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59
958화
키노의 말에 재호는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괜히 그녀 앞에서 아쉬운 티를 내면 약점만 잡힐 것 같았기 때문.
하지만 이미 재호의 어깨가 들썩이는 걸 본 키노의 눈이 가늘어져 있었다.
“후후,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걸까? 혹시 뭔가 숨기는 거라도 있는 것이냐?”
“…….”
역시나 재호가 아는 사람 중, 눈치론 정상급인 그녀.
“숨기긴 개뿔. 이걸 빌미로 뭘 뜯어내는 거 아닌가 걱정돼서 그러지.”
들킨 마당에 되지도 않은 연기를 해봐야 역효과만 날 터.
결국 재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날 너무 매정하게 보는 게 아닌가 싶구나. 난 그렇게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란다.”
키노는 섭섭하다는 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무서운 키노.
“크흠……. 일단 알았어. 그럼 일단 들어보자고. 나도 해줄 이야기가 있으니까.”
“흥. 쌀쌀맞긴.”
샐쭉한 표정을 보이던 키노는 이내 바깥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흑마법사가 두 사람 사이의 테이블에 양피지 몇 장을 내려놓았다.
“다른 마법과 달리 흑마법은 아주 끈덕지고 지저분한 기질이 있단다. 특히 마기와는 상호작용이 꽤 강하게 일어나는 편이지.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르다지만, 흑마법이 추구하는 방향을 생각하면 마기와 은근히 닮은 구석이 있으니 말이야.”
키노의 설명을 들으며 재호는 양피지를 살폈다.
양피지에 적힌 것들은 사람들의 이름과 활동 거점 및 나이, 직업 등등.
“그런 특징을 이용해 조사했더니 곳곳에서 활동 중인 악마들이 제법 걸려 나오더구나. 가뜩이나 대륙에 숨은 악마들의 힘이 강해지는 중이니 탐지도 그리 어렵진 않았지.”
“그럼 여기 적힌 이름들은 전부 악마란 건가?”
“맞아. 그들의 가짜 신분이지.”
“이렇게나 많은 악마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고?”
“그야 당연하지. 네 땅의 악마들처럼 대놓고 본래 모습으로 살아가는 녀석들이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
엠베이 숲에서 발견한 악마들이 특이한 경우였다.
그보다 먼저 만났던 악마 앵글러만 해도 인간으로 변장을 한 상태였는데, 엠베이 숲의 녀석들은 대놓고 본래 모습으로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엠베이 숲 자체가 오랜 시간 접근이 차단된 탓에 녀석들이 편히 살 수 있었던 것이긴 했다.
그럼에도 안일했음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아니, 녀석들이 유별나게 멍청해서 그런 걸지도.’
잠시 엠베이 숲 악마들의 첫인상을 떠올린 재호는 그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멍청해서라고.
“이 목록의 악마들은 지금도 이 위치에서 활동 중이야?”
“그렇지. 굳이 우리로선 확실한 근거 없이 먼저 건드릴 필요가 없거든.”
그들 배후에 대악마가 있을 가능성이 높거늘, 밀수업자인지 확인하겠답시고 하나하나 찔러대면 마계 쪽에서 어떤 보복이 있을지 몰랐다.
이제 키노는 대륙의 일원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입장.
대륙의 사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면 알겠지만, 그들 중엔 사회적으로 지위가 제법 높은 녀석들도 있지. 목적은 몰라도 나름대로 열심히 대륙의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야. 그런 자들을 대뜸 건드리면 우리를 향한 대륙의 평판에도 영향이 있지 않겠느냐?”
“하긴…….”
재호는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목록에 적힌 이름은 거의 300명.
이게 대륙에서 활동하는 악마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 명단을 바탕으로 전럭협과 레드벌룬이 조사를 한다면 꽤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아, 다만 대놓고 악마 활동을 하는 녀석들은 처리했단다. 흑탑의 이미지 개선이 목적으로 하니 그런 것까지 모른 척할 순 없지.”
챙길 건 알아서 잘 챙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혹시 이 명단을 내가 가져가도 될까?”
“후후, 그러렴.”
키노는 순순히 승낙했다.
“그럼 슬슬 네가 하려던 이야기가 뭔지나 해보렴.”
이번엔 재호에게 차례를 넘긴 키노.
“는 아직 쓰고 있어?”
“음? 갑자기 그건 왜 궁금해하는 것이냐?”
“아무래도 그 물건이 생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싶어서 말이야. 한번 확인을 했으면 해.”
재호는 새로 알게 된 관련 의혹을 알려주었다.
“흠… 그렇단 말이지…….”
팔짱을 낀 채 얼굴을 찡그리는 그녀.
“곤란하구나.”
그 모습이 자못 심각했기에 재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는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거든.”
“뭐?”
깜짝 놀란 재호.
“네가 쓰고 있던 거 아니야?”
당연히 키노의 수명과 젊음을 위한 도구로 쓰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 외 다른 곳에 쓸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설마…….”
만약 외부에서 전혀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넘겨짚지 말렴.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으니까.”
키노는 그녀답지 않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네 말대로 아주 요긴하게 그 물건을 쓰고 있었지.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단다.”
“사라졌다고? 흑탑 안에 있던 게?”
그건 생각보다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흑탑, 심지어 키노가 특별 관리하던 물건이 사라졌다?
불가능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면…….
“후후, 아주 날 거짓말쟁이라고 확정 지은 듯한 얼굴이구나.”
“아니… 솔직히 믿기 어려운 게 당연하잖아. 다른 곳도 아니고 네가 떡하니 지키고 있는 곳이 털렸다고?”
그 사실을 재호한테 알리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소유권을 넘긴 마당에 하나하나 알릴 이유는 없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키노가 절도 피해자라는 건…….
“나도 어찌나 놀랐는지. 그런 당황스러운 기분은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았느니라. 정말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더구나.”
“그것도 그렇겠네. 사실상 까마득한 과거에나 있었던 일일 테니까.”
제대로 힘을 갖춘 후론 그런 일이 없었을 터.
“그렇진 않아. 네가 우리 은신처에 쳐들어왔던 것도 못지않게 당황했었단다.”
“…….”
“후훗- 아무튼 나보다 네가 더 놀란 것 같구나.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 걸 보니.”
“크흠. 그야 당연하지! 그나저나 그걸 들고 튄 놈이 우리가 찾는 악마일 가능성이 크네.”
“내 거짓말은 의심하면서 내부자의 소행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냐?”
“음? 그걸 말이라고?”
그거야말로 절대 불가능했다.
키노의 흑탑 장악력은 다른 마탑과 비교 자체가 불가했으니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네 말이 맞다. 내부자는 아니고, 외부의 존재가 가져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더구나. 대신…….”
키노는 자신의 입술을 검지로 부드럽게 훑었다.
그러자 묻어나온 붉은 자국.
그것을 가볍게 후- 불자 희미한 연기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이어 그것은 서서히 옅어지더니 완전히 사라졌다.
“?”
어리둥절한 재호.
“침입 흔적이 없을 뿐, 탈출 흔적은 남았더구나. 그렇다고 해도 놀랍긴 마찬가지지만.”
재호의 다시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추적 중인가?”
“그렇긴 하다만 상대도 보통이 아니긴 한 것 같구나. 방금 보여준 것이 추적향인데, 어디로 꼭꼭 숨은 것인지 아직 감지가 되지 않고 있느니라.”
상대의 정체에 대한 확신이 더욱 굳혀질 만한 이야기였다.
“조금 전까진 호기심이 컸지만,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코 놓쳐선 안 되겠구나.”
“그렇지. 혹시 내가 도울 건 없어?”
“녀석의 추적은 내게 맡겨두렴. 너는 그 목록에 있는 악마들과 앞으로 추가되는 녀석들에 대해 계속 주의를 기울이거라. 녀석이 혼자가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까. 혹여 목록이 있는 녀석 중, 동료가 있을지 누가 알겠느냐?”
“좋아. 일단은 그렇게 할게.”
명단을 챙겨 흑탑을 나선 재호.
화원으로 돌아와 바로 필사한 뒤, 각각 전럭협과 레드벌룬 쪽에 넘겨두었다.
재호가 직접 명단의 악마들을 확인하려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재호가 움직이는 건 오히려 대륙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상대를 긴장시킬 뿐이었으니 말이다.
* * *
재호는 차분히 소식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가하진 않았다.
여러 일이 재호를 정신없게 만들고 있었지만, 특히 포세이돈 교단 쪽은 더 바빴다.
하필 이번 사태가 어쩌면 교황 암살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리고 교단 연합과 사이가 안 좋은 포세이돈 교단.
가능하면 교단 연합이 안정되기 전에 포세이돈 교단의 영향력을 확실히 세워둘 계획이었다.
그래서 대륙 각지로 사제들을 파견해 포세이돈 교단 지부 설립을 논의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포세이돈 교단을 원했던 영지들임에도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해당 영지의 영주들에게 축복 충전소의 개념을 이해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교단에 상주하는 사제나 성기사의 파견도 없이 도리어 영지의 보호가 필요하단 말까지 하고 있으니…….
교단을 유치함으로써 얻을 수 메리트의 절반은 날아간다고 할 수 있었다.
대신 포세이돈 교단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계속 설명했다.
핵심은 축복 충전소가 생기면 영지에 발생할 경제적 효과들.
버프를 통한 안전한 어업 및 어획량 증가.
그리고 충전소를 이용하기 위한 영지 소속이 아닌 타 선박들의 방문 증가로 인한 경제 효과까지.
그럼에도 반응은 영 미적지근한 상태.
급기야 꽤 많은 영지는 교단 유치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자기들이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 이거겠지. 게다가 소문 영향도 있는 거 같고.
귓속말로 상황을 전하는 바다.
“소문이라면… 내가 교황 암살 배후라는 거?”
-응. 뭐 완전히 믿는 사람은 잘 없어. 하지만 포세이돈 교단의 시스템을 알게 되니 그 소문도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거지.
뭔가 찝찝하다 싶으니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이며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초기엔 그런 식으로 진출 지역을 줄이는 것도 나쁘지 않아.”
희망 지역 전체에 진출하는 건 아무리 무인 교단이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좋게 생각하면 그런데……. 문제는 계약한 쪽에서도 반응이 미적지근한 경우가 많다는 거야. 다들 겁을 많이 먹었어.
“겁을 먹어?”
-교황들을 네가 죽였다는 소문이 돌았잖아. 그런 식으로 자기들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낄지도 모르지.
“아…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나?”
전혀 생각한 부분이 아니었다.
“근데 완전히 믿는 사람은 잘 없다며?”
-그렇다고 해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지. 귀신 없단 거 알아도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잖아.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
-아무튼 파견 인원이 없는 건 좀 고민해 보긴 해야 할 거 같아.
바다는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단 지부 설립 계약을 마친 영지 중, 군사력 지원이 필요한 곳들은 제법 있거든. 근데 우린 성기사단이 없잖아.
아니, 대충 비슷한 포지션의 사람들이 있긴 했다.
“대주교들…….”
-…그 사람들은 그냥 해적이랑 낚시꾼이잖아.
부정할 수 없는 냉정한 정의.
-그리고 대주교선은 바다에만 있는데 항구 지원은 또 어떻게 하고. 상주하지 않는 이상, 신속한 대응은 절대 불가능하잖아.
“아, 어쩌면 그건 가능할 수도 있어.”
-응?
“지금 따로 논의 중인 게 있긴 하거든.”
확정은 아니지만,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원래는 이러려고 준비하던 게 아니긴 했지만…….
“바다 경찰이잖아. 경찰이면 긴급 신고도 받아야지.”
-??
재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다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일도 있으니……. 만일을 대비해서라도 꼭 해야 할 것 같아.’
재호가 추진 중인 계획.
그것은 바로 포세이돈 교단 소속 배들의 자유로운 바다 터널 이용.
즉, 이용 자격을 얻어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