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00
899화
이전에 줄칸은 말했었다.
대충 재호의 정령왕 인맥을 앞세워 꼭두각시 탑주 하나 만들자고.
그리고 그 꼭두각시는 바로 알로에올리오였다.
-아니, 잠깐만. 그렇게까진 이야기 안 했던 것 같은데?
징징이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지적했지만, 대충 비슷한 의미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재호가 말했었다.
재호가 이미 불의 정령왕과 계약을 해 버린 이상, 그는 탑주의 자격을 얻을 순 없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이그리그는 알로에올리오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런데 탑주가 되려면 정령왕과 계약을 해야 하지 않나요?”
재호는 당연히 그것이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령탑의 꼰대 정령사들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테니까.
-집단의 리더가 되려면 자격 증명은 필요하겠지요. 그것이 꼭 정령왕과의 계약이어야 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 그건…….”
정령사로서 가장 확실한 증명은 정령왕 계약.
그 외의 것으로 정령탑의 수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가뜩이나 캐스트 한 명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이렇게 위태로운 정령탑이 말이다.
-우리 정령들은 인간 세계의 정치에 대해선 잘 몰라요. 그저 그의 가능성을 볼 뿐이죠.
[*퀘스트*] [불의 최고위 정령 프라레하의 계약자였던 알로에올리오.그는 탐욕에 눈이 멀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그는 본디 가졌던 것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령이란 자연 그 자체.
알로에올리오의 탐욕 역시 대자연의 일부일 뿐입니다.
정령을 향한 그의 초심과 진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목표 : 알로에올리오의 정령 재계약] [보상 : ???]
“???”
퀘스트 보상뿐 아니라 재호의 얼굴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뭐야?”
지금까지 게임을 하면서 온갖 경험을 다 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니, 왜 쟤가 받아야 할 퀘스트를 내가 받아?!”
NPC를 돕는 것도 아니고 플레이어를 돕는 것이 퀘스트 목표였다.
심지어 상대는 엘리시아 화원을 불태우려고 한 방화미수범.
-오호호- 부탁해요-
재호의 속마음을 뻔히 들여다보면서도 밝게 웃는 이그리그.
“이거 꼭 해야 해요?”
재호는 솔직하게 물었다.
-그는 본래 프라레하와 계약을 했던 인간이죠. 비록 지금 망가졌다고 하지만 그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뛰어난 정령사였어요.
“그렇다고 제가 대신 챙겨 줄 건 또 아닌 것 같은데요.”
게다가 보상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선 더더욱 내키지 않았다.
물론 [???] 보상이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상대는 NPC가 아니라 플레이어.
재호가 지닌 여러 능력은 NPC를 상대로 꽤 다양한 버프 효과들을 볼 수 있었지만, 플레이어는 그런 게 불가능했다.
즉,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해야 했다.
꽃집에 불을 지르겠다던 광인을 상대로…….
-이 일은 당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요?”
의심 가득한 물음.
-정령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알로에올리오가 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슥-
재호의 시선이 양쪽의 두 정령을 차례로 훑었다.
-?
-??
“쯧……. 알았어요. 어쨌든 보상 확실히 챙겨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에요.
“일단은 그럼…….”
재호는 감옥 안에서 넋이 나간 알로에올리오를 쳐다봤다.
“이 사람이 다시 접속해야 하겠네.”
그런 다음에야 일이 진행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 *
게임을 끈 알로에올리오는 바로 술을 꺼냈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이 끝나면 술을 찾기 시작한 그.
하지만 시기는 몰라도 계기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알시아에게 불의 정령왕을 빼앗긴 뒤부터…….’
사실 빼앗긴 게 아니란 걸 그도 알았다.
애초에 자신의 손에 들어온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었다.
정령왕 직전인 최고위 정령 프라레하와 계약을 맺을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던가.
남은 건 정령왕뿐이었으니…….
“…아니지. 고생은 아니었지.”
처음 뉴월드를 시작하고 정령사가 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모험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그러다…….
“정령탑…….”
알로에올리오도 처음부터 정령탑 소속은 아니었다.
스스로 정령과 교감을 해내고 상급 불의 정령까지 계약한 뒤에야 정령탑에서 관심을 보였었다.
그렇게 정령탑으로 들어간 뒤, 여러 지원을 받아 프라레하와 계약도 해낸 것이다.
딱 거기까지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점점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도 함께 찾아왔다.
정령사로서 게임을 즐기던 자신은 사라지고 오직 더 강한 힘만을 추구하는 모습만 남았다.
주변에선 알로에올리오를 추켜세워 주었고, 머지않아 정령왕과 계약할 것이라며 모두가 말했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최고위 불의 정령과 계약을 했으니 시간만 지나면 자연스레 불의 정령왕과 계약하게 되리라고.
“전부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거지…….”
그리고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막말로 게임을 접어야 할 판이었다.
정령사가 정령이 없으니까.
그는 뉴월드 커뮤니티를 들어가 보았다.
엘리시아 화원에서 그 깽판을 쳤으니 자신과 관련된 글이 몇 개는 올라오지 않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알로애올리오]이름을 검색해 보이지만 나오지 않는 글.
“그나마 다행인가…….”
아니, 어쩌면 더 슬픈 일일지도 몰랐다.
나름 정령사 중에 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자신이 그런 사고를 쳤음에도 아무 말도 없는 건 처참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추천 글로 들어가는 순간 안심(?)할 수 있었다.
[알리오리오 얘 뭐함?] [속보)알리오알리오 엘리시아 화원 방화 시도!] [엘리시아 화원에 올로레리오 나타나서 잡혀감!] [우쿠렐라 정령사 1위 아님? 엘프들한테 손도 못 쓰고 처맞네ㅋㅋㅋ] […….]울컥-!
자신을 향한 조롱은 문제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름을 똑바로 적는 놈이 한 명도 없었다.
“우쿠렐라는 뭐야!! 비슷하지도 않잖아!!!”
하지만 정작 그는 알지 못했다.
자기가 검색할 때도 오타를 냈었다는 걸 말이다.
“후…….”
커뮤니티를 훑어보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곤 껐다.
“이제 어쩌냐…….”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하지만 한참 재밌게 하던 게임에서 기반을 모두 잃어버렸다.
그 허망함은 도저히 회복되지 않았다.
“누구는 초기화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건데… 이걸 해냈네.”
자조적인 중얼거림에 혼자 피식피식하게 되는 그.
그렇게 게임에 접속하지 않고 며칠이 흘렀다.
하지만 자괴감과 후회… 여러 감정에 뒤섞여 현생을 살던 그는 결국 미련에 패배했다.
질려서 접더라도 조금 쉬다 보면 다시 생각나는 것이 게임.
누군가 말했었다.
MMORPG는 접는 것이 아니라 쉬는 것이라고.
“한 번 들어가 볼까…….”
물론 들어간다고 해서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응?”
그런데 접속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풍경은 마지막과 달랐다.
어두컴컴한 감옥이 아닌 눈부신 태양빛이 그의 얼굴로 내리쬐었다.
거기다 온몸을 푸근하게 감싸는, 조금 차갑지만 안락한 느낌.
제법 나쁘지 않은 감각들이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시야가 왜 이렇게 낮지?’
그가 의아해하는 그때.
헥헥헥-
“?”
그의 앞에 웬 강아지가 나타났다.
온몸의 시뻘건 털이 불타는 것처럼 일렁이는 녀석이었는데, 알로에올리오를 가만히 보더니 갑자기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헙?!!”
그게 무슨 행동인지 이해한 알로에올리오가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흡-”
혹시나 입 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더 끔찍한 경험을 할까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몸이……!’
강아지의 만행을 막으려고 몸부림쳤지만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알로에올리오가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깨달았다.
‘땅에 묻혀 있잖아!!’
머리만 빼고 바닥에 파묻힌 그의 상태.
정령사 클래스의 힘 능력치로는 탈출할 수 없었다.
‘이게 뭐야?! 뭔 짓을 해 놓은 거야!!!’
접속을 안 한 며칠 사이, 대체 무슨 짓을 해 놓은 것인지 짐작도 안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곧 벌어질 대참사!
“앗! 불댕댕아!! 그러면 안 돼!!”
그 순간, 근처에 있던 누군가가 다급하게 달려오더니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푸하!!”
참았던 숨까지 내뱉으며 안도하는 알로에올리오.
“휴, 다행히 이번엔 안 쌌네.”
“……이번엔?”
“헉?! 저, 접속했어요?”
아무래도 알로에올리오의 접속을 확인하고 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당신은…….”
그리고 알로에올리오도 간신히 눈알을 움직여 상대를 확인했다.
‘엘리시아 화원의 2인자……. 메이!’
엘리시아 화원에서 거의 나가지 않는 메이.
그렇다는 건 자신은 여전히 엘리시아 화원 내에 있다는 뜻이었다.
“잠시 만요! 알시아 님 불러올게요!”
“자, 잠깐!! 일단……!”
알로에올리오의 말은 듣지도 않고 후다닥 떠난 메이.
하필 뒤쪽으로 사라진 터라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도 볼 수가 없었다.
“젠장! 이게 뭔…….”
어쨌든 한 가지는 추측할 수 있었다.
아까 그 시뻘건 강아지가 자신에게 몇 번이나…….
‘아니. 그건 생각하지 말자.’
중요한 건 자신이 꽤 오랫동안 이 상태였다는 것.
‘왜 날 묻은 거지?’
감옥에 가둬 둘 수 있는 제한 시간 때문이라기엔 이상했다.
자신이 접속하지 않은 기간이 그 정도로 길진 않았으니까.
‘그럼 날 능멸하려고?’
그것 역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이가 있다는 건 이곳이 엘리시아 화원의 최심부라는 뜻.
다른 플레이어들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으며, 왕래하는 이들이라고 해 봐야 엘프와 재호의 최측근 몇 명이 전부라 창피를 주기도 애매했다.
‘…전혀 모르겠군.’
접속하면서 어떤 기대를 했던 건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런 상황은 예상 목록에 없었다.
저벅-저벅-
뒤통수 쪽에서 다가오는 묵직한 발소리.
‘알시아!’
잠시 후, 알로에올리오 앞에 나타난 재호가 쪼그려 앉았다.
그렇게 해를 등진 재호의 모습은…….
꿀꺽-
조폭이 따로 없었다.
자신의 지금 상황도 분위기가 참 잘 어울렸다.
이게 현실이 아니라 게임인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드디어 접속했군.”
“뭐, 뭘 원하는 거냐?”
알로에올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뭐 달라진 거 없어?”
“뭐?”
뜬금없는 질문에 알로에올리오가 되물었다.
“뭐 퀘스트가 떴다거나.”
“퀘스트라니…….”
그런 건 전혀 없었다.
“그래? 진짜 이상하네.”
재호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퀘스트를 다시 살폈다.
‘이 인간 퀘스트인데 정말 나한테만 뜬다고?’
그렇다면 알로에올리오 모르게 진행하라는 뜻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 알시아…….”
알로에올리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재호를 불렀다.
“내, 내가 미안하다.”
일단은 사과하고 보는 알로에올리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땅에 묻힌 채 상대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황에선 그 누구라도 사과부터 하고 싶을 테니까.
“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해선 안 될 말을 해 버렸다.”
“뭐, 알긴 아네.”
재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 그래. 하지만 그게 진심은 아니었어. 그냥 위협만…….”
“핑계는 됐고. 일단 한동안 그렇게 좀 있어.”
“뭐……? 어, 언제까지?”
“글쎄. 네가 반성할 때까지?”
그렇게 말한 재호는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 알시아! 내가 미안해! 미안하다고!!”
그가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재호는 무시하고 떠났다.
‘일단은 좀 지켜봐야겠네.’
아주 잔혹한 풍경이었지만, 사실 재호는 나름대로 신경을 써 준 것이기도 했다.
비록 알로에올리오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