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73
972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존재의 등장에 재호는 몸이 굳었다.
처음 든 생각은…….
‘혹시 함정인가?’
‘이대로 다리가 뚝 끊어져 추락하는 거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칼벤 교황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하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칼벤 교황을 살핀 재호는 그의 꼴이 형편없다는 걸 확인했다.
오랫동안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곯은 데다 혈색이라곤 거의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피부.
교황 정도 되는 사람이 저렇게 망가지려면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된 걸지.
“칼벤 교황님 맞습니까?”
재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그도 눈치는 있는 것인지, 곧장 재호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다.
마치 옵티마 교단의 사제를 대하는 듯한 태도.
하지만 눈빛은 분명 재호를 알아본 눈빛이었다.
‘대체 이게 뭔…….’
머리가 복잡해졌다.
여기 칼벤 교황이 있으면 지금 성황 행세를 하는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골 때리는 상황이긴 하지만, 반대로 문제 해결만 잘 되면 기대보다 더 유리해질 수 있겠는데.’
모함당하고 갇힌 대주교들을 이용해 신성제국을 흔들 계획이다.
그런데 짜잔!
갑자기 칼벤 교황이 두 명이 된다?
어떤 난장판이 벌어질지 벌써 심장이 두근거리는 재호.
물론 일단은 탈출하는 게 먼저겠지만 말이다.
슥-
재호는 일단 다른 곳에 갇힌 이들도 한 명씩 확인했다.
칼벤 교황의 상태를 보니 시체 한두 구 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대주교들은 다 살아 있고.’
그 외에도 몇 명의 죄수와 시체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진짜 죄를 짓고 갇힌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 시시비비를 가를 순 없기에 일단은 싹 다 구해야 했다.
괜히 내버려 두면 같이 죽자고 난동을 부려 어그로를 끌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칼벤 교황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재호.
엄지손톱만 한 콩알탄을 꺼내 열쇠 구멍에 밀어 넣었다.
칙-
따앙-
고요하고 사방이 텅 빈 장소라 유독 크게 들리는 폭음.
하지만 바깥에서 들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쉬이이-
열쇠 구멍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며 잠금 장치가 망가졌다.
끼이이-
문을 살살 열어 안으로 들어간 재호.
혹여 누군가 나타날까, 문을 다시 닫은 뒤, 칼벤 교황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탄보르 교황과 손잡고 하하호호하는 줄 알았더니.”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최대한 목소리를 낮춘 채 물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표정에서 느껴지는 끝없는 공허함.
“탄보르 교황은… 미쳐 버렸습니다.”
별로 새삼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재호는 처음부터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에겐 선이 없습니다. 모든 걸 지우고… 0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만이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 그건 생각보다 더 미친 거 같긴 하네요.”
본인이 망했으니 너희도 같이 망하자는 소리였다.
“근데 교황님은 어쩌다 여기 박힌 겁니까? 아까도 말했지만, 같은 편 아니었습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칼벤 교황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입을 열었다.
“다른 교황들이 당한 독. 저 또한 그것에 당하곤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지독한지…….”
칼벤 교황의 말대로라면 탄보르 교황 역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자기만 멀쩡할 수 있는 모종의 방법이 있다거나.
“솔직하게 털어나 보시죠. 어차피 이제는 한 배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으니. 서로 도울 방법이 많지 않겠습니까?”
재호는 칼벤 교황에게 말했다.
한 배를 탄 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금부터 합을 잘 맞춰 노를 저어야만 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괜히 계산기 두드리며 머리 굴리다간 여기서 그냥 죽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재호는 부활이 가능하다는 것.
“그건… 끄르…….”
하지만 갑자기 힘이 쭉 빠지며 고꾸라지려는 칼벤 교황.
“어어?”
혹시라도 이대로 죽으면 억울해서 어쩌나.
물론 억울한 건 재호였다.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눈앞에서 죽으면 괜히 찝찝하지 않겠는가.
‘이 인간이 죽는 거야 자업자득이고.’
하지만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를 칼벤 교황의 생존.
일단은 살려야 했다.
* * *
재호는 엘보를 이용한 기력 회복 및 포션, 그리고 음식들로 칼벤 교황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쩝쩝쩝-
체면은 던져 두고 음식을 빨아들이는 걸 보니 배고픔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모양.
조금 전, 간수가 주고 간 음식은 빵 쪼가리 하나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우유가 전부였다.
그리고 감방 구석에 곰팡이가 핀 빵과 수상한 치즈가 쌓여 있는 걸 보니 배급되는 식사는 거의 먹지 않은 모양.
‘뭐, 이 정도면 결국 못 참고 먹긴 했을 것 같다만…….’
대륙 최고의 교단이라기엔 상당히 박한 처우지만, 세계관을 생각하면 식사라도 챙겨 주는 게 감지덕지 같기도 했다.
“후… 고맙습니다.”
짧은 식사를 마친 후, 칼벤 교황은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리곤 현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해 주었다.
“교단 연합은 이미 마의 소굴로 떨어졌습니다. 탄보르 교황은 악마와 손을 잡은 게 분명합니다.”
칼벤 교황이 노마인 교단의 부흥을 위해 탄보르 교황과 손을 잡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교황들의 암살 음모도 각오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가 이리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사실 교황을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을… 그것도 악마의 도움을 받아 죽일 계획을 세운 시점에서 탄보르 교황과 함께 할 순 없음이 드러났다.
근데 왜 그땐 몰랐을까?
결국 사건 이후, 칼벤 교황은 제대로 회복되기도 전에 납치를 당하곤 이곳에서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탄보르 교황과 같은 편이라고 확신한 대가입니다.”
그는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간 탄보르 교황이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단 연합 자체를 무너트리려고 함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왕국에서 왕… 아니, 신이 되고자 함을.”
“황제를 넘어 대륙에서 감히 그 누구도 쳐다보지 못할 존재가 되겠단 거군요.”
여기서 말하는 신은 진짜 신을 말하는 게 아니란 걸 재호도 알았다.
그 정도로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진 않을 테니까.
“음…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칼벤 교황의 반응은 미묘했다.
“그는 마치… 정말로 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굴었으니 말입니다.”
“……미친 거 맞네요.”
하다못해 천사나 악마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몰라.
실제로 그랬던 놈들이 있기도 했고.
근데 인간이 그런 오만한 기대를 품는 건 좀…….
별로 좋아하는 논리는 아니긴 하지만, 솔직히 뉴월드에서 인간은 천사나 악마와는 급이 달랐다.
하는 짓은 비슷하다 해도 타고나길 상위 종족.
그런 헛된 기대를 품을 만한(?) 느낌이 있긴 했다.
하지만 탄보르 교황이 그러는 건…….
“하긴 그 정도로 돌아 버렸으니 제국 타령을 하는 거겠지.”
납득하고 받아들인 재호.
탄보르 교황은 미쳤다!
“음? 제국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데 어째 칼벤 교황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아, 하긴. 계속 여기 갇혀 있었으면 모를 수도 있겠군요.”
탄보르 교황을 대신해 자신이 교단 연합을 이끌 지도자가 되리라고만 알고 있던 칼벤 교황.
재호에게 신성제국과 성황 칼벤이라는 이름을 듣고는 사색이 되었다.
“제국 한복판에서 제국 선언을 했단 말입니까? 미쳤군요.”
“신이 되겠니 뭐니 하는 거면 미친 거 맞지.”
“아니, 아무리 신께선 저희의 헛소리를 어느 정도 이해해 주시지만, 제국은 코앞에 있는데 좀…….”
별 의미 없는 우열.
“어쨌든 심각하군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르는지…….”
“잠깐.”
개탄하는 칼벤 교황을 재호가 잠시 멈췄다.
“하나는 분명히 하고 가죠. 이 개판에 상당 부분 일조한 건 칼벤 교황님도 마찬가지란 거.”
말하는 게 어째 교묘했기에 재호는 칼같이 잘라 냈다.
칼벤 교황은 엄연히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였다.
“…물론입니다. 저 또한 역사의 죄인. 죗값을 치를 겁니다.”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은근슬쩍 빠져나가려 한다 싶으면 재호는 기꺼이 ‘모종을 옮길 때 쓰는 작은’ 법봉을 휘두르리라.
“뭐,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이곳에서 탈출을 무사히 마쳐야 다 가능한 일이겠죠. 칼벤 교황님과 다른 대주교들이라면 신성제국에 역공을 가하기엔 충분할 겁니다.”
“맞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끌려오기 전까지도 교단 연합 내부는 엉망진창이었으니 지금도 뻔하겠죠. 저희가 목소리를 높인다면 주축 교단의 이탈을 꾀할 수 있을 겁니다.”
“좋아요. 그럼 이제 확실히 해 주시죠.”
“무엇을 말입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묻는 칼벤 교황.
“여기서 나가는 순간, 교황님은 물론 다른 대주교들은 이스터디 신성국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갖고 있던 삐뚤어진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했다.
교단 연합에서 신성제국으로 변하기까지, 그 흐름에 편승했고 일부 동조하기도 했으니까.
만약 그게 싫었다면 애초에 이 싸늘한 감옥에 없었을 것이다.
진작 교단을 떠났든 이스터디 신성국으로 옮기든 했을 테니까.
“좋습니다. 그럼…….”
텅-
그때, 감옥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넣었던 식판을 회수하러 온 모양.
철그럭-철그럭-
통로를 지탱하는 쇠사슬이 흔들리며 간수는 점점 가까워졌다.
재호는 문에 뒤에 딱 붙어 모습을 숨겼다.
텅-
문 아래로 쟁반을 꺼낸 간수.
이대로 지나가나 싶었지만…….
“음?”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려던 상대는 멈칫하더니 코를 벌름대기 시작했다.
“뭐야? 뭔 탄 내가…….”
냄새를 따라 몸을 일으키다 코가 멈춘 곳은 열쇠 구멍.
개 코가 따로 없었다.
재호가 터트린 콩알탄의 잔향을 맡은 것.
“뭐지? 뭔가 그슬린 것 같은…….”
끼익!!!
그 순간, 문을 힘껏 열어젖힌 재호.
“?!!”
헉 소리도 내지 못한 상대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지만, 재호보다 빠를 순 없었다.
바깥에 신호를 보내기 전, 상대의 멱살을 잡아당긴 재호는 바로 몸을 돌려 목을 단단히 졸랐다.
“끄…끄으으…….”
발버둥 쳐 보지만 의미 없는 행동.
곧 그는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궜다.
“전투 인력은 아닌 모양이군요.”
입 돌아갈까 싶어 친절히 침상 위에 올려놓으며 재호가 말했다.
너무 쉽게 제압당한 걸 보면 싸움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보자…….”
품을 뒤져 혹시 요긴하게 쓸 만한 게 없나 살펴보았지만, 딱히 보이지 않았다.
아쉽지만 뭐, 별 수 없는 일.
대신 그가 입고 있던 사제복을 벗겨 칼벤 교황에게 건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교황님의 모습은 절대 보이면 안 되니 감추시죠.”
땅- 땅-
그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재호는 다른 감방도 콩알탄으로 모두 개방했다.
“잠시!”
뒤늦게 나온 칼벤 교황은 죄수들을 불러내려는 재호를 제지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다리는 일정 인원 이상 올라서면 아래로 추락하게 되어 있으니…….”
“헉? 어째 부실하게 생겼다 싶더니.”
재호는 죄수들에게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뒤 출구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탈출하려는 겁니까? 이곳은 옵티마 교황청인데…….”
칼벤 교황의 물음에 재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봤다.
“참 일찍도 물어봅니다?”
“크흠…….”
“일단 여기서 기다립니다.”
“예? 그냥 기다린다고요?”
이해되지 않는 표정의 칼벤 교황.
“당연하죠. 아무리 변장이 완벽하다고 한들, 죄수를 싹 다 데리고 우르르 나가 봐야 의심밖에 더 받겠습니까?”
하지만 더 이해가 안 되는 소리였다.
내려온 간수 한 명을 이미 기절시켜 곱게 눕혀 놨는데,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위에서 무조건 의심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방법은 없습니다.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지금은 재호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믿을 수밖에.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대왕…….”
마치 10시간 같은 초조한 기다림에 칼벤 교황이 다시 재호를 부르려던 그때.
통통-
두꺼운 철문 너머에서 누군가 가볍게 노크했고, 그걸 들은 재호는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