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85
984화
황태자의 등장에 모두가 얼어붙은 가운데 홀로 태연한 재호.
그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속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제국 쪽에 오늘 일을 미리 전했을 때, 젠트르노 황태자는 고맙게도 참관인을 자처하고 나섰다.
‘아니, 고맙긴! 진짜 위험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젠트르노 황태자가 직접 현장에 참석하는 건 정말 말리고 싶었다.
분명 재호는 이번 일의 위험성에 대해 모두 설명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 배후에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거대한 음모, 위험한 존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 철없는 황태자는 재호와 어울리더니 겁이란 게 사라진 모양.
어쨌든 결론적으로 재호는 그런 위험한 곳에 황태자를 꼬드긴 셈이 되었다.
그래서 고민했다.
황제를 찾아가 고자질할까…….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접었다.
굳이 젠트르노 황태자의 평가만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일을 동업자가 할 순 없지 않은가?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실 젠트르노 황태자가 참석하겠단 건 단지 재호를 돕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제국은 신성제국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감히 제국의 영역 안에서 새로운 제국을 선포한 강심장에 충격을 받아서?
당연히 그런 이유는 아니다.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제국의 정보망에도 현재 신성제국의 내부가 어수선하다는 게 확인되었다.
무언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단 걸 제국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걸 확인해 볼 자연스러운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번이 바로 그 타이밍이라 젠트르노 황태자는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까지 하는데 재호가 어찌 계속 반대하겠는가?
제국의 뜻이라는데 말이다.
안전을 챙길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의 하나로는 루로아 황녀와 동행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녀를 불렀다가 정말 일이 터지면 황제로선 그리 좋은 기분이 아닐 터였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단 걸 알면서 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황녀를 일부러 끌어들였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으니까.
황제로선 썩 좋은 기분은 아니리라.
그래서 결국 재호가 부탁한 건 평소보다 최소 다섯 배는 든든한 황태자 호위 병력이었다.
그러면 최소한 황태자의 안전은 지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겸사겸사 이스터디 신성국이 데려오지 않은 성기사의 빈자리를 그들로 조금 채울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
어쨌든 젠트르노 황태자가 옆에 서 있으니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게 든든하긴 했다.
“다들 뭘 하는 겁니까?”
재호는 넋을 놓은 채 이 상황을 지켜만 보는 옵티마 교단을 향해 말했다.
“황태자님을 언제까지 이렇게 세워 두실 겁니까?”
“그, 그게…….”
젠트르노 황태자의 등장에 어지간히 놀란 모양.
이스터디 교단과 포세이돈 교단의 회담이라는 말만 들었던 그들은 이 돌발 상황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현재 신성제국엔 그들을 이끌어줘야 할 리더도 부재중인 상황.
“드, 들어가시죠.”
이미 이름값 싸움에서 밀린 그들은 결국 길을 열었다.
* * *
옵티마 교단은 귀빈들이 찾아온 만큼 조용하고 은밀한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길 원했다.
구경꾼들이 많아 봐야 그들에게 좋을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재호는 반대였다.
“날씨도 좋은데 야외에서 대화를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재호는 능청스레 젠트르노 황태자에게 물었다.
“그렇군요. 저도 황궁 내에만 있었더니 해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좋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이 먹구름 잔뜩 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태자와 대왕께서 가라사대 볕이 눈부시다 하시니 모두가 눈을 부셔하더라.
“하하! 그렇습니다. 오늘처럼 포근한 날에 답답한 실내보다는 야외가 좋겠습니다.”
“근래 들어 이토록 좋은 날이 있었나 싶습니다!”
다들 두 사람의 헛소리에 동조하고 나서니 옵티마 교단 쪽에선 또 할 말이 없었다.
여기서 바른말을 해 봐야 눈치 없는 놈이란 소리밖에 못 들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소리를 할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기도 했고.
회담 장소로 결정된 곳은 교황청 중앙에 있는 탁 트인 광장.
이 답도 없는 장소 선정에 옵티마 교단 쪽에선 땀을 뻘뻘 흘리며 급히 테이블과 좌석을 공수해 왔다.
식당 혹은 가정집에서나 볼 법한 허름한 가구들을 가져올 순 없으니 교황청 내 회의실까지 뛰어가 탈탈 털어 왔다.
이 웃기지도 않은 촌극을 본 사람들이 재호나 젠트르노 황태자의 행태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말이다.
지금 옵티마 교단은 타 교단의 원성을 많이 듣고 있다.
최근 일어난 이런저런 사건들은 전부 옵티마 교단이 중추가 되어 일을 벌이던 중에 발생한 것.
그래서 재호나 젠트르노 황태자의 갑질이나 다름없는 행태에도 동정은커녕 내심 통쾌함도 느꼈다.
평소 옵티마 교단이 타 교단을 대했던 방식이 그와 비슷했으니까.
또한 안으로 들어가 회담을 진행하면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누가 알겠는가?
하지만 이런 오픈된 장소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옵티마 교단이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호와 젠트르노 황태자의 결정을 반겼다.
물론 그 모든 건 재호가 노린 것이기도 했다.
효율적인 여론 장악을 위해서.
광장에 회담을 위한 세팅은 금방 마무리되었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모인 회담 장소라기엔 초라한데다 주변에 구경꾼이 잔뜩 몰린 탓에 시장통 같았지만, 재호나 젠트르노 황태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신경을 쓰는 건 옵티마 교단 쪽.
“그…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람들을 통제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황태자님도 계시는데…….”
옵티마 교단 쪽 대표자로 앉은 이는 포르퐁 대주교.
그는 황태자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이쪽은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젠트르노 황태자는 불가능한 소리를 태연히 뱉었다.
하지만 까라면 깔 수밖에.
“저는 어디까지나 참관 자격으로 왔습니다. 이번 사태에 따로 의견을 표할 생각이 일단은 없으니 지켜만 보겠습니다.”
‘일단은’이라는 의미심장한 젠트르노 황태자의 선언과 함께 회담은 시작되었다.
“우선 최근 옵티마 교단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재호는 먼저 옵티마 교단 쪽에 위로를 전했다.
물론 영혼이라곤 조금도 담기지 않았단 걸 모두가 느꼈다.
“이미 공문을 통해 안내했듯, 이 자리는 향후 대륙의 교단과 성직자들이 나아갈 방향과 미래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를 위해 오늘 전 엘리시아 화원이 아닌 포세이돈 교단을 대표해 참석했습니다.”
“그전에 어찌하여 저들이 대왕과 함께 있는 것인지부터 설명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포르퐁 대주교는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주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억울함과 별개로 가장 궁금한 점이 바로 이 자리에 나타난 대주교들이었다.
저들이 탈출한 것도 전혀 몰랐거늘, 대체 어느 틈에 엘리시아 화원까지 간 걸까?
정말 칼벤 성황이 저들을 탈옥을 도운 것일까?
그럼 탄보르 교황은?
“미래를 논하려면 과거의 잘못도 돌아봐야 하는 법. 그래서 이 자리에 옵티마 교단이 잡아갔던 대주교들도 모셨습니다.”
재호는 탈출한 대주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저들은 각 교단의 교황들 다음의 권력가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을 왜 옵티마 교단에서는 잡아 갔던 겁니까?”
“신성제국 내부의 사정입니다.”
포르퐁 대주교는 바로 치트키를 썼지만, 재호는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제가 듣기로는 신성제국 내 장악력을 위해 각 교단의 실세들을 강제로 잡아들인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
아니라고 말도 못 하고 침묵하자니 긍정하는 것 같은 애매한 상황.
“…사실이 아닙니다. 저들은 신성제국 건국 과정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한 것으로 확인되었기에…….”
“그 부당이득이 뭐냐고 물어보면 내부사정이라 답하겠죠?”
“…….”
“좋습니다. 단합을 위해 머리 몇 개 정도 쳐 낼 수 있다고 치죠. 그런데 그 과정을 각 교단에 투명하게 밝혔습니까?”
“적법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빈집털이를 한 것으로 아는데요?”
적나라한 표현에 포르퐁 대주교는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그렇게 대주교들을 납치…….”
“납치라니!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체포 과정에서 원치 않은 무력 충돌이 약간 발생했을 뿐입니다.”
재호의 말을 급히 막으며 포르퐁 대주교가 소리쳤다.
저 주둥이를 가만 내버려 뒀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지만, 탄보르 교황도 어쩌지 못했던 게 재호의 주둥이 아니던가.
“제가 납치라고 표현한 것엔 이유가 있습니다.”
재호는 봉인된 두루마리를 꺼내며 말했다.
“이 문서는 암흑가 최대 조직인 콘크리트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들이 이 문서의 신뢰성을 인증했습니다.”
“콘크리트? 그게 갑자기 왜 나와?”
“콘크리트면… 암살자인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예상 못 한 전개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고 보니 대주교님이 잡혀가시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 교단 인근 암흑가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아아… 그랬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되셨고.”
사람들은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알아서 의혹을 키웠다.
그 과정에서 어느덧 ‘납치’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나왔으니 포르퐁 대주교의 표정이 어두워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갑자기 콘크리트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뭡니까?”
“옵티마 교단이 콘크리트에 대주교 납치를 의뢰했더군요.”
“아까부터 계속 책임질 수 없는 위험한 발언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책임은 이 안에 적힌 애용을 확인한 뒤에 따져 봐도 될 것 같군요.”
재호는 두루마리를 테이블 위에 놓곤 포르퐁 대주교를 향해 슬쩍 굴려 보냈다.
텁-
긴장한 얼굴로 그것을 잡은 포르퐁 대주교.
하지만 섣불리 풀어 보진 않았다.
대신 이 자료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콘크리트라……. 말씀하신 것처럼 암흑가에서 가장 유명한 심부름 조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그들이 의뢰 내용을 상관도 없는 외부인에게 함부로 유출했겠습니까?”
비밀 엄수가 무엇보다 업계.
그곳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직이 이렇게 쉽게 정보를 내어준다?
이 두루마리 안에 든 정보의 신뢰도에 의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하긴, 그건 그래.”
“콘크리트가 굳이 자기 신뢰도 떨어트릴 일을 왜 하겠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포르퐁 대주교의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됐다.’
설령 이것이 진짜라 해도 자신의 방금 발언으로 설득력은 크게 떨어졌다.
다만 불안한 건…….
‘왜 표정이 저토록 여유롭지? 아니, 정녕 알시아 대왕은 그 사실을 몰라서 이렇게 내놓은 것일까?’
뭔가 준비한 수가 있긴 할 것이다.
과연 그게 뭘지 알아내야 했다.
“일단 내용을 확인해 보시죠.”
“크흠.”
크게 헛기침을 한 포르퐁 대주교는 불안한 마음으로 두루마리를 풀었다.
위에서부터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그.
끝으로 갈수록 그의 얼굴이 다시 점점 구겨졌다.
“이게… 뭡니까?”
“보신 그대로죠. 다른 사람들도 알도록 읽어 주시겠습니까?”
재호의 저 능글맞은 태도에 딱 한 대만 때려 주고 싶어진 포르퐁 대주교.
그만큼 이 안에 적힌 내용은 곤란했다.
자신이 방금 한 주장을 뒤엎을 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읽을 수 없었다.
적어도 자신의 입으로는…….
“콘크리트는 살아 있는 전설 암살공작의 요청에 따라 이 문서를 공개한다.”
그래서 재호가 이미 외워 두었던 구절을 대신 읊어 주었다.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