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
8화
“후우…… 후우…….”
피 묻은 신목의 씨앗을 든 채 선 재호.
[이 체념합니다.]레이피어보다 더 자주 쓰이는 재호의 무기였다.
[사람을 죽였습니다.] [악명이 증가합니다.] [레벨업하였습니다.] [레벨업…….] [상대의 불패 신화를 끝냈습니다.] [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높은 명성 혹은 악명을 가진 상대에게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어…… 괘, 괘, 괜찮……으세요……?”
잔뜩 겁에 질린 메이의 목소리.
“아, 뭐……. 괜찮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뭐.”
‘……꽃을 밟았다는 이유로 패 죽인다고?’
공포감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어떻게든 이 공포 분위기를 돌릴 것이…….
“……어? 저, 저것 좀 보세요!”
재로 변해 사라지는 우스터의 시체.
그곳엔 주황빛이 흘러나오는 타워 실드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바로 우스터가 사용하던 방패!
[] [등급 : 전설(퀘스트 성장형)] [사용 조건 : 힘 280] [방어도 : 320(황혼 시너지 시 500)] [고대 신성 제국 그라시아의 최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황혼 기사단의 방패입니다.] [봉인된 황혼 기사단의 정신이 잠들어 있습니다.] [ : 5초간, 황혼 기사단의 의지를 깨워 적들을 막아섭니다.]“…….”
재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물건이 방금 죽은 사람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
“감사합니다, 알시아님!!”
재호에게 다가온 엘프는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음? 감사하다니요?”
재호는 슬쩍 손에 들려 있던 신목의 씨앗을 뒤로 숨겼다.
“그자는 트리안 마을로 오더니 대뜸 행패를 부리더군요. 저희들을 위협하기에 혼쭐을 내 주려고 추적 중이었습니다.”
“아……. 죽어도 싼 놈이었군요.”
“물론입니다! 그나저나 아직 럭시 숲에 계셨군요.”
“……아!”
트리안의 엘프들은 재호가 엘프들의 존망을 걸고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떠난 줄 알았던 이가 여전히 럭시 숲에 머물고 있었으니, 재호는 괜히 제 발이 저려왔다.
“하하, 꼬……꽃 구경 좀 한다구요.”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이니 이해해 주리라!
“역시 정령화장님이십니다!!”
그리고 엘프들은 그런 기대에 충실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엘프들의 존경심이 상승합니다.]“그런데…… 옆에 있는 인간은…….”
“핫?!”
갑자기 엘프의 관심이 자신을 향하자 긴장한 메이.
하지만 역시나 표정은 경멸 그 자체…….
“저랑 같이 꽃 연구를 하고 있는 동료입니다.”
“어?!”
재호의 소개에 메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어디까지나 꽃 탐지기 정도에 불과했다.
‘앗, 여기에 꽃이 있어요! 저기에도 꽃이!’ 정도…….
하지만 엘프들은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음? 알시아님의 조수란 말씀이십니까?”
한마디 말로도 엘프들을 설득시키는 걸 보면 재호를 향한 그들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엘프들이 당신을 향해 ‘아주 약간의’ 호기심을 보입니다.]“흡?!!!!!”
메이에게 떠오른 알림!
재호의 한마디가 몇 달간의 노력을 통틀어, 최고의 호감도 버프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비록 표정은 풀리지 않았지만.
그건 인간에 대한 엘프들의 적개심 탓에 쉽사리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도 적어도 메이는 전럭협보다는 크게 한 걸음 앞서간 상황.
“과거 틴라이트님께서도 항상 조수를 데리고 다니셨다고 들었습니다.”
“응? 그, 그래요?”
재호는 당황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
쿵! 쿵! 쿵! 쿵!
“뭐지? 또 불곰인가?!”
요란한 소리에 재호가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소리의 출처는 메이의 심장!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꼭 트리안 마을에 들러 주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그렇게 엘프가 떠난 뒤…….
“……왜 그래요?”
자신을 향해 초롱초롱히 눈을 빛내는 메이를 보곤 뒷걸음질 쳤다.
“저기…… 알시……아님.”
아직 적응되지 않은 닉네임.
“저…… 조수로 써 주시면 안 되나요?!!”
“조……수?”
좀 전 엘프에게 틴라이트도 조수가 있었다고 듣기는 했다.
하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메이에겐 전혀 아니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두 달…… 아니, 세 달을 채워가는 시점에서야 마침내 전직 퀘스트가 떴으니까!
정령화장의 조수라는 것은 그리 대단할 게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정령화장의 허락뿐입니다.] [성공 조건 : 정령화장의 허락] [보상 : 로의 전직] [*주의 : 정령화장에 귀속됩니다.]
조금 전, 메이에게 생성된 전직 퀘스트였다.
성의라곤 코딱지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클래스 설명.
보통 사람들이 본다면 ‘이딴 게 왜 있어? 미쳤다고 이걸 하냐?!’라고 할 클래스.
하지만 애초에 뉴월드의 모두가 주인공이 되길 원하는 건 아니었다.
재호가 그저 꽃집을 하고 싶어 했던 것처럼, 메이는 엘프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것뿐.
“뭐…… 하, 하세요.”
재호는 별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로 전직하였습니다!]“흐흐흐…….”
기묘하게 흑화되어 가는 그녀의 모습을 재호는 애써 외면했다.
‘어차피 숲만 벗어나면 각자 갈 길을 갈 테…….’
[‘메이’님이 로 임명되었습니다. [‘메이’님이 당신에게 귀속되어 언제든 호출할 수 있습니다.] [‘메이’님과 ‘알시아의 식물 도감’이 공유됩니다.]“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귀속……?”
그것의 기능은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를 호출하시겠습니까?]“네.”
파앗―
그 순간, 메이의 전신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재호 코앞으로 이동이 되었다.
“…….”
토를 달 필요 없는 직관적인 스킬이었다.
“흠흠……. 그런데 정령화장이란 게 알시……아님 클래스인가요?”
한참 늦은 타이밍에 들어온 메이의 질문.
“……알고 전직한 거 아니에요?”
“어…… 그냥 했는데요? 정령화장이 뭐예요?”
메이가 알기로 처음 얻는 클래스들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전사’, ‘마법사’ 등등, 성의 없는 이름들.
처음부터 고유 명사로 지칭되는 일반 클래스는 없었다.
“아! 혹시 실은 뉴비가 아니었나요?”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몬스터들을 능숙하게 상대하는 것이나 사람을 잔인하게 패 죽이는 것이나…….
“……뭐, 그런 셈이죠.”
재호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굳이 자신의 클래스에 지워진 무거운 사명을 그녀와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정령화장은 꽃집 특화 클래스예요.”
재호 스스로가 정의한 정령화장이란 그런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긴, 꽃집을 한다고 하셨으니까.”
다행히 메이도 딱히 전투에 흥미를 느끼는 타입이 아니었기에 그리 상관없었다.
“아! 그리고 이젠 편하게 이야기하세요.”
“네?”
“전 이제 조수니까요.”
‘사실 존댓말 듣는 게 숨 막히기도 하고…….’
차마 말 못 할 진심이었다.
* * *
“으아아아아악!!!!!”
나름 훈훈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재호, 메이와 달리 우스터는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사망으로 인한 강제 종료까지 앞으로 약 5분.
―죽자우자우자우자궂아죽장!!!!!! 죽장님!!!!
―어우, 깜짝이야?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우스터를 캐스팅한 프라임 길드의 마스터이자 랭커인 ‘죽장’.
그는 버스 기사로 럭시 숲을 간다던 우스터의 다급한 귓속말을 받곤 불안감에 휩싸였다.
―죽장님 나 X됐어!! 엉엉어어엉!!!!
―뭔 소리야? 좀 침착하게 말해.
―내, 내가…… 어엉…….
그리고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본인이 괜히 엘프를 자극해 공격당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죽장은 한숨부터 푹 흘러나왔다.
―그러게 내가 거기 함부로 가지 말랬잖아. 랭커들도 꺼려하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냐.
―아니, 엘프한테 죽은 게 아니라 플레이어한테 죽었다고!
우스터는 억울함을 한껏 담아 말했다.
―후……. 그래서 클래스 퀘스트 아이템을 드랍했다고?
제 잘난 맛에 취해 있단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본인 클래스 무기를 잃어버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도 못 한 죽장.
‘이게 소위 천재라는 놈들의 고질적인 문제야.’
죽어 본 적이 없으니 사망 직전의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뉴월드는 기본적으론 사냥 중 사망 시, 아이템을 잃어버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필드 PVP는 예외였다.
랜덤 확률이긴 했으나, 보통 사망 순간에 가장 떨어트리기 좋은 상태의 아이템을 잃어버리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우스터가 방패를 떨어트린 것도 그 이유였다.
방패에 내장되어 있던 스킬을 시전하던 도중에 사망했기 때문!
―그래서 상대는 누구였는지 기억나?
어쨌든 프라임 길드 입장에서 우스터는 최고 기대주.
누구보다 빠르게 레어 등급 클래스를 얻어 이른 시일 내에 유니크 클래스 승급이 기대되는 천재.
하지만 이 없으면 그것도 안 될 말이었다.
―모, 모르겠어.
―아이디야 당연히 알 수가 없지. 인상착의라도 알 것 아냐.
―어……. 엄청 살벌하게 생겼는데…….
그의 어휘력으로 차마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의 외모.
―아, 아무래도 고렙 같던데…….
절대로!
절대로 자신이 럭시 숲의 뉴비에게 얻어맞아 죽었다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아니, 뉴비일 리가 없어!’
정말로 랭커일지도 몰랐다.
자신을 견제하기 위해 뉴비인 척 접근한 것이리라…….
―흠……. 그나마 럭시 숲이라서 다행일지도 모르겠군.
고렙 플레이어가 럭시 숲을 갔다면 버스 기사 말곤 없을 테니까.
게다가 럭시 숲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추적은 쉬울지도 몰랐다.
―일단 로그아웃해서 좀 쉬어. 일단 최근 버스 기사 구한 사람 있는지 알아 볼 테니까. 그리고 럭시 숲 인근 사막에서 퀘스트 진행 중인 길원 있으니 거기도 말해 놓을게.
―알았어…….
진실과는 상당히 멀어졌지만…… 상관없었다.
어떻게든 방패만 찾을 수 있다면…….
* * *
재호가 뉴월드는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버지 우람의 태도는 크게 바뀌었다.
관짝 게임이라고 비난하던 그가 더욱 적극적으로 재호를 지원하고 나선 것이었다.
―흠흠……. 요즘 분위기는 어떠냐? 언제쯤이면 지존이 될 것 같냐?
―그런데 전사보다는 역시 격투가 같은 게 좋지 않겠냐?
―너 하루에 몇 시간씩 거기 누워만 있으면 병난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해야지. 오늘은 청소하지 말고 하체를 해!
재호 입장에선 그런 아버지의 변화가 마냥 신기했다.
‘얼마나 격투기를 시키고 싶었던 거야?’
어머니를 꼬드겨 우람의 음모를 막은 자신이 불효를 저지른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그 극성의 방점은 바로, 좁아터진 재호의 방 한쪽 구석에 생겨난 뉴월드 캡슐로 찍었다.
“…….”
재호는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우람을 돌아보았다.
“하하! 어떠냐?”
그는 팔짱을 낀 채 웃었다.
얼굴 전체에 뿌듯함이 가득했다.
“헬스장 대출도 아직 덜 갚았으면서 어디서 난 돈으로 산 거예요?”
“중고로 알아보니 얼마 하지도 않더만. 아들이 무언가에 열정을 태우는데 아버지로서 이 정도도 못 해 줄까?”
열심히 게임을 하라는 아버지…….
아니, 그보다 어떻게든 자신을 싸움꾼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우람의 의지가 무서웠다.
하지만 재호와 우람, 둘 모두 어디 나서도 절대 안 질 것 같은 포스였으나 집안의 실세는 따로 있었다.
“엄마는 알아요?”
흠칫한 우람.
“크흠……. 그게 말이다, 안 그래도 그거에 대해서 말을 좀 맞췄으면 해서 말이다.”
우람의 우람한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네가 하도 졸라서 내가 사 준 걸로 맞추는 게 어떠냐?”
“……아니! 돈보다 더 중요한 게 그 문제인데? 욕받이는 내가 하라고요? 애초에 전 캡슐방에서 하는 걸로도 충분했다고요!”
“크흠……. 거 남자가 쪼잔하게 왜 그래? 그래도 나보다는 아들인 네가 더 괜찮지 않겠냐?”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아, 난 몰라요.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할 거니까.”
“야이 자식아―!”
우람은 전혀 그답지 않게 난처한 반응을 보였으나, 그렇다고 재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일단 은혜가 오면 아무 말 하지 말고 방문 꽉 닫아 둬! 내가 알아서 이야기할 테니까!”
그러곤 우람은 다시 헬스장으로 출근했고…… 재호는 퇴근한 어머니에게 방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아니, 이 양반이 나이 먹곤 잠잠해진 줄 알았더니 갑자기 왜 또 이러는 거야?! 그렇게 변명거리가 없어서 아들을 팔아 고……!!”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여보. 오해가 있는데…… 아! 체육관에 광호! 그 녀석이 중고로 처리하려는데 잘 안 팔린다면서……!!”
그 즉시, 헬스장에서 곧장 불려온 우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해명을 하고 있었다.
“그, 그러니까……?”
계속 구질구질한 변명을 이어나가던 우람.
“어……?”
그의 눈길이 문득, 재호의 방을 향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아들의 모습!!
‘저, 저 자식이……!!!!’
천천히 닫히는 문을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으나…….
“애한테 눈치 주지 마!!”
“…….”
절대 그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