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62
61화
“어? 테일러님?”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나선 계단 앞을 지키고 있던 간수는 갑자기 나타난 테일러를 보곤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번에도 오시더니 오늘 또 오셨군요.”
그리 말하는 간수의 표정엔 불만이 어렸다.
마치 자신들을 감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야 고생하는 자네들 때문에 온 거지.”
테일러는 얼른 다른 말로 둘러댔다.
“요즘 이쪽 인력 줄여서 밤에 잠도 못 잔다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미치지 않은 이상 간수는 백작 앞에서 나라 욕을 할 순 없는 일.
“어허― 나도 다 알아. 안 그래도 좀 전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걱정이 되어서 와 봤어.”
“아……. 누보 말씀이군요.”
신참 간수인 그는 최근 감옥을 들락날락하는 전과범에게 시비를 걸더니 살해당했다.
“뭐…… 누보가 임모탈리언이라 딱히 죽음이 문제될 건 없겠지만…….”
“아니지. 그런 괜한 분쟁을 일으켜 봐야 좋을 거 없지.”
“……그렇긴 합니다만.”
“사실 이런 자리는 임모탈리언들이 하긴 어려운 곳이잖아. 안 그래?”
스으―
“?!!”
그러면서 테일러가 슬쩍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먹을 수 없는 최고급 술!
“자자, 피로를 풀기에 이것만큼 좋은 게 없지. 안 그래?”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전 엄연히 근무 중인 데다 간수장님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카투스 녀석은 여기 없어.”
이 감옥의 간수장인 카투스는 퀘스트를 위해 원정을 나간 상태였다.
“……꿀꺽.”
흔들리던 간수의 눈동자가 결국엔 테일러의 손에 들린 술을 향했다.
“끅― 하아……. 말도 마십시오.”
얼큰하게 취한 간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나라가 바뀌고 어려운 건 알고 있지만…… 사실 인력을 좀 충원해줬음 하는 마음은 있죠.”
“그럼, 그럼.”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죄수들을 잡아넣는 탓에 감옥은 미어터지는데 일할 사람은 없으니 미치겠습니다. 새로 오는 이들이라고 해 봐야 전부 임모탈리언들이니……. 그들은 전혀 이 일들에 대한 책임감이 없어요! 아, 물론 테일러 백작님은 아닙니다, 헤헤. 어디 저희 같은 말단 간수들까지 챙겨주는 귀족이 있겠…….”
콰앙―!
구르르르―
그 순간, 갑자기 아래 감옥 쪽에서 터져 나온 소음과 진동.
“음? 이게 무슨…….”
“왜 그러나?”
간수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테일러가 물었다.
“방금 못 들으셨습니까?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아니? 전혀 못 들었는데.”
“그, 그렇지만…….”
“어허― 그렇게 안 봤는데 말이야. 술을 그거밖에 못 마시면 남자야? 벌써 취한 거야?”
“예?! 하! 저 하나도 안 취했습니다!”
테일러의 말에 울컥한 간수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고 보십시오! 저 절대로 백작님보다 먼저 쓰러지지 않을 겁니다!”
“후후, 한번 대결해 보자구.”
테일러는 씩 웃으며 잔을 들어올렸다.
역시 잔을 마주 든 간수가 자신의 입으로 술을 털어 넣는 순간.
샤샥―
테일러는 자신의 잔에 든 술을 바닥에 버려 버렸다.
과연 암살자다운 뛰어난 민첩성이었다.
* * *
콰르르르―
천장의 돌무더기가 쏟아지며 일순간 감옥 복도에는 온통 흙먼지에 휩싸였다.
“쿨럭 쿨럭! 뭐, 뭐야 이거?!”
감옥 바닥에 누워 있던 완식이 기침을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다른 죄수들 역시 갑작스러운 사태에 긴장한 얼굴로 먼지 너머를 바라봤다.
설마하니 이 미친 불곰국이 자신들을 생매장하려는 건 아니겠지?
“앗! 알시아님! 제대로 도착했어요!”
“?!!!”
익숙한 이름을 들은 완식이 벌떡 일어났다.
이 자식! 드디어 왔구나!
터벅―터벅―
거대한 실루엣!
누가 봐도 저건 황재…….
“어, 여기 있네.”
먼지가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재호.
“……진짜 황재호 맞냐?”
“그럼 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근데 꼴이 왜 그러냐?”
뾰족한 귀와 이기적으로 커다란 코.
황재호 같지만 동시에 황재호 같지 않은 묘한 느낌.
“다 사정이 있어. 여기까지 오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뭐…… 쉽게 온 것처럼 보이지 않긴 한데…….”
이곳이 지하라는 점과 천장으로 뻥 뚫린 통로를 보면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한 건지 짐작도 어려웠다.
“창살 좀 부탁해, 티나.”
“넷!”
“잠깐! 이거 그냥 칼로는…….”
완식의 말이 끝나기 전에 티나의 검이 번쩍이더니 쇠창살이 수수깡처럼 잘려 나갔다.
“응? 뭐?”
뒤늦게 재호의 대답.
“아니, 잘 잘리니까 괜히 힘 빼지 말라고.”
완식은 민망한 표정으로 창살을 걸어 나왔다.
[감옥을 빠져나갈 경우, 탈옥수가 됩니다.]“X까.”
어차피 불곰국에 두 번 다시 올 일도 없었다.
“근데 너 간수 죽였다며?”
“아, 그거?”
완식은 코웃음 지으며 말했다.
“감옥에 들어와서 나한테 들이받곤 혼자 자빠지더니 뒤지더라.”
“……?”
재호는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표했다.
“말 그대로야. 그 자식 대체 피를 얼마나 깎아 놓고 왔는지 그냥 들어와서 나한테 몸통 박치기하더라니까? 그리곤 벽에 머리 찧고 죽어 버리더라.”
“…….”
불곰 길드의 추접함의 일면을 본 재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나 얽히고 싶지 않은 자들이었다.
“일단 올라가자. 당장 여기서 나가 버리게.”
“좋지!”
완식이 먼저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재호 역시 곧장 뒤따랐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누군가의 외침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 알시아라고 했나?! 이데란 왕실의 원수, 테일러를 죽인 사막의 괴물 알시아?!”
“……아닙니다―”
사막의 괴물이라니…….
더 슬픈 건 진짜로 지금 모습은 괴물 같단 점이었다.
“자, 잠깐 기다려!! 제발!”
재호가 무시하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자 그 목소리의 주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 나는 이데란 왕실의 3왕자 ‘피스오’라고 한다!”
“뭐?”
예상 못한 상대의 소개에 재호는 사다리를 놓고 내려섰다.
그러곤 피스오라는 젊은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상대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곰국에 대한 당신의 업적으로 인해 호감도 버프가 적용됩니다.]재호는 피골이 상접한 꼬질꼬질한 모습의 그를 바라봤다.
도저히 겉으로만 봐선 왕족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몰골.
“아직 살아 있는 왕족이 있었어?”
“큭……! 최소한의 예를 갖추는…….”
“만나서 반가웠어. 이만 가 볼게.”
“자, 잠깐!!! 미, 미안하다!”
피스오가 다시 다급해졌다.
“제발 부탁한다! 부디 우리들도 함께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 다오!”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그, 그야…… 그대는 불곰국의 적대자이니…….”
“아, 그거 오해야. 그냥 그 녀석들 혼자 발작하는 것뿐이거든.”
“거짓말! 그렇다면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파괴 행위를 저지르는 건가?!”
“그냥 친구 데리러 온 걸 뿐이거든. 그리고 누굴 데리고 갈만큼 우리 일손이 많진 않아서. 진짜 가 볼게!”
“보, 보상을 하겠네!!”
멈칫―
재호의 동작이 다시 멈추었다.
하지만 아직 손에 쥔 사다리는 놓지 않은 상태.
“와, 왕실 금고! 그들이 다른 왕족은 말살하면서도 나를 남겨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왕실 금고는 이데란의 핏줄이 아니면 열 수 없기 때문이다!”
“흐음…….”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이야기.
게다가 앵글러의 안대 역시 피스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내, 내가 탈출하게 도와준다면 그 왕성의 보물 일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일부?”
“……다, 다 주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나라를 다시 재건하려면 돈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복수를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재물이 필요하니…….”
‘하긴, 모조리 가져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
인벤토리가 그리 넉넉한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좋아. 그럼 구해주도록 하지.”
“고, 고맙다!!!!”
탱그랑―
티나는 단숨에 쇠창살을 잘라 버렸다.
“자, 먼저 올라가. 사다리 올라갈 정도 힘은 있지?”
“잠깐!”
“아, 또 왜?”
“여기 감옥에 갇힌 이들 대다수는 이데란의 충신들이다. 그들도 구출해 다오!”
“아니, 왜 말이 바뀌어?”
“하, 하지만 이들이 없으면 난…… 크흑!”
“……하.”
급기야 눈물을 흘리려 하는 그 모습에 재호는 결국 다른 이들도 감옥에서 꺼냈다.
그런 못 볼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자자, 빨리들 올라가! 여기서 계속 느긋하게 있을 시간 없다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고, 꽉 차 있던 감옥은 텅텅 비어 버렸다.
“크흐흐흑!! 감사합니다, 알시아님!!!”
“역시 명성만큼이나 대단한 분이십니다!”
“저 알시아님 팬입니다! 죽을 때까지 MK 응원하겠습니다! 충성충성!!”
“?”
구하고 보니 불곰국에게 찍힌 플레이어들도 섞여 있었다.
“됐고. 빨리빨리 가!”
재호는 사람들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어? 알시아님!”
그때 갑자기, 귀를 쫑긋거리던 티나가 재호를 불렀다.
“누군가 내려오고 있어요! 드래곤일까요?”
“……대체 여기서 왜 드래곤이 나와? 당연히 사람이겠지!”
재호는 모종삽을 꺼내 들곤 복도 끝에 이어진 출입문을 옆으로 찰싹 붙었다.
이 타이밍에 누군가 내려온다면 백퍼센트 적!
단숨에 제압해야 했다.
티나 역시 반대편에서 검을 꺼낸 채 대기했고…….
덜컥―
“알시……!!”
!!
엘프식 대충 찌르기!
푹푹푹푹―!! ……푹!!
“커헉?!!!!”
단말마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진 이는 테일러!
“너…… 너 이 자식……!!”
“헉?! 뭐야!”
재호는 당황한 얼굴로 서서히 재로 변해가는 테일러를 바라봤다.
“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야야, 오해야! 왜 말도 없이 갑자기 내려오고 그러냐?!!”
“이 개…….”
파스슷―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재가 되었다.
[구 이데란 왕국 생존자들이 당신의 업적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호감도가 대폭 증가합니다.]“오오!”
“알시아! 알시아!”
그 장면을 본 구출자들이 환호하며 재호를 연호했다.
―#!&*@^$*!@^@!!!!!
그리고 곧이어 쏟아지는 망자의 귓속말.
―야, 살아 있을 때나 귓속말 좀 하지!
―이 개자식아! 적당히 확인 좀 하고 찌를 수도 있잖아!! 너 두 번 찌르는 거 정확히 봤다고!! 게다가 그 엘프는 내 두 눈을 똑바로 보고 한 번 더 찔렀다고!!
―엄연히 사고였어. 아무튼 나중에 연락해. 지금은 좀 바빠서!
―이 XXXXXXXXX!!!!!!
번역기로도 감당 못할 엄청난 욕설이 쏟아졌으나,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기에 데미지는 없었다.
“어서 가요, 알시아님!!”
티나의 외침에 재호도 사다리를 올랐고 지하 감옥 속엔 고요만이 남았다.
* * *
감옥 위쪽의 넓은 공동 가운데 선 재호.
그 주변으론 재호에게 구출을 받은 사람들이 연신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했다.
[구 이데란 왕국 생존자들의 호감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구 이데란 왕국의 도망친 왕족들의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구 이데란 왕국의 귀족 가문들의 호감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어, 잠깐. 왕족은 너 혼자 아니었어?”
왕자한테 ‘너’라는 표현조차 용납될 정도로 굳건한 호감도 수치.
“사촌 형제자매들은 정변 당시에 미리 왕국을 탈출했기에 무사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럼 너는 왜 여기서 잡힌 거지?”
“난 국왕폐하, 형님들과 함께 끝까지 싸웠었다. 하지만…… 크흑……!”
모두 죽고 그만이 남았다는 건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려둔 이유 역시 앞서 들었던 금고 때문일 테고.
“정말…… 고맙다……. 이 은혜는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겠지.”
“아니, 갚을 수 있어.”
재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일단 금고로 가자. 여기 맞나?”
지도를 펼친 재호는 굉장히 수상쩍은 장소를 가리켰다.
“헉?! 이, 이건……! 어떻게 찾은 건가?!”
재호의 지도를 본 한 노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거? 웬 몬스터들을 두들겨 잡으니 나오던데?”
“허어……! 그곳을 통과했단 말인가?!”
그는 탄식을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왠지 사람 불안하게 만드는 반응에 재호는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무슨 일이오, 줄칸 경! 내가 모르는 비밀이 또 있단 말이오?”
피스오 역시 그를 향해 물었다.
“줄칸?”
왠지 귀에 익은 이름.
“잠깐, 그 가짜 지도 만들고 쪽지까지 남겨 놓았던 게 영감님이야?!”
재호의 물음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내가 바로 이데란 왕실의 서기관인 줄칸이오. 그리고 반역자들로부터 왕실 깊은 곳에 잠들은 수호신을 지키기 위해…… 가문의 금기였던 불사의 사술을 이용해 지도를 감추었지.”
그의 고백에 피스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줄칸 경! 수호신은 뭐고, 불사의 사술은 또 무엇이란 말이오?!!”
그가 다그치며 묻자 그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곤 피스오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피스오 왕자님……! 저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존재를 저 위의 어리석은 자들이 알도록 둘 순 없었기에…….”
“그게 대체 뭔가?!!”
“그건…….”
“……드래곤.”
작게 속삭이는 티나.
쿡―
그녀의 팔을 재호가 팔꿈치로 쿡 찔렀다.
헛소리하지 말라는…….
“드래곤입니다.”
“……?”
“꺄아악!!!!”
번쩍 만세를 하는 티나와 달리, 재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백프로 개판 난다.
재호는 티나의 귀를 막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