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184
EP.184
#2-17 도깨비 마법소녀 탈출계획(2)
일단 뭐가 됐든, 이 방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유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갇혀있던 독방의 유일한 출입구를 살펴봤다. 기계적인 잠금장치로 잠겨있었다.
초장부터 난관이다. 자신의 힘으로 부술 수 있을까?
‘몸상태는 괜찮은데, 마력은 원래의 절반 이하… 회복되고 있는 중이야.’
가능한 마력을 아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도 부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가질 않았다.
거기다 큰 소리를 냈다가 누군가 사태를 알아채고 경계레벨을 올릴 지도 모른다. 그렇게 됐다간 탈출은 꿈도 못 꾸겠지.
가능한 조용히, 언젠가 들키더라도 가능한 나중에 들켰으면 좋겠다.
어쩌지, 하고 고민하면서 다시금 방안을 살펴봤다.
천장에 환풍구가 있긴 하지만, 저걸 뜯어내는 건 둘째치고 환풍구로 도망칠 수 있을지가 문제다. 먼지도 많을 것 같다.
최후의 보루로서 남겨두고, 탐색을 재개했다.
그리고 희망의 열쇠가 될만한 것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엇다.
“카드키?”
어떻게 봐도 호텔 같은 데에서 사용하는 카드키다.
순백의 카드키에는, 앞면에 기묘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예전에 인스톨해 둔 【메크라크】의 언어였다.
묘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며 살짝 매만져 보는데, 별안간 글자 아래에 있던 공백에 새로운 글자와 유라의 얼굴 사진이 홀연히 떠올랐다. 이번에는 영어다.
이게 뭐야… 이름… 신체 사이즈… 연구 등급… 직책… 그리고….
‘오서리티(Authority) 등급?’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명칭이다. 등급은 A. 문제는 이게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일까.
A가 최하급으로 하나, 둘, 셋, 넷… 이런 식으로 올라가는 걸지도 모르고, 어쩌면 A가 최상급일지도 모른다.
제발 후자이길 빈다. 연구 등급이 S+인 걸 보면 그녀의 바람도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어쨌든.
손에 넣은 카드키를 출입구 옆에 달린 기기에 가져다 대자, 가로막고 있던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이 정도 출입은 문제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문이 이 정도로 매끄럽게 움직이다니. 새삼 【메크라크】의 기술력에 감탄했다. 근데 전기 낭비가 심하지 않나 이거.
‘여기가 어디지 근데…?’
복도로 나온 순간 확, 느껴졌다. 여기는 그녀가 붙잡혔던, 그 대학교 근처의 연구실이 아니다. 아마 정신이 없던 사이에 어딘가 다른 시설로 옮겨진 모양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기로, 대학교 근처에 연구실을 둔 이유가 필요할 때마다 근처에 있던 젊은 인재들을 보충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할 더 큰 시설이 있다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유라는 조심스럽게 복도를 나아갔다.
복도는 생각보다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밝다고 할 수는 없었다.
상당히 높고 넓은 복도인데, 자신의 키로는 닿지 않는 높은 위치에 드문드문 늘어선 가는 창문에서 푸른 빛이 새어들어왔기 때문이다.
밝은 빛이 아닌, 이른 새벽에 자주 보는 그런 정도의 빛이다. 폴짝폴짝 뛰면서 확인해봤는데, 창문 밖은 짙은 안개로 가득해 그 너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저게 밖일까?’
그것도 전혀 모르겠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면 창문을 깨고서 나가버린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저 푸른 불빛 속의 안개가 영 꺼림칙하다.
고민하던 유라는 일단 복도를 계속해서 나아가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 섣불리 움직이는 건 좋지 않다. 애초에 여기에 붙잡혀 버린 것도, 사전 정보 없이 겁 없이 뛰어들었기 때문이니까.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진 거려나.
“아… 지도가 있어.”
복도를 계속 나아가자, T자 형으로 꺾인 골목에 자그마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고, 그 위로는 홀로그램으로 된 지도가 떠올라 있었다.
“우으… 넓네.”
지도를 보고 나자, 유라는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말대로 지도는 여러 가지 지형지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데다, 비교 스케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일단 ‘넓구나’라는 게 확연히 눈에 보였다. 그 증거로 이 지도가 있는 위치에는 여기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붉은 점이 떠올라 있었는데, 그 앞에 있는 유라가 걸어온 복도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밖에 안 되는 길이로 기록되어 있던 것이다.
이 복도를 꽤 오래 걸었는데, 이 커다란 지도에선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길이 밖에 안 된다.
빡세다. 진짜 더럽게 넓은 모양이구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래도 지리지형을 알게 된 건 다행이다.
각 방이나 복도는 알 수 없는 코드와 기호로 기록되어있어서 뭘 하는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아마 외부인 대책이 아닐까), 적어도 종착지인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어디인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를 목표지점으로 삼으면 되겠구나…!
일이 순조롭게 풀려 콧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유라가 희희낙락 지도의 내용물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는데, 마법소녀의 예민한 감각이 뚜벅, 뚜벅, 하는 발소리를 포착했다.
‘누군가 온다…!’
유라는 이쪽으로 오는 듯한 발소리를 경계하며, 근처에 있던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어디로 가는 걸까. 혹시나 이쪽으로 온다면, 소리소문 없이 물리칠 수 밖에 없다.
발소리를 들어보니 두 명 같은데….
『…이번에 새로 잡아 온 마법소녀는 어떻게……』
『……이번에 만든 상품이……』
진지한 목소리와 함께, 메크라크어로 두런두런 말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괴인임은 틀림없겠지.
척 보기에도 거대한 시설이고, 애초에 연구라는 건 그 노구 혼자서 할만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하이자 조수인 괴인들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런데 새로 잡아온 마법소녀?’
하긴. 연구 샘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그나저나 붙잡아 온 마법소녀들은 이 시설 안에 있는 걸까.
‘어쩌면 힘을 합칠 수 있을지도.’
나노머신에 의한 정신지배라던가, 실제 상황이 어떤지 모르고 오히려 짐이 늘어날 수도 있고… 조심하긴 해야겠지만, 잘만 되면 전력의 큰 증가로 이어진다.
조심은 하되 머리에는 집어넣어두자. 메모메모.
그대로 기둥 뒤에 숨은 채로 기다리자, 백의를 입은 괴인 두 사람이 나란히 나타났다. 다행히 유라가 숨은 복도쪽이 아닌, T자형 복도의 맞은편 복도로 향하는 모양이다.
드문드문 푸른 빛이 들어오는 어두운 복도를 나아가며 멀어지는 두 사람을 확인하고, 유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라….’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 멀어져가는 백의를 다시금 힐끔 훔쳐보았다.
뭔가가, 뭔가가 마음에 걸린다.
그냥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 입력해 놓은 지도의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저 두 괴인이 나아가는 방향으로도 충분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어차피 전 층의 복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으니, 이리 가든 저리 가든 비슷하다.
‘마법소녀 얘길한 걸 보면, 어쩌면 저 놈들이 가는 곳에 있을지도…!’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찾아낸 마법소녀들을 반드시 동료로 삼을 건 아니다.
하지만 탈출을 위해 정보를 모은다는 시점에서 보자면.
어쨌든 하나라도 더 많은 정보를 모으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결정.
‘따라가 볼까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몸을 숨겨라, 도깨비 감투】.”
잠시 후.
유라의 몸이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녹아들 듯 사라졌다.
그리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빈 장소에, 소리를 죽인 발소리가 타박타박 울려퍼지며 앞서 나아가는 괴인들을 쫓아갔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교묘하게 설치된 카메라가 전부 포착하고 있었지만, 유라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박사님. 연구대상 ■의 현시점 관측결과 및 시뮬레이션 내용 정리해서 보내드렸습니다. 확인 바랍니다.”
“그래, 나도 지금 보고 있다.”
노구의 박사는 컵에 담긴 음료수를 홀짝이며, 시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유라가 방에서 빠져나온 것도, 괴인들의 발소리를 듣고 몸을 숨긴 것도, 그대로 뒤쫓기 위해 마법으로 몸을 숨긴 것까지도 전부.
또한 그 데굴 구르는 두 눈은 감시 영상의 화면만이 아니라,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로 그를 둘러싸듯 떠오른 계기판 같은 수치나 그래프도 빠짐 없이 확인하고 있다.
‘흐음. 수치가 이상한데.’
냉정한 눈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달달한 음료수를 홀짝인다.
“역시 마법소녀란 건 다루기가 어렵구먼.”
“네?”
“아직도 수치가 안정되질 않아.”
“…그렇습니다. 확인하신대로 변수가 이상하게 작용하는 모양입니다. 실험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상됩니다.”
옆에 선 조수 같은 분위기의 젊은 괴인이 조심스레 진언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지켜보지. 그보다 사라진 마법소녀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해. 마법으로 몸을 숨겨선지, 열센서를 이용한 감지에도 걸리질 않는구먼.”
“예, 알겠습니다. 마법소녀의 마력 파장을 감지하는 센서를 이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에 남은 일들을 조수에게 맡긴 박사는, 다시금 화면을 쳐다보더니 끌끌 웃으며 방 한구석에서 새로운 과자를 꺼내들었다. …당분의 섭취는 중요하다. 암.
* * *
백의의 괴인들을 몰래 뒤따라 가자, 나타난 것은 거대한 실험실 같은 공간이었다.
내부가 잘 보이지 않아 괴인 중 한 명이 불을 키려고 했지만.
“야! 안 된다고! 『그 놈』들이 보면 어쩔 거야!”
“…아, 뭐야. 아직 풀어놓은 거야?”
“실험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니까. 그놈들이 반응하지 않는 이 빛만 써야 된다고.”
“귀찮네에.”
한 명은 통통한 체형, 한 명은 젓가락처럼 마른 체형.
마른 체형의 괴인이 핀잔을 주자, 통통한 체형의 괴인이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놈』…?’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어쨌든 사람이 다니는 연구시설인데도, 굳이 불을 키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밤이라 전부 잠들어 있어서 그런가 했더니… 저렇게 괴인들이 돌아다니는 데도 고집스럽게 불을 키지 않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참고하자. 불을 밝히는 건 위험한 모양이다.
“자, 오늘 안에 제품 등급을 올려야 해.”
“음… 지구 상에 있는 물질로 감촉을 제현하는 건 어렵단 말이지.”
“어쩌겠어. 우리가 사용하는 물질로는 지구의 마력을 오래 보존할 수 없으니까.”
괴인들이 터치패널 같은 것을 몇 개 조작하자, 방 한구석에 있던 캐비넷들이 찰캉! 찰캉!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낑낑거리며 끌어낸 것은――
‘나?!’
유라는 무심코 소리를 지를뻔했다. 그만큼 깜짝 놀랐다.
통통한 괴인이 캐비넷 같은 곳에서 끄집어낸 것은, 얇은 천으로 둘러싸인 유라였다.
자신과 똑같은 얼굴에, 체형도 분명 똑같다.
스르륵, 스르륵, 천이 벗겨지자, 유라와 다를 바 없는 뽀얀 살결이, 탐스러운 알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빛을 잃고 멍하니 뜨인 두 눈의 눈동자도, 자신의 그것과 똑같은 색이다.
힘없이 축 늘어진 몸을 지켜보자니, 마치 자신은 이미 죽어버렸고 여기 있는 자신은 단순히 혼만 빠져나온 게 아닐까… 그런 기분마저 들었다.
“이야, 진짜 이 돌(Doll)은 최곤데. 얼굴도 반반하고, 가슴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이 뿔이 진짜 최고야. S플러스 등급 연구대상이지?”
“그래. 다른 마법소녀들은 적당히 연구 되면 돌아가면서 손 댈 수 있는데, 그 여자는 그림의 떡이야. 다른 여자들이랑 마력 등급도 차원이 다르다던데.”
“크흐… 실물을 맛볼 수 없는 게 아쉽네. 아니, 이 인형도 완성품으로 만들려면 언제 한 번 실물로도 경험해봐야 하는 거 아냐? 진짜의 감촉을 모르는 데 어떻게 가짜를 진짜처럼 만들어!”
“박사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보다 빨리 담궈.”
퉁명스레 말하는 마른 괴인의 품에는, 또 다른 알몸의 여성이 안겨 있었다. 푸른빛의 머리가 매력적인, 균형잡힌 몸매의 여성이었다.
‘인형… 가짜?’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런 모양이다. 명칭도 돌(Doll)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인형이라는 말이 딱 맞겠지.
두 사람을 끄집어낸, 어떻게 봐도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인형――돌들을 실험실 구석에 있던 묘한 액체로 담긴 욕조 안에 풍덩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