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79
978화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하는 일행.
선봉은 테일러가 섰는데, 혹여 마주치는 적들을 먼저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안전이 확보된 후 재호 일행이 뒤따라 이동했다.
“생각보다 너무 허술한데?”
앞쪽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테일러가 말했다.
거의 15분 동안 이동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마주친 경비는 세 명의 성기사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고레벨 성기사는 아닌 듯, 테일러의 기습 공격에 쉽게 무너졌다.
“중요한 시설인데 너무하네. 우리를 너무 우습게 봤나 봐.”
“저쪽도 우리가 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겠지.”
본래라면 지상에 해 놓은 결계만으로도 충분했다.
성기사들의 안내를 따라왔으니 문제가 없었을 뿐, 만약 무작정 진입하려 했다면 그저 제자리에만 빙빙 돌았을지도 몰랐다.
주라브 섬에서 봤던 결계도 그러했다.
설령 누군가 운 좋게 뚫고 들어오더라도 문제될 건 없었다.
옵티마 교단의 시설물이란 걸 대놓고 드러냈고, 또한 성기사들이 지키고 있으니 굳이 강제 진입을 시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뭐, 지금은 예외적인 상황, 예외적인 사람이 들어온 게 문제지만 말이다.
일단 옵티마 교단 쪽에선 재호의 이런 움직임을 예상 못 한 게 분명했다.
대주교 구출은 어디까지나 타 교단에서나 시도할 것이라 예상한 모양.
그래서 탄보르 교황은 감옥이 털린 걸 뻔히 알고 흐뭇하게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도대로 다른 교단의 조직적인 반란은 일어났으니 이제 그걸 빌미로 확실히 때려잡을 생각에 들떠 있겠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재호.
슈저 대주교는 이곳을 수용소로 알고 있다고 했지만, 구조를 보면 수용소라기엔 어려웠다.
사람을 가두어 둘 만한 공간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오직 좁은 통로만 아래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구조에서 재호는 낯설지 않은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
‘무무만 때랑 비슷한 느낌이네.’
이제는 확신할 수 있었다.
탄보르 교황 옆에 붙은 건 무무만 때와 같은 놈이란 사실.
그리고 앞서서 이동하던 테일러도 통로의 끝에 도착해 알게 되었다.
이곳이 과거 가 보았던 끔찍한 장소와 똑같단 것을.
다른 통로가 없이 사방이 막힌 장소.
그 가운데엔 엉덩이를 함부로 대었다간 저주받을 것 같은 붉은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서 뻗어 나온 혈관 같은 것들이 여러 개의 붉은 수조들과 이어져 있었다.
무무만의 인간 여과기.
그 살벌한 장치가 이곳에도 있었다.
해당 소식을 들은 재호는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는 없었어?”
“아니, 다행히 다른 디버프는 없더라.”
있으면 회수해서 로두카에게 돌려줬을 텐데, 조금 아쉽긴 했다.
하지만 예전에도 는 여과기가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있긴 했으니 뭐.
“내부 전체가 디버프 영역이 아닌 것만으로 다행이지.”
재호야 상관없다지만, 다른 이들에겐 여간 불편한 게 아닐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할 거야? 안에 다른 사람은 없던데.”
“고민 중이야. 터뜨려서 날려 버릴지…….”
재호도 늘 폭탄을 가지고 다녔고 전럭협 길드원들도 폭탄을 잔뜩 가지고 왔다니 시원하게 날려 버릴 순 있을 터였다.
“아니면 이 장소의 공론화를 시도할지.”
옵티마 교단이 제국 귀퉁이에서 벌이는 일을 제국에다 일러바치면 아주 재밌어질 것 같았다.
또한 옵티마 교단 내에서도 인신공양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다니 제대로 흔들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그저 흉흉한 소문 혹은 모함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제국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소문이 진실이 되는 것도 금방일 것이다.
“당연히 폭파 아니겠습니까?!”
티나 같은 소리를 하는 전럭협.
“고민할 이유가 있어? 당연히 고자질하는 게 좋은 거 아냐?”
반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테일러.
그리고 재호의 욕심도 테일러와 같았다.
그럼에도 선택하지 못하는 건 과연 시간 여유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기 때문.
“이쪽으로 죄수들이 이동한 걸 저쪽에서 아는 이상, 분명 움직일 텐데…….”
이곳에 도착한 그들은 이 시설이 털렸음을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럼 과연 제국에서 사람이 올 때까지 흔적을 남겨 둘까?
“만약을 대비해 쉽게 묻을 수 있도록 이곳 구조를 단순하게 만든 것 같아. 깊이도 보통 깊이가 아니었잖아?”
그리고 더 걱정되는 건 이곳에 나타나는 게 어쭙잖은 성기사나 사제는 아닐 것 같단 점이었다.
“탄보르 교황이 직접 나타나지 않을까 싶어.”
사람들을 데려와 가두어 둘 공간이 없다.
그럼 바로 여과기를 통해 힘을 흡수하겠단 건데, 그럼 사용자인 탄보르 교황이 유력하지 않겠는가?
자칫 교황과 전투를 벌여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
“젠장. 교황이면 무조건 전설 NPC겠지?”
테일러의 물음에 재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어쩌면 지난번 일로 힘이 약해졌을지도 모르지만…….”
부질없는 기대였다.
여기서 탄보르 교황이 힘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면 충분히 회복했거나 더 강해졌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니까.
“교황님이 보기엔 어땠어요?”
재호는 허공을 향해 물었다.
“음… 탄보르 교황의 힘 말입니까?”
“헉?!!”
아무도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슈저 대주교가 기함했다.
“분명 그는 저와 같이 독에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던 걸 확인했죠. 하지만 이제는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의 배후가 그자라면… 무언가 조치를 해 놓았을지도 모르니 말이죠.”
뻔한 대답을 들은 재호가 턱을 두드리고 다시 고민에 빠졌을 때.
“카, 칼벤 성황?!”
이 목소리의 주인을 용케 알아챈 슈저 대주교의 눈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칼벤 성황…이 맞습니까?”
목소리는 들리는데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으니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표정.
하지만 굳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기에 다들 한마음으로 무시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듭니다.”
칼벤 교황이 말을 이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 시설은 결국 탄보르 교황의 힘을 길러 주기 위한 장소. 미래를 위해서라도 서둘러 이곳을 정리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나을 거 같네요.”
아쉽지만 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이곳을 정리하고 탈출하기로.
“그럼 아래로 내려가서 폭탄을 쫙 깔죠!”
“으하하! 드디어!!”
“기다리던 명령입니다!”
잔뜩 신이 나서 우르르 내려가는 전럭협.
“테일러 넌 위쪽에서 대기하다 이상 있으면 귓속말을 보내 줘.”
“오케이-”
그리고 재호도 아래 여과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점화를 준비했다.
하지만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다.
-어… 알시아.
불과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온 불안한 테일러의 귓속말.
-조진 거 같다.
“왜? 누가 왔어?”
-응. 네 말대로 옵티마 교황.
“……뭐?”
당황스러울 정도로 빠른 도착.
이곳에서 일어난 일을 알고 온 것일까?
아니면 그저 죄수들을 옮겼다는 말을 듣고만 왔을까?
하지만 어차피 중요한 건 하나였다.
나가는 길은 하나이며, 들어오는 길 역시 하나라는 것.
이제 충돌은 못 피한다.
“탄보르 교황이 나타났답니다.”
재호는 어딘가에 있을 칼벤 교황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슈저 대주교의 표정도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로서는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 하기도 애매한 상대니 당연했다.
“탄보르 교황이라…….”
당장은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모호한 칼벤 교황의 반응.
“일단 싸울 수밖에 없겠죠.”
이길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많이 어렵겠는데.’
지금까지 재호는 수많은 강자와 싸워서 살아남아 왔다.
그리고 대부분 곁에 전설 NPC인 티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든든하게 상대를 두들겨 패 줬던 티나 대신 얍삽하게 뒤통수만 노리는 암살자랑 같이 있으면…….”
-어… 혼잣말이지? 나 못 들은 척할까?
“크흠.”
-…야! 그리고 솔직히 진짜 완벽한 기습 위력만 놓고 보면 내가 훨씬 셀걸?
“근데 그거 불가능하잖아.”
재호는 알고 있었다.
테일러가 말하는 완벽한 기습이라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완벽’을 뜻한다는 걸.
늦은 밤, 완전히 곯아떨어진 상대의 급소를 자와 각도기로 잰 후에 하는 정확한 공격.
또한 칼을 찔러 넣었을 때, 뒤가 밀려나지 않아야 하기에 상대의 자세도 중요하다.
호흡도 공기 반 열정 반으로 밸런스를 맞춰진 상태.
그런 공격을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상대라도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낼 수 있다…라고 테일러에게 몇 번이나 자랑처럼 들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로 완벽한 공격은 한 적이 없다며?”
-그, 그렇긴 하지만……. 마침 시간도 좋아. 난 6시 66분이 되면 집중력이 남달라지거든.
“……그건 처음 듣는데? 최근에 그런 스킬을 얻은 거야? 아니면 헛소리야?”
-나만의 징크스지. 그때 시도한 암살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거든. 최근 내 암살 매드무비 영상 보다가 누가 댓글에 남겨 줘서 알게 됐어.
“그럼 애초에 상관도 없던 거 아니야? 갑자기 징크스라고 하면… 아니, 애초에 그걸 징크스라고 해도 되는 거야?”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싶었다.
“……근데 오전? 오후?”
참 쓸데없는 질문이라 생각하면서도 괜히 궁금해 물을 수밖에 없었다.
-다 상관없어. 그냥 숫자가 중요한 거니까. 테일러 타임은 숫자가 중요하지, am인지 pm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이번에도 그 시간에 맞춰 해 보겠…… 아니, 잠깐만.”
그 순간, 재호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6시 66분이라고? 설마 7시 6분을 그렇게 부르는 거야?”
-당연하지. 그게 [T.T]! 테일러 타임이니까.
“…….”
-아무튼 시간만 조금 끌어 주면 시간을 맞출 수 있어. 그럼 내 신들린 암살로 한 방을 노려 봐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재호라면 충분히 시간 끌기 전투를 할 수 있지만, 그 난전 속에서 테일러가 말한 완벽한 암살이 성공할 것 같진 않았다.
어쩌면 아예 못 버틸 가능성도 있고.
-칼벤 교황 도움을 좀 받으면 어때?
“아, 칼벤 교황님한테?”
생각해 보니 이쪽에도 교황이 있었다.
물론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다 지난번 사건으로 힘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분명 도움이 되긴 할 터였다.
“그럼 차라리 처음부터 너도 같이 합세해서 전력으로 맞붙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 그렇긴 한데… 뭔가 느낌이 좋아! 마침 교황도 혼자 나타났으니까 한 번쯤 시도해 봐도 괜찮지 않겠어? 탄보르가 거기까지 가는 시간까지 합쳐서 한 25분 정도만 끌면 되겠는데.
“…좋아. 단, 이쪽이 버티기 힘들다 싶으면 없던 일로 하고 합류해.”
-알았어! 그 정도는 나도 받아들여야지. 아, 그리고 하나 더 부탁할 게 있어.
테일러의 추가 요청까지 받은 뒤, 재호는 망토를 벗은 칼벤 교황, 전럭협과 전투를 준비했다.
아마 지금쯤 탄보르 교황도 이곳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려온다는 건 자신 있다는 뜻.
“슈저 대주교.”
재호는 이 자리의 유일한 중립(?)을 불렀다.
“잘 고민해서 결정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며 설득할 여유는 없었기에 간단히 말했다.
“무,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은. 처신 잘하라고.”
대화는 거기까지.
저벅-저벅-
여유가 느껴지는 발소리와 함께 유일한 출입로로 익숙한 얼굴이 마침내 나타났다.
“이런이런……. 이건 예상을 못 했군.”
탄보르 교황은 정말로 놀랐다는 듯, 그들을 훑어보았다.
‘음?’
그런데 재호는 그의 시선이 다른 두 사람에게 오래 머무른다는 걸 깨달았다.
“칼벤 교황… 그리고 슈저 대주교. 두 사람이 손을 잡은 건가?”
탄보르 교황은 재호를 알아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