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02
901화
넋이 나간 알로에올리오.
웃으니 더 살벌해 보이는 재호가 그를 격려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했다.
이렇듯 깨달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법.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긴 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아니, 파묻힌 채 몇 날 며칠 명상을 했을 뿐인데, 바로 오늘 새로운 정령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재호가 말한 것처럼, 바로 대지의 정령들과…….
‘하긴…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도.’
알로에올리오는 알고 있었다.
정령이란 존재는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강제로 계약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걸.
지금처럼 먼저 불쑥 찾아오는 것이 정령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 순간부터 탐욕을 부렸지. 정령왕을 빼앗겼다는 생각이나 하면서.’
그렇기에 프라레하도 떠난 것이다.
‘이제야 알겠다.’
자신의 초심과 현재를 냉정히 볼 수 있게 된 알로에올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시아가 정령왕과 계약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사실상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정령사가 되었지만, 재호는 단 한 번도 그것을 두고 욕심을 낸 적이 없었다.
묘목이 된 이후로 재호의 영상들을 찾아봤지만, 재호는 정령들을 전투에 앞세운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그리그의 말대로였다.
심지어 데리고 다니는 정령 하나는 늘 전투 때마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을 보내는 것처럼도 보였다.
즉, 보통의 정령사들과 달리 재호는 정령을 소유물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으로 대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알로에올리오에게도 변화가 일어났다.
파묻힌 채 대지와 하나가 되어 대자연과 교감한 알로에올리오.
그 과정에서 대지의 정령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 줌의 욕망까지 비워 내자 그들은 먼저 다가왔다.
“설마 이 모든 상황을 의도한 건가……?”
그는 재호에게 물었다.
“반만 의도했다고 하자.”
알로에올리오가 이 생명력 충만한 대지와 교감하며 잃어버린 정령력을 다시 회복하길 바랐던 건 맞았다.
하지만 대지의 정령과 새로이 계약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이그리그를 통해 미리 들은 이야기는 있었다.
-고르다도 당신을 돕고 싶어 하더라고요.
대지의 정령왕 고르다가 재호에게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단 건 이클립스에서 먼저 들었었다.
그때도 아무런 대가 없이 재호를 도왔던 고르다는 이번 일도 전해 듣곤 도움을 손길을 내민 것이다.
알로에올리오의 정령사 복귀를…….
그래서 고르다는 상급 대지의 정령을 보내 알로에올리오와 계약을 하게 해 주었다.
뭐, 그렇다고 자격이 없는 이에게 정령을 내어준 것은 아니었다.
알로에올리오는 플레이어 중, 정령과의 교감 능력만큼은 최고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상급 이상은 알로에올리오가 하기에 달려 있었다.
고르다의 도움은 딱 여기까지.
그런 뒷이야기는 말하지 않았다.
말하는 재호도 민망했고, 상대방이 들으면 오히려 자괴감을 느낄지도 모를 이야기니 말이다.
그냥 결과만 놓고 각자가 편한 대로 생각하는 게 나았다.
“고맙다…….”
알로에올리오는 재호에게 감사를 표했다.
“별말씀을.”
그리고 재호도 가볍게 받아 줬다.
* * *
알로에올리오는 한결 차분해진 모습으로 엘리시아 화원을 둘러보았다.
꽃템을 사기 위해 엘리시아 화원을 방문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엘리시아 화원의 아름다움을 찬양했다.
하지만 직접 화원 안쪽을 본 알로에올리오는 알 수 있었다.
영상에서 본 것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 감동의 절반도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정말… 엄청나군…….”
진심으로 감탄한 알로에올리오의 중얼거림.
그걸 들은 재호는 일깨워 주었다.
“그리고 넌 여길 불태우겠다고 했지.”
“…….”
알로에올리오는 할 말이 없었다.
더 높은 곳만 바라보던 자신의 욕망이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었었단 걸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한 발만 넘었다는 것 정도.
소리를 지르며 협박하는 것에서 멈추었고, 그래서 지금처럼 썩 나쁘지 않은 분위기일 수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애초에 정령을 다루는 사람이 누군가를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했다니…….”
심지어 재호는 정령왕들의 인정을 받은 존재.
그런 이를 부정하는 건 곧 정령왕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땐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체념과 반성을 거친 알로에올리오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뭘 해야 할 것인지도.
“알시아. 혹시… 당분간 이곳에 머물러도 될까?”
“음?”
의외의 제안에 재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굳이 왜?”
“그건…….”
재호를 향한 미안함도 있지만, 단순히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더 공부하고 싶다.”
“공부라…….”
알로에올리오의 말에 담긴 의미를 읽은 재호.
“정령과 더 친해지고 싶단 거군.”
“…맞다. 염치없는 이야기지만…….”
혹여 아직도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처럼 보일까 걱정되었지만, 다행히 재호는 전혀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뭐,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야. 하지만 허락해 줄 순 없어.”
알로에올리오는 이곳을 불태우겠다고 공공연히 소리를 질러 댔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걸 보았고, 특히 화원의 중심부에서 살아가는 엘프들이 보았다.
즉, 알로에올리오가 벌인 그 행패의 피해자는 사실 재호가 아니었다.
이미 고향이 불타는 경험을 한 엘프들.
알로에올리오는 이제는 희미해진 엘프들의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은 나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니까.”
“그렇군…….”
재호의 말을 알로에올리오는 이해했다.
동시에 과거의 자신이 감정적으로 저지른 일로 큰 기회를 날려 버렸다는 것도…….
하지만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탑주님도… 이곳을 보고 마음을 굳힌 거로군.”
내심 아직 정령탑주가 자유를 찾아 떠났다는 말에 반신반의 상태인 알로에올리오.
하지만 정령으로 가득한 이곳과 재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알 것 같았다.
정령탑주의 무엇을 느끼고,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말 나온 김에 하자면, 너까지 여기 잡아 두면 정령탑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엘리시아 화원을 찾아왔다가 사라진 정령탑주.
거기다 최고 기대주까지 엘리시아 화원에 잡혀 있다?
“그건 정령탑 입장에선 전쟁하자는 걸로 보일 수도 있겠지.”
아무리 정령탑주 없는 정령탑의 힘이 확 줄어든다고 해도 불필요한 분쟁은 원치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이곳에 한 달 가까이 잡혀 있었는데……. 혹시 정령탑에서 아무런 말도 없었나?”
“다행히 아직은 정령탑 쪽에선 잘 모르는 거 같더라고.”
알로에올리오의 깽판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선 널리 퍼졌지만, NPC들은 아니었다.
조금 늦은 시기에 소식이 전해진 모양인지 정령탑은 이제야 사실 확인에 들어간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네가 엘리시아 내에서 활동하다 남들 눈에 띄면 이야기가 다르지.”
그건 정령탑 쪽에 쓸데없는 오해를 심어 줄 위험이 컸다.
“만약 네가 여기 있는다면, 정령탑의 온갖 시비를 막아 줄 수 있겠어?”
재호의 물음에 알로에올리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곧 불가능하다는 뜻.
“뭐, 그런 거지.”
재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로에올리오를 화원 출입구로 안내했다.
“어쨌든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은 된 거 같네.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엘리시아 화원을 불태우겠다던 네 말이 우리 처지에서 어떻게 들렸을지.”
“알았다.”
아쉽긴 하지만… 알로에올리오는 엘리시아 화원의 괴담을 알고 있었다.
엘리시아 화원에서 깽판을 벌인 자들은 결코 멀쩡하게 나올 수 없다는 걸.
이렇게 두 발로 걸어 나오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는 걸 말이다.
-근데 한 달 동안 땅에 파묻혀 있다가 풀려난 거면 멀쩡하게 나왔다고 보긴 어렵지 않나?
-그렇지. 어떻게 보면 제법 손꼽힐 정도로 지독하게 당한 것 같기도 해.
불쑥 튀어나오는 꼰대와 징징이의 찬물에 재호는 파리 쫓듯 손을 휘저었다.
“하하… 그래도 그 경험이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바쁘게 달리던 겜생을 강제로 멈춘 채,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알로에올리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으나,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워 차마 스스로는 할 수 없었던 휴식.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꼭 알려 줬으면 한다.”
엘리시아 화원에 머무를 순 없다는 아쉬움과 미안함에 나온 이야기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된 거겠지?’
하지만 이상했다.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되지?’
재호가 알로에올리오를 구제해 준 것은 엄연히 퀘스트 때문이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알로에올리오는 절대 멀쩡히 화원을 떠날 수 없었을 터였다.
-불필요한 분쟁은 원하지 않는다던 녀석이 할 생각은 아닌데.
꼰대의 말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대충 알아들어. 어차피 이 상황 자체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그리그의 돌발 퀘스트 때문에 급변한 전개.
그리고 알로에올리오에겐 그 퀘스트를 설명하지 않았기에 앞뒤 말이 조금씩 어긋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보정을 받지 않는 재호의 거짓말 실력은 알려진 것처럼 좋은 편이 아니니까.
“크흠……. 그럼 구경은 이쯤하고 나는 가 보겠다.”
“어어- 조심해서 가라고. 근데 너 정령이랑 계약한 거 맞지?”
“음? 그렇다.”
“근데 왜 퀘스트가… 흠흠. 아니다. 잘 가.”
그렇게 화원 입구에서 그를 배웅하던 재호는 문득, 알로에올리오를 다시 불렀다.
“잠깐만!”
“음?”
이게 맞나 싶어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재호.
그러다 곧 결심하곤 입을 열었다.
“혹시 생각이 있다면, 일 하나 해 보지 않을래? 미리 말하지만, 화원의 일은 아냐.”
갑작스러운 제안에 알로에올리오의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 * *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알로에올리오가 대지의 정령과 계약을 했을 때는 잠잠하던 퀘스트가 뒤늦게 완료되었다.
‘역시…….’
최초 퀘스트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알로에올리오의 정령 재계약]그런데 상급 대지의 정령과 계약을 하고도 완료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싶더라니…….
아무래도 이그리그는 재호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알로에올리오를 돕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뭐, 이게 돕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호 입장에서도, 알로에올리오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을 급히 준비했다.
“인사해. 이쪽은 쉰들러. 그리고 알로에.”
알로에올리오를 데리고 도마뱀 시티를 찾은 재호는 서로를 인사시켰다.
“반갑군. 알로에! 그런데 이 흙냄새 진동하는 녀석은 왜 내게 소개해 주는 거지?”
쉰들러는 알로에올리오를 위아래로 훑으며 물었다.
“게다가 낯이 익은 게… 지난번 화원을 찾아와 행패를 부리던 녀석 아닌가?”
“용케 기억하고 있네.”
“뭐, 꽃집 앞에서 그런 용기를 뽐내는 녀석은 잘 없을 테니까. 기억할 수밖에 없지.”
“그것도 맞는 말이야.”
재호와 쉰들러의 대화에 알로에올리오는 무안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했다.
“흥, 그나저나 이렇게 얌전해진 걸 보면 제대로 교육을 한 모양이군.”
“교육은 무슨. 그냥 오해가 있었던 것뿐이야.”
“그렇다고 치자고. 그래서 용건은?”
쉰들러에게 알로에올리오를 소개한 이유야 뻔하지 않겠는가.
“고급 인력을 지원해 주려고 왔지.”
고블린 왕국의 건설을 위해 열심히 땅을 닦고 있는 쉰들러.
그리고 재호는 그곳에 알로에올리오를 일꾼으로 투입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