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39
838화
재호의 도발 아닌 도발에 걸려 버린 수민의 급발진.
‘감찰관?’
덕분에 수민이 이 별동대에 참가한 1차 목적을 알게 되었다.
‘말이 감찰관이지, 사실상 이 별동대를 감시하려는 모양이네.’
짧은 소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별동대원들은 어쩌면 빌리브에 대해서도 별로 좋지 않은 마음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나저나 수민이는 뭔가를 엄청 준비한 모양인데?’
아마 빌리브와 모종의 거래 혹은 논의의 주체가 수민이라는 건 이제 확실해 보였다.
빌리브는 먼 과거부터 이곳에 갇혀 있었기에 플레이어들, 즉 임모탈리언의 존재는 몰랐을 터.
재호나 빅썬더를 보고도 태연했던 건 결국 수민에게 여러 정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크사이더 쪽에도 접촉한 플레이어가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게 아니면 단순히 강자들을 끌어모으려다 얻어걸린 걸 수도 있고…….
아무튼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빌리브가 플레이어들이 난동을 부리리란 걸 예상했다는 것.
그마저도 수민을 통한 정보라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한 것일지 가늠되지 않았다.
‘가는 길에 한번 떠봐야겠네.’
수민은 계속 숨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드러냈다.
그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텐데도 나섰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
그리고 자신만만한 사람이 상대일수록 의외로 정보를 캐내긴 쉬울 수도 있었다.
‘별동대 쪽 분위기도 묘한 것 같으니, 이쪽을 찔러 봐도 괜찮을 것 같고.’
그렇게 수민이 작은 승리감에 취해 있는 사이, 재호는 이 퍼즐을 맞추기 위한 첫걸음을 마침내 내디뎠다.
* * *
이클립스 대신전을 나선 별동대.
약 서른 명으로 구성된 별동대였고, 재호와 빅썬더는 가장 뒤에서 그들을 따랐다.
움찔움찔-
그런데 선두의 한 사람은 유독 어깨를 들썩이며 혼자 킥킥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수민.
아무래도 자신이 준비한 이 거대한 계획에 도취한 모양이었다.
“저 녀석은 원래 저런 거냐?”
빅썬더조차 그 꼴사나운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재호에게 물을 정도였다.
“내버려 둬. 어차피 저럴수록 우리한테 좋으니까.”
알아서 방심해 준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그보다 재호의 신경이 계속 쓰이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힐끔-
바로 재호를 계속 의식하는 별동대원들.
아마 출발하기 전, 재호가 갈대밭을 볼 수 없겠냐고 물어본 탓으로 추측되었다.
‘이방인은 갈대밭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고 했지.’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특별한 의미를 지닌 갈대밭…….
‘그쪽으로 한번 접근해 볼까?’
재호는 앞에서 걷는 별동대원을 향해 슬쩍 헛기침을 흘렸다.
슥-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상대.
“그… 미안한데 말이야.”
재호는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던 갈대밭 말인데. 너희들한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알 수 있을까?”
그 물음에 복면 너머의 눈이 잘게 흔들렸다.
“…역시 당신은 어딘가 다르군요.”
그의 조심스러운 목소리에는 여전히 재호를 향한 경계심이 어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싫지는 않은 듯한 모습.
“당신 주변에선 맡아 본 적 없는 향기가 느껴집니다. 아니, 어쩌면 사라진 우리의 기억에 남은 기억의 향기일지도 모르겠군요.”
그가 말하는 것은 재호의 패시브로 추측되었다.
“아마… 대신전에서 살아가는 모두가 느꼈을 겁니다. 늘 속죄하며 과거의 죄악을 외면해 왔지만, 한편으론 그리워했죠. 그 그리움을 지우기 위해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타나는 순간 떠올랐죠. 아름다웠던 그때가……. 탐욕에 눈이 멀어 스스로 불태워 버렸던 모든 것들이…….”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허한 지평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갈대밭은 저희가 유일하게 그때를 추억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다들 잊으려 발버둥 치고 있긴 하지만, 너무 힘들 땐 광휘의 갈대를 찾아 위안을 얻곤 하죠.”
모든 걸 잃고 황폐한 땅에 유배된 그들.
이곳에서 그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갈대밭이었다.
그렇기에 이방인인 수민은 모른다는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재호는 달랐다.
“음……. 그거 힘들겠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재호.
그건 단순히 호감을 얻기 위한 억지 공감이 아니었다.
비록 이곳만큼 척박한 장소는 아니지만, 엘리시아 화원의 역사도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었으니 말이다.
모래밖에 없던 저주받은 땅 위에서 힘겹게 피워 낸 꽃 한 송이.
그 경험 덕분에 이들이 갈대밭에 가지는 소중한 감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막……? 사막이라 하면 모래밖에 없는 그 황무지를 말하는 겁니까?”
재호의 이야기를 들은 상대는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맞아.”
“우리가 기억하는 사막과 지금의 사막은 다른 겁니까? 어떻게 그곳에 꽃밭을 일궈 낼 수 있었던 겁니까?”
“응? 어…….”
갑자기 저리 말하니 어쩌면 정말로 과거의 사막과 지금의 사막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재호.
“그건 모르겠는데? 옛날 사막이 더 별로였을지도? 난 오아시스도 있긴 했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재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쓸데없는 의심이었다.
사막은 그저 사막인 것을…….
애초에 사막에서 꽃집을 열 생각을 누가 한단 말인가?
“어, 어쨌든 메마른 땅을 다시 초목으로 키워 냈다는 건 사실입니까?”
상대 역시 재호의 말은 상관없다는 듯, 재차 목소리를 높이며 되물었다.
“무슨 일이냐?”
높아진 언성에 주변 대원들의 관심도 끌렸고, 결국 이오 대장이 행군을 세우곤 다가왔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은밀하게 이동해야 할 마당에 뭣들 하는 거지?”
“대장님!”
재호와 대화를 나누던 이는 이오 대장의 싸늘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잔뜩 흥분한 채로 소리쳤다.
“저희는 반드시 갈대밭에 가야 합니다!”
“뭐?”
“이 이방인은 사막에서 꽃을 피워 내 거대한 꽃밭을 일궈 냈다고 합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
그 말에 복면 너머 이오 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대장님도… 그리고 다른 녀석들도 다 느끼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 이방인에게선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흘러나오고 있다는 걸!”
악에 받친 외침을 들은 재호는 깨달았다.
“갈대밭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그곳이 이클립스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장소란 건 충분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재호가 무조건 갈대밭으로 가야 한다며 부르짖는 걸 보면 무슨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재호가 꽃집을 한다는 걸 들은 이오 대장도 먼저 갈대밭에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재호에게 무언가 기대했던 게 분명 있었다.
“…….”
복잡한 마음이 요동치는 듯, 이오 대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또 갈대밭 타령입니까?!”
역시나 이번에도 가만 보고 있지 않은 수민.
“도대체 그깟 갈대밭이 뭐라고 이러는 겁니까?!”
수민의 말에 모든 대원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수민이 겁낼 이유는 없었다.
“빌리브 님의 명을 거역하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그건…….”
“속죄를 위해 당신들을 이끌고 지금까지 버텨 온 그분의 믿음을, 세계 평화를 위한 걸음을 고작 갈대밭 때문에 멈추겠다고?”
수민의 압박에 이오 대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대장님!”
하지만 이에 질세라 별동대원도 재차 호소했다.
“…신과 이 세계를 모욕하는 행위를 막는 것이 최우선이다.”
결국 이오의 입에서 나온 대답.
씨익-
그걸 들은 수민의 입이 만족스럽게 벌어지는 순간.
“우리는 계획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쉬드. 넌 그 이방인을 데리고 갈대밭으로 가라.”
“뭣?!”
이어진 이오 대장의 말에 수민이 당황했다.
“왜 그러지? 어차피 이 계획은 저 이방인들이 나타나기 이전에 수립된 것이지 않나? 저들이 빠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딱히 없을 텐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명령 위반입니다! 빌리브님은 저 두 사람도 반드시 함께 가라고 명령을 했단 말입니다!”
“이상하군.”
이오 대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수민을 쳐다봤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네가 대장로님의 최측근이 된 것은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후, 모든 일엔 마치 미래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말하곤 하는군. 처음부터 이 작전엔 저 이방인들 또한 포함된 것인가?”
“그, 그건…….”
“저들과 쉐이크 네가 가까운 사이가 아닌 것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저들이 이클립스에 나타나는 것 역시 약속된 일이 아닐 터. 하나 묻지, 쉐이크. 넌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거냐?”
“꿍꿍이라니! 난 오직 대륙과 이곳의 평화를 위해서 희생을 각오한 것일 뿐! 그리고 알시아에 대해선 당신들보다 내가 훨씬 잘 알고 있습니다! 대륙에서 저 알시아는 악인이나 다름없단 말입니다!”
수민도 지지 않고 반박했다.
“이번엔 내가 물어보죠. 이오 대장 당신 정도 되는 존재는 알시아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을 테죠! 보십시오! 나와 알시아, 둘 중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앗.”
재호는 아차 싶었다.
[명성 : 25,582] [악명 : 25,060]어떻게 꾸역꾸역 악명보다 명성을 위로 올리긴 했지만, 전체 수치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딱히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각기 2만 5천이 넘는 수치이거늘, 500 정도의 차이는 큰 의미가 없었다.
결국 현재 재호의 상태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갈렸다.
딱 반반으로 수치화된 양면적 인물이 바로 재호였으니까.
‘크크……. 하지만 난 아니지.’
수민은 그 점을 노린 것이었다.
재호와 비교했을 때 수민의 수치는 아주 깔끔했으니까.
[명성 : 12,120] [악명 : 1,352]어떻게 봐도 선한 사람이란 게 느껴지는 수치.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알시아는 아무런 대책 없이 내버려 뒀다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위험인물이니까.”
“…확실히 위험한 존재이긴 하다. 쉐이크 너보다 더.”
“…….”
어쩐지 가슴이 조금 아픈 평가.
“그렇다면 좋다. 내가 직접 안내하도록 하지. 나머지는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도록.”
그런데 이번에도 수민이 예상 못한 방향으로 이오 대장은 튀어 버렸다.
“단, 나머지 한 명은 계속 임무를 수행한다. 오직 알시아 한 명. 이 자만 내가 직접 갈대밭으로 데려가겠다. 그리고 바로 합류하지.”
“이오 대장!!”
슥-
다시 한번 고함을 치려던 수민의 목덜미에 어느새 겨누어진 이오 대장의 검.
“흡?”
그 움직임조차 감지해내지 못한 수민은 흠칫했다.
“적당히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쉐이크. 어차피 죽으러 가는 길. 신과 빌리브 님에 대한 나의 마지막 믿음을 흔들지는 말았으면 좋겠군.”
이렇게까지 나온 이상, 수민도 더는 우길 수 없었다.
“…후회할 겁니다.”
그저 상투적인 위협 한마디를 남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하나 더.
뿌드득-
재호를 향해 원독에 찬 눈빛을 보내는 것까지…….
하지만 그런 시선을 한두 번 받아 본 게 아니었던 재호는 턱을 긁적이며 넘길 뿐이었다.
저런 것에 흔들릴 정도였다면 2만 5천의 악명은 쌓이지도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