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189
EP.189
#2-18 발정 난 도깨비 탈출기록 (4)
와르르르르르르르르!
화아아아아아… 타닥, 타닥…!
무너지는 실험실의 출입구, 노도와 같이 몰아치는 청염(靑炎)의 폭풍.
어두웠던 복도와 실험실을 비추는 그 불빛에, 유라의 고운 얼굴이 비쳐보였다.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네요.”
유라는 아직 불꽃을 두르고 타오르는 몽둥이를 휘휘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메크라크】의 괴인들은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를 무시하는 놈들이라서?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딱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럼 왜?
――그야 나를 무시했으니까.
상대가 하등한 수컷이든, 혹은 어딘가의 잘나신 암컷이든.
그 누가 되더라도 자신을 깔보는 건 용서할 수 없다. 용납하지 않겠다. 그게 그 누구보다 오만하고 그 누구보다 자존감으로 넘치는 유라라는 인간이다.
자신이 사는 지구에 양해도 없이 멋대로 쳐들어와, 그 앞뜰에서 지들 하고 싶은 대로 깽판이나 치는 외계에서 온 쓰레기들도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숙청 대상이다.
“흐아아… 흐아아아아아… 하악… 뜨거워… 아아… 살려줘…!”
‘아직 안 죽었나? 튼튼하네.’
몸은 여전히 푸른 불꽃에 불타오르고 있는데, 아직도 살아있다.
유라는 몽둥이를 늘어뜨린 채 실험실 밖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나갔다. 이미 그 몸에 마비약의 흔적은 없다.
유라의 푸른 불꽃은 온갖 약물이며 사령술 계열의 저주를 불태워 제거한다. 본인의 마력으로 만들어진 불꽃이므로, 이 불이 그녀 자신을 태울 염려도 없다.
그 증거라는 듯이, 실험실 내부의 거미줄이며 온갖 것들을 불태우며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있으면서도, 그녀의 매끄러운 피부에는 화상은커녕 그을리지조차 않았다.
외려 유라에게 여기저기 흩뿌려졌던 괴인의 체액이 사라지기만 할 뿐이다.
“잘됐네요. 저도 참, 깜빡 조절하는 걸 잊어버렸지 뭐예요.”
“히, 히익…!”
“아아, 정말 다행이야. 죽지 않아서 참 다행이에요. 저는 정말이지 무척이나 기쁘답니다.”
유라는 남자라면 누구나 홀려버릴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붉은 입술이 자아내는 수려하고 화려한 미소는, 그러나 괴인의 입장에서는 공포만을 느끼게 했다.
유라가 한발짝 다가가면, 괴인은 뒤로 넘어진 자세 그대로 조금이라도 더 뒤로 나아가려 한다. 이번에도 한발짝. 괴인은 꼴사납게 뒤로 기어간다.
――버러지 같은 것.
“벌레처럼 바닥을 기는 모습이, 아주 잘 어울리네요.”
유라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보이며 웃었다.
그러나 아직, 아직이다. 이 정도로 만족할 리가 없다. 이 버러지 같은 수컷에게 당한 굴욕, 감히 이 몸에 손을 대고 마음껏 능욕한 데다, 무엇보다 이 나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 그 무지한 오만함….
용서할까보냐.
최대최악의 방법으로 고문하고, 고통을 주고, 살아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괴롭혀주마. 죄의 무게를 알라. 무지라는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깨닫게 해주마.
유라는 단호하게 결단하며 괴인을 향해 다가갔다. 지척에 닿았다.
“히, 히익… 안 돼… 망했다… 빛… 아아, 아아아아… 죽여줘… 차라리 죽여… 아, 아아아아….”
“……?”
그러나, 문득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망했어, 망했다고…! 아아, 하필, 밖으로… 아니, 밖이 아니었어도 알 거야… 큰일났다….”
“뭐라는… 건가요?”
“마, 마법소녀! 차라리 빨리 죽여줘! 오기 전에! 그 놈이 오기 전에 날 죽여줘!”
그 놈?
온다고?
뭐가?
의아해하며 그렇게 생각한 순간.
‘………………………………………..?’
쭈뼛, 하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설 것 같은 오싹함이 그녀의 피부를 벌레처럼 기어갔다.
타닥, 타닥, 타오르는 불꽃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귀를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 소리 너머에서. 드문드문 빛이 펼쳐졌을 뿐인, 어두운 복도 너머에서.
――철퍽, 하는.
무언가 질척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유라는 알 수 없었으나, 눈 앞의 괴인만큼은 그게 뭔지 알아차린 모양이다.
“아, 아아아아아아! 왔어! 왔다고! 망할 년아! 이런 X발…! 망했어… 망했다고!!!!”
“뭐, 라는….”
복도 저편에서 소리가 다가온다. 점차 커진다. 소리가 실체를 가진 것처럼 귓구멍에 들러붙었다.
철퍽, 하고 다가온다.
철퍽, 철퍽, 하고 가까워진다.
철퍽, 하고 귓구멍에, 철퍽, 하고 계속해서, 철퍽, 하고 무언가가, 철퍽, 하고 저 너머에, 철퍽, 하고, 철퍽, 하고, 철퍽, 하고.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울려퍼지는 반향음. 아마 저 멀리서 모퉁이를 돌아가며 이곳을 향해 다급하게 다가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급속도로 다가온 그것은, 다급하다시피 모퉁이를 돌면서 나타났다.
――‘야! 안 된다고! 『그 놈』들이 보면 어쩔 거야!’
――‘…아, 뭐야. 아직 풀어놓은 거야?’
『돌』들을 제조하던 실험실. 그 곳에 있던 두 괴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무엇 때문인지 실험실의 불을 키지 않았다. 불을 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과연, 하고 유라는 이해했다.
아무리 모두가 쉬는 밤이라곤 해도, 이 층에 지나칠 정도로 사람이 적은 이유도, 아마 이것 때문이겠지.
“와, 왔다. 왔어…! 안 돼애애애애애…!”
복도 저편에서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나타난 것.
그것은, 넓은 복도를 그득히 메울 정도로 무수한――촉수의 무리였다.
* * *
복도 저편에서 나타난 촉수를 본 유라의 반응은, ‘도주’였다.
거미 괴인을 미끼로 삼듯, 촉수가 밀려드는 복도의 반대방향으로 단숨에 도약했다.
“어, 야, 야?! 이 망할 년아! 이대로 날 버리는 거냐!? 구해줘! 구해줘어어어어!”
“……딱히 구해 줄 의리도 없는데요.”
유라는 냉정하게 내치고, 차가운 시선으로 이쪽을 향해 손을 뻗는 괴인을 쳐다봤다.
제대로 된 몸체가 보이지 않는 촉수는 상상 이상으로 재빨라서, 푸른 빛으로 불타오르는 실험실로, 그리고 복도 한복판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거미 괴인을 향해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원망할 거야! 저주할 거다 마법소녀! 너는, 너만큼은… 아, 안 돼!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괴인의 몸이 뻗어나온 촉수들에 휘감겨, 속수무책으로 끌려들어갔다.
차마 두고 볼 수 없는 광경에, 유라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불빛에 이끌린 걸까요.’
이 층의 조명이 높이 있는 창문에서 비쳐오는 푸른빛뿐인 이유가 이것 때문일까. 아무래도 일정량 이상의 광량에만 반응한다거나, 그 빛에 특별한 성분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불빛에 이끌린 거라면 유라는 안전하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읏?! 저도 노리는 건가요?!”
괴인을 삽시간에 먹어치우고 이어서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촉수의 모습에, 유라는 다시금 크게 도약하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달려나가던 그녀의 발은 금방 우뚝 멈춰섰다.
반대쪽 복도에서도 철퍽거리며, 같은 종류의 촉수무리가 가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최악…!”
도망칠 길은 없다. 어딘가 방 안에 들어가 농성이라도 할까? 아니, 그랬다가 밀폐된 공간에 저런 게 밀고 들어오면 진짜 끝장나는 건 아닐까?
그나마 이 복도는 상당히 넓다.
불꽃으로 유도하고 로 물리치면, 어떻게든 도망칠 길 정도는 만들 수 있을지도――
“…………?”
‘뭐지, 몸이, 굳어서….’
얖도 뒤도, 어마어마한 질량의 촉수 무리에 가로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
괴인을 쩝쩝거리듯이 집어삼키고도, 탐욕스럽게 자신을 노리고 다가오는 촉수들.
그 가운데에 선 유라는, 도망치는 것도, 반항하는 것도 잊어버린 듯 돌처럼 굳어버린 다리에 당황하고 있었다.
특별한 저주? 촉수의 능력? 마비독의 영향이 남아있나?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가능성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전부 부정했다.
그녀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공포다.
무섭다.
본인도 잘 모르면서도, 그녀의 몸이, 안쪽 깊은 곳에 혼에 가까운 곳에 있는 본능이 저 촉수만은 싫다고, 저 촉수가 너무 무섭다고, 저 촉수에는 거스를 수 없다고… 그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아마 푸른 거인을 봤을 때, 발정해버리고 말았던 그 현상과 비슷한 것.
‘그 영감탱이가 진짜.’
몽둥이를 든 팔이 달달 떨리고 있다. 촉수를 피하기 위해 어디로 갈지 모르는 다리는 선택하기를, 나아가기를 거부하고 못 박힌 듯이 그 자리에 서있다.
후우, 하고 심호흡을 했다.
반복된 마법, 그리고 거미 괴인에게 능욕당하며 잔뜩 빨려나가는 바람에 남아있는 마력은 간당간당하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뭐 어쨌다고.’
“흥……!”
유라는 여전히 달달 떨리는 팔을 들어, 그 손목을 날카로운 송곳니로 아득, 물어뜯었다.
고운 피부가 찢어지고, 선명한 붉은 피가 촤앗, 흘러나왔다. 그 찌르는 고통에 유라의 눈이 찌푸려졌다.
가장 빠르게 지척까지 다가온 촉수 한 가닥이, 얼굴을 찡그린 유라를 구속하고자 달려들었고――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내리누르듯 휘둘러진 도깨비방망이에 찍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지저분한 체액을 흩뿌리며, 촉수의 끝이 뭉개졌다.
“나는! 마법소녀! 의! 유라야!”
배에서 힘을 끌어올려 외치며, 유라가 스스로를 고무시켰다.
지지 않는다.
지지 않겠다.
“무섭지 않아! 지지 않아요! 저는 도깨비! 상대를 무섭게 하는 건 내 몫이니까! 누구보다 고결하고! 누구보다 아름답고! 누구보다 눈부시고! 누구보다 강하게! 저는, 그런 마법소녀가――그런 여자가 될 거니까요!”
촉수에서 진동하는 비릿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점액이, 남자의 생식기를 닮은 촉수의 끝이 유라의 속마음을 어지럽혔다.
아랫배에서, 자궁에서 부지깽이로 긁어 올리듯 기묘한 열기가 올라온다. 암컷의 본능이 보지를 벌리기를 강요한다.
그 박사가 자신의 머리와 몸에 무언가 손을 댄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토록이나 마음이 어지러울 리가 없다. 이렇게나 당장 저 촉수에 굴복해, 온갖 쾌락에 자신의 몸을 맡기고 싶다는 이런 욕망이 올라올 리가 없다.
“아니야!”
전후좌우에서 밀려오는 촉수들을, 화려하게 뿜어낸 여러 갈래의 불꽃으로 교란시키고 노련하게 세 개의 촉수를 잇따라 뭉개버렸다.
“저는 당신들에게… 이따위 촉수에게… 메크라크 따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무슨 장난을 치고, 무슨 짓을 당하든, 고결한 자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스러지지 않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라는 촉수의 체액으로 범벅이 된 채, 눈 앞의 촉수의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폭풍처럼, 혹은 거대한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촉수의 벽을 향해, 강물을 거슬러올라가는 연어처럼 지지 않고자 달려나갔다.
* * *
“하앗, 하앗, 하아……!”
땀이 비처럼 쏟아져내린다. 마법소녀가 되고 이토록이나 지칠 정도로 싸운게 얼마만인지.
마력은 이미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손에 든 도 형상이 흐릿해지고 있다.
“살았, 다……!”
하지만 그래도 빠져나왔다. 유라는 그 기쁨에 몸을 떨었다.
쉴 새 없이 밀려들어오고, 그녀의 사지를 붙잡아 붙들려는 촉수 사이를 누비며 가까스로 활로를 뚫고 뛰쳐나올 수 있었다.
마침 열려있던 방이 있어서, 그 안 쪽에 남은 모든 마력을 쏟아부어 온 방 안에 불꽃을 일으키자 촉수들은 표적을 유라에게서 그 불꽃으로 바꾸었다. 거미 괴인의 실험실 안에 타오르는 불꽃에 일부 촉수가 이끌리듯 들어갔던 게 기억에 남은 덕분이다.
단순히 불빛에 이끌리기 때문인지, 혹은 마력이 고갈된 마법소녀는 먹이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후우우우….”
어쨌든, 촉수의 추격은 멈췄다.
유라는…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