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84
883화
처음 만나 보는 불의 정령왕 이그리그는 느껴지는 열기와 달리 대단히 부드러운 스타일이었다.
정령왕이나 되는 이가 인간에게 한쪽 무릎을 굽혀 준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악수를 청한 손의 불을 꺼트려 재호를 배려해 주기까지.
덕분에 재호는 화상을 입지 않고 이그리그와 악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재호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게 있었다.
“징징이랑 정말 아는 사이예요?”
바로 징징이가 이렇게 빠르게 이그리그를 불러온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예전에 듣길 악마초 계열 정령들은 마계에 불이 많다 보니 불의 정령과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다고 했었다.
하지만 불의 정령이 지닌 특유의 거친 면모 탓에 그들을 피해 다녔다고…….
-야! 내가 아니라 저 자식이 멋대로 말한 거야!
징징이는 꼰대에게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근데 맞는 말이잖아. 옛날에 틴라이트 따라다닐 때도 불의 정령만 보면 슬금슬금 피했으면서.
-…그렇긴 한데……. 그게 걔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귀찮았을 뿐이라고!
꼰대의 말에 징징이는 반박했다.
-오홋- 우리 아이들이 장난이 좀 심하긴 하지요. 그 때문에 가끔 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해서 저도 늘 비상대기 중이라죠.
하지만 그런 징징이를 이해한다는 듯, 도리어 이그리그가 공감해 주었다.
-맞아. 하급 정령들은 심심하면 불장난을 벌이는 녀석들이라고. 얼마나 무서운데…….
징징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재호는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더 정령왕님이랑 친한 게 이상하잖아.”
-아, 그야 이그리그는 말이 잘 통하니까.
“음?”
징징이가 밝힌 의외의 이유.
-이그리그가 말했잖아. 쟤는 밑에 애들이 불을 지르고 다니는 거 수습하고 다닌다고. 다른 불의 정령이랑 달라! 아마 모든 정령왕들 중에 제일 착할걸?
-오호호- 얼굴에 금칠 좀 적당히 하지 그래요? 민망해서 도망가고 싶네요.
징징이의 칭찬에 이그리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
상상한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른 이그리그의 모습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징징이와 저 정도로 하하호호 하는 걸 보면 성격이 좋다는 건 사실인 모양.
-…왜 그렇게 이어지는 건데……?
“그런데 이그리그 님.”
재호는 징징이의 말은 무시하고 이그리그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대체 어떻게 소환이 가능한 겁니까?”
징징이만 아니었다면 먼저 물어봤을 질문.
이그리그는 정령왕이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령왕은 쉽게 소환할 수 없었다.
특히 엘라스틴을 소환해 본 경험이 있는 재호는 그걸 잘 알았다.
게다가 이곳은 이클립스.
엘라스트라를 소환하는데도 정말 힘들었는데, 정령왕 소환이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진 게 이상했다.
-이곳에 물은 없을지언정, 불은 어디에나 있지요.
이그리그는 자신의 손을 가볍게 저어 불꽃을 만들어 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쟤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사실 자기가 부담을 많이 짊어지고 넘어온 거야.
하지만 징징이의 추가 설명에 진실을 알게 된 재호.
“뭐라고?!”
도대체 징징이와 얼마나 친분이 있으면 그렇게까지 해서 온단 말인가?
-엣헴-
콧바람을 푹푹 뿜어내며 자신의 친분에 심취한 징징이.
그 모습을 보던 이그리그가 재호에게 몸을 숙이더니 작게 속삭였다.
-사실 당신을 보러 온 거예요. 너무 궁금했거든요. 당신의 어떤 점이 엘라스틴을 홀렸는지.
“…어감이 좀 이상하네요.”
-그런데 직접 보니까 알 것 같아요. 확실히 당신은 재미있어요.
만난 지 5분 만에 재호를 판단한 이그리그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내뱉었다.
-죽은 대지라……. 이곳에서 느껴지는 고요함은 저들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 수 있군요.
“어?”
-나는 태초부터 존재한 모든 불의 기억을 지니고 있지요. 저 천사와 악마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솟아나고 퍼져 나가는 화염을 통해 나는 모두 보았어요. 그리고 당시 신들의 회의 또한.
“알고 있었어요?”
-물론이죠. 엘라스틴과 다른 정령왕들도 다 아는 사실이에요.
재호의 눈이 꼰대와 징징이를 향하자 녀석들은 얼른 손을 저었다.
평소 정령왕급이라며 거들먹거리던 녀석들이라면…….
-오호호- 저들은 몰랐을 거예요. 오직 태초부터 존재한 4대 정령왕들만이 모든 걸 기억하니까요.
다시 말해 딱 네 정령만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른다는 것.
“신들이 정령왕들의 기억은 봉인하지 않은 건가요?”
-할 수가 없었지요. 당신부터 신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그 질문은 조금 억지스럽지 않나요?
짓궂은 표정으로 말하는 그에게 재호가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정도는 아닌데요.”
뭐,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하지만 그게 맞아요. 신은 절대적이지 않죠. 그들은 우리의 기억을 봉인할 수 없어요. 그들보다 먼저 존재한 태초의 자연이 우리의 근원이니까요. 대신 한 가지 약속을 했답니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는 가려진 기억에 대해 절대 발설하지 않을 것.]즉, 지금 이그리그가 재호에게 이야기를 꺼낸 건 재호가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당신을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답니다.
“더 중요한 일?”
-앞으로 세상은 지금과는 다르게 변해갈 거예요. 임모탈리언들이 서서히 알게 될 이 세상의 비밀……. 그로 인해 시작될 변화들.
이그리그가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이제 플레이어들은 이클립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다만 아직 이곳이 어떤 장소인지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머지않아 다른 이들도 알게 될 터였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대륙에도 변화가 일어날 테고, 거기에 맞춰 뉴월드 시스템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정보를 풀어주기 시작할 테니까.
‘애초에 수민도 이미 알고 있지.’
그가 이곳에서 꾸몄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재호 다음으로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인 건 사실.
이그리그가 말하는 건 바로 그런 요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어요. 미래에 시작될 새로운 세계의 균형자로서.
“……?”
[*퀘스트*] [모든 차원은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세계.불의 정령왕 이그리그는 이클립스에서 시작된 변화가 다른 세상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간계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필요합니다.
이그리그는 당신이 그 중심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목표 : 자격의 수락] [보상 : 칭호 획득]
퀘스트는 아주 단순했다.
아니, 퀘스트라 하기에도 민망했다.
받아들이기만 하면 바로 달성이 되는데다 보상마저 목표와 같았다.
‘칭호 효과는…….’
아마 대부분의 칭호가 그렇듯, 이 칭호 또한 성능은 확실할 터였다.
심지어 이지 않은가?
하지만 재호는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걸 받아들이면 제 생활에 어떤 변화가 생기죠?”
1순위는 어디까지나 꽃집.
이 막중해 보이는 이름의 칭호를 얻었다 꽃집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다면 재호에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물론 대륙에 큰 난리가 벌어져 꽃집 자체가 망하게 된다면, 칭호가 없어도 나설 재호이긴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위험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현재를 포기하진 않겠다는 것이로군요.
“애초에 제가 게임을… 아니지. 이 세계에 온 것도 꽃집을 하기 위해서니까요.”
-제가 불꽃을 통해 본 그 어떤 임모탈리언과 달라도 너무 다르군요. 꽃집이라……. 내면의 그 순수한 아름다움이 엘라스틴을 매료시킨 모양이에요.
“그… 계속 이상한 표현을 하시는데 일부러 그러는 거죠?”
-오호홋- 글쎄요. 엘라스틴이 제게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당신은 모르겠죠.
너무 부담스러운 이야기였다.
물론 엘라스틴이 재호에 대한 호감이 있다는 건 알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그리그가 말하는 것처럼 좋아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원래 저렇게 장난 많이 치니까.
징징이는 계속 난처해하는 재호가 안쓰러웠는지 살짝 알려 주었다.
“크흠…… 아무튼 이걸 받아들이면 어떻게 되는 거죠?”
-달라지는 건 없지요. 당신이 무언가를 더 해 줄 필요는 없어요. 그저 약속만 해 주면 돼요. 대륙의 위험이 있으면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 주는 것이면 충분하니까.
정말 그게 다라면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대륙의 위험은 곧 꽃집의 위험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당신은 절대 세상을 파괴하지 않겠다는 약속까지.
“……예?”
뜬금없는 조건에 재호는 의아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재호를 대륙의 위험으로 생각했던 이들이 지금까지 많긴 했다.
가령 최근에 알게 된 플리스트도 처음엔 재호에 대해 그렇게 오해를 했으니까.
하지만 정령왕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느낌이 또 달랐다.
-당신은 다른 이들보다 세계의 비밀을 많이 알고 깊게 관여하고 있지요. 그렇기에 우리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답니다.
말은 그리하지만 역시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대륙에는 재호가 아무리 정신 나간 짓을 하려고 해도 막아 줄 강자들은 즐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강자들과도 깊은 우정을 쌓았지요.
“뭐… 그렇기는 한데……. 거기까지 아세요?”
대체 이그리그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조건이라면 재호 입장에서도 나쁠 건 없었다.
당연히 재호는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이 없었으니까.
“좋아요. 받아들일게요.”
[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타 차원의 존재를 대상으로 호감도 버프를 획득합니다.] [타 차원과 교류 시, 당신은 중간계를 대표하게 됩니다. (해당 정보는 다른 차원과 교류하는 NPC 및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단, 대륙의 위험이 발생할 경우 당신은 반드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대륙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할 시, 정령계와 적대하게 될 것입니다.]이그리그가 말한 패널티와 함께 얻은 칭호 효과.
‘생각보다는…….’
특별할 것 없이 무난했다.
재호가 중간계를 대표하게 된다는 것도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뭐, 나쁘지 않겠지.’
재호는 그냥 받아들이고 넘겼다.
하지만 이런 퀘스트가 뜬 것엔 숨겨진 음모가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재 뉴월드의 재호가 지닌 권력은 너무나 거대한 상태.
그리고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시스템의 보정이 들어간 것임을 말이다.
어쩌면 이건 지극히 인공지능다운 반응이긴 했다.
지금까지 재호가 보여 준 행보는 아무리 봐도 꽃을 위한, 꽃에 의한 꽃집 사장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그런 감성적인 영역을 인공지능이 100% 이해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도 믿지 않는 재호의 진심이지만…….
-오호호- 그나저나 내 할 말만 너무 떠들었군요. 사실 당신이 먼저 날 찾았는데 말이에요.
“아! 맞다.”
재호도 잊고 있었던 본론.
“뭐, 별건 아니고요.”
별것인 문제를 별것 아닌 것처럼, 재호는 이그리그에게 말했다.
혹시 이클립스의 안에 자리한 얼음 일부를 녹여서 물로 쓸 순 없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