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747
746화
젠트르노 황태자는 루로아 황녀의 선물을 잔뜩 구매한 후, 다시 제국으로 돌아갔다.
청탑의 개탑식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날 저녁에 재호는 아이시클을 다시 찾아갔다.
그녀는 낮에 봤을 때보다 훨씬 지쳐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오늘 종일 사람들을 상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후, 성가신 인간들이군요.”
오늘 개탑식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을 말하는 건가 싶으나, 아이시클이 말한 인간들은 낮에 갑자기 쳐들어왔던 마법사들이었다.
“대왕은 아마 기억을 못 하겠지만, 그들은 홀라스 장로와 함께 만빙하곡 탈출을 반대했던 작자들이에요.”
“아……. 그 사람들이었어요?”
재호는 전혀 몰랐었다.
그 정신 없던 상황 속에서 스쳐 지나간 인물들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건 애초에 무리였으니 말이다.
“저희 쪽에서 일차적으로 정리한 뒤, 제국에 보낼 계획이에요. 황실 쪽에서 이 선물을 좋아할진 모르겠지만.”
“음……. 싫어하진 않겠죠.”
젠트르노 황태자가 직접 보는 앞에서 미친 짓을 저질렀으니 그리 과한 처사는 아닐 터였다.
“뭐, 그건 그렇고…….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이제 청탑도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네요.”
“고마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왕이 없었다면 청탑이 이렇게 살아남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예요. 사실 탈출 이후, 이렇게 화려한 부활은 기대하지 않았거든요.”
이 모든 건 전적으로 재호, 그리고 엘리시아 화원의 도움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깨달았어요. 청탑에서 약속 하나를 잊고 있었더군요.”
“약속?”
“하하, 대왕도 잊은 모양이군요. 그만큼 순수하게 우리를 도와주었다는 뜻이겠죠.”
[*퀘스트*] [만빙하곡에 닥친 거대한 위기.청탑은 물의 정령 엘라스트라의 경고에 따라 모든 인간을 대륙으로 피신시키기로 했습니다.
만빙하곡을 통치하고 있는 왕국은 없기에 청탑이 그 일을 대신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마법밖에 모르는 바보들인 그들은 이번 사태를 대비하는 데 있어 여러모로 서투릅니다.
특히 항해 경험은 거의 없다시피 한 그들에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퀘스트 목표 : 만빙하곡 내 사람들의 안전한 탈출.] [보상 : 1. 청색 마탑과의 동맹.
2. 청색 마탑의 보물 중 하나 선물.]
“아!”
이런 게 있었구나 싶은 재호.
정말로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당시 워낙 정신없는 상황이기도 했었고, 어쩌면 초상집이나 다름없는 청탑에게 보상 내놓으라고 차마 말하지 못한 걸지도 몰랐다.
‘다시 보니 이미 퀘스트 조건은 이미 달성하고도 한참 지났네.’
만빙하곡 사람들의 안전한 탈출은 확실히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사실 이제 와서 엘리시아 화원과의 동맹을 논하는 것도 웃긴 일이죠. 이미 엘리시아 화원은 우리를 위해 동맹 이상으로 많은 것을 주었으니 말이에요.”
아이시클은 찬찬히 말을 이었다.
“과거 청탑의 마법사들은 차갑고 이기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죠. 그건 확실히 맞아요. 냉기를 연구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차가워져 가는 걸 직접 겪어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은혜도 모르는 파렴치한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먼저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면 모를까, 아이시클이 먼저 퀘스트 이야기를 꺼낸 시점에서 확실히 그건 아니었다.
“청색 마탑은 엘리시아 화원과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함께하겠어요. 그것이 설령 대륙에 위험을 초래하는 일이라도 말이죠.”
“…네?”
생각 이상으로 파격적인 제안에 재호는 당황했다.
이건 단순히 동맹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동맹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상충한다면 서로 다른 결정을 얼마든지 내릴 수 있는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 아이시클이 말한 건 동맹보다는 혈맹에 가깝게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그래도 되는 겁니까?”
재호는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안 될 것도 없지요.”
“마탑이 한 나라와 너무 깊게 연관되면 말이 나오지 않을까요?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맞아요. 바깥에서는 분명 우려하겠죠. 하지만 적어도 청탑의 구성원들은 반발하지 않을 거예요. 우리 모두 대왕이 해 준 일을 기억하니까. 물론 이 약속엔 조건이 있어요. 조금 치사할지도 모르지만…….”
아이시클이 말하는 조건이란 간단했다.
“엘리시아 화원 대 청탑이 아니라 대왕과 나의 약속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은…….”
둘 중 한 명이 죽으면 이 동맹은 무효화 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리시아 화원과 청탑이 갈라서는 일은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쭉 동맹이겠죠. 하지만 적어도 내가 탑주로 있는 청탑은 대왕의 모든 일에 함께하겠다는 뜻이에요.”
“…그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재호 입장에서야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동맹엔 치명적인 맹점이 있었고, 재호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거 그냥 아이시클 님이 다 독박 쓰는 거 같은데요?”
지금 당장은 청탑 전체가 재호와 엘리시아 화원에 호의적이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어찌 될지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만약 청탑 내부 분위기에 반하는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아이시클이 그 모든 걸 덮어쓰기 딱 좋아 보인 것이다.
어쩌면 이 말도 안 되는 동맹을 청탑 전체가 동의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후후, 만빙하곡을 지도에서 지워 버린 것만으로도 청탑의 역사에 다시없을 불명예로 남을 텐데요. 그리고 이쪽이 대왕 입장에서도 깔끔하고 좋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죠.”
균형이 무너진 동맹 관계를 지속하는 건 엘리시아 화원으로서도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결국 제가 청탑을 얼마나 부려 먹냐에 달린 일이겠네요.”
“후후, 그런 셈이죠.”
“뭐, 좋습니다. 저야 나쁜 것 없죠.”
재호는 동맹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청색 마탑과 동맹이 되었습니다.] [청탑주 아이시클이 있는 동안, 청탑은 어떤 일이든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물론 이 사실을 대륙에 공표하진 않을 생각이었다.
가뜩이나 최근 엘리시아 화원은 여러 이슈 한가운데 있거늘, 괜히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하나가 남았는데…….”
아이시클은 고민이라는 듯 입을 열었다.
보상은 분명 두 개.
첫 번째 보상인 청탑과의 동맹을 좀 과하게 받았기에 두 번째는 없는 것으로 치려나 싶었더니, 아이시클은 그마저도 챙기려 하고 있었다.
“청탑의 보물인데……. 고민이로군요. 혹시 원하는 게 있나요?”
다짜고짜 그리 물으면 재호가 제대로 고를 수 있을 리 없었다.
청탑의 보물이 뭐가 있는지 일단 알아야 고민이라도 해 볼 텐데…….
“아!”
그 순간, 재호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하나.
“혹시 그런 건 없습니까? 가만히 두는 걸로도 주변의 온도를 극도로 낮출 수 있는 물건이나 마법!”
“온도를?”
재호의 요청에 의외라는 듯, 아이시클이 되물었다.
좀 더 어려운 요청을 해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고작 온도를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으니…….
“정말 그거면 됩니까?”
아이시클은 어디에 쓰는 건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선물을 주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재호에 대한 그녀의 평가가 조금 더 올라가기도 했고…….
* * *
흡족한 얼굴로 엘리시아 화원에 돌아온 재호.
줄칸은 재호가 가져온 동맹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아이시클 탑주님이 정말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셨군요!”
사실상 청탑의 모든 걸 내줬다고 할 수도 있는 동맹.
하지만 계산기를 까다롭게 두들겨 보면 엘리시아 화원이 무조건 이득 보았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만빙하곡 탈출과 청탑의 재건에 들어간 엘리시아 화원의 지원도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사실 저라면 다른 걸 더 뜯어내려고 했을 테지만…….”
그렇게 말하는 줄칸의 표정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래서 그다음이 아쉽습니다.”
“응? 뭐라고 했어?”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던 재호가 고개를 들며 줄칸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대화 중인 곳은 화원 구석에 마련된 실험동 하우스.
그리고 그곳에서 재호는 아이시클에게 받은 두 번째 보상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 [등급 : 신화] [고대의 생명체 헬릭스의 타오르는 얼음 깃털의 잔해입니다.이것은 주변의 온기를 에너지로 삼아 타오르며, 장시간 노출이 될 경우 주변을 꽁꽁 얼어붙도록 만들 것입니다.
단, 더는 불태울 온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얼음 불꽃은 서서히 사그라들 것입니다.]
불꽃이라고 하지만 외형은 그저 평범한 크리스탈로만 보이는 .
“흠흠… 그… 제가 현장에 있던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알지 못하나……. 그건 폐하께서 처치하셨던 헬릭스의 부산물 아닙니까?”
“맞네. 제대로 봤어.”
“그런데… 그걸 왜 보상으로 받아 오신 겁니까? 애초에 폐하의 소유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청탑과의 동맹에서 생각 이상의 성과를 가져온 건 좋은 일이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호구 잡힌 걸로밖에 안 보였다.
“아, 그때 나온 건 아냐. 옛날부터 청탑이 보유하고 있던 건데, 당시엔 이게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더라고.”
청탑도 헬릭스 레이드 이후에 의 정체를 정확히 알게 된 것이다.
즉, 엄밀히 따지면 레이드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아이템은 아니었다.
애초에 헬릭스는 바다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버렸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논의를 해서 좀 더 좋은 걸 가져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줄칸은 이를 꽉 물며 말했지만, 아쉽게도 이건 관점의 차이였다.
“이게 딱 필요했다고.”
바로 극도로 낮은 온도에서 재배가 가능한 여러 꽃을 위해서 말이다.
엘리시아 화원의 하우스들은 온도 조절이 전부 가능했다.
처음 하우스를 건설할 당시, 적탑의 도움을 받은 덕분에 해당 시스템을 구축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바로 극저온의 환경은 구상할 수 없다는 점.
당시엔 그렇게까지 낮은 온도의 환경이 필요한 예는 없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재호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그런 극단적인 환경에서 살아가는 꽃들도 제법 많이 얻었으니까.
특히 만빙하곡에서 채집해 온 식물들은 아직 화원에서 키워 낼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주변의 열을 빨아들이는 의 특성을 이용해 보려고 해도 역시 극저온까지 내리기는 불가능한데다 효과를 발동시켜야 주변이 얼어붙을 정도로 온도가 내려갔으니…….
지속적으로 저온을 유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 이라면?
만빙하곡의 극단적인 환경 속에서 비롯된 이 귀물이라면 가능했다.
“그래서… 만족하십니까……?”
“좋네. 줄칸 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거 보니 효과는 확실하네.”
“허허… 이건 추워서가 아니라……. 후…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줄칸은 턱에 들어간 힘을 간신히 풀며 말했다.
이미 받아 온 걸 어쩌겠는가?
자신의 왕이 내린 결정이니 받아들이고 차선을 궁리할 수밖에.
“그런데 이걸 그대로 쓸 순 없을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엘리시아 화원이라는 왕국의 특성상, 꽃집 운영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온기를 계속 제공해 주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의 특성상,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소멸할 때까지 주변의 온기를 몽땅 빨아들여 다른 꽃들도 죽게 만들 것 같았으니 말이다.
“걱정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청탑에서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다 꼼꼼하게 준비해 놓았지.”
“아… 하하……. 정말 자알 하셨습니다.”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왕의 모습에 줄칸은 한숨을 깊게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