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3
EP.3
#1 의외로 꿈과 희망이란 것은 뜯어보면 이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2)
“그럼 이제 변신을 해제시켜주겠다냥.”
그거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쿠키가 손을 흔들자 내 몸은 다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마법소녀(25) 노릇을 해야 한다니 한숨밖에 안 나왔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돈까지 준다고 하니 손해인 것만은 아니다.
괴인이 매일 나오는 것도 아닐 테니, 그때만 참으면 된다. 게임할 때도 여캐도 쓰잖아. 마법의 능력인지 뭔지로 괴인이 나타날 때마다 쾅쾅 때려죽이고, 세보이는 녀석이 나타나면 도망치면 된다.
……응.
그러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야.”
“왜 그러냥.”
“아직 변신 안 풀렸는데.”
“풀렸잖냥. 잘 보라냥.”
나는 내 몸을 내려다봤다. 청바지도 새카만 티도 조금 전 편의점에 갈 때 입었던 그 옷이다. 코스튬이라며 검은 속옷만 입고 있던 그 야시시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어쩐지 헐렁해진 새카만 티는 가슴 부분이 밀려나와있고, 청바지는 본래 입고 있던 드로즈와 함께 걸칠 곳을 찾지 못하고 후둑 떨어져내렸다.
옷은 돌아왔는데, 몸은 여전히 여자다.
“네 몸은 세포 단위부터 완전히 분해해 교체해서 재구축했다냥. 네 본판으로 지금의 모습이 나올 수 있을 리가 없잖냥. 그런 대마법 변신 할 때마다 부리면 내가 너무 피곤하지 않냥.”
“그 말은?”
“여자로 살아라냥.”
나는 쿠키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내동댕이쳤다.
“돌려내.”
“모, 못한다냥….”
“돌려내!”
“쿠헉!”
쿠키의 머리를 세게 짓밟았다.
코피가 나오고 신음소리를 흘렸지만 어쩔 수 없다. 이대로 여자로 살라고?! 20년을 넘게 남자로 살아왔는데?!
“진짜 죽여버린다? 농담 아니야. 그러니깐 돌려내. 당장 돌려내!”
쿠키를 탈탈탈탈 털고 이리저리 내던졌다. 이곳저곳 멍투성이가 된 쿠키는, 당장 죽을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였었다.
“도, 돌아가고 싶으면… 하, 할당량을 채우면 되냥….”
할당량?
그게 뭐야?
“괴인을 쓰러트리면… 에서 책정한 포인트가 쌓인다냥… 포인트를 이용하면… 계약을 해지해서…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하니까….”
“어떻게 이용하는데, 포인트는.”
“포, ‘포인트 샵 오픈’이라고 말해라냥.”
“포인트 샵 오픈.”
바로 말해봤다.
눈 앞에 조금 전과 같은 반투명한 홀로그램 창이 떴다.
현재 포인트: 0pt
라는 글자와 함께, 그 밑에 여러 가지 항목들이 주르륵 늘어서있다. 별게 다 있다. , 같은 항목도 있다. 게임 같네.
나는 스크롤을 내려가며 항목들을 확인했다. 드디어 원하던 게 나왔다.
마법소녀 계약 해지: 9999999pt
한숨 밖에 안 나온다.
적어도 가 10pt, 이 1000pt인데, 이것만으로 약 1000만pt….
“야, 이건…”
“내가 아니라 의 룰이다냥. 나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아, 귀찮다냥.”
쿠키가 그 앙증맞은 손을 내밀었다. 무슨 짓을 하려고? 이제 또 무슨 참신한 협박을 할지 한 번 들어나 보자.
“잘 보라냥.”
“뭐를.”
“잠 들어라, 레드 썬!”
딱! 하는 소리가 나자, 갑자기 무거운 피로가 머리를 짓눌렀다. 어, 어라…? 졸려……?
나는 침대 위에 풀썩 쓰러졌다.
졸리다. 눈꺼풀이 무겁다. 시야가 새카맣게 변해간다.
“잘자라냥. 내 꿈꾸라냥.”
이런, 씨, 썩을…… 인형 놈이이이이…….
“흠냐~.”
덮쳐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못하고, 결국 나는 그대로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 * *
“잠 들었냥?”
새액- 새액- 하는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막 여자가 된 주제에 자는 모습에서 묘한 색기가 보인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이상적인 육체이기 때문이겠지.
쿠키는 공중에 둥둥 뜬 채 그 모습을 내려보고, 슬며시 그 옆에 내려섰다.
“이대로 쓸데없이 반항하는 것도 귀찮으니까… 조금 도와주겠다냥. 감사하라냥.”
쿠키의 앙증맞은 손에 희미한 빛이 맺혔다.
쿠키는 빛이 맺힌 손을 잠에 든 ‘마법소녀(25)’의 머리에 올렸다.
“「너는 여자다냥」…, 「여자인 게 이상하지 않다냥」…, 「너는 정의의 마법소녀다냥」….”
거는 것은 최면마법. 의 요정이니 어느 정도 마법을 쓰는 거야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 수상한 요정의 입맛대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마법소녀가 된 그…그녀는 사랑스러운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을 뿐이다.
* * *
아침에 일어나보니 쿠키인가 하는 요정은 없어져 있었다.
모든 게 다 꿈이다, 라는 편리한 얘기는 아닌 듯 하다.
고개를 조금만 낮춰도 보이는, 가슴께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풍만한 흉부, 더불어 바람이 지나는 듯 허전한 아랫도리.
…나는 여전히 여자의 모습 그대로다.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거겠지.
그 요정이라던 다단계 사기꾼 같은 인형 놈만 사라졌다.
“……토꼈나, 이 놈.”
그래, 생각만으로도 속이 부글부글 끓을 것 같은데, 차라리 안 보이는 편이 훨씬 낫다. 그렇게 생각하자.
꼬르륵~.
‘배고파.’
일단은 아침부터 먹고, 앞으로의 일은 천천히 생각해보도록 하자.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 * *
‘……이상한데.’
적당히 집에 있던 것으로 아침(이미 점심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지만)을 때우고, 간단히 청소를 마친 후 침대 위에 걸터앉은 채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다시 한번 몸을 살펴봐도 역시 여성의 몸이다. 가슴은 부풀어있고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는 대신, 가느다랗게 패인 도끼 자국만 보였다. 이상적인 여성의 몸이었다지만, 자신의 몸을 아무리 봐도 욕정 같은 건 일지 않았다. 내 몸이여서일까 마음도 여자로 바뀐 걸까.
눈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하지?
어젯밤까지만 해도 여자로 변한 것 때문에 엄청나게 부담스럽고, 마음도 어렵고 했던 것 같은데… 신기하게 지금의 나는 조금의 불안함도 느끼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여성의 몸이기에 편하다고 느꼈다. 태어났을 때부터 여자였던 것처럼.
흠.
뭐, 상관 없나.
엄청 심각한 일 같아도 자고 일어나면 별 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한동안 여자로 살 각오나 해둘까….”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였다. 담배라도 한 대 피울까. 연기를 마시면 좀 더 차분해질 것 같은데.
“다 떨어졌네….”
생각해보니 어제 편의점에 가려던 것도 담배 사러 갔던 거다.
좋지 않다. 여자가 된 것으로도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손 끝이 떨려왔다. 담배가, 담배가 없어…!
…하 씨,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그 인형 노무 자슥 때문에….
지금 나가서 사와야 되나? 지금 이 꼬라지로?
내 몸을 내려다봤다. 바지고 팬티고 죄다 헐렁해 지금은 티 하나만 입고 있다. 남자였을 때도 헐렁하게 입는 편이었다 보니, 티 한 장만으로 아슬아슬 허벅지까진 내려왔다.
아니, 중요한 부분이 가려지는 것 같긴 한데…
이대로 나가는 건 좀….
“일단 옷이 문젠데.”
어쩌지.
인터넷 통판이라도 시킬까. 지금 주문하면 언제 오려나. 근데 여자 옷을 사본 경험이 없어서… 하우.
친구 새끼라도 불러야 하나? 그치만 이 모습 보이는 건 좀 그런데. 언제까지 숨길 건 아니지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기계 음성이 머릿속에 들려왔다.
아, 이거 그거다. 쿠키 그 썩을 놈이 말하던 안내음성.
“코스튬?”
변신. 코스튬.
그러고 보니 어제는 였지. 속옷에다 가터벨트만 맨 그거.
……마법소녀 코스튬이란 건 그거려나? 어렸을 때 애니에서 봤던 그런 팔랑팔랑한 거.
나타날 수도 있긴 하다는 거네, 그거.
어쨌든 랜덤이란 건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거네. 운 좋으면 당첨, 나쁘면 꽝이지만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다. 안 할 이유도 없다.
“………………………………엉? 잠깐만. 방금 나 뭐라고 불렀어?”
플레이어니 뭐니 하는 게임 같은 단어는 둘째치고.
“케이…?”
나는 서둘러 상태창을 열었다. 여러 가지가 공란이던 상태창에는, 란 옆에 ‘케이’라는 두 글자가 떡하니 적혀있었다.
어, 어, 내 이름, 이거야?
잠깐만, 내 이름은 원래….
‘기억 안 나. 내 원래 이름이 뭐였더라?’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원래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혼란스럽다. 혼란스러워.
“……뭐, 됐어. 어차피 이 몸 그대로 원래 이름은 쓸 수 없었을 테고. 그보다 할래, 코스튬 체인지. 어떻게 하면 돼?”
순간 몸이 빛에 휩싸이고, 입고 있던 커다란 티가 입자가 되어 흩어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또 다른 입자가 내 몸에 모이고,
“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 된 여자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나타났다.
착 달라붙는 검은 티에 아슬아슬한 흰 미니스커트. 심지어 여자들이 들법한 고급스런 손가방도 손에 들려있었다.
슬쩍 티의 앞을 당겨보니, 안 쪽에는 고급스런 레이스 속옷을 입고 있다. 아래는 확인하기 불편해서 넘어가겠지만, 확실하게 제대로 된 팬티를 입고 있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일상적인 느낌이 드는 옷이 나타났다. 안심이긴 한데, 좀 더 방어력이 높은 옷은 안 되었던 걸까.
‘그렇게까지 바라는 건 사치려나.’
어쨌든 이걸로 적당한 옷을 구했다.
좋다.
“일단은 담배부터.”
겸사겸사 옷도 좀 사오자.
* * *
이 때 나는 한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어서 담배를 피고 싶단 생각에 확인해야할 걸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 덕분에 이후 통렬하게 후회하게 된고 만다.
이름: 케이
코스튬:
마법:
특성:
상태:
* * *
“있냥, 메크라크 왕?”
“응? 왔느냐. 이건 또 오랜만이구만.”
“이래저래 바빴어서.”
악의 조직 의 본부. 그 안쪽의 집무실에 홀로 있던 안경을 쓴 여성――메크라크의 왕의 눈앞에, 별안간 묘한 장지문이 나타나더니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공중에 둥둥 떠있는 그것은 귀여운 고양이 인형 같은 무언가였다.
요정 쿠키. 의 생물이자 바로 어제(라고 해도 오늘 새벽이었지만) 케이를 마법소녀로 만들어 낸 장본인이다.
“이렇게 직접 왔단 건 뭔가 할 말이 있어서겠지, 마법나라의 요정이여?”
“그렇다냥. 한가하게 심심해서 놀러오거나 하진 않다냥. 비는 시간은 가능한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여태껏 못 보고 미뤄둔 야한 동영상을 마저 시청하며 알뜰살뜰하게 보내고 싶다냥.”
쿠키는 둥실둥실 공중에 뜬 채 메크라크 왕의 앞까지 헤엄쳐 와, 책상 위에 있던 쿠키를 멋대로 집어먹었다.
그런 쿠키의 꼬리를 메크라크 왕은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겉모습만 봐선 펫을 사랑하는 아가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상당히 좋은 모체를 찾아서, 마법소녀로 만들었다냥. 원하는 만큼 마력 자판기로 써먹지냥?”
“호오.”
메크라크 왕은 감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건방진 요정이 멋대로 ‘마법소녀’로 만든 사람은 많지만, ‘상당히’라거나 ‘좋다’고 표현한 녀석은 많지 않다.
“이름은?”
“지금은 케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냥.”
“좋아. 특별히 신경 쓰지.”
“거만한 말투가 짜증난다냥.”
건방진 말투였지만 메크라크 왕은 코웃음을 치며 흘려넘겼다.
“그런데 너도 참 못된 놈이야. 얼마나 많은 인간들을 속이고, 우리한테 팔아넘기는지.”
“난 제대로 설명했다냥. 세계를 위해, 지구를 위해 마법소녀를 해야한다고. 그 인간들이 있다면 쓸데없이 효율 나쁜 다른 지구인들에게 손댈 필요 없잖냥.”
“본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못할 걸.”
“상관없다냥. 그 치들은 자기가 정의라고 믿고 마법의 힘으로 너희들을 물리친다냥. 그렇다면 나도 내 정의를 믿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냥. 뭐가 문제다냥?”
메크라크 왕은 안경 너머의 눈을 가늘게 뜨며 쿠키를 바라봤다.
과자를 다 먹어 치운 쿠키는 꼬리를 살랑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그럼 난 가겠다냥. 나머진 잘 부탁한다냥. 좋은 능욕하라냥.”
장지문 너머로 그 모습이 사라지고, 이내 그 문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