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430
EP.430
#2-39 마법소녀 아카데미 잠입 계획(1)
이곳 【향락의 도시】에 오는 길, 그 기차에서의 기억은 피로 얼룩져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고 여러 수난을 당했다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을 뒤집어 엎을 만큼 강렬한 피의 냄새로 가득한 기억.
당시에는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지만, 잔뜩 폭주해버리고 피에 젖었던 기억은 내 앞에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버렸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 우락부락한 괴인한테 억지로 범해졌는데….’
이상한 호모 같은 괴인에게 붙잡혀서 이상한 가게에 끌려가지.
거기서 업소녀로 오해 받아 이상한 괴인한테 반항도 제대로 못하고 연약하게 앙앙 울면서 보지 토닥토닥 당한 끝에 진한 정액으로 배부를 정도로 질싸를 당하지.
그렇게 온갖 수난을 당하고 말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온갖 수난을 당하고 말았는데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화를 내다 못해 가게를 폭파시키려 할 정도로 부조리한 일을 당했는데도.
――그런데도.
――나의 마음은 오히려 따스한 행복감에 젖어 가라앉아있었다.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지금까지 마법소녀가 되고 난 후론 하도 정신 없이 지나오는 바람에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음탕하기 짝이 없는 육체야 오래전에 기브업을 외치며 포기했다곤 해도, 이제는 그래도 정상이라고 자부하던 내 이 고결한 정신까지도 서서히 이상하게 침식되는 느낌이라 불안했다.
아주 약간.
아주 쬐금 불안한 것 뿐이지만.
내 고결하고 고고하고 흠 없고 당당하고 유일무이 엄청 대단하다 못해 킹 갓 슈퍼제너럴 한 영혼이 괴인들 따위에게 물들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정말 쬐금, 그냥 ‘저녁밥은 어쩌지’ 정도의 가벼운 고민이 들었을 뿐이다.
이 육체 뿐만 아니라 정신, 내면의 의식까지도 이제는 완전히 저속하고 천박한 암컷으로 타락해버린 것은 아닌가…하고.
그냥 아주 살짝… 고민했을 뿐이다.
결코.
결단코.
맹세코.
그런 것도 행복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다.
하지 않았을… 터다. 아마도.
* * *
“네… 소개해드릴게요… 이 카페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곳이라서… 네… 그렇죠… 이렇게 늦은 시간에도 계속 하다니… 무척 좋은 가게예요… 네….”
“……..”
“……..”
“아… 그런가… 인사를 아직 안했던가요… 아니, 했던 것 같기도… 에… 뭐더라… 해야되나….”
【향락의 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화려한 밤의 도시, 그 어슴푸레한 골목길 한 켠에 위치한 카페에 우리는 앉아있었다.
눈 앞에 앉은 사람은 【물의 도시】에서 파견 나온 조사원. 이름은 야야.
이 은발의 앳된 소녀는 겸손해 보이는 가슴팍을 매만지며 무겁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예쁜 은발을 가리는 후드를 쭈욱 끌어당겨 시선을 가렸다.
“안 되겠다… 단 거… 단 게 필요해… 실례….”
나른하게 중얼거리며 눈앞에 있는 접시를 끌어당겼다.
접시 위에는 크로플 같은 빵이 달콤해 보이는 꿀과 아이스크림으로 곁들여져 있었다.
“아… 긴장했네요… 잠시만… 단 걸 먹으면… 조금 나아지니까… 네… 두 분도 알아서 시키시죠… 제 건 안 줄 거니까….”
“아, 응. 알아서 먹으면 돼. 먹어, 먹어.”
“그보다 단 걸 먹으면 긴장이 풀린다면서? 그러면 제발 빨리 좀 처먹어줄래? 대화가 안 되잖아, 대화가.”
나와 단애는 눈 앞의 소녀를 재촉했다.
눈 앞의 소녀는 조금 전에 골목길에서 우리를 미행하던 그 노련한 기척의 주인이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지나치게 답답했다.
소심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그냥 이런 성격일까.
컨셉을 이렇게 잡은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보고 있으면 은근히 답답하다.
‘애초에 어려보이지. 솔직히 중학생 정도라고 생각하면 실례려나?’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생까지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귀엽고 풋풋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먼저 실례… 하움….”
냠냠냠냠.
오물오물.
쨥쨥쨥….
‘귀엽네.’
입 안에 쏙하고 넣은 크로플이 달콤했는지, 행복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보고 있는 이쪽도 식욕이 돋을 것 같은 행복해보이는 얼굴.
보고 있으면 나도 한입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한데.
‘…저건 아니지.’
크로플 빵에 원수라도 진 것처럼 빵이 끈적한 꿀로 범벅이 된 것을 보니 식욕이고 뭐고 확 날아가 버렸다. 저런 걸 덥석덥석 입에 넣고 있으니 보는 것만으로 역한 것이 올라올 것 같았다.
“음~ 저렇게는 먹기 싫지만, 나도 아이스크림은 먹고 싶어. 케이도 먹을래?”
“우리 돈 없어.”
“먹고 죽어야지 여기서 돈 걱정을 뭘 해~. 그럼 케이 것도 내가 알아서 시켜온다~.”
단애는 그렇게 말하고는 총총히 떠나갔다.
아니, 뭐. 지 돈으로 산다고 하면 말리진 않겠다. 나중에 돈 없다고 칭얼대도 절대로 도와주지 말아야지.
눈 앞의 꿀 덩어리 크로플을 보고 있자니 속이 울렁거렸는데, 이 참에 차가운 것으로 좀 가라앉혀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짤랑짤랑!
“응?”
“…왜 그러시죠?”
“아니, 뭔가 이상한 소리가….”
이미 꿀덩어리가 다 되었는데 거기에 추가로 꿀을 뿌리고, 크로플 위에 올려져있던 아이스크림도 꿀과 섞기 시작하던 야야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아무것도 못 들은 모양이다. 혀에 더해 귀까지 맛이 간게 아니라면.
‘응… 그러고보니 이 소리….’
무슨 소리인고,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다 나는 【물의 도시】에서 지급받았던 컴퓨터 대용의 카드를 손 안에서 흔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홀로그램이 떠오르고, 나는 그 홀로그램을 터치해 계좌의 잔고를 확인했다.
조금 전 가게에서 그 우락부락 붉은 장군 괴인에게 몹쓸 짓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수로 상당한 금액이 계좌로 들어왔다.
본의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계좌에 떠오른 금액을 보니 위로가 좀 되었는데….
“――단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쾅!
눈 앞의 테이블을 내려치고 몸을 일으켰다. 시야 한쪽 끝에선 단애가 히죽이죽 웃으며 지금 막 받아온 아이스크림 컵을 양손에 든 채 총총히 걸어오고 있었다.
“응응? 뭔데? 뭔데에~?”
“내 계좌… 너, 내 돈으로 산 거지!”
“어머나~ 글쎄. 내가 어떻게 케이의 계좌에서 돈을 꺼내겠어~ 카드도 케이 손에 있었는걸~ 생트집 잡네~?”
“돈 빠져 나간 거 봤거든?”
“응~ 그게, 내 돈은 다 떨어졌거든~.”
“그럼 먹지… 으흐…!”
차마 먹지 말라고는 못하고, 대신 이를 바드득 갈면서 불평했다.
“근데 무슨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비싸?! 뭘 이렇게 잔뜩 샀어?! 나 이거 다 못 먹어!”
“남의 돈으로 산다고 생각하니까 먹고 싶은 대로 그냥 잔뜩 샀어! 근데 절반도 못 먹을 것 같긴 해! 어쩌지, 케이?!”
“……..~~~~~~!!!!”
진짜로 열 받는다.
이걸 어떻게 때려줘야 하나 싶어서 발을 잔뜩 동동 구르는데 눈 앞의 단애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냠, 하고 입에 물고 있다. 얼굴은 쓸데없이 예뻐서, 그 모습마저도 화보처럼… 아니아니아니아니!
“너, 진짜…!”
“이히히, 장난이야 장난. 몰래 꿍쳐 둔 돈도 있으니까 괜찮아. 여차할 땐 그 돈 쓰면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둘이면 돈에 부족할 일은 없을걸?”
“창녀 같은 짓은 하기 싫어.”
“누가 그런 거 시킨대? 다른 방법도 많이 있을 테고. 그런 것보다 앉아. 아이스크림이나 먹으면서 좀 쉬자.”
단애는 약간 차분한 얼굴로 말했다.
“이래저래 일이 있었잖아. 마음이 싱숭맹숭하고 기분이 좀 그럴 땐 과할 정도로 단 걸 먹어주는 게 좋아. 케이는 평소에 단 거 잘 안 먹으니까.”
“………..”
…반칙이다.
갑자기 그렇게 드리프트하면, 갑자기 그렇게 어른스러운 목소리를 내면 할 말이 없잖아.
‘물론 기차에서의 일 때문에 조금, 아주 조~~~~금 힘들긴 했지만.’
이제는 다 괜찮아졌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되는데.
쑥스럽게 왜 이러냐.
나는 그런 단애의 호의를 차마 고맙다고도 감사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잠시 우물쭈물하다, 퉁명스레 입술을 삐죽이면서 아이스크림 잔을 받아들었다.
“흥… 그래도 내 돈이잖아. 고맙다고는 안 해.”
“그래그래~ …그런데, 얘는 뭘 하고 있는 거야?”
단애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야야를 향해 턱짓했다.
남은 크로플을 한 입에 삼켰는지 볼을 햄스터마냥 불룩 부풀린 채 오물거리는데다, 입가에는 꿀이며 아이스크림이 잔뜩 묻어 지저분하다.
그런데 그런 입가를 깨끗이 할 생각도 안 하고, 볼록한 그릇 같은 접시에다 꿀을 한가득 붓고 있었다.
테이블에 놓여진 꿀이 다 떨어지자 옆에 있던 테이블 것까지 집어와 꾹꾹 누르며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는 보기만 해도 울렁거릴 것 같은 꿀덩어리에 숟가락을… 푸욱… 하고….
“자, 잠깐만!”
“아~ …….뭔가요. 남이 먹는데 빤히 쳐다보지 마시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걱정 마세요. 이 아이스크림 크로플 결제할 때 꿀값으로 더 얹어서 줬으니까.”
“……아니, 그래도, 그건… 뭐랄까… 몸에 안 좋지… 않나?”
“일찍 죽으면 내 책임이지 당신이 알 바 아닙니다. 저는 먹고 싶은 거 먹고, 살고 싶은 거 하다가 죽을 겁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고는 스푼으로 떠낸 꿀덩어리를 입 안에 그대로 집어넣고는 행복하게 오물거린다.
저렇게 먹으면 행복한 걸까. 꿀을 저렇게 먹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생 저렇게 먹고 싶지는 않다.
단애한테 약간 감동하려던 분위기도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런데 아까보다 좀 나아진 것 같네?”
“뭐가?”
“얘 말이야. 아까는 개미 기어나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아… 그러네.
당분이 들어가서 그런 걸까.
조금 전까지 피곤한 것처럼 게슴츠레하게 떠 있던 눈도 지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고, 목소리에도 훨씬 힘이 있었다.
진짜 뭐하는 애야 얘는.
“…저는 당분에서 마력을 뽑아내는 특수한 체질이라서요. 당분이 부족하면 여러모로 그렇거든요. 나른해지고, 긴장도 하고.”
아직도 잔뜩 남아있던 꿀을 척척 떠내어 먹던 야야라는 이름의 소녀는 그런 내 생각을 캐치했는지 잠시 수저를 멈추고 설명해주었다.
그걸로 충분한지 다시 수저를 옮기려던 야야였지만, 문득 들고 있던 수저를 다시 내렸다.
“……음, 이 이상 기다리게 하는 것도 좋지는 못하려나. 먹으면서 이야기해도 괜찮겠지요? 그쪽도 아이스크림이 있고.”
“상관은, 없는데….”
“좋네요. 세세한 거 따지지 않는 거 좋아합니다. 일단 자기 소개부터 하자면… 제 이름이 야야라는 건 말씀드렸죠. 그렇죠, 케이님, 단애님?”
당분이 들어가니 성격도 바뀐 걸까.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
대화하기 편한 것 같으니 상관은 없지만.
【물의 도시】의 조사원, 야야가 푸념이라도 하듯 말을 이었다.
“일단은… 네, 말씀드린 대로 이 나는 【물의 도시】에서 파견된 뒤로 줄곧 열심히 숨어서 조사를 계속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조심하면서 지냈는지, 정말 오랜만에 본부에 연락을 넣었더니 이미 남은 조사원이 나 하나밖에 없었다네요?”
“조사원은 나 하나뿐인데, 그 대신이라고 마법소녀들을 여기로 보낸다고 하고.”
“이것 참….”
야야는 씨익 웃으며 꿀이 담긴 수저를 입에 물더니, 역시 맛있다는 듯 오물거렸다.
입에 물린 수저의 손잡이가 버릇 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당신들 같은 무능한 암컷들, 필요도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