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05
EP.205
#2-20 레지스탕스들의 도시(3)
도와달라니….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그게 내 솔직한 감상이다.
아니, 남의 별을 멋대로 침략한 나쁜 외계인들의 일을, 굳이 침략당하는 입장인 우리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도 웃기잖아.
그보다 그런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부탁해오다니,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 거야!
나는 메디아의 얼굴을 다시금 뚫어져라 노려보고, 시선을 슬쩍 돌렸다.
…음, 정말 예쁜 사람이다. 무심코 “괜찮아요!”라고 말해버릴 뻔 했어. 내 안의 남자 부분이 ‘예쁜 여자의 부탁인데 별 정도야 뭐’하고 말하고 있어. 큰 일 날 생각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되게 뻔뻔하지 않아~?”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바보 같은 생각을 떨쳐내는데, 단애가 비꼬는 어조로 끼어들었다.
“우리는 너희한테 침략 당하는 입장이라고? 호랑이가 토끼한테 도와줘~하는 격이라니까?”
“호랑이보다 센 토끼지만요.”
메디아가 쿡쿡 웃으며 안경을 쓸어올렸다. 메크라크에도 호랑이나 토끼가 있는 걸까.
“안 되는 겁니까?”
“난 솔직히 마음이 안 가는데~ 케이는 어때?”
“으음….”
이건 거절하는 게 맞다. 그렇지 않다면 호구 잡히는 것뿐이니까.
물론 쿠알의 저택에서 빠져나오는데, 조금쯤 도움을 받은 건 있다. 하지만 그건 【레지스탕스】쪽도 마찬가지니까, 거기에 관해서는 빚도 은혜도 대강 퉁치면 된다.
제로베이스에서 지금 이 부탁을 따져보자.
우리에게 있어 의미도 없고 성과도 없으며, 일이 전부 잘 된다 하더라도 지구가 침략 당한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 별의 남자들이 지구에 총공격을 가하려 하니까 막아달라’. 그 부탁을 듣고서 막아냈더니, 이번엔 승리한 여자들이 변심해서 총공격을 가해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이지 눈뜨고 뒤통수 맞는 얘기니까.
그러니까 거절하는 게 도리이긴 한데….
“저기.”
“네, 케이 님. 말씀해주시지요.”
“시선이 느껴져서 더럽게 짜증 나는데, 이거 뭐야?”
“……..”
메디아가 조용히 입을 다물더니, 키득, 하고 웃었다.
“아, 특별한 의미는 없었는데요.”
그리고는 손을 휘젓자, 우리가 거리에 나왔을 때부터 느껴졌던 시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온 피부를 찌르던 시선이 사라지자, 어째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이네. 한숨과 함께 숨을 내쉰다.
‘이 개 같은 특성들이 도움이 된 건 또 오랜만이네.’
이라던가 여러 가지 특성들 때문에 시선에 지나치게 민감해져버렸다. 음탕함이 담긴 시선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단애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몰라 눈을 깜박깜박 감았다 뜨더니, 이내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행에, 감시…? 이런 태도로 무슨 도움이야?!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죄송합니다. 노여워 마세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악의가 있어서 한 행동은 아닙니다.”
“사람 목에 협박의 칼을 들이대놓고, 뭐? 악의는 없어?! 어느 입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말씀하셨던 대로 서로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그냥 내버려 두는 편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당신들은 최하위 서열이라곤 해도, 아데님조차 고전하던 【귀족】을 손쉽게 제압한 마법소녀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서우니까 감시했다? 그래, 그 무서~운 사람들을 감시하는 거니까 맨손은 아니겠지? 저격총? 레이저총? 박격포? 【메크라크】의 기술은 잘 모르지만, 깨닫지도 못한 사이에 목숨을 끊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화학무기 같은 것도 있었으려나?”
“맹세코 그런 건 없습니다. 기본적인 무장은 하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방위와 도주 목적의 무장으로….”
“하, 이름만 붙이면 뭔들 안되리! 기관총을 손에 들고 『방위용 총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잠깐, 잠깐만, 단애야.”
흥분해 지리멸렬한 입씨름을 계속하려는 단애를, 내가 손을 들어 말렸다. 입을 손으로 덮어줬더니 단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황홀한 듯 녹아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내 손바닥을 낼름낼름 핥기 시작했다.
…얘 왜 이래? 소름 돋아…!
“영양가 없는 싸움은 여기까지. 그치만 이쪽도 이런 취급을 받아가면서 당신들을 위해 일할 마음은 들지 않네. 하룻밤 쉴 방을 제공해준 거나, 이렇게 옷을 마련해준 건 고마우니까 그에 대해 보답하는 정도는 할게. 하지만 당신들의 일에 깊숙이 관여되는 건 사양이야. 우리 손으로 고향별을 넘기는 기분도 들고.”
“…일단 감시 건에 대해선 다시금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조심해야하는 입장이어서 그러니, 부디 너그러이 양해해주세요.”
메디아는 다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숙식이나 옷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제는 저희도 도움을 받았고, 무엇보다 이곳은 여성들의 도시――곤란한 여성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면… 뭐….”
“그리고 어차피 그냥 부탁을 들어주실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깊이 숙였던 허리를 펴며, 메디아는 안경을 고쳐쓰며 웃어보였다.
“교섭을 하죠. 어제 이야기를 듣고보니 곤란하신 것 같던데… ,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그 화제는, 우리의 귓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 * *
지구에 돌아가려면 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 을 찾으려했지만, 유력한 후보였던 쿠알의 저택에서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낙담하고 있었는데….
“이, 있어? 이 도시에?”
“아뇨. 없습니다.”
기대하며 물었건만, 즉답. 나는 기운이 빠져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리고 이어진 메디아의 말에 깜짝 놀랐다.
“현재 【메크라크】에 은 수도에 밖에는 없습니다. 정확히는, 근 두 달에 걸쳐 전 행성에 있는 을 싸그리 긁어갔습니다.”
“뭐어……?”
“본격적으로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한 것 이상의 대규모 를 만들기 위해서겠지요. 덕분에 어딜 찾아봐도 은 없을 겁니다.”
그럴 수가….
아연해있는 내 팔을, 단애가 콕콕 찔렀다.
“쿠알의 【보물고】에서도, 을 위한 자리는 있었는데 최근에 옮긴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비어있었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거 때문이었나 봐.”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그렇구나, 그냥 없었던 게 아니라 최근에 옮겨졌던 거구나….
“애초에 을 이용하려면 어느 정도 지식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구인인 당신들로서는 다루기 좀 어려울 텐데요.”
그래. 어쨌든 현지인 중 누군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거구나.
“저희의 목적은 수도에 있습니다. 수컷들에게 감금되어 있을 【여왕】을 해방하는 게 최종 목적이죠. …이해는 일치하지 않습니까?”
아…….
맞네. 어떻게 보면 일치하긴 하네.
이런 말을 듣고서도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물자니 뭔가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음….’
이과 머리인 나로서는 이런 교섭 같은 대화에 능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의견을 구하고자 단애를 쳐다봤더니, 단애는 어딘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메디아도 그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아무 말 없이 단애를 쳐다봤다. 나를 사이에 끼고 둘 사이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아서, 나는 위장이 꾸욱 조이는 걸 느꼈다.
우으… 향기롭고 매력적인 여자들 사이에 끼어있는 건 기분 좋지만, 이런 불편한 분위기는 싫어어….
“――좋습니다. 조건을 추가할까요.”
정체된 듯한 딱딱한 분위기를 깬 것은, 한숨 섞인 메디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졌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아데님께 말씀드려서, 만약 모든 일이 성공했을 시에는… 지구에 대한 침략을 금하도록 룰을 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콜.”
나도 모르게 말을 꺼내버리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새삼 파격적인 얘기라, 거절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다만 단애는 신중하게 노려보더니 천천히 말을 골랐다.
“그걸 어떻게 믿는데? 일이 끝나고 입 싹 닫고 팽할지 누가 알아?”
“마법적 처리가 된 계약서로 계약을 하도록 하죠. 【귀족】분들이 사용하시는 방식으로, 정령의 중재가 있는 계약을 깬다면 더 이상 해당 정령의 중재를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정령의 힘으로 지탱하고 있는 이 도시도 무너져버리겠죠… 도시 하나를 걸고 하는 계약입니다. 믿어주시겠습니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생각해 볼 만 하겠네.”
단애는 여전히 확답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메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 너희 대장… 그 아데라는 분이랑 제대로 대화를 하고 싶어. 그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믿을만하다고 판단하면, 그때 결정하겠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직 시간은 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쿠알의 저택에서의 일도 있으니, 한동안 푹 쉬시죠. 이 도시에는 놀거리도, 즐길거리도 참 많은 자랑스러운 도시니까요.”
메디아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똑 부러진 두 사람 사이에 있으니까,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인다… 응… 단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참….
* * *
진지한 교섭이 끝나고 나자, 메디아는 한층 가벼운 분위기로 우리들을 이곳저곳으로 안내해주었다.
【물의 도시】 명물인 물방울 꼬치구이나 물방울 곤돌라, 특이하게도 호수 속에 잠긴 도서관이나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폭포…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에 눈도 입도 즐거웠다.
우와.
즐거워.
무엇보다 11기 3화에 나왔던 【운디네 시티】랑 비슷한 느낌이라 감동이 더했다. 만화속 세계에 들어온 느낌.
“예쁘다… 마치 2차원 같은 아름다움…!”
“케이, 차원이 내려갔는데….”
감동이고 즐겁고 기쁘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기이한 기분이 들었는데, 상당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남자가 전혀 없었다.
여길보고 저기를 봐도 여자들뿐.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조네스들의 나라처럼, 여자 밖에 보이지 않았다.
“네, 당연합니다. 지금 안내해드린 곳은 수컷들의 출입이 금지된 공유지니까요.”
“아… 그래? 남녀구역이 따로 나눠져 있는 거야?”
“네? 아하하, 설마요!”
메디아가 웃으며 말했다.
“수컷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출입을 『허락』해 준 장소는 있지만, 수컷들 따위를 위한 공간이라니 그런 사치를 허락해줄 리가 없지요.”
한순간 메디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생각이 멈췄다.
나는 지금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지만, 단애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도시….’
숙소의 시당에서, 창밖으로 이 아름다운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도 어딘지 석연치 않은 듯 우물거리던 단애.
아마 이미 이 도시의 일그러짐을… 일찍이 눈치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걸지도.
“마침 잘 됐네요. 안 그래도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저희 도시의 명물이고, 최고의 즐길거리죠. 아마 제일 처음에 이 광경을 보여드렸으면, 아까 전 얘기도 흔쾌히 동의해주셨을지도 모르겠어요. 모두가 꿈꾸는 『올바른』 세상이 여기에 있으니까요.”
메디아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 최고로 순수하게, 최고로 환한 미소를 보이며, 마침 근처에 다다랐던 창고 같은 공간의 문에 다가갔다. 삐릭, 삐릭,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하나둘 해제된다.
기이이이이잉― 철컹!
아름다운 도시에는 어울리지 않던,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지저분한 창고.
기계장치로 된 문이 열리고, 그 창고 안의 모습이 드러나자.
『으우… 우….』
『크후우우우… 욱…!』
그곳에는.
끔찍한 몰골로 감금되어 사육되는 남자――수컷들이 빡빡할 정도로 잔뜩 늘어서 있었다.
“어떠신가요. 이곳이 바로 【물의 도시】의 명물, 【수컷 목장】입니다.”
……이건 또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