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09
EP.209
#2-20 레지스탕스들의 도시(7)
“……미안하다.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들었어.”
광장에 도착한 아데는 금방 사태를 수습했다.
지도자로서 아데의 영향력은 굉장한지,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관중들도 군인처럼 보이는 여성들도 엄숙하게 따르고 반응했다.
다만 한 명, 단비의 형벌을 집행하던 그 군복 여자만큼은 어딘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어쨌든 아데가 재촉하니 결국 순순히 풀어주었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로 돼?! 우리 단비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단애야, 잠깐만!”
사태를 수습하고 우리는 아데의 집무실 겸 저택에 찾아갔다.
거대한 사파이어를 조각해 만든 듯한 아름다운 타워. 과연 【물의 도시】답게 여기저기서 신기한 방향으로 물이 솟아오르고, 별빛 같은 물방울을 흩뿌리며 시원한 광경을 연출했다. 투박하고 황량한 쿠알의 저택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쿠알의 저택도 귀한 보석 같은 광석들을 진열하며 나름 나쁘지 않은 경관을 보여주었으므로, 단순한 성격과 속성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다 됐고, 그 여자 끌고 와! 단비한테 몹쓸 짓한 그 군복 여자! 끝까지 반성 하나 안 하더만! 그 꼬라지를 어떻게 보고 있어!?”
“단애야, 진정 좀 해 봐! 잠시만!”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잔뜩 화를 내는 단애의 어깨를 붙잡으며 억눌렀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화가 난 불독처럼 당장에라도 아데에게 달려들 것 같았으니까.
단애는 그런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잔뜩 분이 난 목소리로 앙칼지게 외쳤다.
“진정?! 어떻게 진정을 해! 단비가 무슨 꼴을 당했는데! 케이 너도 다 봤잖아! 그 년한테도 똑같이 해줄 거야! 발로 차고! 그 년 보지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돼지랑 교미시킬 거니까~~~~!!!”
“진정해!”
“못해애애애애~~~~!!!!”
단애가 이 정도로 화내는 건 처음 봤다.
단애는 내 힘으로도 도저히 다 억누르지 못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난동을 부리면서 아데를 향해 이를 들이댔다.
그런 단애를 진정시킨 건, 단비의 한마디였다.
“썩을 년아, 조용히 좀 해 봐. 골 아프니까.”
“……단비이….”
으르렁거리듯 낮게 중얼거리는 한 마디에, 단애가 금방 쭈그러들어 입을 다물었다. 어딘지 상처받은 듯 눈빛이 흔들렸다.
그럴 만도 하지, 얘는 단비를 위해서 화를 내고 있었는데.
단비는 귀찮다는 듯히 눈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더니, 한걸음 다가가 단애의 머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려주었다.
“고마워. 고맙긴 해. 응.”
“다, 단비야아…!”
“근데 시끄러우니까 좀 짜져있어.”
“우흐윽……!?”
의기소침해 소파에 침울하게 주저앉는 단애. 단비는 희미하게 미소짓더니 아데를 돌아봤다.
“할 말은 그것 뿐이야? 더 없어?”
“……입 발린 말이라도 좋다면… 뭐라도 더, 말 할 수 있다만…?”
“필요 없어. 뭐 더 말한다고 해도 들을 생각도 없고.”
단비가 손을 휘휘 저었다.
“애초에 먼저 소동을 일으킨 건 나고. 뭔 짓을 당할 건 각오하고 한 짓이거든?”
쿨하게 인정하는 단비.
그 모습에 나는 눈을 내리깔았고, 아데는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단비를 쳐다봤다.
내가 단애처럼 화내지 못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단비가 몹쓸 짓을 당해서 부글부글 끓는 마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먼저 손을 댄 건 단비 쪽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단애처럼 화를 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단애가 화를 내주어서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단비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싫어하는 단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의외네. 단비는 단순한 여자는 아니지만 다혈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도 못 말릴 정도로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성적인 모습에 나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담담한 표정의 아데가 단비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비를 베풀어 숙청한 노예들은, 도시의 운영에 있어서 꼭 필요한 최고등급 인력들이었으니까. 하필이면 『과격파』 녀석들이 먼저 끼어드는 바람에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들긴 했지만, 정당한 절차대로라도 무거운 처벌이 내려졌을 거야.”
“무거운 처벌이면?”
“이것저것 복잡하게 따져봐야겠지만… 너희는 정당한 방법으로 넘어온 것도 아니잖아. 시민권도, 체류권도 없지?”
그렇네.
생각해보니 우리 불법체류자구나.
“억지로 날아와버렸을 뿐이지만….”
내가 미묘한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닌데,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는다는 게 상당히 서글펐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아데가 어깨를 들썩였지만.
“……시민권도 체류권도 없는 너희를 지켜줄 의무를 가진 사람은 이 별에 아무도 없어. ‘사소한 실수에 지나친 보복을 당했다’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길을 걷고 있었을 뿐인데 험한 꼴을 당했다’가 될 수도 있는 거야.”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고 오니까 기분이 축 처지네.
어쨌든 무사한 것으로 다행이다, 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런 건 좀 마음에 안 드는데.
이성으로는 이해해도, 감정 면에서 제대로 정리가 되질 않는다. 단애도 당장에라도 분을 내며 일어서고 싶어 좀이 쑤시는 것처럼 보였다. 단비는 무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뭐라도 말해야되겠다 싶어 입을 열려고 하는데.
“――미안하다.”
그보다 먼저, 아데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이 도시의 지배자로서 그 녀석들을 처벌할 수는 없어. 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고, 어떻게든 싶어! 하지만 정당한 절차 안에서 그 녀석들을 처벌할 방법이 없고, 내 보호 아래에 있는 그 녀석들에게 사욕으로 보복하는 걸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다. 염치없고 뻔뻔한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내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조금은 화를 풀어주기를, 간곡히, 간곡히 부탁하지….”
“어…….”
“……분이 가시지 않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한다면 이 자리에서 나를 때리도록. 발로 차도 좋고, 그쪽이 당한 것처럼 벗겨서 돼지들과 교미를 시켜도 좋아. 순순히 받아들이겠어. …내 보호 아래에 있는 녀석들의 잘못이니, 내가 책임을 지겠어.”
다만 그 장본인들에게 손을 대는 건 철저하게 막겠노라고.
아데는 흔들림 없는 의지를 표명했다.
한 도시의 지배자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양갈래로 묶은 회색 머리카락 사이로 엿보이는 정수리를 단비는 아무 말 없이 내려다보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소파에 걸터앉았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해, 제발.”
결국 단비 쪽에서 항복해버렸다.
“……정말로?”
“정말이니까. 진짜야. 복수 같은 거 귀찮고. 애초에 나는 그때그때 나 꼴리는 대로 사는 인간이니까.”
단비가 시원시원한 말투로 말하자, 아데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었다.
“물론 나 꼴리는 대로 사니까, 길가다가 그년 또 보면 진짜 죽여버릴지도.”
“으음… 어쩔 수 없지. ……감형해주지는 않을 거지만.”
“감옥에 처박든 목을 치든 맘대로 해. 내 꼴리는 대로 할 거야.”
말릴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아데도 그 여자한테는 쌓인게 있는 걸지도.
아데가 어딘지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이 도시는 많이 일그러져 있으니까. 사람이 많아지고 몸집이 커지니 나 개인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어.”
“난 그게 전부 당신 생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네.”
나는 오늘 보게 된 거리의 모습, 그리고 그 역겨운 【수컷목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다만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 거기다 내부를 정리할 여유도 없고. 본래 여성 【귀족】이 다스리던 도시는 이곳을 포함해 세 곳. …거기다 【여왕】의 통치가 있어서 나름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왕】이 모습을 감추고 세 개 도시 중 두 개가 다른 남자 【귀족】들에게 먹혀버렸지. 이 별의 여자들에게 있어 이 도시가 최후의 보루인 거야. …그러다 보니 과격한 사상도 들끓고 있다마는….”
헤에.
‘진짜 궁금하네, 그【여왕】이란 사람.’
한 번 보고 싶다.
어쨌든 그 여자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이 별은 균형을 유지해왔던 것 같다.
한 개인으로서 별 전체를 아우르는 카리스마가 있었다는 걸까.
어떤 사람일지, 그리고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 심히 궁금해졌다.
“일단 이 이야기는 이걸로 끝. 나도 더 언급 안 할테니까 거기 썩을 년도 표정 풀어.”
“단비는 언제쯤 되면 날 이름으로 불러줄까….”
“평생 부를 생각 없으니까 기대하지 마. 그보다 귀족님, 우리 좀 더 생산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데?”
단비가 손뼉을 짝짝 마주치며 화제를 전환했다. 과거의 일을 질질 끌기만 해봐야 지구에는 돌아갈 수 없다. 그걸 감안한 빠른 화제 전환이었다. 딱딱 정리하기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깔끔한 태도가 고마웠다.
“……그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아데도 깊은 호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 * *
“혼자 가도 괜찮겠어?”
“응~ 됐어됐어. 혼자 걷고 싶어~ 그리고 여긴 【레지스탕스】의 도시인걸~.”
“아니, 실수로 수로에 빠질까봐 걱정하는 건데.”
“진짜 괜찮거든!”
단비를 괴롭혔던 군복 차림의 엄한 분위기의 여성, 탈리 윈저는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홀로 걸어 돌아가기로 했다.
‘으음… 과음했나.’
짙은 술냄새가, 그녀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밤거리에 스며들었다.
옆에는 수로를 타고 밤의 경치를 즐기며 나아가는 배들이 있었으며, 택시처럼 자유롭게 잡아 탈 수 있는 곤돌라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발로 직접 걷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어째 상당히 기분이 언짢다. 전부 그 외부인 때문이다. 오랜만에 과음하고 만 것도 그 때문이다.
탈리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단비를 볼 기회가 있었다. 이번에 찾아온 마법소녀들이 그녀들이 바라는 ‘혁명’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으므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케이라는 담갈색 머리의 마법소녀는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고 순진해 보여서 나름 호감이었다.
단애라는 흑발의 마법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교활해 보여서,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똑똑한 여자는 환영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게 된 단비는――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 제 꼴리는 대로 하겠다는 듯한 행동거지나, 묘하게 시원시원한 성격이 이상할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그녀가 수컷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자,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여자가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다. 탈리는 곧바로 그런 마법소녀를 물어뜯을 준비를 했고,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곧장 행동에 옮겼다.
마침 잘 됐다. 마법소녀라는 것들에게 의지하려던 어리석은 민중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추하고 못난 존재인지 선전할 기회였으니까.
도중까지는 아주 잘 되었다.
마법소녀는 어쩌지도 못하고 연행되었으며, 돼지들에게 범해지는 추태를 모두에게 보였다.
본래의 바람대로면 아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범해지게 둘 생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아데가 지나치게 빨리 도착했다.
‘그래도 뭐, 충분히 즐겼으니까.’
그 장면은 다시 떠올려 봐도 즐거워서 입가가 씰룩여진다.
남자들에게 아양을 떠는 암퇘지는, 철저하게 응징해줘야한다. 용서 할 수 없다. 용서 못 해.
다만.
‘……왜 무너지지 않지?’
아데의 명령으로 풀려난 단비는 여전히 멀쩡해 보였다. 이 정도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사람들 사이로 잠시 눈을 마주친 순간, 그 다홍색 눈에 혐오의 빛이 살짝 비쳤지만 금방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시선을 옮겼다.
그 눈을 떠올리고 나자, 어째 이가 부드득 갈렸다.
부셔버리고 싶다.
망가뜨리고 싶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남자를 받아들이는 그 암퇘지가.
‘뭔가 다음 수를 생각해볼까.’
그 암퇘지를 효율적으로 망가뜨리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어떻게 괴롭혀줘야 그 눈이 절망으로 물들까.
술기운에 비틀거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톡톡, 자신의 어깨를 누군가 두드리는 게 느껴졌다.
“?!”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리 술을 마셨다지만, 군인으로서 훈련을 받은 자신이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뒤를 내주고 말다니.
“안녕하세요?”
밝게 들려오는 인사말.
탈리는 한순간 숨을 삼켰다. 어둠 속에 떠오른 건, 비처럼 붉은 눈동자였기 때문이다.
처음 한순간은 단비의 다홍색 눈을 떠올렸지만, 금방 그보다도 짙은 붉은색이라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이내 그 피 같은 붉은 색에 오싹한 기분도 들었다.
“마법, 소녀…?”
탈리는 경계하며 한걸음 두걸음 거리를 벌렸다. 허리춤에는 특수한 처리가 된 총과 칼이 걸려있다. 자신의 실력이라면 어느 것을 사용해도 1초 이내에 눈 앞의 적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 있다.
다만.
‘어… 손이… 떨려…?’
겉잡을 수 없는 공포에, 손가락 끝이 굳은 것처럼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 앞의 마법소녀는 가만히 서있을 뿐인데.
붉은 눈의 마법소녀――케이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늘게 뜬 눈으로 탈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아닌 것 같더라고요. …저기, 실례가 되겠지만 딱 한 대만 좀 처맞아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