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03
EP.203
#2-20 레지스탕스들의 도시(1)
벌떡!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 몸을 여기저기 만져보고,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꿈을 다꿨네.’
하여간 끔찍한 꿈이었다.
꿈에서 우리는 쿠알의 저택에서의 탈출에 실패하고, 결국 쿠알과 그 부하들의 노리개로 전락해버렸다. 만약 뭔가 하나 삐끗해서 탈출에 실패했더라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무심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우울해.
그래도 몸을 덮는 폭신한 이불이나 호텔룸 같은 고급스런 인테리어를 둘러보고, 안도하며 한숨을 내쉰다. 옆에 있는 침대가 비어있는 걸 보면 단비와 단애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 나간 모양이다.
이곳은 쿠알의 저택에서 도망쳐 나온 뒤 도착한 【레지스탕스】의 아지트다.
꿈은 꿈일 뿐, 지금 여기는 쿠알의 저택이 아니다. 그러니 안심하자.
…어라, 쿠알의 저택도 여기만큼 호화스럽긴 했는데.
“됐어됐어. 거기서 암퇘지 취급 받으면서 사는 거랑은 천지차이니까.”
산발이 된 머리를 쓸어내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 차림. 의 배터리가 다 떨어지고 나자 입고 있던 옷으로 돌아왔지만, 그것도 먼지와 진흙으로 더러워져 버렸다.
이 아지트에 도착해 피로가 싹 몰려오는 바람에 어제는 그냥 훌렁훌렁 벗어버리고 씻고 잠들었다.
‘어차피 쿠알이 준 고.’
갈아입을 옷이 있을리 없으므로 그 민망한 옷을 또 입어야 하나 했는데.
“…….”
“――으악?!”
어제 옷을 벗어던진 쪽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이 방에는 나 외에도 누군가 한 명이 더 있었다.
애초에 상대가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럴게… 머리에 괴이한 가죽 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니까.
“뭐, 뭐, 뭐, 뭐야?!”
가죽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 아마도 남자…? 괴인…? 인 것 같은데, 혐오스러울 정도로 몸 여기저기를 드러내고 있다. 쿠알과 비슷한 투실투실한 체형과 맞물려 진짜 보기 싫은 모습이다.
옷으로 입고 있는 건 마스크와 같이 새카만 가죽 천. 그런데 불룩 튀어나온 팬티 빼고는 몸을 제대로 가릴 생각은 있는 것인지,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여기저기는 고스란히 드러낸 채 생색만 내듯 천을 걸치고 있다. 입에는 막대 같은 재갈이 물려져있다.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혐오스럽다.
눈치채고 보니 재갈이 물려진 입에서 불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남자는 안대 아래로 슬쩍 드러난 한쪽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가 싶더니, 얼굴을 붉히고, 투실투실한 몸에서 땀을 흘리나 싶더니,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주섬주섬 집어들었다.
“어, 내 옷….”
내가 대충 벗어놓은 와 속옷이다.
남자는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고는 촤르르르르릅 입에 물고 빨고 씹었다.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내 옷! 내 속옷! 으아아아아아아!
왜 저런 놈이 내 옷을 집어먹는 거야?! 무슨 짓이야?! 왜 맛을 보는 거야?! 저러고 싶은 거야?! 해, 행복해보여서 더 끔찍해!
머리가 혼란으로 가득찼다.
내가 침대에서 나와 함께 떨어져 내린 이불을 꼭 끌어안고 덜덜 떨며 지켜보는 가운데, 검은 가죽 차림의 괴인은 만족스러운 발걸음으로 흔들흔들 떠나갔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쇠가 물려지는 소리가 났다.
…진짜 간 거지?
“어라?”
도대체 뭐였던 걸까, 하고 온 몸에 감도는 한기에 팔을 문지르자니, 그제서야 없던 것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내가 옷을 대충 던져놨던 바닥 옆의 선반. 그 위에 깨끗하게 포개진 옷이 올려져 있었다.
……설마 싶은데, 옷을 가져와 준 걸까.
하인 같은 포지션인가? 쿠알의 저택에서도 로봇 메이드가 그런 자잘한 것들은 대신 해줬으니까. 모양이 저렇기는 해도, 저것도 로봇 집사의 한 종류일지도 모른다.
아니, 저 외형은 좀 심한데.
“진짜 깜짝 놀랐네….”
대충 중얼거리면서 준비된 옷을 들어보였다.
“……이게 뭐야.”
먼저 눈에 띈 건 포개진 옷 위에 놓여진 속옷.
얇은 팬티와 브래지어는 미국 만화 풍으로 칸이 나눠진 특이한 무늬였다. 여기 이 금발 여성이 “S!”라고 외치면서 채찍을 휘두르는 칸이 특히 인상적이다. 누구한테 채찍을 휘두르는 건지 엄청 궁금하네.
속옷은 그렇다곤 해도, 나머지 옷은 멀쩡한 옷이었다.
그 민망한 에 비하자면 어떤 옷이 안 그러겠냐마는. 어쨌든 피부 면적의 70%를 가릴 수 있는 옷을 입는건 엄청 오랜만이다.
……야이 씨. 옷 정도는 평범하게 입으면 안 되냐.
* * *
“안녕, 케이~! 좋은 아침~!”
“……그래.”
이 아지트의 식당으로 나오자, 커다란 창가에 면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앞에 두고 냠냠쩝쩝 집어먹던 단애가 손을 흔들며 맞아주었다.
그 태평한 얼굴을 보고나자 어째 어젯밤 꿨던 꿈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꿈 속에선 이 녀석, 좀 귀여웠던 것 같은데.
“응? 왜 그렇게 쳐다 봐?”
“아무 것도 아냐. …잘 잤어?”
“이상한 꿈을 꾸긴 했는데 잘 잤어. 무슨 꿈이었는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뭘까? 되게 행복한 꿈이었던 것 같아~.”
단애가 고개를 갸웃 기울이면서, 손에 든 빵을 죽죽 찢어서 입에 넣었다. 지구에서는 본적 없는 빵인데, 척 보기에도 맛있어 보여서 나도 집어들었다.
이니 때문에 제대로 된 의복을 갖춰 입은 몸은 어째 무겁게 느껴졌다.
“단비는?”
“마음 정리한다고 요리하러 갔어.”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네.”
“다행이지, 다행이야. 쭉 인형 상태면 어떡하나~ 싶어서 걱정했는데.”
단비는 쿠알과 루돌프의 손에 의해 인형처럼 의지가 희박해진 상태였는데, 【레지스탕스】의 리더라는 여자가 뭔가 손을 쓰니 금방 회복되었다.
정신을 차린 단비는 인형 상태에서의 일이 이것저것 떠올라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쨌든 썩어도 마법소녀라는 걸까, 짜증은 좀 냈어도 우울해 보이지는 않았으니 다행이야.
“…저기 단애 너, 뭐 이상한 남자 못 봤어?”
“응? 이상?”
“가죽옷을 입은 뚱뚱한 남자.”
“뚱뚱한 남자는 못봤는데, 이상한 남자는 봤어.”
단애가 새로운 빵을 집어들며 답했다.
“삐쩍 마른 남자였는데, 아침에 내 옷을 집어들고 호들갑스럽게 가버리더라구. 대신 다른 옷을 두고 가 주긴 했지만.”
입고 있는 옷의 치맛자락을 팔락인다.
나는 낙낙한 느낌의 바지를 입고 있는데, 단애는 무릎까지 오는 스커트 차림이다.
흐음.
“근데 진짜 웃기다? 이거 무늬 봐봐.”
“?!”
그런데 갑자기 단애가 펄럭, 스커트를 뒤집는 게 아닌가!
새하얀 허벅지 위로 보이는, 토끼가 늑대를 물어뜯고 있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의 팬티가 눈에 보였다. …이 별은 정상적인 속옷이 없는 걸까.
한동안은 한가롭게 식사를 하면서 따뜻한 차를 들이켰다.
이 아지트는 예쁜 호텔 같은 느낌이고, 우리가 있는 식당은 느낌 좋은 카페 같다.
사람이 없어서 한가로운 카페 안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이런 게 참 오랜만이라 상당히 힐링이 되었다.
그러나 단애는 어딘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레지스탕스】들의 거점. 동시에 【메크라크】 귀족 중 6위인 아데가 통치하는 도시.
쿠알의 도시는 모래폭풍이 여기저기서 휘말려 올라오던 사막 같은 느낌이었지만, 여기는 언뜻 보기만 해도 반짝거리는 빛이 올라올 것처럼 예쁜 거리가 늘어서 있다.
“이 도시….”
단애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일변하듯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생긋 웃었다.
“됐고. 어쨌든 우리 어떻게든 도망쳐나왔네!”
“도망쳤다고 해야하나, 완전히 뭉개버리고 나왔지만.”
“그러니까. 쿠알 놈 목에 목줄을 채워서 끌고 오는 건 진짜 통쾌했어.”
“그건 좀 동감.”
쿠알은 【레지스탕스】들의 손에 의해 연행되어 끌려왔다.
지금쯤 어딘가에 감금되어 있으려나? 아니면 고문?
어느 쪽이든 상상만으로도 통쾌하다. 남의 몸을 떡주무르듯이 주무르던 쓰레기니까, 응, 자업자득이야.
“그보다 이야. 진짜 없었어? 비슷한 거라도.”
“없었어. 샅샅이 찾아보긴 했는데….”
단애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거대 골렘 을 끌고 밑으로 추락한 사이, 단애는 에 남아 이것저것 뒤져보고 필요해 보이는 것들은 싸그리 털어왔다.
문제는 우리가 바라던 은 없었다는 것.
“하아아아아….”
어쨌든 다시 제자리 걸음. 지구에 돌아갈 길은 멀었다.
“ 부족 증상이 나타나고 있어… 보여? 나 지금 손 떨리는 거.”
“케이는 그거 엄청 좋아하는 구나.”
“나한테 은 산소 같은 거야. 없으면 숨이 막혀서 죽어버려. 아니면 물고기에게 있어서 물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냐. 이 상황에도 알파 고 년은 즐겁게 ‘위치걸 라이프’를 즐기고 있을 것 같아서 짜증나.”
무엇보다 아직도 새로 나온 극장판을 못 봤다.
“전부 너 때문이잖아, 요 년아! 너만 없었으면…!”
“꺄아아아아! 바, 밥 먹자, 밥! 밥상머리 앞에서 이러는 거 아냐! 응?!”
신작 극장판을 보러간 자리에서, 나는 단애에게 붙잡혀 【단애의 성】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그리고 고대로 이 【메크라크】에 오게 되었고.
진짜 생각해보니 이 년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어! 씹어먹어도 부족할 년!
단애의 멱살을 붙잡고 탈탈탈탈 털자, 단애가 필사적으로 내 팔을 두드리며 떨쳐냈다.
“으으으… 어, 어쨌든 나도 빨리 돌아가고 싶으니까… 피넛도 걱정 되고… 어쨌든 힘을 모아서 을 찾아내자구… 지구로 돌아가자….”
“……흥!”
어쨌든 지금 상황에 영양가 없는 싸움은 좋지 못하다.
적의 본거지에 들어와 있으니만큼, 정신 바짝 차리고 힘을 합쳐 돌아갈 방법을 찾지 않으면….
“――어머나, 두 분 다 여기 계셨군요.”
또각, 하는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우리가 있는 식당에 들어섰다.
안경을 쓴 지적인 인상의 여성이었다.
“어, 그게….”
“【레지스탕스】의 부관이자 아데님의 보좌를 맡고 있는 야스메디아라고 합니다. 그냥 부관이나 메디아라고 불러주세요.”
그녀는 호의가 담긴 표정으로 생긋 웃어보였다.
* * *
“……후움?!”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쿠알은 흠칫 잠에서 깨어났다.
“후우… 움…?”
뭐지?
여긴 어디지?
어딘지 춥고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팔을 움직여보려 했지만, 덜컹덜컹, 하는 낡은 소리만 날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루돌프.
――루돌프?
반사적으로 평소에 하던 대로 루돌프를 부르려했지만, 그제야 자신의 입에 재갈이 물려 있어서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나, 돼지 씨가 일어났네요.”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 와중에, 또각, 또각, 하는 구둣소리가 쿠알의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