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146
EP.146
#2-7 마법소녀는 취했다고 합니다(1)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응?”
꽤 오랜 시간 공들여서 씻고 나온 뒤, 탈의실에 나온 우리들이 수건으로 몸을 닦는 도중 단애가 물어왔다.
루돌프는 선언한 대로 30분 뒤에 올 생각인지 보이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문이라던가 창문이라던가 전부 기계식 록으로 잠겨져 있었다.
“어떻게, 라니?”
“이대로 당하기만 할 수는 없잖아~. 하루빨리 전부 엉덩이를 뻥~ 뻥~ 걷어차주고 싶어~!”
욕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녹초가 되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 같더니, 지금은 아주 쌩쌩하다. 피부도 촉촉해 보이고 배나 뺨도 탱글해보인다.
뭐지? 목욕탕에 뭔가 충전기라도 있었나?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망할 년아. 원래 하기로 했던 대로 해.”
“뿌우우~! 단비는 이제 나한테 욕 좀 그만하면 안 돼?”
“그 짜증나는 말투 그만둬. 진짜 때린다? 난 아직 그 에서의 일로 쌓인 거 많아.”
“치이이….”
탈의실에는 묘한 캡슐이 있어서(작은 버스만한 사이즈였다) 안에 들어가니 우리들의 몸에 묻은 물기가 단번에 말라버렸다. 완전히 메마른 것도 아니고, 딱 적당할 정도로 촉촉하게 습기가 남았으며 이어서 향기가 나는 에센스 같은 것이 천장에서 분사되어 왔다.
향기 좋다….
이게 바로 메르라크의 기술력….
“이야, 초과학 최고~ 뭔가 마실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 저기에 뭔가 있으려나~.”
단애는 근처에 비치되어 있던 냉장고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 안에서 멋대로 음료수를 꺼냈다.
“마실래?”
“콜.”
휙 던지는 음료수병을 나와 단비가 나란히 받아들었다. 유리가 아닌 금속 캔에 담긴 음료수로, 내용물을 보니 트로피컬 색이 인상 깊었다.
조심조심 맛을 본다.
……맛있다!
“음~ 맛있다 이거. 달콤하고.”
“뭔가 이상한 거 같은데… 맛은 있지만.”
단애가 맛있다는 듯 쭉 들이키고, 단비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며 홀짝인다.
“그 투투라는 인간은 일단 자기네들이 신호 보낼 때까지는 고분고분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만, 솔직히 언제까지 버티라는 건지도 안 말해줬구~ 솔직히 이대로는 못 참아~ 그 마음도 몸도 하는 짓도 추한 녀석은 더는 보기 싫어….”
단애가 드물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데다, 인지 뭔지도 새겨졌으니 우리보다 힘들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견디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지만….
“그런다고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한숨과 함께 팔을 내밀어보였다.
손목에는 여전히 두툼한 구속구가 채워져 있다.
“이 안에 이 있긴 한데, 그 놈들이 해제해 주기 전에는 못 쓰고.”
――그 말대로.
지금 우리들의 손목에는 구속구에 교묘하게 가려져서 안 보이는 이 채워져있다.
배터리가 얼마나 충전됐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으나, 적어도 변신은 할 수 있다.
투투 그 개자식이 락(Lock)만 안 걸아놨다면.
단애가 그래도 답답하다는 듯 손을 휙휙 휘저었다.
“그래도~~!”
“그리고 우린 아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좀 더 이때다 싶을 때까지는 참자.”
우린 아직 이 【메크라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귀족들이 어떤 놈들인지도 모르겠고.
이 별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지리는 어떻게 되는지, 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무것도 모른다.
당장 죽이려드는 것도 아닌 이상, 조금 더 버티면서 정보를 끌어모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뭣도 모르고 헤매는 것보다는 나아. 확실하게 가는 길이 제일 빠른 길이야.”
단비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일단 루돌프의 고문은 정말 고역이지만, 쿠알은 베테랑 마조돼지인 이 몸으로 측정하기론 아직은 상대할만한 주인님이다.
오만하고, 무능하고, 멍청한 3박자를 고루 갖춘 바보 멍청이.
그러니 적당히 비위를 맞춰주면서 견디면, 의외로 손쉽게 바라는 것들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애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씨이… 그건 좀… 곤란한데….”
“곤란?”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냐.”
뭔가 이상한 낌새.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러나 단비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단애를 노려보더니,
“야.”
“?!”
별안간 단애의 손목을 덥석 잡아 끌어당겼다.
“어, 어머머머! 단비 갑자기 왜 그래?! 혹시 발정? 내가 그리워서 그래? 엄머나, 이제 곧 루돌프가 올 테니 시간은 없고, 오, 오늘 밤에라도 느긋하게――”
“쉿. 아가리 닥쳐 봐.”
단비는 단애의 팔에 눈을 가까이하며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애는 굳은 얼굴로 그런 단애를 쳐다봤다. 조금 전 샤워해서 보송보송해진 얼굴에 식은땀이 또르륵 흘러내렸다.
“이거… 뭔가….”
“자, 잠깐만? 단비야? 내 팔에 뭐가 있다구 그래. 하, 하하하하….”
단비가 단애의 팔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쓸어올렸다.
팔에 얹은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흘렀으며, 마찬가지로 단비의 손이 훑고 지나간 곳에 은은한 빛을 뿌리는 문양이 나타났다.
나타났다고 해야할까.
드러났다고 하는 편이 맞으려나.
“…….”
“…….”
“…….”
우리들의 시선이 단애의 팔에 못박힌 채, 모두가 침묵했다.
“아, 하하, 그게 요즘, 안 보이는 섀도우 타투라는 건데.”
“. 도적놈들이 말해주더라. 【메크라크】에는 스티커처럼 부착해서 사용하는 보조 기구가 있다고.”
나도 들어본 적 있다.
예를 들면 을 부착하면 곧바로 근력이 강화되고, 을 붙이면 기억력과 사고능력이 올라간다고.
한마디로 여러 가지를 보조해주는 장비다.
“어, 아하, 아니,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아! 그런 걸 내가 언제 구했겠어!”
나도 단비와 함께 달라붙어, 단애의 팔에 붙여진 씰들을 하나하나 확인해봤다.
이야, 잔뜩도 붙여놨네.
“어디보자… 잘은 모르겠는데 이건 , , , …… 뭘 이렇게 주렁주렁 달아놨어?”
“…….”
단애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렸고.
우리 두 사람은 그런 단애를 빤히 쳐다봤다.
빠안히.
빠안~~히.
빠아아아아아아아~~~~~~~~~~~안히.
“……죄, 죄송해요… 이거 이제 곧 배터리 다 되니까… 에헤헤헤….”
그렇구나.
묘하게 쌩쌩해보인다 싶더니.
괴로워 보였던 것도, 전부 연기였던 모양이네~.
“아, 아니… 너네 만큼은 아니지만… 나두 적당히 느꼈달까… 배터리도 아끼느라 힘들 것 같을 때만 살짝살짝 조절했달까… 는 계속 틀어놨구… 뭐… 응… 헤, 헤헷♡”
“이거 왜 안 떼져?”
“아, 아아아앗?! 잠깐! 힘으로 안 벗겨져 그거! 타투 같은 거니까! 꺄악?! 긁지 마! 파내진다! 내 고운 피부가 파내져어어어~~~~!! 팔이 끊어진다아아~~~~!!”
단애가 애처롭게 울부짖었다.
* * *
아쉽게도 우리가 단애의 팔에서 씰을 떼내기 전에, 욕실 밖에서 루돌프의 기척이 느껴졌다.
“히, 히긱! 아파~~ 그만해~~~! 저, 저기, 루돌프 온다! 그 로봇이 온다고~~ 일단 음료수부터 치우자! 응?!”
“……쯧.”
일단 음료수병부터 숨기기로 했다. 멋대로 꺼내 마셨다는 걸 알면 무슨 지랄을 떨지 모르니까.
짐승이 이런 거 먹는 거 아닙니다!
같은 소릴 할 것 같고.
‘아직 많이 남았는데.’
아까운 기분이 들어, 남은 양은 그냥 원샷해버렸다. 옆을 보니 단비도 그랬고, 단애도 “훌쩍훌쩍… 우으…”하고 애처롭게 울면서 남은 음료수를 들이켰다.
다행히 루돌프가 들어오기 전에 말끔하게 비운 캔을 근처 구석에 숨겨놓았다.
비틀.
“……응? 어라?”
지금 잠깐 발을 헛디뎠다. 넘어질 뻔한 걸 근처 선반을 붙잡고 간신히 버텼다.
뭐지, 바닥이 흔들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아니다. 흔들리는 건 바닥이 아니라 내 시야다.
[30분 다 됐습니다. 시간은 충분하셨습니까.]엄중한 잠금장치를 열고 탈의실 안으로 들어온 루돌프는, 두 손에 두랄루민 케이스 같은 걸 겹겹이 쌓은 채 들고 있었다.
[다 씼은 모양이군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게 씻었겠죠?]“당장 입을 옷이나 내놔 고철덩어리야. 우리 옷 어디갔어?”
[개체명 단비라고 했던가요. 이 입이 험한 짐승은 언젠가 제대로 교육해 드려야겠군요. 그보다 여러분들이 입고 왔던 누더기는 가져다 버렸습니다.]“버려…?!”
[대신 공들인 예복을 준비해두었으니 입어주시기를.]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고 있던 케이스를 우리에게 넘겼다.
되게 고급스러워 보이는 케이스다. 거기다 무거워보였는데, 실제 받아들고 보니 플라스틱 케이스보다도 가벼운 것 같았다. 합금 재질이긴 한데, 아무래도 지구에서는 못 보던 금속이 아닐까.
이렇게 비싸보이는 케이스에 들어있는 예복이라니.
공주님 같은 반짝반짝한 드레스가 아닐까?
‘…으엑, 그건 싫은데.’
여자여자한 드레스를 입은 자신을 상상하니 기분이 안 좋아졌다.
이렇게 여는 건가?
케이스 앞 쪽에 있는 스위치 같은 것을 누르니, 달칵달칵 소리를 내며 케이스가 스스로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전체적으로 흑백을 기조로 한 면적이 작은 천쪼가리들.
[【아네누스】 혹성의 메이드 나라에서 공수해 온 최고급 초특성 세트입니다. 너희 같은 짐승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비싼 예복이니 소중히 입어주시기를 바랍니다.]“이딴 천쪼가리가 뭐가 최고급이고 뭐가 비싼 건데?!”
다른 별에서 공수해 올 정도냐 이게?!
[닥치고 빨리 입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일 할 시간을 한참 넘겼으니.]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을 들어 그 안에서 전기를 타직타직 터뜨리는 게 무섭다. 말을 안 들으면 당장에라도 지져버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씨이. 반항할 수도 없고.’
알몸도 다 보였는데 이 정도야, 싶지만 역시 거부감이 든다. 뭔가, 이런 복장을 하면 할수록 내 안의 뭔가가 깎여나가고 마모되어 버릴 것 같은.
흑백으로 된 천쪼가리는 상의 하의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상의는 크롭티 수준으로 면적이 작은 천쪼가리였고, 아래도 초미니스커트 정도의 치마였다. 하늘거리는 프릴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복장은 자주 했는데 전부 내가 직접 변신했던 거였고, 억지로 옷을 입혀지는 건 그 문신남한테 사진 찍힐 때 빼고는 처음이다.
‘알몸도 보였는데 뭘 이제와서 새삼스레.’
일단 입자.
…이상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질어질한 기분이지?
‘의외로 천이 고급지네.’
만져보니 살푹 들어가거나 쭉쭉 늘어나거나 하는 게 고급스럽다는 게 손끝에서 느껴졌다. 속옷이나 스타킹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저것도 다 갖춰 입고, 팔랑팔랑한 프릴이 달린 레그링에, 촘촘한 까만 스타킹을 신고, 치마 앞에는 자그마한 흰 에이프런과 머리 위에는 프릴이 달린 헤어밴드까지.
천의 면적이 되게 적은데, 의외로 이렇게 다 갖춰 입으니 『메이드』라는 느낌이 확 난다.
알맹이가 나인데도 말이다.
옷이란 신기한 물건이구나.
[그렇게 입으니 짐승에서 반쯤은 인간이 된 듯하군요.]지랄.
[그럼 이제 가보도록 합시다. 노예로서 낮 동안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알려드리죠.]우리가 옷을 다 갖춰 입은 것을 확인하자, 루돌프는 잠깐 빼놓았던 목줄을 우리들의 목걸이에 각각 걸고, 그대로 탈의실 밖으로 나갔다.
목줄에 이끌려, 우리들도 그 뒤를 따라 걷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지럽지…? 뭔가 눈 앞이 흔들리기도 하고… 속도 좀 그렇고….’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우에… 뭐지… 뭔가 흔들리지 않아아…?”
단애도 단비도, 어쩐 일인지 나와 마찬가지로 비틀거리며 따라 걷고 있었으니까.
“……야, 아까 그 음료수.”
단비가 뭔가 알아챈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마침, 내 귓가에도 안내음성이 내 상태를 알려주었다.
……응?
만취?
왜?
술에 취했다고?
술 같은 건 마신 적 없는데――
“야… 단애 이 망할 년아… 조금 전의 그 음료수…!”
“어… 아하, 아하하하, 기분 죠↗~타아↗~ 우헤헤헤….”
단애가 나비라도 쫓아갈 것처럼 하늘하늘 흔들렸다.
단비도 화를 내나 싶더니, 머리가 어질어질한지 붉어진 얼굴로 크게 휘청였다. 벽에 콩, 하고 어깨를 부딪친다.
……아무래도 조금 전에 마신 음료수가, 술이었던 모양이다. 이걸 어쩐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