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643
642화
사만다에겐 조금 미안한 생각을 했단 사실에 재호는 미안해하며 얼른 지워 버렸다.
‘그래도 최근엔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던 것 같아.’
진짜 괜찮아서인지… 아니면 익숙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저 정신이 나간 스타일이 힙뇨를 정말로 야수왕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다.
“못다 먹은 술을 마시려고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 친구들이 뭐 재밌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붉은 씨와 우르르 몰려가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겠니?”
힙뇨의 말에 비버 수인들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박연호 또한 단단히 꼬인 상황에 갑옷 안이 흥건하게 젖었다.
야수왕을 앞에 두면 나타나는 당연한 반응들.
그렇기에 힙뇨는 재호에게 더 관심을 보였다.
마치 이 상황이 조금도 긴장되지 않는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인간아, 당신은 누구니?”
힙뇨는 짚으로 만들어진 소파에 앉으며-부수며- 물었다.
“아니, 당신. 인간이 맞긴 하니?”
재호는 야수왕의 그 한마디로 알 수 있었다.
역시 힙뇨 또한 아득히 높은, 전설에 다다른 존재라는 것을…….
* * *
숨 막히는 고요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시간은 고작해야 막 5초가 지났지만, 힙뇨를 마주한 이들 처지에선 5분은 되는 것 같았다.
대체 왜 재호는 힙뇨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인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으니…….
짤랑-
힙뇨의 팔목에 걸린 수많은 장식이 서로 부딪히며 긴장감을 더했다.
그 여유로운 손동작은 분명 재호가 스스로 대답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처럼 보였지만, 왠지 모르게 압박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알시아…….’
박연호는 이 상황이 미칠 듯이 초조한 한편, 재호가 어떻게 대응할지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플레이어 중,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한 것으로 치면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
그렇다면 저 야수왕을 상대로도 남다른 무언가를 보여 주지 않을까?
‘…뭔 배부른 생각을 하는 거지? 지금 난리가 났는데!!’
하지만 이내 금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재호의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도 걸려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잘 풀려도 본전조차 불가능한 상황.
아니, 잘 풀린다는 선택지 자체가 있긴 한 것인가?
아주 잠시, 자신이 먼저 나서 재호를 소개할까도 싶었다.
백호 길드의 신입이라고 이야기하면 받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재호를 향한 힙뇨의 반응을 보고 생각을 접었다.
야수왕은 그렇게 어수룩한 거짓말로 속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걸 바로 깨달았으니 말이다.
‘역시… 망했군.’
박연호는 체념했다.
위스트넌에서 최고 길드로 자리를 잡으려던 그의 계획인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날 믿고 백호 길드에 남아 준 길드원들에게 미안하군.’
물론 젊백호 길드에서 활동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는 핑계를 댔던 길드원들이지만, 사실 박연호 때문이란 걸 그도 잘 알았다.
그들은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 여러 게임을 돌아다니며 전우애를 쌓아 온 동료들이었으니까.
그런 이들을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구렁텅이로 떠밀어 버렸으니… 이 미안함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알시아는 왜 이렇게 대답을 안 하고 시간을 끄는 거지?’
설마 긴장으로 얼어붙어 버린 건가 싶어 재호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린 박연호.
그러나 박연호가 별의별 생각들을 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고작해야 20초 정도였을 뿐.
그리고 재호는 이제 막 결심을 내리고 입을 열려던 참이었고…….
“난 알시아다.”
많이 짧은 재호의 대답에 박연호는 다리가 휘청였다.
‘정말로 끝이군.’
대책 없이 들이받아 버리는 대답.
오늘따라 박연호는 자신의 갑옷이 무겁게 느껴졌…….
“뇨홍홍- 어쩐지.”
힙뇨의 가벼운 웃음.
“궁금했었지. 과연 그 알시아라는 인간이 나를 바다로 불러낼 만큼 대단한지.”
힙뇨의 커다란 입이 반달처럼 벌어졌다.
“젊백호가 단단히 착각했네.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용기와 객기는 한 끗 차이이지. 그런데 젊백호의 것은 아무래도 객기였던 모양이야. 제 적수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니 말이야.”
냉정한 힙뇨의 평가.
어찌 들으면 박연호 입장에서도 조금은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였다.
젊백호 길드는 백호 길드였던 이들이 새로 만든 곳.
그곳에 있는 이들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박연호였다.
현 백호 길드에 남은 이들이 그들보다 나은 것이라면 지갑 실력과 연륜 정도.
그 외의 모든 점에서 젊백호 길드는 백호 길드를 앞서 있음을 박연호는 인정했다.
그런데 그런 젊백호 길드를 힙뇨는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있다는 평가를 한 것이다.
백호 길마이자 한때 동료로서 자존심이 상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고민을 할 만한 때가 아니었다.
“알시아 씨, 당신 역시 오만했던 건 마찬가지구나. 설마 내 땅 한가운데에서 태연히 돌아다니고 있을 줄이야.”
바로 이어진 힙뇨의 말은 그저 재호를 칭찬하기만 하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곳엔 무슨 목적으로 온 것인지 한번 들어 볼까? 그것도 하필 그쪽과의 전쟁을 선포한 날에 말이야.”
점점 심각하게 흘러가는 분위기.
미세하게 들리는 힙뇨의 짤랑거리는 장신구 소리가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박연호는 이대로 갑옷 안이 땀으로 가득 차 몸이 퉁퉁 붓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
그런데 그 와중에 정말 이해되지 않는 건…….
‘알시아는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 있지?’
아무리 봐도 재호에게선 긴장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인간이 맞나 의심이 될 정도.
하지만 그건 박연호의 오해였다.
‘긴장되네…….’
재호라고 이 상황이 숨 막히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긴장되었으며,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었다.
‘싸움? 아니면 를 사용하고 튀어?’
단, 재호가 머리를 굴리는 방향을 박연호가 모르는 게 다행이었다.
-고작 그딴 고민으로 머리 굴렸다고 생색을 내는 거냐?
재호의 귓구멍에 꼰대의 작은 목소리가 콕 박혔다.
‘왕복을 빠르게만 해도 에너지는 발생한다고!’
-얘 뭐라는 거… 뭐야? 이 자식은 또 어디 간 거야?
재호의 헛소리를 두고 자신과 같은 의견을 줄 것이라 믿었던 징징이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진작에 도망친 모양.
-정말 하나같이 답도 없는 놈들이군.
“난…….”
꼰대가 뭐라고 하거나 재호는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힙뇨를 향해 입을 열었다.
“관광을 왔다!”
-?
“???”
꼰대와 박연호의 눈빛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충격.
특히 꼰대의 표정은 경멸에 가까웠는데, 재호가 하던 고민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 나온 탓이었다.
즉, 입을 열면서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헛소리라는 뜻.
‘아니! 헛소리가 아냐!’
급하게 계획이 생겼다.
입을 열려던 순간, 재호의 귀에 똑똑히 들린 것이다.
바로…….
음머어어어-
행운의 검은 소가 구수하게 우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재호가 가진 스킬은 그 소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게 이 타이밍에 터진다고?’
아무런 계기도 없는데?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하마 수인의 호구 기질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인가?
저 잔뜩 잡은 분위기 속에는 사실 재호를 향한 기대와 본능적인 호감이 있는 게 분명하다!
-이 뭔…….
어울리지 않게 자아도취에 빠진 재호의 모습에 꼰대는 경악했다.
평소에도 그러던 녀석이 오늘따라 특히나 미친 것 같았으니…….
하지만 이미 재호는 야수왕 힙뇨를 만나기 전부터 짐작하지 않았던가?
왠지 말칸트 대왕과 닮았을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말칸트 대왕이 호구라 할 순 없었다.
특정한 상황-재호와 대결을 하거나, 스트로앤 주교와 팔씨름을 하거나-에서만 그런 기질이 보였는데, 힙뇨 역시 그와 같은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근육 덩어리들은 죄다 멍청이들인가?
‘어허! 그런 무서운 차별 발언은 삼가해. 그리고 야수왕은 딱히 근육질도 아니잖아.’
지금은 계속해서 거짓말을 이어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전쟁이니 뭐니 하는 것도 처음 듣는 이야기야. 난 그저 수인들을 구경하러 왔을 뿐이니까.”
“뇨홍- 관광객이란 말이지?”
힙뇨의 시선이 박연호에게 향했다.
“붉은 씨는 어떻게 생각해?”
“예…예?”
자신에게 질문이 들어오자 당황한 박연호.
그의 눈동자가 요동치며 재호와 힙뇨를 번갈아 보았다.
‘저 표정은… 날 노려보는 건가?’
자신을 쳐다보는 재호의 얼굴이 뭔가 구겨진 것 같은데… 아니, 생각해 보면 원래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꽈지짓-
‘어?’
아니었다.
정말로 구기고 있었다.
그 의미는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었으니…….
“아아! 마, 맞죠! 알시아 대왕은 제 손님입니다!”
얼떨결에 거짓말에 동참하게 됐지만, 한편으론 의문도 들었다.
‘이게 돼? 이미 조진 거 아닌가?’
그들이 거짓말 중이란 건 어린애들도 알 것이다.
세상에서 거짓말을 가장 못 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지금의 박연호는 무조건 최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안색이 나빴으니까.
“이상하네? 붉은 씨의 백호 길드와 김투귀 씨의 젊백호 길드는 친구이지 않았나?”
“…….”
“그 친구가 선전포고할 거란 걸 모른 채 그 상대를 이 땅에 초대했다는 말이네?”
“…….”
그럼 그렇지.
역시 들통이 난 모양…….
“붉은 씨 그렇게 안 봤었는데, 재밌는 인간이었네. 뇨홍홍-”
“……?”
“그래. 실제로 만날 수나 있긴 한 것인지 의문인 상대와 싸우게 해 주겠다는 제안보단 직접 데려와 주는 것이 더 멋지지.”
“어…….”
박연호는 당황했다.
아무래도 힙뇨는 이 상황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 모양.
“뭐, 우리를 가두었던 봉인이 사라졌으니 겸사겸사 세상 구경도 해 볼까 했거든. 그런데 마침 투귀 씨가 재밌는 목표를 제시해 줬지.”
젊백호 길드가 엘리시아 화원을 향한 선전포고를 힙뇨에게 부추길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힙뇨가 심심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에 흥미로운 장난감을 열심히 홍보해 놨는데… 박연호가 그 장난감을 직접 가져온 상황.
“뇨홍홍- 하지만 걱정하지 마. 우리가 그렇게 싸움에 미친 종족은 아니니까.”
“…….”
잘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어때? 실제로 본 감상은?”
“뭐, 신기하네.”
재호는 태연히 대답했다.
“거짓말도 잘하네. 다들 우리를 보곤 눈이 뒤집히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잖아? 그 이유는 역시 저쪽 세상에서 다른 수인들을 다스리고 있어서일까?”
“응? 어떤 정신 나간 인간이 그런 소리를 한대?”
재호는 웬 헛소리냐는 듯 말했다.
수인들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들을 다스린다거나 하는 건 완전히 틀린 소리였다.
그리고 이 가증스러운 연기에 방점을 찍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넌 누구야?”
“쿨럭!!”
박연호는 크게 기침하며 재호를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뇨호호홍!”
그런데 그 질문을 받은 힙뇨는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나? 난 이 땅의 주인!”
“아, 그랬어?”
“당신. 참 짓궂구나.”
힙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보다 여길 잘 아는 녀석은 없겠지. 어때? 이참에 내가 소개를 좀 해 줄까?”
“좋지.”
재호는 태연히 대답했고, 자리에서 일어난 힙뇨는 먼저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나간 재호.
‘역시 칭호 덕인가? 이 막무가내 헛소리도 잘 먹히…….’
“음머어…….”
“?”
갑자기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에 재호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황소 수인 한 명을 발견했다.
오-싹.
온몸을 휩쓰는 소름.
‘자, 잠깐만……. 그럼 내가 들은 건……?’
그제야 재호는 깨달았다.
소리만 듣고 자신은 당연히 칭호 효과가 발동되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론 어떤 알림도 뜨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