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85
884화
땅을 판 뒤 불의 정령왕 이그리그의 힘을 빌려 지하의 얼음을 녹인다.
그리고 그 물을 지상까지 끌어올려 이클립스에 흐르도록 만든다.
말로 하면 단순하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은 엄청난 대공사.
그러나 이그리그의 반응은 싱거웠다.
-충분히 가능하지요. 태초의 화염으로부터 비롯된 불꽃은 모든 걸 태우고 녹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문제가 있지 않나요?
“다른 문제?”
-거기까지 땅을 파는 건 어떻게 하려는 거죠?
“음… 알드리온한테 부탁하려고 했는데요.”
단순한 계획다운 무책임한 발언.
-알드리온이라면 그 드래곤을 말하는 것이로군요. 확실히 그라면 이 단단한 대지를 뚫을 수 있을 테죠. 보자……. 한 10일 정도는 파면 될까요? 과연 그때까지 당신이 머물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요?
언제 이곳에서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재호도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솔직히 조금 느긋하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마 머지않아 결론이 날 테지요. 하루가 넘진 않을 거예요.
“하루…….”
생각보다 더 촉박했다.
재호가 생각한 계획의 반의반도 실행하기 어려운 기간.
-오호호- 그래서 당신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이가 있어요.
“네? 소개요?”
-아마 당신의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럼…….
이그리그는 엄지를 척 세우더니 화염을 꺼트리며 다시 정령계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아! 그 전에! 혹시 나와도 정식 계약을 하는 게 어때요?
“정식 계약을요?”
이그리그의 갑작스러운 파격 제안.
아무런 계기 없이 임시 계약을 한 상황도 놀라운데 아예 정식 계약까지 제안하는 건 충격적이었다.
순전히 호감에서 비롯된 일이라기엔 수상하리만치 말이다.
-당연히 의도가 있지요.
이그리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당신을 중간계의 대변인으로 인정했어요. 그만한 책임이 생겼으니 그것을 감시할 의무도 생겼지요. 그것이 바로 나.
하지만 그런 목적이라면 이미 계약한 엘라스틴을 통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오호호, 말하지 않았나요? 엘라스틴은 당신에게 완전히 빠졌다고.
“아… 네…….”
그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보냈다.
“뭐, 좋습니다. 정령왕님이랑 계약하는 건 좋으면 좋지, 나쁜 일은 아니니까요.”
아마 정령사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면 난리가 나겠지만, 굳이 먼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재호는 정령탑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은근히 고약한 면도 있군요.
“인간적인 면이라고 하죠?”
-오호호, 맞아요. 오히려 그런 점이 당신의 신뢰도를 더 높이는 것이니까요.
“예?”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논리에 재호는 갸우뚱했지만, 어쨌든 좋다고 하니 좋은 것이겠거니…….
화르르-
이그리그의 손짓에 따라 만들어진 작은 화염 고리.
그것은 재호에게 다가오더니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후끈-
심장에서 느껴지는 뜨끈함.
[와 정식 소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마나가 10% 증가합니다.] [모든 하위 불의 정령들은 당신에게 절대적인 호감을 가집니다.] [의 칭호를 획득했습니다.] [화염 관련 스킬 사용 시, 마나 사용량이 20% 감소합니다.] [화염 관련 스킬 및 아이템의 위력이 30% 증가합니다.] [두 명의 정령왕과 계약한 최초의 플레이어입니다!] [명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대륙에 당신의 소식이 퍼져 나갑니다.] [정령 교감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정령 소환 시, 필요 정령력이 크게 감소합니다.]예상치 못한 상황,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두 명의 정령왕과 계약한 사람이 된 재호.
-그럼 잠시 후 봐요-!
화르르-
그렇게 계약이 끝나자마자 이그리그는 훌쩍 떠났다.
“…이게 맞나 모르겠네.”
머리를 긁적이며 재호는 징징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근데 소개해 준다는 건 누군지 알아?”
-응? 나도 몰라.
징징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과연 이그리그가 소개해 주겠다는 상대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으음…….]그 순간, 재호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묵직한 목소리.
“응? 누구세요?”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웅장한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직접 들려오는 걸 보면 범상치 않은 존재는 분명했다.
또한 이 존재가 바로 이그리그가 말한 소개의 상대라는 것도…….
‘이렇게 빨리…….’
[…….]그런데 재호의 물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대답.
쿠르르-
대신 재호 앞의 지면이 솟아나더니 마치 대리석처럼 매끈한 석판이 만들어졌다.
“이게 뭔……. 어쩌라는 건데요?”
재호는 머릿속의 목소리를 향해 다시 물었다.
[…….]하지만 역시 묵묵부답.
쿠르르-
대신 주변 바닥의 모래들이 움직이더니 웬 그림을 그려 냈다.
그 그림이 의미하는 건…….
‘이 석판에 손을 올리라는 뜻 같은데.’
하지만 이게 뭔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손을 내어줄 순 없었다.
-그냥 해도 돼.
그때 지켜보던 꼰대가 말했다.
“왜?”
-상대는 대지의 정령왕이거든.
“뭐?!”
이그리그가 소개해 준다던 게 설마 대지의 정령왕일 것이라곤 생각도 못한 재호.
하지만 다른 이도 아닌 대지의 정령왕을 소개한 이유는 추측할 수 있었다.
땅을 조작하는 능력을 보면 황탑의 마법사들보다 대지의 정령왕이 몇 배는 더 뛰어날 테니까.
‘대체 이게 다 뭔 일이래…….’
순식간에 불의 정령왕에 이어 대지의 정령왕까지 만나게 된 재호.
상황을 쫓아가기 어려웠지만, 일단은 꼰대의 말대로 석판에 손을 올렸다.
[와 임시 소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증가합니다!] [정령 교감력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부족한 정령 교감력을 마나로 대체합니다.]또 성사된 다른 정령왕과의 임시 계약.
쿠구구구-
이어 주변의 대지가 거세게 요동치더니 재호 앞에 서서히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그리그도 제법 화려하게 등장하긴 했지만, 고르다는 그보다 더 요란했다.
쿠드드-
돌이 뭉쳐지며 완성된 약 5m 정도의 골렘.
지면에서 상체만 솟아난 그것은 새카만 눈으로 재호를 내려다보았다.
-…….
아무 말 없이 재호를 내려다보는 그에게선 이그리그와 다른 위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온몸이 모래 더미에 깔린 듯한 텁텁함.
“그…….”
어색한 분위기에 재호가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쿠구구-
고르다의 팔이 움직이더니 바닥을 부드럽게 짚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하로 긴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황탑의 마법사들은 대운하 공사 당시, 놀라운 활약을 보여 주며 재호를 감탄시켰었다.
하지만 고르다가 지금 보여 주는 건 그 이상!
마치 칼로 도려낸 듯, 말끔하고 균일하게 뚫리는 지하 구멍은 인간이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그리그 님이 미리 말한 모양이네.’
아무래도 고르다는 재호가 뭘 원하는지 미리 알고 온 모양이었다.
콰르르르-
지하를 뚫는 동시에 그는 지표면의 넓은 면적에 적당한 깊이의 구덩이도 만들어 냈다.
아마 지하에서 끌어올린 물이 모일 수 있도록 신경을 써 준 것으로 보였다.
-……….
은근히 섬세하게 신경을 써 가며 작업을 하지만, 여전히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고르다.
쿠르르-
한참을 묵묵히 자기 일에만 집중한 그는 약 5분 뒤, 마침내 바닥에서 손을 떼더니 다시 재호를 쳐다보았다.
-…….
그리곤 서서히 무너지며 사라졌다.
[대지의 정령왕 고르다의 임시 소환 계약이 종료되었습니다.] [대지의 정령왕 고르다가 정령계로 돌아갑니다.]“……?”
끝까지 다른 말은 없이 떠나 버린 고르다.
[오호호- 많이 놀랐죠?]“헉?! 이그리그 님!”
오늘 처음 만났던 이그리그가 반갑게 느껴질 정도의 어색함.
[나 좀 소환해 줄래요?]그의 부탁에 재호는 이그리그를 다시 소환했다.
화르르-
불꽃을 태우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그리그는 고르다가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박수를 쳤다.
-역시 깔끔한 친구라니까.
“저… 방금 고르다 님은 괜찮은 겁니까?”
재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하기 싫은 일을 이그리그 때문에 억지로 한 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고르다가 당신을요? 오호홋! 재밌는 소리를 다 하시네요- 우리 4대 정령왕들 중, 예전부터 당신을 가장 좋아했던 건 고르다인데요?
“네?”
하지만 한마디 말도 없던 고르다에게서 호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었다.
-고르다는 원래 말을 하지 않아.
그에 대해선 꼰대가 대신 이야기해 주었다.
-옛날부터 그랬어. 자신의 모든 언행은 곧 지상의 재앙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며 늘 조심하거든.
“아…….”
그렇게 들으니 왠지 금방 이해되었다.
한편으론 불장난하고 다닌다던 불의 정령과 비교가…….
-오호호- 자잘한 건 넘어가자고요.
“아, 네…….”
이그리그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쨌든 고르다가 순순히 당신의 부탁을 들어준 건 전적으로 호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은 정령화장. 대지의 정령왕이 좋아할 수밖에 없죠. 특히 오염되었던 대륙의 대지를 살린 전적도 있으니까요.
땅을 가꾸고 풍성하게 만드는 재호의 능력.
거기다 페르마 사막을 정화한 과거까지.
땅을 수호하는 정령왕으로선 재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생각 이상으로 더 신경을 써 주긴 했네요. 표면이 반짝거릴 정도로 닦아 놓은 걸 보니까요.
“크흠……. 그런 것도 모르고 감사 인사도 못했네요.”
-괜찮아요. 어차피 고르다는 당신의 진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화르르르-
몸을 이리저리 비틀더니 불길을 거세게 일으킨 이그리그.
-느긋하게 있을 때는 아니니 슬슬 시작해 볼까요?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재호는 한 걸음 물러났고 이그리그는 찡긋 윙크하더니 그대로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다.
* * *
이그리그가 지하로 향한 지 10분째.
재호는 가만히 기다리면 되겠거니 했지만, 이그리그의 소환 시간이 길어지자 편히 있을 수는 없었다.
부족한 정령력이 마나로 소모되다 보니 지속적으로 마나 포션을 복용해 주어야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꽃템들을 이용해 마나 회복력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상태.
‘그나마 체력은 떨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네.’
두 명의 정령왕과 계약을 하며 얻은 정령력 버프 덕분에 생명력까지 소모해야 했던 패널티는 사라졌다.
그것만 해도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
“그… 알시아…….”
그때, 한쪽에서 계속 쭈그리고 있던 이오가 조심스럽게 재호를 불렀다.
“음? 왜?”
“아니… 그게… 지금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서 말이다.”
그는 역시 넋이 나간 동료 천사들을 돌아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대가 이 정도로 엄청난 인물인지는 전혀 몰랐다.”
이오는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예로부터 정령왕의 인정을 받은 존재는 무조건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있지. 물의 정령왕도 놀라웠지만… 불의 정령왕에다 대지의 정령왕까지……. 만약 이러한 사실을 다른 천사들도 진작 알았다면, 현재의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이오는 좀 더 단호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질책했다.
“내가 좀 더 그대를 믿었더라면…….”
“됐어. 어차피 이그리그 님이나 고르다 님은 나도 조금 전에 알게 된 거니까.”
재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손사래 치며 말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잖아.”
“그건…….”
“내가 이클립스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놓을 테니까.”
쿠구구-
그때, 깊게 파인 구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킨 재호는 구덩이로 향했고…….
화아앗-
구멍에서 튀어나온 화염, 이그리그.
그리고 뒤를 이어 뿌연 수증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쏴아아-
수증기와 함께 주변으로 뿌려지는 맑은 액체.
“그다음은 너희들이 알아서 잘해 보라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낯선 액체.
그것을 확인한 재호가 씩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