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47
946화
냉철한 상황 분석 능력의 아르시오 기사왕.
하지만 재호는 그 너머에 숨겨진 그의 본능(?)을 꿰뚫어 보았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기사도에 부합한다면 그곳이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남자.
물론 재호는 그 기사도가 뭔지 잘 모른다.
애초에 기사도라는 개념은 현대인, 특히 한국인에겐 낯선 개념이었으니까.
그래서 쉽게 이해하기로 했다.
[기사도=상남자]물론 여기서 상남자의 의미는 그리 좋기만 한 건 아니지만.
“의리! 사나이의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제가 왕위에 오른 뒤, 그런 뜨거움은 느낄 기회가 없었습니다. 모두가 사람을 현혹하려는 간사한 말만 하니 좋아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마 그의 말처럼, 순수한 의도로만 그를 찾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이 목적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
애초에 재호도 그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지 않았는가?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 이유도 없이 한 나라의 왕을 찾아오는 건 보통 미친놈 소리를 들을 법한 짓이니까.
그렇다면 아르시오 기사왕이 말하는 ‘사람을 현혹하려는 간사한 말’이란 사실 지극히 평범한 귀족 화법이나 외교 수사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재호도 이런저런 포장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한 것이다.
약간의 변화구를 섞어서…….
다행히 결과적으로 그건 잘 먹혔다.
“하지만 아무리 상남자라고 해도 무모했습니다. 어떻게 단신으로 그렇게 많은 성기사들에게 뛰어들 생각을 했습니까?”
“친구가 위험에 빠졌다는데 앞뒤 따지겠습니까? 일단 뛰어와야죠. 그리고 그 정도로 많을 거라고도 생각을 못했고…….”
그래서 함께 출발했던 티나는 채드 왕국으로 따로 보내 서한을 전달한 것…… 이라고 이미 준비해 놓은 핑계를 댔다.
힐끔-
그러면서 다시 재호 옆을 차지한 티나를 살펴보는 재호.
서한을 전달하며 입단속은 단단히 시켜 놓았었다.
기사도(?) 넘치는 그녀가 입을 잘못 놀리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일이 잘 끝난 걸 보면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모양.
“하하, 처음 엘프가 저희를 찾아왔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아르시오 기사왕 또한 티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더군요. 엘프라 하면 엘리시아 화원! 엘리시아 화원이라 하면 알시아 대왕!”
“예?”
“그리고 이름을 들었을 땐 더욱 놀랐습니다. 티나! 대왕의 그림자이자 엘리시아 화원 최강의 무력! 그런 존재가 대뜸 나타나 대왕의 친서를 내던지면서 소리치는 거 아니겠습니까?”
순간 재호의 얼굴은 핼쑥해졌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듯한 티나의 서한 전달 방식.
“내, 내던졌다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핵심은 티나가 했다는 말.
“당장 병력을 이끌고 튀어 나가지 않으면 몽땅 조져 버리겠다고 말했습니다.”
“?!!”
재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렇게 신신당부 했거늘!
그냥 재호의 명령으로 서신을 전달하러 왔다고만 하면 된다고.
웃긴 소리지만, 티나는 바보가 아니다.
다른 엘프들과도 평범한 대화를 잘 나누고 전투 상황이 아닌 일상은 아주 평화로웠다.
흔히 사람들이 상상하는 판타지 속 엘프 그 자체.
문제는 상대가 ‘엘프’일 때로 한정된다는 것.
그래서 그냥 꾹 참고 입을 다물기를 바랐고, 티나도 이해한 것으로 생각했다.
“크흠……. 상황이 워낙 급하다 보니 조금 흥분했던 모양이군요.”
그런 소리를 듣고도 아르시오 기사왕이 와 준 것이 놀라울 지경.
“사, 사과드리겠습니다.”
재호는 아르시오 기사왕에게 민망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건 사과를 하실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은 그 이상이었다.
“정말 감탄했습니다. 과연 채드 기사단 소속 여기사들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호걸입니다.”
“…예?”
“그야말로 상여자! 아니, 상엘프라는 게 옳겠습니까?”
“…….”
둘 다 이상했다.
“다른 귀족들처럼 온갖 멋을 부리며 제 눈치를 봤다면 저는 믿지 않았을 겁니다. ‘어디 그런 소인배가 알시아 대왕의 이름을 팔아?’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서신을 입구에서 냅다 던지는 순간, 이미 저는 검을 챙기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싸우려고 일어난 게 아니고요?”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심지어 그 말에 티나도 동의했다.
“제법 말이 통하는 사람이었어요.”
“?”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두 사람은 딱히 이야기를 나눈 것 같지도 않았다.
“후… 아니다.”
재호는 하고픈 말들을 삼켰다.
뭐, 따지고 보면 사실 티나는 그게 아니더라도 기대 이상의 인내심을 보여 주긴 했다.
‘그래……. 전장으로 절대 합류하지 말라는 건 지켰으니까.’
만약 도주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럼 티나가 함께 있는 것보단 재호 혼자가 훨씬 나았다.
반대로 티나 전투에 뛰어들었다면?
절벽엔 빨간 폭포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만 해도 티나는 초인적인 인내력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 * *
재호는 아르시오 기사왕을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채드 왕국 입장에선 정체를 숨긴 교단 연합의 병력이 영토 인근에 나타났다는 것만으로도 문제로 삼을 만한 일이었다.
아르시오 기사왕은 그보다 재호의 의리에 더 집중하는 것 같긴 했지만.
‘솔직히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
한편 교단 연합의 성기사들은 신문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일단 잡혀 오긴 했지만, 더는 형편없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는 마지막 자존심.
뭐, 그렇다 해도 정황 증거는 충분했다.
정체를 숨긴 성기사들이 떼로 몰려가 이스터디 신성국의 교황을 노렸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모자람이 없었으니까.
물론 혹자는 재호가 왜 하필 진아 일행이 있는 곳에 나타났는지를 두고 의문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특히 교단 연합, 정확히는 옵티마 교단 쪽에서는 그걸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스터디 신성국과 재호와의 관련성을 제기하면 신성국의 정통성을 폄훼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세상에 어떻게 알려지느냐?’였다.
진아와 다른 일행은 대륙 순방 중, 정체를 숨긴 성기사단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뒤늦게 그 위험을 알아챈 재호가 나타나 복수를 시도했다.
진짜 진실은 현재 가장 강력한 증인인 아르시오 기사왕조차 몰랐으니, 이것이 곧 진실이었다.
게다가 채드 기사단은 백트 교단 소속 성기사가 사용한 스킬도 목격했다.
그 흔적이 지상에 남기도 했고, 특히 그가 사용했던 검엔 신성력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증발하겠지만, 증거품으로 느긋하게 써먹을 정도로 농밀했다.
인내심을 챙기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된 것.
한편 재호는 아르시오 기사왕에게 포세이돈 교단과 관련된 이야기는 전혀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 역시 포세이돈 교단과 옵티마 교단의 분쟁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봤을 때 이번 사건과 딱히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옵티마 교단의 일방적인 히스테리일 뿐, 포세이돈 교단이 그들을 상대로 뭔가를 했단 증거는 없었다.
그저 ‘포세이돈 신께서 노하셨다!’라는 출처 불명의 소문과 옵티마 교단의 의심만 있을 뿐.
여러모로 교단 연합 쪽이 불리한 상황.
이미 활활 타고 있던 그곳에 아르시오 기사왕이 기름을 퍼부었다.
바로 아르시오 기사왕의 공식 항의가 교단 연합에 전달된 것!
다행히 공식 입장에서까지 아르시오 기사왕이 ‘의리’ 타령은 하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타국의 땅 인근에서 확인되지 않은 교단 연합의 병력 파견에 대해 문제로 삼았다.
사실 언뜻 듣기에 이 일은 딱히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했다.
대형 길드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거나 귀족이나 왕족이 대륙 이동 시, 대규모 호위를 이끌고 움직이는 경우는 흔했으니까.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교단 연합이 정체를 숨겼다는 것.
만약 애초에 걸리지 않았다면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재호 탓에 들통이 나 버렸고, 하필이면 시선을 피하고자 인원을 분산시켜 이동시킨 게 발목을 잡았다.
그만큼 많은 병력이 움직이는 걸 경로상의 영지들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로선 소름 끼치는 상황이었다.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여 교단 연합이 다른 마음을 먹었더라면?
차마 정면으로 들이받을 자신은 없었는데, 마침 채드 왕국에서 나서 주니 얼씨구나 의견을 보태는 상황이 벌어졌다.
-근데 요즘 교단 연합 아무리 삽질하는 중이라고 해도 저런 듣보 왕국이 깝칠 깜냥은 됨?
└음? 채드 왕국 모름?
└채드 왕국이 뭐임? 이름부터 수상한 냄새 나는데.
└닉값 하는 곳임.
-정보)채드 왕국이야말로 대륙의 진짜 최강국이다.
└얘는 또 뭐임?
└최강국ㅋㅋㅋ 근데 인정.
└솔직히 채드 왕국은 인정이지.
└지금까지 채드 왕국이 알려지지 않은 건 다른 곳이랑 수준 차이가 너무 나서임.
└ㄷㄷ제국 이제 조졌다. 앞으로 채드 제국 시대다!
└얘들 갑자기 다 어디서 튀어나온 거임;;
-정보)지금 갑자기 나타나는 놈들 죄다 채드단임.
└채드단?? 그건 또 뭐냐?
└채드 왕국 거점으로 활동하는 놈들인데, 거기 엘리시아 화원 못지않은 광신도들 모인 곳이니 조심해.
└광신도 맞지. 중갑 광신도.
└대륙의 진짜 상남자, 상여자들이 모인 곳! 판타지 낭만이 가득한 곳! 그곳이 바로 채드 왕국이다!!!
└이제라도 채드 왕국이 최고로 인정받는 걸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ㅜㅜ
└? 누가 인정함?
-아니, 저것들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갑자기 다 튀어나옴?? 역겹네.
└평소에는 채드단이랍시고 떠들어 봐야 아는 놈들이 없어서 별로 어그로가 안 끌렸었음.
└아… 알시아 개자식이 게시판에 채드단 뿌렸네.
커뮤니티에선 갑자기 등장한 채드 왕국에 집중되는 관심.
아니, 그냥 어그로가 끌렸다고 봐야겠지만.
그런데 채드 왕국과 아르시오 기사왕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들의 성향이나 외모 등, 특징적인 부분들이 낯이 익은 게…….
-이거 아나볼릭 교단 아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 아니구나ㅋㅋㅋ
└그냥 갑옷 입은 아나볼릭 교단 같은데?
커뮤니티와의 분위기는 이렇듯, 채드 왕국에서 발생한 사태의 본질에 집중하기보다는 유머로 소비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채드 왕국이 지닌 캐릭터성이 강렬했기 때문이었지만, 인게임에서는…….
꽈앙!!
벌떡 일어나며 주먹을 내리치는 옵티마 교단의 탄보르 교황.
얼마나 힘을 줬는지,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도로 휘청이며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 이게 무슨…….”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창백한 안색의 대주교가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골치 아픈 자에게 걸렸습니다. 다른 곳이면 적당히 무마할 수 있을 텐데… 하필 아르시오 왕이라…….”
아무리 이름값이 다소 부족한 왕국이라 하지만, 아르시오 기사왕의 이름은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그는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미친개였으니까.
“이미 제국을 비롯해 대륙 유수의 나라들에 항의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대체… 대체 왜…….”
이상적인 건 교단 연합에 직접 항의하는 상황.
하지만 채드 왕국은 공개적으로 교단 연합의 행보를 비난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대륙 곳곳에 교단 연합 규탄서를 보내기까지.
본인은 엉덩이 묵직하게 앉은 채, 다른 사람이 엉덩이를 열심히 움직이게 만드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