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20
919화
고든의 요리는 최악이었다.
물론 마계의 요리 자체도 최악이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인간의 기준에서나 해당하는 말이었다.
악마의 입맛엔 마계의 음식이 맞았다.
인간에게 별로라고 해서 악마가 자신들의 음식에 똑같이 혐오감을 느끼진 않는다는 뜻.
물론 고든이 의도적으로 그들을 엿 먹이기 위해서 벌인 일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으니까.
괴식 요리 일인자로서 혼을 담았으며, 그 진심은 대공들에게도 어느 정도 전해졌다.
그러니 고든을 당장 죽이려 들진 않은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그런 경우가 있지 않은가?
상대방은 정말 진심을 다한 결과물인데… 너무 별로일 경우…….
“이딴 건 못 먹는다!!”
파이라는 분노하며 말했다.
“베기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알시아 저놈은 속이 아주 시커먼 놈이다. 이건 그냥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그놈이 꾸민 짓일지도 모른단 말이다.”
자신과 사도 계약이 된 상대라는 것조차 잠시 잊을 정도의 맛이기에 파이라는 격렬하게 거부했다.
물론 다른 계약자인 로두카는 이미 요리 접시를 살짝 밀어낸 상태.
안색이 나쁜 걸 보면 이 일을 꾸민 로두카조차 큰 충격을 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아! 알겠군. 베기스…… 네놈이 꾸민 짓이냐? 로두카가 우리를 불러 모은 것에 불만을 품고 일부러 골탕 먹이는 거 아니냐고?”
그들의 분노는 결국 고든을 섭외한 베기스를 향했다.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냐?!”
이렇게 끔찍한 요리는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냥 자신들을 욕보이려고 한 짓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
“할 말이 있으면 요리를 한 자에게 직접 해라.”
하지만 베기스는 무덤덤하게 대꾸하더니 홀로 음식을 계속 먹었다.
그 모습에 보고 있자니 소름이 끼칠 정도.
“어떻게 이 쓰레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먹는 베기스의 행동에서 광기까지 느껴졌으니…….
“말조심해라. 설령 입맛에 맞지 않을지언정, 이것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 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미친X…….”
아무리 그래도 이걸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면 굳이 저렇게까지 꾹 참고 먹을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요리사라 한들 한낱 미물.
자신들이 어디 그런 미물의 눈치를 볼 존재들인가?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이 요리에 담긴 요리사의 강한 의지가 그들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걸 막고 있었다.
“…젠장.”
그 누구도 더 먹을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더 두려운 건…….
“설마 정말로 열다섯 가지 요리가 남은 거야?”
그들은 절망적인 얼굴로 재호와 고든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았다.
* * *
고든은 이 요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공들인 만큼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요리를 마쳤을 땐 10년은 늙은 듯 야위어 있었다.
작은 의자에 주저앉더니 그대로 탈진해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바깥의 상황… 정확히는 베기스의 상태는 그보다 더 나빴다.
다른 이들은 먹는 시늉만 했지만,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은 베기스.
그건 식욕의 대공에게도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으며, 음식을 한껏 먹었음에도 오히려 며칠 굶은 듯 볼이 홀쭉해져 있었다.
심지어 새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까지…….
‘상태 아주 나빠 보이는데.’
만약 옆에 다른 악마들만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기습 공격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탁-
테이블로 다가온 재호는 그들 앞에 찻잔을 하나씩 내주었다.
“뭐냐…? 설마 아직도 남은 거냐?”
파이라가 질색하며 물었다.
“아니, 이제 끝이야. 차로 입가심이나 하라고.”
재호는 자신이 끓여온 꽃차를 악마들에게 따라주었다.
향긋하고 은은한 향기가 퍼지자 마침내 미소를 짓는 스트로앤 교황.
하지만 악마들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생명력 가득한 재호의 꽃차는 악마들에게 쥐약일 테니…….
“후! 살 것 같군.”
“?”
“꽤 기분 좋은 불쾌함이야.”
하지만 놀랍게도 악마들은 오히려 재호의 차를 좋아했다.
앞서 먹은 음식들이 얼마나 지독했으면 악마들이 꽃차를 좋아할까.
“그 요리사 놈은?”
파이라의 물음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탈진하고 쓰러졌어. 뭐, 오늘을 위해서 여간 고생한 게 아니었으니까.”
결과물과 상관없이 고든은 정말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다.
인간의 몸으로 마계의 온갖 위험한 요리들을 직접 먹어 경험했으며, 오늘의 요리를 위해 여러 차례 실험했다.
그 모든 결실을 보았으니 쓰러지는 게 당연했다.
‘뭐, 문제는 이제 앞으로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지만.’
재호는 그들 맞은편에 팔짱을 낀 채 섰다.
그리고 아주 뻔뻔한 질문을 건넸다.
“어때? 만족했어?”
“미친 거냐?”
“나도 미친 소리라는 거 알지만, 중요한 건 너희들이 아냐.”
재호는 단호하게 다른 이들의 의사는 잘라냈다.
괜히 다른 이들까지 따지고 드는 걸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로지 베기스의 감상.
‘좋아 보이진 않지만…….’
재호도 베기스가 음식을 맛있어하지는 않았단 걸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베기스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 다 먹었다.
그러니 어쩌면 나름대로 만족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최악이었다.”
…는 어림도 없는 기대.
베기스는 냉정하게 말했다.
“알시아. 네게 묻지. 정녕 고든 램페이지는 중간계 최고의 요리사가 확실한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베기스가 물었다.
“아무리 악마와 인간의 미각엔 큰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건 지나치다. 인간의 요리를 전혀 먹어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램페이지의 요리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근래엔 인간의 요리를 먹어 볼 기회가 많았던 베기스.
그렇기에 고든의 요리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분명히 느낀 것이다.
하지만 재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오직 하나.
“고든은 최고의 요리사가 맞다.”
‘최고의 괴식 요리사’라는 표현은 목구멍으로 삼켰다.
어차피 고든보다 더 대단한 요리사가 있다고 둘러댈 수도 없었다.
또 그런 소리를 해봐야 시간을 끌기 위한 말장난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딱히 데려올 만한 다른 요리사도 없었다.
“하나 짚고 가자고. 마계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륙에는 요리와 관련해서 특이한 문화(?)가 있다.”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재호의 머리와 입이 바빠졌다.
“특이한 문화?”
재호의 이야기에 베기스뿐 아니라 다른 대공들도 관심을 보였다.
“바로 신분에 따른 요리의 종류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
얼핏 듣기엔 당연한 이야기 같았다.
마계의 귀족들 역시 하급 악마들과는 차별화된 음식을 먹으니까.
“그 말은… 우리가 먹은 것이 대륙 최상류층 인간들이 먹는 음식이란 뜻인가?”
“최상류층이라는 표현도 모자라지. 고든은 황제를 위한 요리도 했으니까.”
“!!”
재호의 뻔뻔한 거짓말에 파이라는 입을 틀어막았다.
로두카 역시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재호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쟤들은 나랑 계약이 되어 있으니 거짓이란 걸 바로 알겠지.’
악마 중, 재호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둘.
부디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길 기도했다.
“솔직히 말하지. 나도 고든의 요리는 취향이 아니다!”
재호는 행여나 이 괴식들을 자신에게 먹일까 싶어 얼른 덧붙였다.
“보물의 가치는 그 보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만이 알아보는 법! 악마인 너희가 이 음식의 진정한 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뭐라고? 건방진…….”
솔아이가 뭐라고 하려는 순간, 재호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오해하지 마. 너희 급이 떨어진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니까.”
그 말에 솔아이는 다시 숨을 고르며 침착을 찾았다.
“생각해 봐. 대륙의 보물이 마계에서도 보물일까? 애초에 완전히 다른 두 세계다. 물론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석도 있겠지만, 적어도 요리에서는 아니겠지. 대륙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요리는 천차만별이니까.”
그리 말했지만, 사실 고든이 이번에 만들어낸 괴식은 두 세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즉, 재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의 예시로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내 꽃차를 봐라!”
그러나 꽃차는 달랐다.
대륙에서도 충분히 먹히는 특별한 차.
하지만 악마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음의 정확한 예시.
“이렇게 미각이란 것은 다르…….”
“이건 그럭저럭 마실 만했다.”
“…어?”
생각지 못한 파지크의 말에 재호는 당황했다.
“맞아. 오늘 먹은 것 중, 이게 제일 괜찮은 것 같군.”
솔아이까지 동의했다.
악마와 상극이어야 할 꽃차가 오히려 가장 맛있다는 비정상적인 상황.
‘젠장! 괴식 때문이다!’
최악의 경험 이후엔 뭘 먹든 맛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재호는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급히 말을 붙였다.
“그, 그만큼 다르다는 거다! 이 꽃차는 아무나 마실 수 있는 평범한 것인데, 더 고급인 고든의 요리보다 좋게 느껴지는 걸 봐!”
결국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선택을 한 재호.
“어쨌든 중요한 건 하나다! 미각이란 각 종족에게 맞춰진 기준이 있는 법. 굳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곳을 뒤져봐야 그 욕망이 해결되진 않을 거다. 베기스!”
베기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전했다.
“네가 바라던 대륙 최고의 요리사를 어렵게 데려왔다. 하지만 넌 만족하지 않았지. 그럼 직접 대륙으로 넘어와서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요리를 내놓으려는 작정이야?”
만약 직접 대륙으로 넘어가 확인했음에도 입맛에 안 맞으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천계까지 들쑤시게? 거기도 마음에 안 들면? 아니, 무조건 마음에 안 들 수밖에 없을 텐데?”
“…….”
베기스는 가만히 눈을 감더니 한참 침묵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선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 모양.
“램페이지의 요리는…….”
그리고 마침내 베기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최악이었다.”
이미 했던 말을 반복한 베기스.
“정말 맛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끔찍하며 요리 자체를 부정하는 요리는 처음이었다.”
정말 신랄한 평가가 이어졌지만, 이어진 베기스의 말에는 조금 다른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이처럼 진지한 요리는 처음이었다. 분명 끔찍한 악의가 담겨 있을 것만 같은 맛인데도 그렇지 않았지. 여기엔 한 인간의 인생과 신념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이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요리지.”
베기스는 깔끔하게 비운 자신의 그릇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요리들에 담긴 한 생명의 삶을 음미하며 먹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로군. 하여 나는 결심했다.”
베기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대륙의 요리에 관심을 끊겠다.”
“?!!”
드디어 재호가 바라던 답을 돌려준 베기스!
“저, 정말로?”
“그렇다. 이미 최고의 요리를 맛보았으니 다른 것까지 욕심부릴 필요는 없지.”
“맞는 말이야.”
재호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베기스는 다른 악마들을 돌아보았다.
“요리를 먹을 줄 모르는 이 무식한 녀석들은 램페이지의 요리에 입도 대지 않았다. 저들을 위해 제대로 된 마계의 음식을 대접해야겠군.”
그렇게 말하곤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는 베기스.
“?”
그런데 멀어지는 베기스를 쳐다보던 재호는 발견했다.
그의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차라리 베기스가 중간계의 음식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는다면 이 난리도 안 났을 테다.]그 순간, 베기스에 대해 파이라가 했던 말이 떠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