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286
EP.286
#2-27 마법소녀 분투기(奮鬪記)입니다(8)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보며, 선로를 따라 쭈욱쭉 앞으로 나아갔다.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면 이제 곧 그 괴물이 보일 때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예의 산처럼 거대한 몸체가 보였다.
“보이는 것 같습니돠. 저 무식하게 커다란 달팽이입니꽈?”
“응. X나 크지?”
“큽니돠. 마치 제 도량만큼 큰 것 같습니돠.”
“헛소리는.”
“근데….”
판돌이가 심각한 목소리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째,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꽈?”
“뭐?”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한 번 달팽이를 노려봤다.
…….어?
진짜로 다가오고 있다.
꽤 먼거리에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거대한 몸이, 차츰차츰 커져가는 게 한눈에 보이는…,
어떻게 된 거지?!
그 선로 위에 그냥 서있기만 하던게 아니었나?!
“뭐하는 겁니꽈. 빨리빨리 상황을 확인해야할 거 아닙니꽈.”
“아, 응.”
판돌이가 한심하다는 듯 머리를 탁탁치니, 나도 별 수 없이 움직이기로 했다.
이곳은 바위와 모래로 가득한 황야다.
단순한 평지라면 몰라도, 모래바람에 깎여나간 듯 기형의 바위가 이곳저곳에 많아서 몸을 숨기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거대 달팽이와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무렵, 나는 그런 바위에 몸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지켜봤다.
쿠르르르르르르르르!
달팽이는 자욱한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선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빨라…!’
달팽이에 어울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속도. 말 그대로 전차다.
주변에 다른 달팽이는 보이지 않지만, 어제보다도 커진 것처럼 보이는 저 달팽이라면 얼마든지 분열해 숫자를 늘릴 수 있을 테니 충분히 위협적이다.
“거주구역으로 가는 걸까?”
“단순히 선로를 따라 이동하는 걸지도 모릅니돠. 그것도 아니라면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닥치는 대로 습격할 생각인지도.”
그렇다면 차라리 잘된 게 아닐까?
가만히 있기만 해도 【메크라크】가 멸망한다면 나로써는 좋은 일인데.
“큰일임돠! 이대로 선로를 따라가면 아데님이 계시는 【물의 도시】까지 가버릴지도 모릅니돠!”
“으, 음….”
“에잇! 뭘 멍하니 있는 검까! 빨리빨리 움직이는 겁니돠! 뭐합니까 이 무능한 마법소녀!”
아니, 그렇게 말해도.
아데라면 이것저것 받은 은혜도 있으니 구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저 거대 달팽이는 어제도 어찌하지 못해 그냥 도망쳐버리고 말았었다.
“누가 저걸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꽈? 그 소굴에 뭔가 있는 게 분명합니돠! 그 쪽으로 나를 안내해달라는 겁니돠!”
“그 소굴에?”
“그렇습니돠! 설명할 시간 없습니돠! 최고속력! 최고속력!”
그 여유 없는 모습에 다시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일단 판돌이의 말대로, 거대 달팽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빙 돌아서 다시금 선로를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의 지형지물을 보니 대강의 기억은 떠올릴 수 있었다.
두 용병과 헤어졌던 달팽이들의 소굴은 코 앞이다.
* * *
“아…! 케이 님!”
“타오란!”
민달팽이들의 소굴.
오늘은 어쩐지 기이할 정도로 텅 비어버린 소굴 입구에, 어제처럼 타오란이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함께 안으로 들어갔었던 용병들이 돌아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타오란의 신변에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타오란의 몸에 이상은 없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제 그 용병들은?”
“흐윽… 그게….”
타오란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용병들과 함께 동굴의 안쪽으로 소수의 달팽이들을 물리치며 순조롭게 나아갔지만, 끝에 이르러 여자들에게 욕심이 난 용병들이 폭주.
여자들을 범하며 신명나게 즐기던 그들은 이내 찾아온 달팽이들의 무리에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영양분이 되어 사라져버렸다…는 모양이다.
“어제 케이 님께서 구역청에 모든 사실을 전하러 가셨으니까, 그러니까 누군가 오지 않을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타오란은 간절함이 담긴 눈으로 내 두 손을 맞잡고 애원했다.
“제발! 저를 도와서 안쪽에 있는 여자들을 구해주세요! 달팽이들의 핵이 되는 본체는, 안쪽의 여자들에게서 마력을 보충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만, 그 녀석만 처리하면 지금 거주구역으로 향하는 거대 달팽이쪽도 알아서 무너질 거예요!”
타오란은 반짝반짝한 미인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외모 보정이 들어가는(일단 나는 그렇지만, 다른 마법소녀들은 모르겠다) 마법소녀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미녀.
그런 사람이 이렇게나 마음을 담아 간절히 부탁한다면, 남자든 여자든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리고 만다.
다만, 어쩐지 뒷목이 시큰거리는 기분이 든다….
“응, 알겠어. 어서 안 쪽으로 안내해 줘.”
“감사합니다!”
타오란은 곧바로 몸을 돌려, 안쪽으로 앞서 나아갔다.
어제처럼 당차고 힘이 넘치며, 거침 없는 발걸음.
나는 그 발걸음을 내려다보며, 가벼운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런데 타오란.”
“네?”
“나 한 사람 밖에 없는데, 그래도 괜찮을까?”
“괜찮을 거예요! 케이 님이라면!”
“사람을 더 불러오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아니에요! 케이 님이라면 괜찮아요! 케이 님은 강하시니까! 그리고 거대 달팽이 쪽이 거주 구역으로 가버리면, 거기를 지킬 사람도 필요하니까요!”
“그래….”
어깨에 매달린 채 조용히 있는 판돌이를 쓰다듬으며, 나는 마지막 의문을 입에 담았다.
“저기, 타오란. 너――인간이 아니라는 게 사실이야?”
총총히 앞서 나아가던 타오란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네?”
“정확히는, 네가 저 민달팽이들의 본체라는 거 사실이야?”
“아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케이 님. 농담도….”
타오란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변명하지만,
“그렇습니돠. 이 판돌이가 확신합니돠. 저 여자는 인간도 아니고, 개조 괴인도 아닙니돠.”
그런 변명을, 내 어깨에 달라붙은 판돌이가 끊어냈다.
“아데님의 물의 권속인 이 판돌이가 확증합니돠! 저 여자의 몸 안의 수분 밀도가 미쳐있습니돠! 정상이 아닙니돠! 인간의 몸으로 의태한 괴물 자식! 제대로 정체를 밝혀라 입니돠!!!”
여기까지 오는 길에, 판돌이는 이미 내게 대략적인 설명을 마친 상태다.
【메크라크】의 주민들도 잘 모르는 진실.
왜 【메크라크】에서는 여성을 함부로 상처입히지 못하는가 하는 이유.
이 별의 남자들은 별로부터 마력을 공급받지 못해서, 결국 의식 데이터만을 남긴 채 본래 나고 태어난 몸을 버리고 만들어진 소체에 정신을 옮긴다.
그에 비해 여자들은 별로부터 마력을 공급받으므로, 다들 살아있는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
괴인들처럼 만들어 낸 몸이 아닌 살아있는 인간의 몸은 소중하다. 종족의 씨를 지키기 위한 원초적인 본능 같은 것이, 그들로 하여금 이 순수한 육체를 어떻게든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1차적인 이유.
【여왕】 본인이 의식 데이터에 제한을 걸어서까지 여자들에게 상해를 입히지 못하게 한 이유는, 또 따로 있다.
“죽어버린 불쌍한 여자의 몸에 기생한 돌연변이 괴물 자식! 내숭떨지 말고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겁니돠!”
별로부터 마력을 잔뜩 공급받는 여자의 몸은, 나이가 들수록 차츰차츰 공급되는 마력이 줄어들어간다.
천수를 다 누렸을 즈음에는 마력이 전혀 남지 않는 텅빈 육체가 되지만.
그러나 어떠한 사고로 마력이 충분한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을 경우… 제어를 잃은 육체는 이따금 폭주하게 된다.
예를 들면 생물이 기생해 마력과 융합, 돌연변이 괴물이 된다던가.
혹은 시체 자체가 강력한 폭탄이 되어 일대를 초토화 시킨다던가.
그렇기에 마력의 공급원으로서 여성의 몸을 탐내면서도, 지나칠 정도로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판돌이는 설명했다.
쉬이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지만.
그러나 어딘지 일리는 있다고, 생각하고 만다.
그보다 직감적으로 타오란이 위험하다고 느껴버리고 있었으니, 그 가정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타오란.”
그 뒤는 추측이다.
이 별은 별의 주민에 의해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별이 낳은 재앙은, 만약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을까?
“판돌이의 말이 사실이야?”
사람으로 의태해서, 사람들을 속이며, 아마도 거대한 전차마저 교묘하게 함락시키고, 그렇게 힘을 모아서.
힘을 모으고 모은 괴물은, 이 별을 멸망시킬 목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대답해!”
타오란에게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 목이 기이할 정도로 끼이이이이익 돌아갔다.
한바퀴를 넘어, 두 바퀴.
나를 쳐다보고, 섬뜩한 얼굴로 히죽 웃는다.
“들켰네★”
순간.
타오란의 몸이 팽창했다.
* * *
“우후후후, 후후, 후후후후… 설마 들킬 줄은 몰랐어. 완전히 놓쳐버린 줄 알았던 마법소녀가 제 발로 돌아와주니까, 그만 흥분해버린 거 있지?”
옷은 녹아버리듯 찢어지고, 기이한 촉수 같은 것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머리에는 달팽이들이 으레그러하듯 촉수 같은 더듬이가 돋아나고, 머리카락은 한올 한올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구불텅구불텅 움직인다.
무엇보다 소름 돋는 것은, 그 눈.
흰자위가 없이 안구 전체가 새카맣게 변해버린 그 눈은, 보는 것만으로 저주받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어떻게 내가 마법소녀란 걸….”
“후후, 네 마력은 우리 별의 마력이랑 느낌이 전혀 다른걸. 조금만 예민한 사람이면 충분히 다 알아볼걸?”
괴물의 모습으로 변한 타오란은 몸을 바르르 떨면서 기다란 혀를 내밀었다.
“아아, 정말 다행이야. 기뻐어. 안 그래도 이 별의 여자로는 도저히 제대로 된 아이를 낳게할 수 없다고 깨달아버렸거든… 그래서 훨씬 튼튼한 마법소녀의 몸을 바랐는데…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줄 줄이야!”
“윽…! 아이를 낳게 한다고?”
“그래.”
하반신에, 마치 꼬리처럼 민달팽이의 몸체가 불쑥 돋아난다.
그 꼬리에 이끌리듯 몸이 공중에 부웅 떠오른 타오란의 손가락이, 내 배를 가리켰다.
“우후후후, 상상해보렴. 마력이 잔뜩 담긴 네 귀여운 자궁에, 내 아기씨를 마구마구 부어줄 거야. 네 몸과 머리를 휘저어서 난자를 잔뜩 낳게 할 거고, 며칠 단위로 아이를 배고, 키우고, 출산하고… 그걸 계속 반복하는 거지.”
타오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유혹하듯, 귓구멍을 타고 쏙쏙 들이 들어닥친다.
타오란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마력이 담겨 있어 뇌를 직접 울려오고 있었다.
‘으…….’
어쩌지.
목소리만으로 임신할 것만 같다.
자궁이 안 쪽에서 떨려서… 도저히 제대로 설 수가 없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