 고민하는 듯, 머뭇거리더니 결국 인정한 엘라스트라.
‘안 된다고 하려니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네.’
-아니, 절대 그런 것이…….
“아, 미안. 그런데 제발 내 속마음 읽는 거 좀 조절해 주면 안 되는 거야?”
어김없이 나오려는 반론을 얼른 막으며 재호가 투덜거렸다.
평소 꼰대와 징징이한테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피곤함이었다.
-후……. 빌어먹을.
정령과는 어울리지 않는 충격적인 욕설.
어쩐지 점점 오염되어 가는 듯한 그의 모습에 재호는 약간의 죄책감마저도 들었다.
정작 자신이 그에게 피해를 준 것이라곤 딱히 없음에도 말이다.
-잘 들어라. 먼 거리에서 물을 옮겨 오는 일 자체는 내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엄청난 작업엔 늘 제약이 있기 마련이지.
어느 정도 재호도 예상한 것이긴 했다.
“그 제약은 뭔데?”
-나는 그대를 매개체로 이 세계에 소환된 것. 즉, 큰 힘을 쓸수록 그대의 힘 역시 많이 사용된다. 나를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던 그대가 그만한 자격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쉽게 말해 재호의 마나나 지능 수치 수준으로는 정령들의 기능을 제대로 이용하기에 부족하다는 뜻.
사실 별로 새로운 거 없는 제약사항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해당 문제를 겪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엘라스틴 님이 헬릭스와 싸울 때는 큰 문제가 없었잖아. 그리고 네가 에바트산에서 힘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고.”
문제가 되었던 건 소환을 하는 그 순간이 가장 컸을 뿐, 유지에는 생각보다 그리 큰 어려움이 없다고 재호는 느꼈었다.
실제로 소환된 정령의 능력은 소환자의 능력치나 스킬에 따라 어느 정도 결정되는 점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
-그건 그대가 이미 정령을 다루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덕분이지. 애초에 정령은 계약자의 목숨을 위협하면서까지 힘을 끌어다 쓸 수는 없다. 이 세상의 규칙이 허락하지 않으니 말이다.
정령과 관련된 제대로 된 스킬 하나 없는 재호가 그나마 그 패널티를 줄일 수 있는 건 충만한 정령 교감력이나 정령화장이라는 클래스 자체 특성 등등.
그리고 존재 자체를 거의 잊고 있지만, 의외로 상당한 도움을 주는 스킬도 하나 있었다.
[] [보유한 모든 소환수를 육성할 수 있습니다.]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소환수 육성 스킬.
정령 역시 소환수의 범주에 들어가며, 이미 옛날부터 정령과 함께 게임을 한 재호에겐 당연히 있을 만한 스킬이었다.
꼰대도 꾸준히 전투에 참여하며 해당 스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녀석의 레벨이 어느덧 200 가까이 다다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징징이는?
[lv.74]“…….”
-…….
아무튼 이 스킬 하나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느냐.
-정령의 한계치를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다. 쉽게 말해 실시간으로 정령 고유 능력 해방 범주가 넓어지는 거지.
즉, 엘라스틴이나 엘라스트라의 능력을 쓸 때도 해당 패시브 스킬 덕분에 재호의 부담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해진 한계를 넘기 위해 정령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히 존재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그걸 소환 주체인 정령들이 감당해 왔다는 뜻이었다.
늘 소환된 채로 붙어 다니는 꼰대와 징징이는 특히나…….
“아…….”
문득 재호는 꼰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엘라스틴이 헬릭스와의 전투에서 느낀 피로감은 엄청날 것이라던 설명.
그게 단순히 인간의 관점에서 피곤함을 뜻하는 게 아닌, 소환으로 인한 부담을 엘라스틴이 짊어지면서 발생한 패널티였던 것이다.
-바로 그렇다.
엘라스트라의 확답에 재호는 새삼 엘라스틴에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다시금 그녀가 얼마나 인간을 좋아하는지도 알 수 있었고 말이다.
-…나한테는 안 미안하냐? 방금 우리가 널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깨달은 거 같은데, 너무 빠르게 넘어가 버린 거 아니냐?
잠자코 보고 있던 꼰대는 핀잔.
“어어, 당연히 고맙지.”
-아니, 안 미안하냐고.
-크크, 포기해. 그리고 솔직히 너도 딱히 무리하면서 싸우진 않았잖…….
-…….
-내가 미안해.
징징이의 대리 사과로 마무리된 대화.
“뭐, 어쨌든 이번 작업을 하면 사실상 나보다 네가 더 무리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이고.”
-정확하다.
“흠……. 그래도 자세히 설명해 주는 걸 보니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이네.”
재호는 눈치 빠르게 엘라스트라의 속내를 읽었다.
-…그렇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현재 엘라스틴 님의 상태는 매우 나쁘다. 그대에게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지만, 현재 자연 회복하기엔 정령계의 힘만으로는 모자란다.
“뭐……?”
생각보다 더 심각한 엘라스틴의 상태.
최측근인 엘라스트라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그 무게감이 남달랐다.
-엘라스틴 님은 스스로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쉽지 않다. 해서 중간계에서 도와주었으면 한다.
“방법은?”
재호는 얼마든지 도울 생각이었다.
헬릭스를 오랜 세월 잡아 둔 것은 물론, 녀석의 힘을 빼는 데 누구보다 큰 도움을 준 존재가 정령왕 엘라스틴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함께 싸웠던 심해의 왕.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서루발 용왕?”
-그렇다. 정확히는 그가 다루는 위대한 물의 의지.
“어…….”
뭐든 다 들어주겠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건 재호가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서루발 용왕이 빌려왔던 그 힘은 [바다의 의지]라고 부르는 특수한 힘.
그리고 그걸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현재 아트리우스는 일시적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바다의 의지]를 회복시키는 중이었으니까.
‘정령왕과 용왕이 서로 친한 것처럼 보이긴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그런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직접 하는 건 조금 무서웠다.
-나도 염치는 알고 있다. 심해의 왕 또한 그만한 힘을 쓴 대가는 분명 치러야 할 테니까.
엘라스트라 역시 당장 도움을 달라는 건 아니었다.
-그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해 달라는 것이다. 엘라스틴 님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말이다.
[*퀘스트*] [최고위 물의 정령 엘라스트라는 정령왕 엘라스틴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습니다.하지만 정령계에 귀속된 그들로선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으며, 그런 이유로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퀘스트 목표 : 를 통한 정령왕 엘라스틴의 회복.] [보상 : 1. 최고위 정령 엘라스트라의 호감도 증가.
2. 페르마 대운하 작업 협조.]
‘점점 호감도 증가로 퉁 치는 경향이 심해지는 거 같은데…….’ 그래도 상대가 엘라스트라이니 기대보다 더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자신을 향한 저런 날 선 태도가 훨씬 나아질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두 번째 보상도 있었으니…….
“일단은 알았어. 그럼 여기 일은 도와주는 거지?”
[퀘스트를 수락했습니다.]-그렇게 하겠다.
퀘스트를 받아들이자 엘라스트라는 순순히 협조하기 시작했다.
싸아아-
형체가 흩어지며 커다란 물방울로 변한 그는 리픈 강과 하나가 되었다.
쿠르르르-
넓은 리픈강 가운데에서 시작된 작은 소용돌이.
그것은 점점 거대하게 자라나며 마치 주변 강물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하지만 강가로 다가선 재호는 그 반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수위가 높아지고 있네.”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늘어나는 수량.
이렇게 갑작스럽게 늘어나면 또다시 리픈강 하류에 물난리를 일으킬 수도 있었으나, 엘라스트라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쏴아아아-
위대한 존재의 의지가 실린 강물은 자연 그대로의 흐름을 거부하며 독자적인 물길을 만들어 냈다.
그 방향은 바로 페르마 대운하.
빠르지만 부드럽게 흐르는 거대한 파도.
[올라타라.]그때, 재호의 머릿속으로 엘라스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올라타라고? 어딜…….”
촤르르-
대답 대신 재호 앞에 나타난 물로 이루어진 작은 조각배.
그곳에 조심스럽게 발을 올리자 놀랍게도 물속으로 빠지지 않고 올라설 수 있었다.
게다가 물에 전혀 젖지도 않았다.
“와…….”
기분이 이상해질 정도로 지나치게 부드러운 촉감.
젖지 않는 물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출발하지.]왠지 의기양양하게 느껴지는 엘라스트라의 목소리와 함께, 재호가 올라탄 물배는 페르마 대운하로 진입했다.
* * *
완공된 페르마 대운하의 하류는 대륙 동쪽 바다와 이어져 있었다.
그곳의 수문을 열어 바닷물을 역으로 유입을 시키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모자랐다.
강에서 바다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도록 설계되었기에 바닷물이 역류하는 것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재호가 해결해 보겠답시고 리픈강으로 간 것도 솔직히 지안트는 불안했다.
“조급한 나머지 너무 급하게 일을 처리하는 건 아닐지 걱정이군.”
기다리기만 하면 해결될 문제이거늘, 서두르다 다른 문제가 터지면 그 이상으로 미뤄질지도 몰랐다.
-지안트 씨! 수문 전부 개방하세요!!
“?”
그때, 걱정 가득하던 지안트에게 재호의 귓속말이 도착했다.
“수문을 다 열라고요?”
그랬다간 현재 가두어 놓은 어마어마한 수량이 쏟아지며 대운하에 큰 부담이 될 터였다.
“알시아 님. 이런 말씀드리기 그렇지만, 이건 그렇게 급하게 할 일이 아니… 어?”
그 순간, 지안트는 저 멀리서 가까워지는 거대한 파도를 목격했다.
마치 기둥처럼 곧게 솟은 기이한 파도… 그리고 그 위에 반짝이는 물배를 탄 재호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