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22
921화
늘 여유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로두카.
그런 모습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또한 그런 태도를 견지할 힘과 두뇌도 가지고 있었다.
먼 과거의 로두카는 미래, 즉 현재의 모든 상황을 예측하여 큰 그림을 그려 놓았을 정도니까.
가히 신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될 정도로 괴물 같은 존재.
심지어 이클립스를 다녀온 재호는 사실상 로두카가 현 마왕보다 더 격이 높은 존재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그녀는 말 그대로 태초의 마계와 함께 시작한 존재였으니까.
단순히 대악마라는 범주에 다른 대공들과 묶어 두기엔 급 차이가 너무 컸다.
그런데 지금 로두카에게선 그런 카리스마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피곤함에 찌든 듯한 모습이었으니…….
아니, 언뜻 억울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기억도 없는 과거의 로두카가 미래이자 현재의 자신에게 맡겨 놓은 이 어려운 책임을 말이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긴 했지. 하지만 내가 아니면 할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해. 너도 알다시피 악마란 본능적으로 투쟁하고 침략하려는 존재들. 과거 몇 차례 중간계를 침략했던 것, 힘 좀 쓴다는 녀석들이 계속 대륙에 간섭했던 것들이 그 증거야. 하지만 그 욕심의 책임은 마계 전체가 분담해야 하지.”
로두카의 진심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재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간계에 계속 간섭하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물론 로두카는 조금 다른 방식이긴 했다.
물리적인 침공처럼 직접 간섭이 아닌 중간계 생명체의 꿈을 이용하는 방식.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더 은밀하고 치밀한 방식이기도 했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을지 모르기론 최고였으니까.
“결국 너도 중간계에 대한 욕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사실상 모든 악마 중, 가장 위험한 건 로두카였다.
“인정해. 당연히 그렇게 보일 만하지. 나도 핑계를 댈 생각은 없어. 나도 악마니까. 힘을 키우고 유지하려면 필연적으로 살아 있는 인간의 정기를 흡수해야만 하지. 쓸데없는 분쟁은 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인간을 위해 날 희생할 마음은 전혀 없어. 이해하지?”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마계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저 중간계 침략은 마계를 위한 일이 아니기에 하지 않을 뿐. 그건 오직 탐욕에 불과해.”
“…….”
문득 재호는 로두카의 이런 생각 덕분에 대륙이 아직 멀쩡하단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최초의 전쟁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후회의 결과일지도.
“하지만 나도 조금씩 지치긴 해. 마계의 힘도 조금씩 차오르니 더더욱.”
정말 로두카답지 않은 이야기의 연속.
그만큼 오랜 시간 이어 온 자신의 숙명이 이젠 버겁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나한테 도와달라는 거야?”
“후후… 그런 셈이지. 많이 바라지는 않아. 결국 너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지. 만일 대륙을 직접적으로 노리는 악마가 있을 때, 손을 빌려달라는 것이니까. 대륙에 일이 터지기 전에 선제적으로 막을 수 있다면 서로 좋은 일이지 않겠니?”
그 말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악마들이 대륙에 나타나면 어떤 개판이 벌어지는지 몇 번이나 경험해 보았다.
다행히 잘 막아 내긴 했지만, 언제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는 모를 일.
만약 마계 쪽에서 사전 차단이 가능해지면 그만큼 대륙은 안전할 수 있었다.
‘스트로앤 교황에다 파이라, 로두카까지면 마계의 3분의 1 정도는 이쪽 세력이 되는 건가.’
사실 파이라는 아군이라고 보기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이쪽에서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짓궂구나, 정령화장아. 힘들어서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하다니.”
“네 부탁이 내게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이것도 결국 네가 바라는 것과 어느 정도 공유하는 지점은 있어.”
재호가 로두카에게 부탁하려는 건 현재 키노에게도 부탁해 놓은 일이었다.
바로 대륙에 숨은 악마 추적.
“마계 전체의 마기가 강해지면서 대륙의 악마들도 힘이 커지는 모양이야.”
“흐음……. 이 일이 그쪽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었나?”
그건 몰랐다는 듯 말하는 로두카.
“나도 몰랐어. 최근 악마들에게 직접 확인하고서야 알 수 있었으니까.”
“확실히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음흉한 일을 꾸민 악마의 주인들이 알게 된다면 골치 아플 테야.”
하지만 로두카는 대공들 쪽에선 큰 문제가 없으리라고 보았다.
“당분간 그들은 딱히 관심이 없을 거야. 베기스가 위험했지만, 이번에 해결했으니까. 문제는 그 아래의 애매한 녀석들.”
사실 로두카가 재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도 그런 이들을 하나하나 억제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륙에 얼마나 많은 악마가 숨어 있을지는 모르지 않니? 그걸 하나하나 다 대응할 순 있을까?”
로두카의 물음에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꼼꼼하게 찾아낼 필요는 없어.”
어쩌면 엠베이 숲의 악마들처럼 주변에 딱히 피해는 주지 않고 정착한 악마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나하나 다 찾아내서 쫓아 내는 건 인력 낭비야.”
또한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괜한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악마답게 살던 놈들이야 상관없었다.
그냥 잡아 죽이면 될 일.
하지만 대륙에서 이미 정착해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특히 엠베이 숲의 악마들이 탈영병인 것처럼, 돌아가면 영원한 고통밖에 없는 신세인 녀석들이라면…….
생존이 달린 문제이니 필사적으로 저항할 터였다.
“그런 녀석들이라면 차라리 대륙에 조용히 살게 내버려 두는 게 낫지.”
“너도 참 별종이야. 악마라 하면 대륙에서 당장 지워 버리려고 하는 것이 보통의 반응인데 말이야.”
로두카는 작게 웃더니 다시 몸을 가로로 눕혔다.
“악마와 인간의 공생이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정령화장 너로 인해 벌어지는구나. 아니, 정령화장 자체가 그런 편견 없는 존재만이 될 수 있는 걸지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로두카는 말을 이었다.
“좋아. 이쪽에서 대륙의 악마들을 한번 알아봐 줄게. 우리 아이들을 이용하면 인간 사이에 숨은 악마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야.”
몽마를 이용해 사람의 꿈속 무의식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려는 게 로두카의 계획이었다.
“좋아. 그런데 혹시 그렇게 하면 사람한테 부작용은 없어?”
“뭐든 지나칠 때 독이 되는 법이야. 나도 굳이 너와 척지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렴.”
그렇게 재호와 로두카의 협력 관계는 성사되었다.
아니, 애초에 둘은 이미 동맹이나 다름없는 관계이긴 했지만 말이다.
“동맹 좋지. 그럼 동맹에게 묻고 싶은데, 혹시 전에 말했던 밀수업자 건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니?”
“아, 미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엉덩이가 불에 덴 듯 펄떡 일어난 재호.
“후후, 뭘 그리 급하게 가려고 하니? 별로 너를 책망할 생각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렴. 네가 그 일에 무신경하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크흠…….”
재호는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뭐, 그렇지 않아도 최근 조사를 본격적으로 조사한 참이야.”
“그래. 대충은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너와 친분이 있던 반인반마에게 도움을 청했더구나.”
로두카가 말하는 반인반마는 키노란 걸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네. ……가 아니라. 예전에 분명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과거 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 재호였지만, 로두카의 그저 장난스러운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뭐, 됐어. 이제 와서 그런 걸 따져 봐야 의미도 없으니까.”
“그렇지. 어쨌든 제법 놀라운 아이야.”
그 한마디에 재호는 새삼 소름이 돋았다.
‘아이…….’
키노는 뤼니오르 같은 마탑주들을 아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런 키노를 아이라고 부르는 로두카…….
이런 점까지 닮은 둘의 태도나 말투지만, 재밌는 점은 미묘하게 키노의 태도가 더 늙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비록 반이라곤 해도 서큐버스의 피를 이은 이상 나는 그 아이를 느낄 수 있지. 아마 그 아이 또한 내가 지켜보고 있음을 알 거야.”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닌 건가?”
“딱히 관여하진 않았지. 그리고 그 아이는 내 생각보다도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보였기에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었어.”
“맞아. 키노가 괴물이긴 하지.”
“후후- 겨우?”
“어… 그야 네 기준에선 모자라겠지만, 키노 정도면 대륙에선 범접할 만한 존재가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아니,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그 아이는 겨우 괴물이라고 표현할 정도가 아니란 거야.”
“응?”
“아마 지금도 파이라나 디아키의 힘은 넘어선 것 같은데?”
“뭐?! 정말로?”
“흥미로운 아이야. 본디 악마란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닌 채 태어나는 존재이거늘. 뛰어난 성장 가능성을 지닌 인간과 섞이어 끝없이 강해지고 있으니까.”
무척 불안하게 들리는 감탄이었다.
아무리 키노를 믿는다지만 여기서 더 강해진다고……?
특히 키노의 과거를 생각하면 걱정되는 이야기였다.
다른 존재의 생명력을 흡수하며 자신의 수명과 힘을 키워 온 게 키노였으니까.
“서큐버스의 피를 품고 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순수 서큐버스와 달리 물질계에 존재가 묶여 있으니 그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 아이의 문제는 걱정하지 말렴. 오랫동안 지켜보아 온 만큼 나 또한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까.”
“생각해 둔 거라니……. 설마 키노에게 해코지를 하려는 건 아니지?”
“아이고… 정령화장아……. 너도 참 생긴 것과 다르게 정이 많구나. 방금까지 키노란 아이가 저지를 미래를 걱정하더니 이젠 또 안위를 걱정하는 거니?”
“나중 일은 몰라도 지금은 서로 가까운 사이니까. 나쁜 상황을 피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지.”
재호는 주변의 사람들을 쉽게 내치는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계산적인 척하면서 도와줄 건 다 도와주는 호구가 재호였으니까 말이다.
“네가 우려하는 일은 없을 거야.”
로두카는 단호히 말했다.
“내가 우려하는 게 뭔 줄 알고?”
“혹여 그 아이를 죽여 내가 힘을 흡수하진 않을까 싶은 것 아니니?”
“……대충 맞아.”
“나는 이미 허락된 최대치의 힘을 가지고 있기에 더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단다. 그 아이에겐 따로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하지만 그것까지는 네게 이야기해 줄 수 없음을 이해해 주렴.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지금 이야기할 게 아니라며 넘어가려는 로두카.
그리고 재호도 계속 캐물어 봐야 좋지 않은 반응만 나올 거란 걸 알곤 멈췄다.
“알았어. 따로 더 할 말은?”
“이쯤이면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것 같네. 중간계의 악마와 관련해 소식이 있다면 전해 주도록 할게. 앞으로 잘 부탁해.”
찡긋-
소름 돋는 로두카의 윙크를 받은 재호는 몸을 부르르 떨곤 티나와 함께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후후… 정령화장들은 어쩜 저리 똑같은지…….”
홀로 남은 로두카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하지만 이내 완전히 탈진한 듯, 몸을 축 늘어트리며 눈을 감았다.
“그나저나 슬슬…….”
목소리까지 갈라질 정도로 지친 그녀.
“끝이 다가오는구나.”
그렇게 말한 로두카는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곤 정말 오랜만에 자신의 꿈을 꾸었다.
현재의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는… 의미 모를 먼 과거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