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10
EP.210
#2-20 레지스탕스들의 도시(8)
“――저기, 실례가 되겠지만 한 대만 처맞아주시겠어요?”
내 나름대로 정중하게 부탁을 했을 뿐인데.
역시나라고 할까, 예상한 대로 상대는 분개하며 펄쩍 뛰었다.
“무슨 개소리야?!”
어라, 왜 못 알아듣는 걸까.
“개 같은 년한테 개 같은 소리를 했을 뿐인데, 좀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한 말이 아니다.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실린 목소리는, 밤의 어둠 속에 뒤섞여 들려왔다.
눈앞의 군인 여자――탈리라는 이름이라던데――가 당황하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지만, 그림자 속에 녹아 든 단애는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아아, 그보다 단애야, 너 때문에 애처롭게 떨고 있잖아. 이래서는 그냥 괴롭힘 밖에 안 된다고.
“아, 괜찮아요. 안심해. 지금 말한 애는 끼어들지 않을 거니까.”
“앙~ 나도 단비 복수 해주고 싶은데~.”
탈리는 당황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단비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그 뒤에는 재빠르게 손을 움직인다.
어두운 밤소리에, 탕! 하는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탈리가 허리춤에 걸려있던 권총을 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멀쩡하다.
“그 쪽이 먼저 쐈으니까 내가 한 대 때려도 정당방위지?”
나는 웃으면서 가슴께 앞에서 쥐고 있던 주먹을 펼쳐보였다.
구겨지고 찌그러진 총알이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히, 히익?!”
탕! 탕! 타탕!
리드미컬하게 반복해서 총이 쏘아졌다. 이렇게 쏘면 부담되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느 총알이나 내 몸에 닿은 것은 없었다. 전부 내게 닿기 전에 붙잡았다. 맨손 총알잡기, 이렇게 쉬워요!
을 이용한 정식 . 배터리가 아까워서 쓸까말까 고민했지만, 사용하길 참 잘했다. 안 그랬으면 골로 갈 뻔했어.
내가 붉은 구두 굽을 울리며 성큼성큼 거리를 좁히자, 새파래진 얼굴의 탈리가 비칠비칠 뒷걸음질 쳤다.
좋아, 이제 한걸음이면 주먹이 닿겠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슁! 하는 오한이 들 것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
어둠 속에서 날아든 것은 한줄기 은색 빛.
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인지 아니면 총알이 다 떨어진 것인지, 탈리는 총을 버리고 허리춤에 달린 검을 뽑아든 것이다.
떨리는 모습에서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끄럽고 재빠른 발도술로, 내 얼굴을 쪼개버리려는 듯 단숨에 베어들려했다.
까득!
마법소녀의 동체시력은 날아드는 도신을 어렵지 않게 포착했고, 나는 입으로 도신을 받아냈다.
“어, 어……?”
이로 콱 깨물어 도신을 멈추자, 탈리가 얼빠진 소리를 낸다. 눈앞에서 이로 칼을 받아내는 녀석을 보면 나라도 놀랄 자신이 있다. 내가 그런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마는.
턱에 조금 힘을 주자, 비싸보이는 도신이 기기기기기긱 기이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쨍그랑! 하고 산산조각 깨져버렸다.
탈리는 3분의 1로 줄어버린 도신을 허망하게 쳐다보다, 그대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손잡이를 쥘 힘도 없는 것처럼, 손이 덜덜덜덜 떨리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안심하다는 생긋 웃어 보였다.
“그럼, 정당방위라는 걸로. 안심해요. 사전에 말한 대로 딱 한 대만 때릴 거니까. ……그럼, 잘가요♪”
망연하게 입을 벌린 이 망할 여자의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올려붙인다.
짜아아아아아아아악!
뺨에 손바닥이 파고들어 얼굴이 추하게 일그러지고, 이어서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한 듯 목이 확 꺾이고, 그것만으로는 힘을 전부 흘려낼 수 없었는지 결국에는 온 몸이 빙글 돌며 허공을 날았다.
공중에 터져나가는 코피가 일품이다.
곡예하듯 수차례 빙글빙글 돌던 몸은, 이내 바닥에 쿠웅! 떨어져내렸다. 등을 보이고 엎드린 몸이 움찔움찔 떨리는 것을 보면, 간신히 살아있는 모양이다. 애초에 죽일 생각은 없어서, 잔뜩 힘 조절해서 때린 거다.
‘근데 이 여자도 신체강화 같은 게 가능한가 보네. 손바닥이 얼얼한걸.’
그래도 일어날 힘은 없는지 엎드려진 여자의 등에 대고, 나는 낮게 으르렁거리듯 말을 걸었다.
“마음 같아서는 단비가 당한 거 똑같이 해주고 싶었는데, 그건 단비 몫이니까 아껴둘게요.”
그 가녀린 어깨가 흠칫 떨린다.
이렇게 보면 불쌍하긴 한데.
“단순히 법률에 따라 판결을 내린 거고, 당신도 어쩔 수 없이 했던 거라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용서는 할 수 없지만, 당사자간에 합의를 볼 일이라고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
아데나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들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조금 전 단애의 마법을 빌려 엿듣게 된 혼잣말이 결정타였다.
단순한 사리사욕으로 단비에게 손을 댔다고 확신했고, 그렇기에 용서 없이 때렸다.
“너, 너, 너, 너희… 너희… 뭔데… 이, 이딴 짓… 이딴 짓 하고….”
“주변의 기록매체는 전부 가려놨어. 우리가 한 짓은 아무도 못 봐. 너 같은 암퇘지년을 데려다가 수로에 풍덩 빠뜨려놔도 아무도 모를걸?”
키득거리는 단애의 말에, 탈리가 불쌍하게 움찔 떨었다.
“사, 살해는… 그, 그, 그, 금…지야…!”
“저런. 케이랑 단비는 시민권도 통제권도 없는 불법체류자에 무법자인데 어쩌나.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는 걸~.”
“히이이이이익!”
꼭 지는 아니라는 것처럼 말하는 게 언짢다.
“……단애야, 겁 좀 그만줘. 얘기를 진행할 수가 없잖아.”
“케이는 너무 물러. 이 경우에는 전신의 뼈가 물렁물렁해질 정도로 짓밟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시는 반항하지 못하게 싹을 짓밟다 못해 염산으로 녹여버리는 수준으로 철저하게 깔아뭉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정도로 끝낸다고 얘가 갱생할 것 같아?”
나는 한숨과 함께 쓰러진 탈리의 발치를 구두굽으로 툭툭 밟아주었다. 아래에서 불쌍하게 떠는 그녀를 내려다본다.
“일단 말한 대로 여기까지만 하겠어. 앞으론 우리들한테 관여하지마. 손대지마. 끼어들지 마. 우리에 대해 씨근덕거리거나 화제 삼는 것도 용서하지 않아. 네가 어디에 숨어있는 찾아갈 수 있고, 어디서 무슨 말을 하든 들을 방법이 있다는 걸 잊지 마. 알겠어? 아니면 이 정도로 안 끝난다?”
탈리는 고개를 필사적으로 끄덕였다.
“본인의 몫은 본인이 알아서 찾아와서 청산하겠지. 제발 두려워 해. 주제도 모르고 깝치지 말고. 두려워서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으면 직접 찾아와서 사과하던가. 못 만나겠다면 아데한테 말해도 좋아. 사과해도 받아줄지는 단비 마음이지만, 적어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내 말, 알아들었어요? 알아들었으면 고개 끄덕여주세요. 좋아요. 참 잘했어요.”
필사적으로 끄덕이는 탈리의 고개 옆에서, 나는 툭툭거리던 발을 치웠다.
그러자 바통을 이어받듯, 그림자에서 불쑥 고개를 내민 단애가 탈리의 귓가에 속삭였다.
“뒤지기 싫으면, 쓸데 없는 생각 하지 마라? 그 땐 진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겠거든?”
“흐, 흐익… 끄윽…!”
“……흥.”
단애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쏘옥 들어갔다.
나는 준비해 둔 포션 병을 열어 탈리에게 뿌려주고는 떠나갔다. 비싼 포션이니까 잔뜩 부어오른 뺨이나 홱 돌아간 목의 아픔 정도야 금방 나을 것이다.
기껏 벌은 포인트로 치료해주는 것에 단애가 불만을 표했지만, 후환은 되도록 남겨두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 실례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비참하게 눈물 흘리기 시작하는 탈리를 남겨두고, 나는 단애의 마법으로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사라졌다.
살짝 불쌍하다는 마음도 들었으나, 단비에게 한 짓을 떠올리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끄응… 홧김에 저지르긴 했는데.’
――역시 복수 같은 건 안 맞아.
* * *
“…다……..”
케이와 단애가 떠나가고, 한산하고 조용한 밤거리.
탈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스스로의 몸을 껴안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여버리겠어…!”
날카로운 살기를 벼리며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어수룩하고 순진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보게 되었던 세 명의 마법소녀, 그 중 단애는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했고, 단비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붉은 눈의 마법소녀만큼은 충분히 이용해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한 명이라면 자신들의 ‘혁명’에도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용하는 건 포기다.
어수룩하고 순진? 오히려 그래서 무섭다.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다.
그 여자의 안에 들어있는 건 괴물이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손대서는 안 되는, 자칫 잘못하면 콧숨으로 내뿜는 불꽃에 온 몸이 타버릴지도 모르는, 무시무시한 괴물.
버러지를 보는 듯이 내려다보던 그 붉은 눈을 떠올리면, 눈앞에 있지도 않은데 오한으로 몸이 벌벌 떨렸다.
아, 아, 아, 아아아아아아아…!!!
죽여야 해! 그런 년들은 살려둬선 안 돼! 위험한 년들! 분명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 거야!
죽여야 해! 죽여야 해! 죽여야 해!
내가, 내가…!
“히, 히힛… 히히히히히힛…!”
주저앉은 채 미친 듯이 웃음을 흘리다가, 금방 공포가 되살아나 이를 딱딱 부딪치며 눈물을 흘린다.
미친 사람처럼, 탈리는 울고 웃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밤의 어둠속, 수로 건너편 저 멀리.
탈리로부터 조금 떨어진 거리에, 단비가 한숨과 함께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들을 하긴.”
그래도 조금 통쾌했지만, 돌아가서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단비도 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 *
“……응. 알겠어. 고마워.”
그리고 아데의 저택, 그 집무실.
아데는 수로 근처에서 모든 걸 목격한 물의 정령에게서 자초지종을 전해듣고, 한숨과 함께 끄덕였다.
새삼스럽지만 이 별의 【귀족】들은 정령들과 직접 교류하며 그 능력을 빌릴 수 있다. 물의 도시에는 물의 정령이 잔뜩 있기 때문에, 도시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을 집무실에 앉아서도 파악할 수 있다.
‘아무한테도 가르쳐 준 적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야 좋을 것도 없다. 마구 떠벌릴 일도 아니다.
“탈리는 예의주시해야겠는걸. …메디아한테 맡기고 싶지만….”
그 녀석도 수컷을 깔보는 성격이다보니 탈리와 죽이 잘 맞는다. 누구한테 맡기면 좋을지 고민해봐야겠는걸.
‘도시 분위기가 상당히….’
【물의 도시】의 분위기는 본래라면 좀 더 평화로웠을 터다. 그러나 여왕이 모습을 감추고 두 개의 여성 도시가 먹혀버리고 나니, 【물의 도시】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 결과 여러 가지로 통제불능 상태가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심연의 도시】에서 찾아온 여자들이 가장 다루기가 어려웠다.
그 도시는 여자들로 이루어진 엄격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으며, 도시가 먹히며 도망나온 그녀들을 중심으로 【레지스탕스】가 만들어졌다. 그 세력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고, 어느 정도는 이해가 일치했으므로 아데가 떠밀리듯 그 대장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후우….”
아데는 한숨을 쉬고, 집무실 한쪽 벽에 놓여진 책장으로 다가갔다. 책 몇 권을 치우자, 그 사이로 자그마한 열쇠구멍이 나타났다.
물의 정령의 힘을 빌어 물로 만들어 낸 열쇠를 한 손에 들고, 열쇠구멍에 꽂아 시계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책장이 살짝 앞으로 뜨더니, 이내 끼릭끼릭하는 톱니바퀴 소리와 함께 천천히 옆으로 밀려났다.
“으~음!”
책장이 비켜지자, 드러난 비밀방.
아데는 깡총거리듯 들뜬 발걸음으로 안에 들어가 불을 켰다.
밝은 조명 아래 드러난 것은, 방 안을 한가득 메우는 각종 성기구들.
삼각목마에 채찍에 본디지 의상, 볼개그며 딜도에 각종 사이즈의 바이브레이터, 수음용 파동형 클리토리스 마사지기에 끔찍한 형상의 고문기계, 사람을 꼼짝못하게 구속하는 형벌도구와 【메크라크】의 초기술력으로 만들어 낸 정신붕괴 용도의 고문기구, 그 외에 끔찍한 손도구들과 각종 약물들까지.
아데는 눈썹 부근까지 내려온 앞머리 아래로, 눈을 반짝이며 그런 도구들을 쓰다듬었다.
“흐흥~♪ 잘 있었니~? 오늘도 반짝반짝 빛나는 게 예쁘구나아~. 매일 닦아주고 있긴 하지만~.”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말았다.
아데는 각종 기구들을 지나쳐 더 안 쪽으로 들어갔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벽 한가득 붙여진 커다란 브로마이드 같은 사진들과 아날로그식의 여러 서적과 기록 매체들. 아데는 그중 책 한 권을 꺼내 그 표지를 쓰다듬었다.
표지에는 가면을 쓴 남자가, 앞에 엎드린 여자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여기 있는 매체들 전부, 그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이것도 저것도, 한가지 주제를 다루는 것 밖에 없다.
――SM.
――그것도 대부분 여자가 남자에게 지배당하는 내용의.
“하아아아… 나도, 귀족만 아니었으면…!”
아데는 팔락팔락, 손에 든 SM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안타깝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