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cho Florist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995
994화
사람들 앞에 섰던 재호가 아무 말 없이 묵직하게 자리만 지켰던 이유.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무게의 빨간 티, 빨간 모자, 그리고 선글라스.
제아무리 재호라고 해도 이런 무게를 버티고 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뒷짐 진 채 도저히 다른 짓을 할 수가 없었을 정도로.
다행이라면 실제 훈련 과정에선 재호가 직접 할 건 없었다.
스트로앤 교황도 재호의 인지도와 위엄을 빌리기로 했을 뿐, 직접 교육을 도와주길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어차피 재호가 매번 여기에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다.
만약 다른 아나볼릭 사제들처럼 직접 참여를 했다면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 생겼으리라.
하지만 사막에서 굴러다니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까지 할 겨를이 없었다.
아나볼릭 사제들의 복장이 훨씬 더 무겁다는 걸 깨달은 지금, 앓는 소리는 꾹 삼키고 네 발로 달리는 데에만 집중해야 했다.
‘대체 저 옷에 뭔 짓거리를 한 거지?’
‘그냥 보기엔 천 옷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그만큼 무거운 거야.’
자신들이 입은 옷은 아나볼릭 사제들이 입은 것보다 두툼하고 빳빳했다.
어느 정도 무게감이 있는 게 당연했지만, 그 당연함마저 초월하는 묵직함.
그런데 아나볼릭 사제들이 입은 건 그보다 한술 더 뜨고 있으니…….
게다가 옷뿐 아니라 모자, 선글라스까지.
30분 구보 뒤, 잠깐의 휴식 시간.
그 시간에 슬쩍 물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건 아나볼릭 님의 축복 덕분입니다.”
“……?”
축복?
이게?
사람의 관절을 강제로 구기고 접게 만드는 그게?
“그건 관절을 받쳐 주는 근육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훈련을 거치고 나면 전신의 근육을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신성 교육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근본적인 의문을 마침내 꺼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단순히 혹사이자 학대였다.
고작 30분 만에 앓는 소리?
아니.
죽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게 신성 교육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건 어린애도 알 것이다.
물론 아나볼릭 교단에선 이런 게 흔한 일이란 건 잘 안다.
그리고 교단에 가입한 사람들도 이것과 대충 비슷한 일들을 매일 반복한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문이 사라지진 않았다.
대체 왜?
이게 신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건 답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회피한 걸지도.
‘빌어먹을. 그냥 이스터디 견제하는 거네.’
‘말단 성직자들부터 흔들어서 기반부터 박살 내려는 의도 아닐까?’
그런 의심 속에 그들의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사막 구보.
무한 쇠질.
스쿼트 기도.
대운하 왕복 횡단.
일주일 내내 철인 3종 경기라도 나갈 기세로 빡세게 굴려지는 그들.
그나마 성직자로서 납득할 만한 게 스쿼트 기도라는 점에서 눈물이 났다.
그럼 가장 이해되지 않는 건?
심지어 사막 한가운데서 갑자기 시작한 삽질이었다.
구덩이를 파거나 언덕을 쌓아 만들고, 곳곳에 통나무를 날라 장애물들을 만들었다.
사막 장애물 훈련장을 만든다는데…….
아무리 봐도 나중에 자기들이 이용할 훈련장을 공짜로 만들려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아니, 대체 이걸 왜 우리가……!”
“이 훈련장은 여러분들 다음 기수 교육생들이 이용하게 될 겁니다!”
“…만들어야죠! 암! 당연히 만들어야 합니다!!”
이유를 안 그들의 눈이 악의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생생하게 경험 중인 지옥의 신앙 교육.
그런데 자신들의 노력에 따라 후발대가 더 고통스러워질 수도 있다?
힘이 절로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신앙 캠프에 오는 이들은 전원 말단 성직자들로, 그들 사이엔 서열을 나누긴 어렵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면 그들만의 서열이 만들어지는 법.
가뜩이나 기존 교단들이 반쯤 망한데다 이스터디 신성국처럼 교단의 경계가 불분명한 혼종 집단이니 그런 경향이 없을 수 없었다.
이번 특별 신앙 캠프에서도 그 서열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먼저 오는 사람일수록 바닥 중의 바닥.
1차 선발대로 온 이들은 바로 그러한 자들이었다.
재호와 아나볼릭 교단은 그런 점을 노련하게 파고들어 기회를 주었다.
이스터디 신성국으로 넘어와 혼란스러운 와중에 겪은 지독한 서러움.
갈 곳 잃은 그런 격한 감정.
그것을 뒤이어 올 후발대로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부여이자 스트레스 해소 장치였으니…….
* * *
시간은 흘러 1차 선발대는 이스터디 신성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그들과 교대를 한 2차 교육생.
“쟤들 일주일 동안 뭐한 거래?”
시커멓게 그을린 그들은 분위기가 어째 이상했다.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돌아 버린 눈인데?”
물어도 답을 하지 않는 게 무척 수상했다.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행히 그 호기심은 금방 해소되었다.
오자마자 그들 역시 사막 위를 기어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막무가내 학대 소식을 접한 이스터디 신성국은 난처해졌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라니, 설마 교육을 그딴(?) 식으로 할 줄이야.
하지만 당장 찾아가 항의하기엔 먼저 요청한 것이 자신들인 탓에 면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아나볼릭 교단이 평소 그런 미친 짓을 실제로 해 왔단 점도 문제였다.
좋게 생각하면 그들의 방식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주고 있었으니까.
나름대로 정신 개조를 위해 그런 극단적인 방식을 택했다고 받아들일 수… 아니,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2차, 3차… 몇 번이나 같은 방식이 반복되자 슬슬 불만이 나오기 시작했다.
신성 교육이라며?
아나볼릭 교단만 갔다 오면 어째 반쯤 맛이 가 버리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럼 사람들의 불만과 항의는 어디로 향할까?
바로 교황 진아.
진아는 그라타 대주교와 몇몇 실세 대주교들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교황이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진아를 지원해 주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이스터디 신성국의 덩치가 너무 커진 게 문제였다.
진아를 반대했거나 혹은 중립에 있던 이들이 조금씩 자신의 파벌을 슬그머니 구성했고, 이번 사건을 빌미로 노골적인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
“진아킴 교황! 이대로 이스터디 교단을 무시하는 처사를 계속 지켜만 볼 것입니까?”
“그런데 듣기로 교황님이 알시아 대왕이나 스트로앤 교황과 특별한 관계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저희를 견제하려고 외부의 힘을 이용하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군요.”
억지스러운 지적들이지만,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
다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진아 또한 준비를 충분히 했단 것.
“에엥? 이상하네요. 막상 다녀온 사람들은 나름대로 만족하는 것 같던데요?”
진아는 능청스레 답했다.
놀랍게도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다음에 올 사람들을 엿 먹이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엄지 척 한 것이긴 하지만…….
“효과가 있다더군요.”
뭐…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몇몇 사람들의 증언도 있긴 했다.
신성력이 향상되었다는.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없다? 뭘 근거로 말씀하시는 거죠?”
아나볼릭 교단이 실제로 하는 수행 방식이며, 현 대륙에서 가장 신실하고 신앙심 충만한 자들이 아나볼릭 사제였다.
“여러분들이 하는 말은 아나볼릭 교단의 신앙심을 부정하는 것인가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교단마다 맞는 방식이 있지 않습니까? 굳이 맞지 않은 방식을 고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말했잖아요? 효과가 있다고.”
“…….”
다시 도돌이표.
“크흠, 하지만 전부 좋은 효과를 보는 건 아니니…….”
“생각해 보세요. 그게 아니더라도 고작 일주일 만에 성직자들의 마음가짐이 바뀌었죠. 신앙에 대해 더 진지해진 태도.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요?”
“…….”
웬 뜬금없는 정신 무장론이란 말인가?
하지만 덕분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진아는 자신들의 항의에 제대로 반응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의문이 든다면 직접 찾아가 보지 그래요?”
그때 진아의 난데없는 이야기에 그들이 흠칫했다.
“찾아가라니……. 어딜 말입니까?”
“어디긴요. 당연히 아나볼릭 교단이죠. 아! 이참에 가서 직접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럼 그 교육에 대해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겠죠.”
“예?”
“사실 이런 항의는 여러분들만 한 게 아니거든요. 잘됐어요. 고위 성직자들로 추려서 한번 체험단을 보낼게요.”
“아, 아니. 잠깐…….”
하지만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듯 진아는 몸을 돌렸다.
어쨌든 그녀는 교황.
아무리 신성국 내 장악력이 약하다고 해도, 작정하고 명령을 내리면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재호는 진아에게 소식을 전달받았다.
고위 성직자들로 꾸려진 체험단이 갈 것이라고.
물론 말이 체험단이지, 직접 오는 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답사 정도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재호는 그렇게 대우해 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아나볼릭 교단 쪽 역시 마찬가지.
아나볼릭 교단에 도착한 고위 성직자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콧대를 낮추진 않았다.
개중에는 대주교들도 세 명이나 있었으니 따라온 다른 이들의 콧대도 한껏 치솟았…….
“서둘러 환복합니다!”
아나볼릭 사제들 냉정한 외침.
오히려 기 센 걸로 따지면 아나볼릭 사제만 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보세요! 우린 이러려고 온 게 아닙니다!”
“맞습니다. 신성국의 파견 교육생들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서 살펴보기 위해 온 겁니다.”
“이 신앙 캠프란 거 대체 뭡니까? 어째서 이곳에 다녀온 사제와 성기사들이 그토록 폭력적으로 변한 것인지 알아야겠습니다.”
와다다 쏟아 내는 항의들.
“허허허, 무슨 일이십니까?”
지나가다 소란을 들었다는 듯, 태연히 나타난 스트로앤 교황과 재호.
갑자기 두 명의 악당 우두머리가 등장하자 그들은 잠시 멈칫했다.
“얼핏 듣기로 저희의 교육이 폭력적이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혹여 돌아간 이들이 문제라도 일으킨 것입니까?”
스트로앤 교황이 모른 척 물었다.
“정녕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까? 저희도 알 만한 건 알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신앙과 관련 없이 학대에 가까운 훈련을 시행하고 있다는 걸.”
“저런… 혹시 이곳을 다녀간 분들이 그리 말씀을 했습니까? 저희가 잔혹한 일을 벌이고 있다고?”
“그건…….”
그런 말은 없었다.
다녀온 신앙 캠프 참가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말을 아꼈으니까.
대충 여기서 뭘 하는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욕하는 건 분명 없었다.
“어… 얼마나 잔혹하게 대했으면 말조차 못 하겠습니까?”
겨우 꺼낸 말이라곤 이런 수준.
“허허- 아무래도 저희의 교육 방식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라고 할 게 있습니까?”
“교육생들의 침묵은 바로 신앙에 대한 깊은 고찰이 저희 교육의 목적이죠.”
“……?”
“그들은 이곳에서 신의 존재를 실제로 느끼고 돌아갔습니다. 처음 경험해 본 일이니 설령 그들이 침묵하더라도 이해하고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침묵의 시간은 곧 신을 모시는 자로서 둘도 없는 기회이자 경험이 될 테니 말입니다.”
차분하게 말하지만, 듣는 쪽에선 달리 해석되었다.
고위 성직자라는 놈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여기까지 찾아왔니?
아, 물론 스트로앤 교황은 절대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듣는 쪽에서 제 발이 저렸을 뿐.
“어, 어찌 고작 일주일 만에 신의 존재를 느낀단 말입니까?”
쥐어 짜낸 마지막 항의에 스트로앤 교황은 간단히 답했다.
“벼랑 끝까지 굴리면 가능합니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