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11
910화
언뜻 보기엔 평범한 모험가 파티로만 보였다.
하지만 푹 눌러쓴 모자 아래 번뜩이는 눈동자를 자세히 본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광기.
그 안에 가득 찬 불꽃은 그것을 의미했으니까.
즉, 쉽게 말해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인 것도 맞았다.
선두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이는 바로 가디언 길드 최후의 길마 장패드.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가 없는 남자였으니 말이다.
제국의 추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져 매일매일 도피 생활 중인 그가 수하들을 이끌고 엘리시아 화원에 나타났다.
그런데 장패드의 얼굴은 과거와 달랐다.
이미 대륙 전체에 얼굴이 팔린 탓에 늘 변장하고 다녀야 했기 때문.
함께 온 수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원 얼굴을 덮는 인조 피부를 덮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변장이었다.
덕분에 별다른 충돌 없이 엘리시아 화원까지 올 수 있었다.
“명심해라. 이번 일만 잘 처리된다면 길드의 추락한 이미지를 바로 세우고, 말단 길드원들인 너희는 바로 간부가 될 수 있다.”
장패드는 수하들을 향해 말했다.
“그런데… 곳곳에 엘프들이 있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이곳은 엘리시아 화원.
알시아와 엘프들의 심장부였다.
“저희가 저 안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약한 소리를 하는 수하를 장패드가 노려보았다.
“멍청한 놈들. 그러고도 가디언 길드라 할 수 있는 거냐?”
“예?”
“우리는 그 어느 때든 절대 물러서지 않고 전진해야만 한다. 물러서는 순간 죽음이다! 그것이 가디언 길드의 기개라 할 수 있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무한 도주 중인 가디언 길드 수장이 하기엔 민망한 소리였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누구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혼란.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장패드의 계획은 혼란을 통한 분란 조성.
천하제일 요리 대회 공고가 뜬 것을 보자마자 장패드가 떠올린 새로운 기회이자 계획이었다.
“알시아는 안일해졌다. 우리가 잠깐 잠잠하니 겁을 먹고 완전히 포기한 줄 안 거지. 이런 때가 바로 절호의 기회다. 그러니 이 순간만큼은 너희는 가디언 길드가 아닌 정령탑이 되어 희생하는 거다!”
장패드의 음흉한 계획은 다름 아닌 정령탑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
사람이 많은 만큼 가디언 길드엔 정령사 클래스를 지닌 사람도 많이 있었다.
다만 가디언 길드의 발호 이후, 그들은 길드 방침 탓에 정령탑을 나와야 했다.
그 뒤로는 모두가 알듯,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려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장패드는 바로 그런 이들을 동원해 정령탑인 척, 엘리시아 화원의 요리 대회에 훼방을 놓으려는 참이었다.
이를 통해 정령탑과 엘리시아 화원의 정면충돌을 유도하려는 게 계획이었다.
물론 이 일로 가디언 길드가 당장 이득을 보는 건 없었다.
하지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이클립스 이후로 알시아는 유독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는 것 같은 모습을 공개적으로 보여 주었다.
특히 이스파이어 공국도 다녀온 걸 보면서 장패드는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
‘돈은 사람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지.’
이럴 때 기습 공격을 당하면 멘탈을 완전히 무너트릴 수 있었다.
무적처럼 보이는 알시아라도 결국 여기저기 찌르다 보면 빈틈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목숨을 걸어 최선을 다하도록. 높은 분들이 지켜보고 계시니.”
장패드는 수하들을 향해 위협하듯 말했다.
“그럼 각자 위치로 가서 대기해라. 그리고 내가 신호를 주는 순간, 작전을 시작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명심해라. 가디언 길드는 반드시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
장패드와 그들은 흩어져 엘리시아 화원으로 진입했다.
‘대회장은 이쪽인가?’
그리곤 홀로 한참 대회가 진행 중인 대광장으로 향했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위기가… 왜 이렇지?’
사전 조사 당시, 대회는 내내 시장통이나 다름없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라고 들었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보고 받은 것과 완전히 달랐다.
지독하리만치 고요한 주변.
그리고 보이지 않는 벽이라도 있는 듯,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는 사람들.
“…어이. 여기 무슨 일이냐?”
장패드는 근처에 지나가던 사람을 잡고 물었다.
“응? 갑자기 그게 무슨 질문이야?”
“여기 요리 대회가 진행 중이지 않았나? 왜 이렇게 고요한 거야?”
“아아- 그 질문이었어? 너 혹시 오늘 막 도착한 거야?”
그는 광장 쪽으로 고갯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오늘이 대회 마지막 날이거든.”
“뭐?”
당황한 장패드.
작전을 준비해 왔지만, 상황을 여의치 않는다면 유보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무조건 실행하고 성공시켜야 한다는 뜻이었다.
갑자기 확 느껴지는 부담감.
“그럼 오늘이 결승이란 뜻인가?”
“이 친구 대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놀러 온 거야? 이건 결승이란 이름으로 따로 정해진 게 없어. 별점으로 점수를 매기니까.”
“그럼 왜 오늘이 마지막이란 거냐?”
“그야 특별 심사위원 중, 가장 신분이 높은 루로아 황녀가 왔으니까.”
“!!”
그제야 장패드는 이곳의 분위기를 이해했다.
그리고 곳곳에 서 있는 제국의 기사들 모습까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뭐, 공짜밥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온 거 같은데 오늘은 힘들 거야. 아! 그래도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 어차피 여기서 만드는 음식들은 딱히 전투에 도움 되는 버프는 없…….”
“닥쳐! 누굴 거지로 아는 거야?!”
“응? 뭐, 뭐야…….”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상대는 움찔하더니 투덜대며 멀어졌다.
우드득-
장패드는 다시 주변을 살폈다.
제국의 기사들이 있으면 원래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애초에 가능성 자체가 극도로 낮았다.
엘리시아 화원은 제국의 기사들이 아니어도 상당한 치안 수준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골목 어디에든 자리하고 있는 수많은 거지… 아니, 전럭협 길드원들.
그들의 은근한 감시의 눈과 신속 정확한 엘프의 출동 능력까지 합쳐지니 어지간한 범죄는 예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회로 한참 시끄러운 타이밍을 노린 것인데…….
‘젠장! 정찰을 왔던 놈들은 대체 뭘 본 거야?!’
혹시나 해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말단 길드원을 보내 정찰을 시켰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의 잘못된 정보력.
가디언 길드의 고질적인 문제가 또 한 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머릿수는 압도적으로 많지만,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문제가…….
‘어떻게 해야 하지? 가디언 길드 최고의 두뇌 장패드! 그것이 나다! 넌 할 수 있다!’
…라고 외쳐 보지만 캄캄한 눈앞은 밝아지지 않았다.
오늘이 아니면 다음이 없는 상황.
그러나 원래 계획대로 작전을 시도했다간 사실상 황녀 암살 시도로 비칠 수도 있었다.
정령탑인 척 연기를 해서 엘리시아 화원과의 분쟁을 유도해야 하는데, 정령탑이 황녀를 노린 것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대체 누가 그런 상황을 믿겠는가?
‘제기랄!! 어떻게 해야…….’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장패드는 순간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잠깐……. 차라리 그럼 그냥 저질러 버릴까?’
어차피 루로아 황녀 또한 자신의 적.
‘굳이 상황을 따질 필요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장패드는 귓속말을 보냈다.
“계획을 조금 수정한다. 목표 위치로 접근이 어려우면 엘리시아 화원 아무 곳에서도 괜찮다.”
-예? 그럼 금방 걸릴…….
“상관없다. 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목숨을 아까워하는 건 아니겠지?”
-아, 아닙니다.
가디언 길드의 꼴은 우습게 되었지만, 장패드의 권력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렇기에 말단 평길드원들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 * *
루로아 황녀의 심사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그리고 재호는 조금 떨어진 운영위 쪽에서 최종 점수를 취합 중이었다.
별문제 없이 좋게 진행되었고 이제 곧 마무리를 앞둔 상황.
오늘이 지나면 최종 10인이 선출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되려나 모르겠네.’
그런데 이들이 실력이 베기스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아직 대책이 없었다.
‘뭐, 그때가 되면 또 방법이 나오겠지.’
어쨌든 궁지로 몰리고 몰리다 보면 길이 나오긴 한다는 걸 재호는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다.
물론 그만큼 스트레스 받겠지만, 안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슬슬 마지막 요리인 거 같은데…….”
루로아 황녀 쪽을 다시 돌아보니 대기 중인 요리가 하나밖에 없었다.
그 요리를 바라보는 루로아 황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많이 변하긴 했어.’
예전엔 늘 무감정한 표정이었던 루로아 황녀.
이젠 곧잘 웃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즐기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이제 저주만 사라지면 완벽하네.’
그때가 되었을 때,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갈 준비가 충분히 된 것…….
“?”
그런데 순간, 루로아 황녀의 얼굴이 싹 얼어붙었다.
그리곤 재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모종의 눈빛을 보냈다.
‘…설마?’
황녀가 갑자기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하나를 의미했다.
‘뭔가 일이 벌어진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재호는 주변을 살폈다.
딱히 눈에 보이는 특이사항은 없었다.
하지만 루로아 황녀의 표정은 거짓말이 아닐 터.
“브리즈 씨! 전럭협 길드원들에게 당장 광장 주변을 집중 수색해 달라고 요청해 주세요!”
“예? 아, 예예!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재호의 표정만 보고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브리즈는 곧장 길드 전체에 공지를 띄웠다.
그러자 엘리시아 화원 내의 분위기가 일순간 바뀌었다.
평소 사람들이 비웃으며 바보 취급하는 전럭협 길드.
하지만 오직 하나의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순간 달라졌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전럭협 길드원들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엘리시아 화원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모든 거리, 골목, 개구멍, 건물, 술집 등등.
마치 스캔하듯 자세한 정보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항상 고정된 순찰 구역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들이기에 특이점은 빠르게 분석되기 시작했다.
-요리 대회 때문에 유입이 많아 확인이 쉽지는 않네요.
-난 하나 발견. 뭔가 눈빛이 초조해 보이는데? 그런데 표정이 없어.
-어? 내 쪽에도 그런 사람 하나 있음. 다리를 달달 떠는데 표정은 평화로움. 안면마비 있는 것처럼.
아직 의심의 근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대부분 전럭협 길드원들의 감.
하지만 전럭협 선배들의 교차 검증까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점점 신빙성이 생겨났다.
“알시아 님. 현재 엘리시아 화원 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있답니다.”
“위험인물일 가능성은요?”
“요리 대회 때문이라거나 엘리시아 화원을 방문한 외지인이라기엔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는 모양입니다. 또한 그들의 복식도 다 비슷한 게 같은 소속으로 추측된답니다.”
“그 소속은 어디죠?”
“거긴…….”
-브리즈 님!! 용의자들이 갑자기 정령을 소환하는데요?!
“!!”
다급한 귓속말에 브리즈는 얼굴을 찌푸렸다.
“방금까진 추측이었는데…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입니다. 정령탑 쪽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