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37
EP.237
#2-24 파멸의 발자국은 가까워지고 있다고 합니다(4)
“후우….”
지금 막 방에 돌아온 단비는 침대에 걸터 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도적들이 사용하던 방이라서 그런지, 구질구질 퀘퀘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는 식사시간.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는데, 소대장인 탈리를 필두로한 인원들이 시도 때도 없이 틱틱거리며 시비를 걸어오는 통에 여러모로 심신이 소모되었다.
‘피곤하긴 한데.’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런 상황에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구에 있을 때, 단비가 담당하던 A시는 베테랑 마법소녀가 많았고, 그에 비해 수가 적은 괴인들을 나누면서 서로 경쟁했으니까.
‘중상모략에 비방까지, 동심파괴에도 정도가 있지.’
방심하면 뒤통수를 맞는게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안심이 된다.
이유 없는 호의보다는, 이유 없는 악의가 훨씬 믿음직스러우니까.
“마법소녀님, 괜찮으신가요?”
기이잉―
기계문이 열리고.
방에 돌아와 한숨을 돌리던 단비에게, 부소대장 토와가 찾아왔다.
두 손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가 들려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커피, 괜찮습니까?”
단비는 감사의 말과 함께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커피를 받아들었다.
혀가 쓰릴 정도의 블랙커피다.
“죄송합니다. 【레지스탕스】 부대에는 아무래도 머리가 굳은 사람이 많아서….”
아무래도 식사 시간의 일 때문에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다.
“괜찮은데.”
“그래도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래.”
그 외에는 특별히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단비도 굳이 나서서 말을 거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홀짝였다.
맛에 까다로운 단비도 감탄할 만큼, 커피는 맛도 향도 좋았다.
“마법소녀님은.”
긴 침묵을 깨고, 토와가 입을 열었다.
“저희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어떻게라니, 생뚱맞게.”
“여자남자를 극단적으로 나누는 저희들이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데.”
“이상하다거나,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그런 생각은 들지 않으시는 겁니까?”
단비는 조금 굵은 눈썹을 살짝 구부렸다.
짜증을 내는 건 아니지만, 생각에 잠길 때면 버릇처럼 인상을 쓰고 만다.
“내가 판단할 건 아니잖아. 애초에 외부인이고.”
“그것도 그렇네요.”
“그리고.”
애초에 남녀갈등 문제야 지구에서도 일어나고, 차별과 다툼은 찾아보면 어디에나 있다.
그런 것에 단비는 일일이 참견할 생각도, 의견을 주장할 생각도 없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그렇게 해서 더 나은 세상이 된다면 좋은 일이고.
그렇게 해서 파멸로 치닫는다면 한탄하며 그 어리석음을 비웃을 뿐이다.
그런 방관의 자세조차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성실하게 자기주장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계속하면 된다.
오히려 이렇게 방관하는 사람이야말로 불량한 사람이고, 사회에 있어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겠지만, 단비는 스스로가 요령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노예처럼 일하는 남자들을, 본인들에게 죽여달라는 부탁을 듣고 죽여주었고, 거기서 일이 꼬이고 꼬여 이렇게 되어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망할년이면 훨씬 잘했겠지.’
단애는 요령이 좋고.
케이는 생각 이상으로 이성적이며.
반대로 자신은 절망적으로 요령이 부족하다.
“중립이시라는 겁니까?”
“놉. 그냥 편가르기 싫은 거야.”
“그렇습니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신다고요.”
토와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지만,
“알겠습니다. 쉬시는데 실례했네요.”
생긋 웃어보이며 그 말을 끝으로 나가버렸다.
단비는 그런 그녀를 배웅하고는, 잔에 남은 커피를 입 안에 마저 털어넣었다.
* * *
으득으득으득으득.
토벌대의 소대장 탈리는 손톱을 깨물면서, 영 언짢은 기분으로 복도를 나아갔다.
떠올리는 것은 조금 전 식사시간, 그 재수 없는 마법소녀의 반응이다.
“역시 그년은 남성우월주의에 빠진 여자의 적이 분명해.”
단비가 보였던 의견, 단비가 보였던 반응을 종합해서 낸 결론이었다.
애초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것도 아니고, 툭툭 시비를 걸듯이 의중을 떠보는 정도의 반쯤 일방적인 공방밖에 없었으며, 단비가 피력한 의견도 조금 전 부소대장 토와와의 대화 내용과 크게 다를 바 없었건만.
탈리의 뇌내에서는 여러 가지 가공과 첨가물이 더해져 단비는 ‘극(極) 남성우월주의 성향의 위험분자’로 탈바꿈해버렸다.
그런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녀 또한 마법소녀가 무척이나 중요한 인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안 그래도 여왕이 부재중인 지금, 【메크라크】는 수컷들 쪽으로 세력이 많이 기울어져버린 상태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염치 없게도 다른 별, 특히나 지구의 마법소녀들을 의지――아니, 이용해야한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마법소녀가, 남성우월주의라니.
그래서야 이용하려다 되려 이쪽이 중독되어 버린다.
멧돼지를 잡으려고 사냥개를 풀었더니, 외려 그 개한테 손이 물려버리는 꼴이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쳐내는 건 곤란하다. 이용해야 하니까. 무엇보다 아데라는 뒷백이 있는 듯 하고.
쓸 수 있는 수단은 얼마 없다.
하지만 수단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소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일이 좀 있어서.”
낮에 붙잡은 도적들을 가둬놓은 감옥룸.
그곳에 탈리가 발을 들이자, 보초를 서고 있던 대원이 다급하게 경례하며 일어섰다.
“안에 구조는 어떻게 되지?”
“현재 다섯 명씩 따로 가둬뒀습니다. 잠금은 밖에서만 풀 수 있으며, 문과 벽은 비싼 소재를 사용했는지 저희의 마법에도 견딜 정도로 튼튼합니다. 대장 녀석은 독방에 따로 가둬뒀습니다.”
“그래. 알겠어.”
대강의 보고를 듣고 탈리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부하 대원 쪽에서 덧붙였다.
“안에 토와 부소대장님도 와계십니다. 상태를 확인해보신다며.”
“……그래.”
뚜벅, 하고 무거운 군화를 울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토와.”
“소대장님. 이런 시간에….”
“그런 너도 와있잖아?”
토와는 이런 시간에 찾아온 탈리의 모습에 흠칫 놀란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 표정을 굳히고 평소대로의 얼굴로 돌아왔다.
“뭐 하고 있었어?”
“어딘가 문제가 있나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낮의 전투로 다친이들도 있으니까요.”
“가축들 팔다리 한짝 정도는 없어져도 되잖아?”
“…그랬다간 효율이 떨어집니다. 노예로 쓸 수도 없잖습니까.”
토와의 말에 탈리가 웃었다. 그녀도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다. 노예로 쓸거면 사지육신 멀쩡한 게 나으니까.
“나였다면 몰래 독가스라도 넣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즐길 것 같은데. 물론 죽지 않을 만큼만.”
“소대장님. 말을 조심해주십시오.”
“그래, 이만하고. 대장이 있는 독방은 어디지?”
토와는 마지못한 듯 어느 방 하나를 가리켰다.
안이 흐릿하게 비쳐보이는 문은, 누군가가 독방 안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튼튼해보이는 문의 상단에는 일부만 열리고 닫히는 구멍이 있었으며, 토와가 패널을 조작하자 샥, 하고 열렸다.
쫄쫄이 같은 전신 강화슈트를 입고, 다만 머리의 마스크만 벗은 채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수컷의 모습에 탈리의 눈가가 절로 찌푸려졌다.
“침대는 치워두라고 했을텐데?”
“이 독방에만 있습니다… 시간도 인력도 부족하고, 또 적의 대장이니 대우를 좀 해줘야.”
“가축들한테 침대라니, 사치잖아. 짚더미나 던져주라고.”
거기다 단비가 시원하게 후려쳤던 콧대에도 거즈 같은 게 붙어있다.
치료까지 해준 모양인데, 이 역시 허락한 기억이 없다.
“――너무 매정한 소리 하지 마, 언냐.”
탈리와 토와의 대화에, 굵직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안에 있던 도적 대장의 목소리다.
“굳이 있는 것도 뺏겠다니, 성격이 너무 나쁜 거 아냐?”
“닥쳐. 가축이면 가축답게 꿀꿀거리며 울기나 해.”
“…정말 무서운 여자구만. 소문이 사실이었어.”
“닥쳐. 닥치라고 했지. 한심한 수컷 가축은 내 말을 경청해서 듣기만 하면 돼. 내 말을 뇌내 녹음기능으로 천 번은 반복해서 들으며 곱씹어. 내가 있는 앞에서 추하고 더러운 입을 열지마, 절대로.”
“…….”
대장은 불만어린 눈으로 쳐다봤지만, 탈리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가축 같은 너에게 할 일을 주겠어. 그래도 뭐, 네게 있어서도 나쁜 일은 아냐.”
“뭔데?”
쾅! 하고.
탈리가 문을 세게 두드렸다.
“닥치라고 했지. 말을 허락한 적 없어. 입 꾹 다물고 경청하다가 ‘예’면 고개를 끄덕이고 ‘아니오’면 고개를 좌우로 저어. 그 외의 행동은 허락하지 않겠어.”
“빡빡하네….”
“닥치랬지!”
콰앙!
문이 다시금 세차게 두드려졌다.
“…….”
“후우, 좋아. 입 다물고 잘 들어. 당신, 마법소녀를 범하고 싶지 않아?”
대장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눈썹을 모았다.
그런 수컷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면서, 탈리가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마법소녀가 마음에 안 듣거든. 조금만 나한테 협력해준다면, 특별히 네 그 변변찮은 물건으로 마법소녀를 가지고 놀 기회를 줄 수도 있어.”
“…….”
“혹시 그 마법소녀한테 당한 걸 신경 쓰는 거라면, 걱정하지마. 반항하지 못하도록 약으로 재워둘 테고, 아무리 마법소녀라도 꽁꽁 묶어 구속해서야 재간이 없겠지.”
그리고 따로 말은 안 했지만, 그 팔의 팔찌형 기기.
분명 그게 없으면 제대로 힘을 못 쓴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다른 건 걱정 말고, 내 지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어머나, 당신도 마법소녀의 야들야들한 몸을 맛볼 수 있는 거야. 어때? 솔깃하지 않아?”
“…….”
“아, 물론 거부하면 죽일 거야. 괜히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대장 한 놈 정도야 ‘저항이 너무 세서 어쩔 수 없이 죽여버렸습니다’라고 보고하면 되니까.”
“…….”
“저기, 말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고개는 움직여도 좋다고 했잖아? 끄덕이던지 고개를 젓든지 뭐라도 해. 무시하는 거야? 내가 만만해?”
문 너머, 독방 안에서 입을 다문채 자신을 바라보는 수컷.
자신을 무시하듯 대답도 반응도 없는 그 모습에 탈리는 한순간 분노가 끓어오를 것 같았지만.
‘응……?’
한순간 오싹한 한기가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