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63
EP.263
#2-26 마법소녀 수난기(受難記)입니다(1)
카지노 구역에서 도망친지, 이제 겨우 만 하루가 지났다.
지구에서는 상상도 못할 속도로 추적해오던 왠지 멋있게 생긴 바이크의 추적마저 뿌리치고 도망친 나는, 정처없이 황야를 걷고 있었다.
어쨌든 의 힘은 굉장해서, 나는 무사히 추적해오는 괴인들을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탈토(脫兔)가 무엇인지를 이 한 몸으로 부족함 없이 체험했다.
그러나 간신히 추적자들은 떼어놓았어도, 은 완전히 방전되어버려 다시 써먹기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단애 그 녀석… 설마 나한테 전부 떠넘기려고 따로따로 움직인 거야…?”
“그걸 이제 깨달은 거면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할 것 같습뉘돠. 당신의 머리는 장식 이상으로 텅텅 빈 겁니꽈? 아니면 수준이 그 정도로 떨어진 겁니꽈?”
마음에 무척이나 안 드는 것이.
하필이면 현재 내 유일한 동행이 이 마음에 안 드는 물골렘 뿐이라는 거다.
물골렘 판돌이.
【물의 도시】의 귀족 아데가 만들어 낸, 무척이나 건방진 임시 패밀리어다.
판돌이를 통해 아데와 실시간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며, 더불어 대략적인 네비게이션 기능이 있어 당장 어디로 가야하는지 안내해준다.
처음에는 ‘이 놈과 단 둘이 있어야 한다니 최악, 최악, 진짜 최악’ 같은 생각을 했지만, 단애와 헤어지고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정처 없이 헤매던 내게 뜻밖에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이 길이 맞는 거야? 벌써 해가 지고 있어. 노숙할만한 장비도 포인트도 없는데 어쩔 거야!”
“아, 증~~~~말! 이 내가 맞다고 하지 않았습니꽈! 몇 번을 물어보는 겁니꽈? 아주 그냥 도시와는 정반대의 사막으로 안내해드릴 수도 있습니돠?”
아니.
사실 이 녀석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그쪽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게 걱정돼서 물어보는 거야 이 자식아.
하여간 신용이 없는 골렘 놈이라니까.
‘하아. 계획이 다 틀어졌어. 그 나쁜 새끼. 미O마우스 대가리 같으니.’
정확히는 그쪽 쥐보다는 진짜 쥐 같은 생김새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원래는 카지노 구역에서 적당한 탈 것을 얻어 다음 거주구역이나 도시로 이동하려 했건만, 결국 이렇게 두 발로 걸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차라리 을 이용해 바이크를 구매해도 되겠지만, 포인트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겨두고 싶었다.
무엇보다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제대로 운전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거기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계의 별에서 교통사고로 꼴까닥 뒈지는 건 사양이다.
“잘 보면 되지 않습니꽈. 저기 있잖습니꽈?”
“응? ……오!”
그리고.
황야 건너편에, 드디어 사람이 사는 주거지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 * *
까―앙!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무슨 소리지?
아무튼 일전 쿠알의 도시에서 봤던 것처럼, 상당히 세련되지 못한 거리를 나는 정처없이 걸어갔다.
드문드문 파헤쳐진 길바닥. 지저분한 골목. 어디선가 들려오는 욕설과 천박한 목소리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이 시간에 길이 어둡다는 그 자체가 이 구역이 상당히 낙후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기술이 발전했는데도 이렇구나.”
쿠알의 도시에서 이미 한 번 가졌던 의문을, 새삼 다시 입에 담았다.
그토록 화려하고 사치스럽던 카지노 구역을 경험한 직후이기에, 이 낙후된 거리와의 갭이 너무 확 다가왔다.
“어쩔 수 없습니돠. 【메크라크】의 괴인들은 정신 데이터를 담은 소체를 유지, 관리하는 데도 비용이 드는데, 거기에다 마력도 보충해야 하니꽈. 【귀족】의 관리가 없는 도시는 상상이상의 무법지대라고 보면 됩니돠.”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조심하라고, 판돌이가 단단히 경고했다.
“특히나 여자란 걸 들키면 위험합니돠. 혹시나 트집잡히지 않게 조심하고, 눈에 띄지 않는 게 베스트입니돠. 절대로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현지인이라도 위험한데 하물며 외부인인 당신은 온 도시의 사냥감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니꽈.”
“……위험한데. 그냥 도망가고 싶어졌어.”
저도 모르게 어깨가 오들오들 떨렸다.
은 이제 겨우 실낱 같은 정도로 충전되었을 뿐이고, 지금 상태의 나는 괴인 두셋 정도를 간신히 상대할 수 있는 정도니까.
정말로 구역에 있는 사람들이 전원 나를 붙잡으려고 달려들기라도 하면, 분명 꼼짝도 못 하고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고 말 거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여기서 【향락의 도시】까지 걸어서는 절대 못 갑니돠. 알겠습니꽈? 뭔가 탈것을 이용하지 않으면 가다가 길바닥에서 객사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그 사이에 수도에서 무슨 일이 터지기라도 하면 본말 전도임돠. 시간이 없단 말임돠.”
“알겠다고, 알겠어.”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일단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숙소를 찾아야 한다.
시간이 없다지만 역시 없이 나다니는 것도 위험하니, 가능한 15분… 아니, 10분 만이라도 사용할 수 있게 충전될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저기 저 호텔은 좀 쓸만해 보입니돠?”
판돌이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니, 쓸데 없을 만큼 호황찬란해보이는 호텔이 나타났다.
다 무너져가는 지저분한 거리와 대비되는 모양새다. 살펴보니, 딱 구역 중앙에 있는 이 호텔 주변만 간신히 깨끗하고 나름 세련된 느낌이었다.
감시카메라로 보이는 드론도 호텔 주변을 24시간 배회하고 있었다.
“좋지 않습니꽈? 우리 저기로 갑시돠! 고귀한 아데님의 종인 내가 쓰기에는 쪼금 격이 떨어지긴 하는데, 그래도 이 정도로 참아주긴 하겠습니돠.”
“안 돼.”
“뭣이?!”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는 판돌이의 제안을 단칼에 쳐냈다.
척 봐도 비싸보이잖아!
안 그래도 기약 없는 임무 중에 있고, 지급 받은 예산에는 한도가 있다.
내일 죽을 거 아니라면 이런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다.
“그래도 많이 받았을거 아님니꽈! 짠순이!”
“닥쳐! 시끄러! 잠이야 어디서 자든 똑같지!”
“전혀 안 똑같습니돠! 당신은 자기 입장을 좀 더 잘 생각해야합니돠!”
“내 입장이 뭐!”
“아니 그걸 말로 해야 할 만큼 멍청한 겁니꽈?! 거울 안 봅니꽈?! 열불 터지게 이걸 내 입으로 말해야합니꽈?!”
“…….”
아니, 솔직히 무슨 의미인진 알겠다고.
당연히 저런 비싼 호텔이면 관리도 잘 될테고, 무엇보다 안전하다.
만약 내가 여자란 것을 들켜도 아무런 걱정 없이 푹 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전에도 말한 적 있고.
거듭 강조하지만.
나는 소시민이다.
“저런 비싼 호텔에 내 돈 주고 머물렀다간 절대로 잠 못 자! 차라리 벌레가 튀어나오는 낡아빠진 방에서 자고 말지!”
“이런 거지 근성을 봤놔?! 한심합니돠!”
“얼마든지 욕해! 나도 내가 한심한 거 아는데 어쩌겠어! 비싼 프랑스 요리보다 라면에 김치가 더 마음 편한 소시민인걸!”
결국 판돌이와 옥신각신한 끝에, 나는 기어코 더 음험하고 위험해 보이는 구역 외곽으로 향했다.
이유인즉슨, 이런 곳에 있다면 분명 가장 싼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절대로.
특히나 연약한 여자라면, 아니, 건장한 남자라 하더라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위지만, 분명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나니 말로 할 수 없는 당돌함과 대담함이 나를 멋대로 이끌고 있었다.
‘그래도 변장은 했지만.’
아무리 이유 모를 당돌함이 고개를 쳐들고 있다고 해도, 척 보기에도 【마법소녀】처럼 보이는 차림으로 저 거리를 돌아다니기는 좀 저어했다.
결국 나는 을 이용해 소소한 포인트를 지불하고 변장용 옷을 샀다.
몸매를 꽉 잡아주는 타이트한 가죽 상의와 바지를 입고, 그 위로 커다란 가운 같은 후드를 걸쳐입었다.
앞을 조이듯이 여미면 신체 라인도 들어나지 않고, 모래가 휘날리는 황야 때문에 은근 이렇게 입는 주민도 많으니 생각보다 눈에 띄지도 않을 것 같고.
조금 답답한 기분도 들지만, 방에 들어가서는 벗으면 되니까.
“아, 머리도 있지.”
긴 머리를 남자처럼 자르면 편하겠지만, 애초에 혼자서 제대로 자를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찌할지 고민하다가, 판돌이의 도움을 받으며 에서 추가로 구매한 빵모자 아래에 어찌어찌 숨길 수 있었다.
이 재수 없는 판돌이한테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다니.
정말 세상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법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
“…그렇습니돠. 아슬아슬하게… 음.”
판돌이는 어딘지 불만스런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나는 판돌이를 품에 안고 어두운 거리를 조심스럽게 걸어나갔다.
* * *
아예 조용하다면 모를까, 거리는 이곳저곳이 소란스러웠다.
골목길에서도 술을 마시면서 깔깔 웃는 무뢰배 같은 괴인들이 있었는데, 딱히 무섭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이 들었다.
뭐랄까,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애초에 전부 다 내 적인데.’
저 녀석들은 지구를 넘보는 침략자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지구를 수호하는 마법소녀이자, 그들에게 있어선 극상의 사냥감이다.
지구에서 여기까지 맨몸으로 날아와, 어찌어찌 우여곡절 끝에 이렇게 주민들 사이를 누비게 되다니.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다.
“무슨 생각합니꽈? 조용하네.”
“아니, 아무 것도. …아.”
판돌이의 말에 골똘히 잠겨있던 생각에서 벗어난 나는, 마침 눈에 띈 여관 같은 건물 하나를 발견했다.
1층은 식당으로 되어있는 모양이고, 그 위로는 대략 4~5층 정도 높이의 싸구려 여관.
낡고 허름한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지저분해 보였지만, 그렇다고 당장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쩐지 사람이 다가가기 어려운 어둡고 음습한 분위기도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겁니돠. 설마하니 저기를.”
“좋아, 들어가자. 딱 좋네. 쌀 것 같아.”
“참말입니꽈?!”
판돌이가 놀라든 말든, 나는 상관 않고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운터 서있던 로봇이 녹음된 것 같은 목소리로 환영해주었다.
안 쪽은 놀랄만큼 외견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최저한도의 위생은 지키는 듯 노골적인 더러움은 보이지 않지만, 곳곳에 낀 때라던가 무엇보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음산한 분위기가 자꾸만 바늘로 찌르듯 위험을 경고해온다.
[체크인하시겠습니까? 1박에는 ■■이며, 연속해서 묵으실 경우에는 가격을 깎아드릴 수 있습니다. 식사 및 기타 물품에 대해서는――]“(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겁니돠! 이건 정말 아닙니돠! 위험함이 풀풀 풍기지 않습니꽈?!)”
나도 막상 들어와 보니 역시 좀 그랬다.
아니, 뭐라고 할까, 아드레날린이 콸콸 쏟아진 것처럼 패기 있게 들어오긴 했는데, 막상 현실을 보고 나니 조금 가라앉았달까… 이제껏 생각 안하고 있던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잔뜩 몰려온다고 할까.
진짜로 이런 데서 묵으면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저 로봇의 설명대로면,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격이 싸다.
생각보다 시설도 나쁘지는 않아보인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떠나가는 것도 조금 아까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모로 꼬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묵는 게 나으려나?
아니면 그냥 발을 돌려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