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889
888화
슈아르 산림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고블린.
기계공학의 장인이자 폭탄광으로 대표되는 그들이지만, 사실 고블린들은 금과 보물에도 환장하는 종족이다.
그래서 슈아르 산림에서 만났을 당시, 재호도 잠시 고블린 은행을 직접 운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보통 고블린 은행을 상대로 거래하는 사람은 잘 없었다.
주 이용자는 같은 고블린이나 오크, 또는 세탁이 필요한 범죄자들이나 이용하는 곳이었다.
그런 녀석들이 엘리시아 화원의 대표 은행으로 자리 잡고 있으니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이 아니라 그 자식들이 왜!”
지독하게 무관심했던 재호는 뒤늦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블린과의 거래는 오직 폭탄과 기계공학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골드 거래는…….
“아니, 피스오는 도대체 걔들을 뭘 믿고 그쪽이랑 거래한 거야?”
뒤늦게 의심되기 시작한 재호.
고블린도 마찬가지지만 피스오 역시 고블린 못지않게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게 떠오른 것이다.
어쩌면 몰래 짜고 치는…….
“그런데 의외로 거래해 본 사람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다.”
“으… 으응?”
잔뜩 열을 올리던 재호는 찬물을 확 끼얹는 빅썬더의 말에 멈칫했다.
“말했다시피 표면적인 신뢰도의 문제일 뿐, 실제 거래에서는 딱히 문제가 발생한 적은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건 그거대로 놀라운데? 혹시 내가 고블린 대왕이라서 그런가?”
인간이지만 고블린 대왕의 자격을 갖춘 재호.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고블린 대왕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블린들이 재호의 입장을 신경 써 준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들이 보물을 탐하는 건 충성도와 상관없는 본능과도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네 이름을 걸고 신용 장사를 한다는 건…….”
“잠깐만. 내 이름까지 걸고 장사한다고?”
“그래. 고블린들은 진심으로 널 존경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건 바로 재호가 고블린 대왕으로서 보여 준 수많은 위업 때문이었다.
그들의 기계공학과 폭탄들로 얼마나 많은 업적을 세웠던가?
그건 곧 그들의 자부심이었으며, 늘 음지에만 있어야 했던 그들의 문화와 기술을 양지로 끌어내 준 영웅이 바로 재호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도 나름대로 변화를 꾀했다.
뛰어난 기술자인 만큼 바보는 아닌 그들.
인간 세계의 규칙과 상식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것에 따르고자 했다.
고블린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의 왕이자 영웅을 위해서 말이다.
“인식의 문제이지, 실제 사건사고는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럼 너도 고블린 은행이랑 거래해?”
“아니.”
“…….”
어쨌든 게임을 시작한 지 몇 년 만에 재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도 특수한 금융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걸 이제 알았다는 게 이상한 거다.”
척-
그렇게 숲 사이로 잘 닦인 대로를 계속 걸어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선 그들.
“자, 저곳이 바로 이스파이어 공국이다.”
빅썬더는 언덕 아래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 그 한가운데 자리한 거대 성채를 보며 말했다.
“와… 생각보다…… 웅장하네.”
이스파이어 공국의 첫인상은 인상적이었다.
엄청난 규모의 성채도 대단했지만, 그보다 눈에 들어오는 건 넓은 평원에 만들어진 5중 해자였다.
아니, 해자라기엔 지나치게 넓은 폭이 강이라고 해도 될 정도.
“금융 중심지랍시고 저렇게까지 해 놓은 건가?”
재호의 물음에 빅썬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공국 내에서 일이 터지면 네 방향으로 이어지는 모든 다리가 봉쇄되지.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그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뭐, 말로는 황제가 찾아와도 올라간 다리는 내려오지 않는다더군.”
“그러게. 저 정도 너비면 확실히 쉽게 도망치진 못하겠어.”
텔레포트 같은 것들이야 당연히 제한되어 있을 테니 사실상 완벽한 봉쇄.
물론 이스파이어 공국을 노린 침략도 마찬가지였다.
다섯 겹이나 되는 해자를 돌파하면서까지 시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게다가 당장 눈에 보이는 것 말고도 수많은 방어 수단이 숨겨져 있기도 할 테고 말이다.
그렇게 다섯 개의 다리를 건너 이스파이어 공국의 성문에 도달한 그들.
“어서 오십시오. 빅썬더 님.”
“?”
그런데 놀랍게도 입구의 병사들은 빅썬더를 알아보고 허리를 숙였다.
“다른 의미는 없어. 그냥 VIP라서 저러는 것뿐이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VIP면 입구의 경비병조차 알아보는 거야?”
“단순한 이치다. 현실의 너도 어딜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나?”
“그건…….”
차마 생긴 것 때문이라는 말을 스스로는 하지 못하는 재호.
“바로 가지. 이스파이어 공국 쪽에서도 우리의 방문은 인지하고 기다리는 중일 거다.”
재호를 재촉한 빅썬더는 주변 풍경은 구경할 새도 없이 곧장 대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중심지로 진입하니 크고 높은 건물들이 현대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줄지어 선 이스파이어 공국.
모두 비슷한 형태의 건물들 앞에 걸린 간판엔 1지구, 2지구 이런 식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빅썬더가 향한 곳은 8지구라 적혀 있는 곳.
“8지구는 엘리시아 화원을 중심으로 한 삼각 동맹 지역의 고객을 관리하는 곳이다. 엘리시아 화원의 급성장과 함께 새로 구축된 곳이지.”
“굉장히 체계적이네.”
갑자기 뉴월드가 아닌 다른 게임을 하는 느낌을 느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 재호.
“오?”
그리곤 예상과 완전 다른 내부 풍경에 탄성을 터뜨렸다.
현실의 은행 같은 분위기를 상상했지만, 그보다는 고급 호텔의 로비에 가까운 인테리어.
물론 기존 뉴월드 세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넌 여기서 기다리면 된다. 난 금고로 가 환전해 오지.”
재호는 한쪽에 마련된 푹신한 소파에 앉아 빅썬더가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슥-
곧장 데스크로 향해 작은 금판을 직원에게 내미는 빅썬더.
아마 그것이 이스파이어 공국에서 사용되는 신분증 같은 것인 모양이었다.
“확인되었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금방 담당자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관계자와 함께 사라진 빅썬더.
재호는 티나와 덩그러니 남아 신기한 표정으로 주변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아예 작정하고 하는 곳이구나.’
재호가 본 인게임 은행이라곤 슈아르 산맥의 고블린 은행이 전부.
그곳의 어지럽고 시끄러운 곳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보니 사람들이 왜 고블린 은행을 신뢰하지 않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걔들도 이렇게 깔끔하게 꾸며 놓으면 훨씬 좋겠지.’
-무슨 소리야. 애초에 그런 문제가 아니야.
-맞아. 상대는 고블린이라고 고블린.
재호의 착각을 정정해 주는 두 정령.
“그래도 이미지가 중요하잖아. 돌아가면 한번 제안해 봐야겠어.”
시도해서 나쁠 건 없는 일.
‘그렇게 해서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는 고블린 은행들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면…….’
어림도 없는 상상을 하며 빅썬더를 기다리던 그때.
“알시아 대왕님.”
“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 재호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귀족 가문의 집사처럼 보이는 체격 좋은 남자가 재호를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8지구의 총책임자 루마로입니다.”
“음? 아, 안녕하세요.”
어정쩡한 자세로 마주 인사한 재호.
“대륙의 둘밖에 없는 대왕 중, 한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대륙 어디를 가든 재호를 알아보고 접근해 오는 사람들은 많았다.
상대 또한 그런 이들 중 한 명이겠거니 싶었으나…….
“혹시 잠시 괜찮으시면 시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무척 조심스러운 태도.
루마로의 당당한 모습과 달리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똑똑히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이야기했으면 하는 모양.
“동료도 함께 가도 되죠?”
재호는 티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슥-
자리에서 일어난 재호에게 루마로가 다시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앞장서서 안쪽으로 안내했다.
경비병들이 지키고 선 넓은 통로를 지나 계단을 오른 재호.
그리곤 호화로운 응접실에 도착했다.
“앉으시지요.”
루마로의 안내에 따라 앉자 미리 준비했다는 듯, 바깥에서 시종이 차를 세팅했다.
“드시겠습니까?”
“잘 마시겠습니다.”
그렇게 한잔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려던 재호는 문득 받침에 갑자기 놓인 푸르스름한 크리스탈패를 발견했다.
그 물건의 정체 이전에 루마로의 놀라운 손놀림에 내심 감탄한 재호.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거겠지.’
대륙의 금융 중심의 책임자 중 한 명이니 특별한 능력 몇 개는 있을 터.
“이게 뭐죠?”
재호는 크리스탈패를 집어 들며 물었다.
“대왕님의 것입니다.”
“제거요?”
대충 어떤 물건인지는 알 수 있었다.
빅썬더가 이미 다른 색의 패를 내밀어 신분을 증명하는 걸 보았으니까.
중요한 건 왜 이걸 갑자기 재호에게 주냐는 것.
“이곳의 금고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신분패인 건 알겠는데,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는데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 대왕님 앞으로 개설된 것이니 말입니다.”
“…그냥 방문하면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아니면 특별 대접이라도 해 주는 겁니까?”
“둘 다 틀렸습니다. 그것은 이스파이어 공국의 최고 고객 한 분의 요청으로 개설된 대왕님의 금고입니다.”
“빅썬더?”
“그것은 저 또한 모릅니다. 그리고 안다고 하더라도 발설할 수 없습니다.”
“…….”
굉장히 수상쩍은 상황과 물건.
“단, 최고 고객께서 대왕님께 남긴 전언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한 루마로는 재호에게 단단히 봉인된 편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 편지 내용은…….
[그대 앞으로 만든 크리스탈패다. 그게 있으면 이스파이어 공국으로부터 제한 없는 대출이 가능하지. 그리고 그로 인한 지출은 우리 쪽에서 부담하겠다. 아마 모자람은 없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그대 역시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기에 이것을 건넨 것이다. 그대를 향한 우리의 신의의 증표와 같은 것.그럼 훗날 다시 보지.]
다시 보자는 내용은 기억에서 이미 사라졌다.
그만큼 앞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으니……
‘백지 수표!!’
정기적인 후원이라고 하더니 생각보다 더 엄청난 걸 내준 플리스트!
물론 ‘알아서 눈치껏 써라.’라는 첨언이 있긴 했지만, ‘모자람은 없을 거다.’라는 말도 함께 있었다.
즉, 어지간해서는 그들이 감당할 수 있다는 뜻!
“크리스탈패는 저희 이스파이어 공국에서 발급해 드리는 명패 중, 최고 등급에 해당합니다.”
루마로는 크리스탈패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지금 지금부터 대왕님의 이스파이어 공국 방문은 최고 예우로 대할 것이며, 필요하신 모든 편의를 보아 드릴 것입니다.”
사실 재호의 신분을 생각하면 당연하게도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평소 이스파이어 공국의 태도가 어떤지 아는 사람이 듣는다면 기겁할 만한 일이었다.
이곳은 오로지 돈이 최우선 가치이며, 대륙에서 통용되는 지위는 뒤 순위에 놓았으니까.
이스파이어 공국 내에서 문제 발생 시, 황제라 하더라도 해자의 다리는 내려오지 않는다던 빅썬더의 말이 농담은 아니었던 것이다.
즉, 크리스탈패를 지닌 재호는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황제보다 더 높은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런 소리를 했다간 큰일이 나겠지만.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스파이어 공국에 방문하신 걸 환영합니다. 최고 고객님.”
이젠 재호를 대왕이 아닌 최고 고객이라 부르는 루마로.
그걸 통해 이곳에서의 재호가 어떤 존재인지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