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gical Girl Surrendered to Evil RAW novel - Chapter 68
EP.68 #17 마법소녀는 유대의 힘을 믿는다고 합니다(6)
호수의 물을 화려하게 뚫고 나타난 것은 소머리와 말머리의 거대한 거인, 혹은 괴물.
단단해보이는 근육질로 감싸인 거인의 몸은, 은은한 흰빛이 감돌고 있어 일순 신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 아아아아….”
털썩 주저앉은 것은 블루 사파이어.
푸른 드레스 자락이 흙먼지로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거인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저번의 그 로봇보다 커.’
거인들은 비비들의 최종병기 같아 보이던 로봇보다도 한층 커보인다.
뿐만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주눅 들게 만드는 그 위압감이라던가,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은 일전에 봤던 로봇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일전의 로봇이 종이박스를 얼기설기 얽어 만든 모형 같은 느낌이라면, 이번에는 실제 거대한 불곰이 서 있는 정도의 차이랄까. 스케일이 스무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야, 알파.”
“왜.”
“나 지금 떨고 있냐.”
“응. 떨고 있다.”
“솔직히 쫄린다.”
“나도 그런데.”
“이 정도로 쫄린 건 내가 여자가 된 거 엄마한테 들킨 이래 처음이야.”
“나도 한 달 전 방송 3분 전에 설사가 마려웠을 때 이래 처음이다.”
““그렇군…….””
“두 사람은 왜 이렇게 태평한 건데요!”
우리가 서로 마주보고 한숨을 쉬자니, 유라가 항의하듯 외쳤다.
왜고 자시고, 이런 상황에 농담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신이 못 버틸 것 같아서.
그건 그렇고 이제 어쩌면 좋담.
호수에서 솟아난 거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숨을 색색 쉬면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다.
“좋아좋아! 이제 최강의 병기 등장! 이 몸이야말로 메크라크의 왕으로서 어울리는 몸이시다! …응? 어라? 이거 어떻게 제어하면 되지?”
그 사이에 둥둥 떠 있던 블랙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까닥 기울였다.
마석을 붙들고 거인을 향해 뭔가 외치고 있는데, 거인들은 나른하다는 듯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움직이지 않는다.
“늦어버렸냥. 골치 아픈 걸 꺼내버렸다냥. 설마 싶었는데.”
“어라, 쿠키 왔어?”
“왔다냥.”
앙증맞은 고양이 인형 같은 생김새의 쿠키가, 공간을 뚫고 뿅하니 모습을 드러냈다.
쿠키는 우리를 쳐다보고, 거인을 쳐다보고, 그리고 다시 우리를 쳐다보더니,
“하여간 일 하나도 똑바로 못하는 거냥. 늬들한테 뭘 기대하겠냐마는. 정말이지 한심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냥. 태어난 걸 후회하지는 않냥? 아니, 제발 후회해줬으면 좋겠다냥. 그 쯤은 해줘야 적어도 말똥가리 정도의 가치는 생기지 않겠냥. 응? 살아있는 걸 좀 부끄러워해줘달라냥. 민폐니까냥.”
퉷, 하고 침을 뱉으며 껄렁껄렁 말했다.
잠시 후,
“저기, 유라야. 불 좀 만들어줄래? 나머진 내가 할게.”
“……언니, 설마 싶지만… 그… 손에 든 요정씨를 구워버리시려는건….”
“살려줘… 살려줘라냥….”
손 안에서 여기저기 멍투성이가 된 쿠키가 버둥거렸다. 아쉽지만 유라가 불을 꺼내주지 않았으므로 풀어주기로 했다.
“쿠키, 혹시 저거 뭔지 알아? 되게 위험해보이지?”
“…위험해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위험하다냥. 의 고대기술과 지금은 없는 부품들을 잔뜩 이용해 만든 초위험병기다냥. 애초에 이 던전이 붙잡은 마법소녀들을 던져놓고, 저걸 사용하기 위한 연료를 뽑아내는 용도다냥.”
쿠키가 이 정도로 말한 건 처음이다. 나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위험해?”
“…저쪽에 있는 말머리, 인가 할텐데냥, 저건 병기다냥. 주먹으로 한번 내려치면 산이 갈라질 거라냥.”
“오와….”
“그리고 저쪽에 있는 소머리, 쪽은 병기다냥. 저게 내뿜는 마력포는 한 방으로 바다를 마르게 할 수 있다 들었다냥.”
뭐야 그거, 무서워.
“그 외에도 저것의 겉면에는 기본적으로 두꺼운 마력장갑이 흐르고 있어서 말이다냥. 웬만한 공격으론 그 장갑을 뚫고 본체에 데미지를 줄 수도 없다냥.”
“난 게임 같은 거 하면 보호막 달고 있는 애들이나 ‘일정이상 데미지 컷’ 같은 애들이 제일 싫더라고.”
“우연이네, 나도 그런데.”
“진지하게 봐달라냥, 니네들….”
쿠키는 한숨을 쉬더니, 허공에 자그마한 고양이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쩌억- 공간이 좌우로 갈라지며 입을 벌렸다. 벌려진 구멍 너머에는 햇살이 비치는, 바깥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에 납치되어 있던 여자들은 전부 밖으로 보냈다냥. 너희들도 어서 도망치라냥.”
“저건?”
“됐다냥. 저건 무리다냥.”
쿠키가 이 정도로 단호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다.
“머릿속에 카피바라가 들었냥? 위기감이란 걸 좀 느껴봐라냥. 저 거인들은 기본적으로 살상용이다냥. 자비 없이 파괴하는 파괴병기다냥. 운이 좋아 살아남더라도, 결국엔 붙잡혀서 저 입으로 덥석 집어 먹을 거라냥.”
“집어먹어?”
“저것들의 배는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눠져 있어서, 집어삼킨 여자가 망가질 때까지 범하고 범해서 마력을 뽑아낸다냥. 던전의 야한 트랩 따위는 비교도 안 되게 과격하게 말이다냥. 그러다가 여자가 망가져서 효율이 떨어지게되면 그대로 위장으로 보내버린다냥.”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되겠지냥, 이라며 쿠키는 날카롭게 나를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의 괴인들과는 사정이 다르다. 단순히 마력을 짜내기 위한 포로며 범해지는 것뿐이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엄청 위험한 거네….’
나는 다시 한번 슬쩍 거인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미동하지 않는 거인 때문인지, 블랙은 안절부절못하고 마석을 이리저리 흔들며 쩔쩔매고 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대로 움직이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바로 얼마전까지 평범한 소시민으로서의 삶을 살아오던 내게는 조금 벅찬 현실이다.
“지상에 올라가면 일단 마법소녀들을 있는 대로 끌어모아야겠지냥. 강한 마법소녀들이 전부 모여서 싸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냥. 그래 놓고서도 안 된다면, 지구를 바치는 수밖에 없다냥. 어쨌든 죽는 거보다는 낫지 않겠냥. …빨리빨리 가라냥. 이봐, 거기 주저앉은 너, 너부터 오라냥. 너는 잘해줬다냥.”
쿠키가 여전히 떨고 있는 블루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서 재촉했다.
블루는 말없이 거인들을 돌아보고는, 휘적휘적 일어섰다.
이어서 유라. 유라는 분한 듯 입술을 깨물고는, 블루를 부축하며 함께 공간 너머로 발을 들이려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발을 내미려는 순간, 쿠키가 열어놓은 균열이 이지러지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어…?”
“냥?”
유라가 입을 벌렸고, 쿠키가 당황했다. 몇 번 더 손을 휘저어보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쯧!”하고 혀를 찼다.
“거인들 때문에 마력간섭이 심하다냥. 일단 여기서 나가야겠다냥.”
“이 무쓸모 요정!”
“케이 넌 그냥 여기서 깔려 뒤져라냥.”
“미안합니다!”
“야야야야. 잠깐만. 저것 좀 봐봐.”
탁탁탁탁, 알파가 뒤에서 등을 연신 두드려대는 통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알파가 가리킨 곳은 블랙과, 두 거인. 그 중 소머리의 거인 쪽을 검지로 가리켰다.
“저거, 움직이려는 거 같은데?”
……진짜?
확실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녀석들이 지금은 눈알을 데굴 굴리며 이쪽을 노려보는 것 같다. 초점 없던 눈에도 묘한 생기가 돌아와 있다.
“오, 오오오오! 움직인다, 움직여!”
그 사이에 있던 블랙은 만세 포즈를 취하며 좋아라 하고 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말머리의 거인.
세쌍이나 되는 팔이, 처음엔 기름칠되지 않은 녹슨 기계처럼 끼기긱, 끼기긱 움직이고, 몇 번 주먹을 쥐락펴락해보더니,
퍼억!
단숨에 주먹을 휘둘러, 공중에 있던 블랙을 산산조각내버렸다.
“““……어?”””
우리의 얼빠진 목소리가 겹쳤다.
잘못보지 않았다면, 아니, 틀림없이. 휘둘러진 거인의 주먹은 공중에 떠있던 블랙을 단숨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산산조각내버렸다. 함께 있던 마석또한, 거인의 주먹에 휩쓸려 가루가 되어버렸다.
거인은 그래놓고서도 뭔가 부족한 건지, 주먹을 몇 번 쥐락펴락하더니, 서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입이 쩌억 벌어졌다.
『부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동굴 속에 울리는 무시무시한 울음소리의 이중주.
호수에서 솟아나온 거대한 두 거인은, 마치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겠다는양 대기를 진동시키는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앗!”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벽에, 천장에 반사된 울음소리는 몇 배나 커져서 폐쇄된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귀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서, 알파도 유라도 귀를 꽉 틀어막은 채 엎드렸다. 블루는 거의 신실할 것 같은 지경이었기에, 나는 블루의 머리를 꼭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그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서로를 향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울음소리를 흘리던 거인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들을 구속하고 있는 답답한 천장과 벽이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다.
『――――――――――!!』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촤아아아아악!!!
먼저 움직인 것은 말머리의 거인. 세 쌍이나 되는 팔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벽을, 바닥을 몇 번이고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콰쾅! 폭발음과도 같은 무시무시한 파괴음이 방 안에 울려퍼진다.
거인의 주먹이 닿은 곳은 어디가 되었든 산산조각이 나며 쩌적쩌적 거미줄 같은 균열이 일어났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진동으로 방 전체가 울렸다.
『부오오오오―――』
이어서 소머리 거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머리 거인에 비해서는 우아하다 싶을 정도로, 오히려 장엄하다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소머리 거인은 세쌍의 팔을 거만하게 활짝 펼쳐보였다. 저걸 휘두른다, 라는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입에 푸른 입자와 같은 것이 새어나오는 게 보였다.
조금 전 쿠키의 설명이 맞다면 저녀석은 바다를 말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력포를 쓴다는 녀석일텐데.
설마, 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저쪽의 준비는 끝난 모양이다.
『――――――――――――――!!!!』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거인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흉악하게 벌린 입에서 번쩍이는 입자포를 뿜어내었다. 닿기만해도 모든 것이 분해되고 소멸할 것 같은 무시무시한 에너지포가, 거인의 고개를 따라 뿜어져나오며 온 촬영장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거대한 채찍과도 같이 휘저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
요란한 소리와 진동에, 내 품 안에 안긴 블루가 째질 것 같은 비명을 지르고, 내 입에서도 공포가 섞인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먼지가 피어오르고, 대촬영장이, 던전이,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 * *
쿠궁- 쿠구궁-.
던전이 무너진다. 방이 무너진다.
모래먼지와 부서진 돌덩어리가 천장에서 하나둘 떨어져 내렸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이곳은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여기가 지하 3층이던가… 4층? 더 아래쪽이려나. 모르겠네.’
이대로 무너져내린다면 단순하게 압사당하려나. 현실감이 들지 않는 머리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다들 살아있냥.”
“어떻게든….”
무너져내린 잔해 속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유라도 알파를 도와, 예의 묵직해보이는 쇠몽둥이로 잔해를 밀어내며 쏙 빠져나왔다.
대 촬영장의 한켠에서는 여전히 거인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말머리 괴인은 괴력으로 벽이며 바닥, 천장을 깨부수려하고 있고, 소머리 거인은 힘이 모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조금 전의 에너지포를 뿜어낸다.
그나마 저들의 반신이 아직 호수에 잠겨 있다는 것과, 대촬영장이 상당히 넓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다친덴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냥. 일단 이대로 도망치는 거라냥. 이대로 있다가는 던전이 무너져서 전원 압사다냥.”
쿠키가 긴장어린 목소리로 지시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거인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도망치는 거다냥. 출구는….”
쿠키가 잔해 너머로 슬쩍 시선을 보낸다. 출구는 여기서 상당히 멀다. 그래도 거인보다는 가깝다.
“가자냥. 조심해서.”
사사삭, 우리는 들키지 않게 잔해 뒤에 숨어서 이동했다.
블루는 아직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므로, 양 옆에서 나와 유라가 함께 부축해서 달린다. “미안해요, 미안해요….”라며 눈물 흘리며 사죄하는 블루가 불쌍하다. 아니야. 저런 거 앞에 두고 무서워할 수 있지. 나도 가끔 분노한 엄마 앞에 서면 무서워서 다리에 힘이 빠지거나 했거든. 여자란 걸 들킨 것 까진 괜찮았는데 그 뒤로 산더미처럼 모아놓은 굿즈를 들켜버렸거든. 그 때의 엄마 무서웠지… 지금은 엄마도 팬이 됐지만. 그런데 뺏어간 내 굿즈는 언제 돌려주시나요, 어머니.
“읏차. 위험해.”
쩍-!
머리 위에 떨어지는 주먹만한 돌조각을, 칼로 가볍게 두동강을 내주었다.
“방 밖으로만 나가면 된다냥. 밖으로 나가면 공간을 열 수 있을 테니….”
“오케오케. 그런데 쿠키 너 평소에는 나몰라라 하더니, 오늘은 무슨 일이래? 왜 친절해? 뭐 잘못 먹었어?”
“이 몸께선 친절과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냥.”
“미쳤구나?”
“…딱히 이상할 거야 없다냥. 너 같은 거라도 죽으면 찜찜하다냥. 나는 달콤한 디저트를 마음 편하게 먹고 싶을 뿐이다냥.”
그럴 거면 평소에도 좀 도와주면 좋을텐데.
이쪽이 괴인들의 장난감이 되어서 희롱당하고 있을 때는 나 몰라라 하더니.
“메크라크 놈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냥. 괴인한테 붙잡혀서 죽는 것도 아니고, 너희가 가축 신세를 지는 동안 다른 일반인들은 안전하지냥. 이것도 저것도 필요한 행위. 거기에 내가 끼어들 필요가 있겠냥?”
“…애초에 마법소녀 노릇을 시킨 게 너면서.”
“싸울힘을 줬으면 충분하지, 뭘 더 바라냥. 너는 밥을 짓고 떠먹여주기까지 바라는 어린애냥. 정신수준은 딱 그렇지만냥. …뭐냐 그 눈은. 싸우자는 거냥? 이번엔 곱게 안 당할거다냥? 요정식 압살권법과 냥냥펀치로 응전할거다냥!”
“좋아, 오늘에야말로 네 팔다리를 뜯어버리고 서로 바꿔서 꿰매주겠어!”
“두, 둘 다 소리 내면 들킬 거예요…!”
유라가 쉬잇- 쉬잇-! 하면서 주의를 줬다.
아무튼 그렇구나. 쿠키는 내게 마법소녀로서의 힘은 주었지만, 딱히 완전히 인간편인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정의는 여러개라고 했던가.
는 살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서 마력을 뺏을 수 밖에 없다.
지구인 입장에서 는 최악의 민폐덩어리지인 적이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의 침략은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행위일 뿐이며, 이는 자연의 섭리와도 같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서 빼앗는다. 약한 이는 도태되고 강한 이는 살아남는다.
원래라면 지구는 기술력이 몇 세기는 앞선 에게 속수무책으로 정복당해야겠지만, 들의 활약으로 그 유예가 좀 길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우리 지구인을 도와주는 거야?”
문득 튀어나온 질문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질문인데, 어째서 지금 이 때까지 나는 떠올리지도 않았던 걸까.
“…….”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질문을 던지자 쿠키가 드물게도 얼굴을 굳히더니, 그대로 공중에서 멈춰 섰다. 그 뒤를 따르던 나도 따라서 발을 멈췄다.
뭔가 내가 이상한 질문이라도 한 걸까?
지구는 의 활약으로 의 침공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라는 권능을 제공해준 것은 쿠키 같은 의 요정들이다.
가 지구를 침략하는 건 지구인들에게서 마력을 착취하기 위해서. 가 지구를 지키는 건, 지구가 고향인 것과 동시에 라는 혜택이 있어서.
그렇다면 는?
쿠키 같은 요정들은, 어째서 포인트까지 쥐어줘가며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는 걸까?
내 질문에 답해준 건 쿠키가 아니라, 나와 나란히 움직이며 듣고 있던 유라였다.
“언니언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요정님들이 지구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당연하다니….”
“요정님들은 지구의 아군이니까요.”
아니, 뭔데 그 편리한 직함은?
“요정님들은 지구인의 편이니까요! 그러니까 도와주는 거예요!”
“아니… 이상하잖아, 그거.”
“에? 뭐가요?”
유라가 고개를 기울이자, 폭신한 단발이 사륵 내려왔다. 그녀의 표정에서도 목소리에서도, 아무런 의문도 보이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눈치다.
근거도 없이, 이유도 없이.
“요정님들이 지구인의 아군이라는 게 어디가 이상하다는 거예요?”
어딘지 총명함을 잃고, 이의를 허락하지 않는 새까만 늪과도 같은 눈.
이 눈을 나는 알고 있다.
줄곧 피터의 최면에 빠져, 억지로 의식이 돌려졌던 우리들의 눈이 딱 이런 느낌이었지.
“윽…!?”
별안간 지끈, 머리가 아파와서, 나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언니?!”
뭐지, 머리가 아파. 뭔가가 생각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의문이 머릿속에서 역류한다. 억지로 틀어막은 문 같은 것이 열리고, 그 틈새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하길 허락받지 못했던 의문들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
머리가, 아프다.
나는 이를 악물고, 쿠키를 올려다봤다. 이 두통의 원인은….
“――최면이 풀려버렸냥.”
둥둥 허공에 떠있던 쿠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뭐라고 한 거지? 최면?
“언니, 언니?! 괜찮아요?! 왜 갑자기 쓰러지는 거예요?!”
“……케이냥. 지금은 일단 도망쳐야한다냥. 쓸데없는 생각은 말고….”
최면. 메크라크. 마법소녀. 마법나라. 요정.
단어 하나하나가 머릿속을 빙글빙글 멤돈다. 어디에 어떻게 연결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의심하려고만 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만 같았다.
이유는 모르는데 분노가 치밀고, 까득, 이를 세차게 갈며 쿠키를 노려보았다.
어렴풋이, 어렴풋이. 쿠키 녀석이, 요정이란 것들이 사람의 머리를 멋대로 주물럭거렸다는 것만은 알 것 같다. 뭔 짓을 한 거냐, 이 썩을 놈들이.
“야, 이봐들. 잠시만. 무슨 얘길 그렇게 속닥속닥 두런두런 하는지 모르겠다만.”
블루를 부축하며 앞서 나아가던 알파가, 가까이 다가와 내 어깨를 툭툭툭툭 두드렸다.
한껏 긴장한 알파의 금빛 눈이, 내 등 뒤, 거인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다.
“우리, 들킨 거 같은데…?”
“뭐…?!”
알파의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말머리 거인의 옆에, 소머리 거인이 디룩! 커다란 눈동자를 굴려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면 심장이 멈췄거나.
『구오오――――』
“달려! 달리라냥! 빨리!”
소머리 거인의 입에 지금껏 잔뜩 보여줬던 대로 입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저게 쏘아지면 다 죽는다. 쏘아지기 전에 도망쳐야해!
“와아아아아아앗~~~~~!”
“출구! 출구가 바로 앞이에요!”
타다다다닥! 쿠르륵!
몸을 숨기며 도망칠 필요는 없어졌다. 우리는 잔해 위를 뛰어넘고, 앞을 가로막는 게 있으면 내 칼로 베거나 유라의 몽둥이로 산산조각내며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유라의 외침대로, 드디어 출구가 보였다. 묵직한 쇠문으로 되어있는 출구는, 괴인들이 도망치며 열어놓은 건지 다행히도 살짝 열려있었다.
이대로 밀어서 열어버리면――!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날렸지만,
쿠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쿠릉!!
“““아앗…!!”””
말머리 거인이 팔을 휘두르며 새로 일으킨 진동과 함께, 천장에서 무너져내린 돌더미가 출구를 가로막았다. 우리는 아연실색하며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맙소사. 이렇게 되면 어떻게 도망쳐야… 아니, 바윗더미를 치우면 어떻게든….’
그렇게 고민할 잠깐의 여유도 없이, 알파가 다급하게 외쳤다.
“뒤! 온다!!!”
『―――――――――――――――――――――――――――――!!!』
소머리 거인, 의 입에서 요란한 울음소리와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응집된 에너지포가 발사되었다.
시야가 새하얗게 물든다.
“――――!”
닿는 모든 것을 뭉개버리고, 소멸시키고, 바다조차 말려버린다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체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죽음을 각오했다. 마지막 오기라는 듯, 유라와 블루를 등 뒤로 밀치고, 알파와 함께 그 앞을 막아섰다.
이럴 줄 알았으면 코스튬이라도 바꿔둘걸. 무사 코스튬은 이 로 바뀌어 있어서, 평소만큼 몸이 튼튼하질 못하다.
“읏…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는 검을 앞에 든 채 섰고, 알파는 지금이라도, 라는 듯 을 돌리고 있다. 그래봐야 시간이 맞을 것 같지는 않지만.
에너지포는 빛보다는 느리지만, 어쨌든 눈 깜박할 사이에 지척까지 날아들었다. 그걸 인식할 수 있는 건 마력으로 오감이 강화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흔히 말한다는 ‘죽기 직전의 1초’ 같은 느낌으로 모든 게 느리게 보였기 때문이다.
느릿느릿하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을 눈 앞에 두고,
“젠장할냥!! 죽는다면 원망해주겠다냥!!! 진짜로!!”
“어……?”
나와 알파의 앞으로,
쏘아지는 에너지포의 사선으로.
쿠키가 불쑥, 몸을 던지듯 앞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