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
“씨발.”
푹신한 침실에 누워있던 내가 잠에서 깨서 뱉은 첫마디였다. 상황은 그만큼 황당했다. 자고 일어났더니 호화로운 침대에 푹 파묻혀 있었으니까. 어젯밤 술을 진탕 퍼마신 이후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조금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히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근황을 서로 물었다. 그리고 고기도 구워먹으면서 서로 농담을 하다가 술자리가 길어지고, 택시를 불러준다는 친구의 호의를 사양하고 밤거리를 걸었던 기억이 났다. 그 다음에 편의점에 들려서 숙취해소제를 하나 샀었는데, 그 다음부터 영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대체 어제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길래 이런 호화로운 저택의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단 말인가? 동네 가구 백화점에라도 들어왔나?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면 화려한 침대에 비해 삭막한 방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옷장은 조그만한 것이 관물대처럼 구석에 박혀 있었고, 벽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 걸려 있었다. 그냥 봐도 가구 매장은 아니었으며 차라리 납치 당했다고 해도 믿을만큼 삭막한 비주얼이었다.
침대 바로 정면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진 제단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옷걸이에 새하얀 로브 같은 것들이 잔뜩 걸려있었다. 저 문양도 어디서 본 문양이고 로브도 어디서 많이 본 디자인이었지만, 난 그걸 진지하게 생각할 경황이 없었다. 이 장소가 대체 뭐하는 곳인지 알아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뭐야 씨발.”
나는 이 이교도 제단 본부 뺨치게 생긴 방 풍경이 묘하게 익숙했다. 예전에 이사했던 자취방도 아니고 예비군 숙소도 아닌 것이 묘하게 익숙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분명히 어떤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게 분명했다.
나는 방을 살피기 위해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묘하게 시야가 낮고 몸이 가뿐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키가 10cm 정도는 더 작아졌으며 폐에선 가래 끓는 소리가 사라졌다.
어제까지의 나는 술병과 과로에 찌들어 움직이는 매 순간이 비명의 연속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고등학교 시절만큼이나 몸에 활력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시험삼아 허리를 쭉 펴보면 뚜둑 소리를 냈던 허리가 유연하게 뒤로 돌아갔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손바닥을 펴보면 거칠거칠한 손도 매끈하게 변해있었고, 축 늘어졌던 피부도 탱탱하게 윤기가 흘렀다. 팔은 얇지만 탄탄했고, 하반신에서 묵직한 질감이 느껴졌다. 거기다 온 몸에 힘이 넘쳐흘러서 3일 밤낮으로 상하차를 뛰더라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정신없이 방에 걸려있는 거울로 달려갔다. 그 안에는 금발에 붉은 눈을 가진 미소년이 서있었다. 여자가 아닐까 싶을만큼 가녀린 외모에 반곱슬로 귀족적인 인상을 강조한 금발. 그리고 살짝 뾰족한 귀까지, 나는 이 미소년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볼수 있었다.
이 새끼 게임 캐릭터였으니까.
일본에서 출시한 판타지 RPG 야겜 [히로인 전설]에는 그 컨셉이 지나쳐서 밈으로 진화한 캐릭터가 있다. 페타 루시우스. 전대 용사 일행의 성직자인 페타 시리우스의 아들로 강력한 물리 딜러임과 동시에 뛰어난 버프 능력으로 성능충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 새끼는 성능과 별개로 스토리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가슴을 뒤흔드는 설정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극단적인 호구 새끼라는 것이다.
일단 페타 루시우스는 본래 성품이 검소하고 소박한데다가 엘프 혼혈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아도 사는 몸이기 때문에, 타 영지에 비해서 소작료를 절반만 받는다. 그런데 이 소작농들은 루시우스가 착하다는 걸 이용해서, 안그래도 낮은 소작료를 흉년이라는 핑계로 더욱 적게 내고 있었다. 덕분에 루시우스의 영지는 용사 일행이 올 때까지 매 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재밌는 건 루시우스 본인이 대천신교의 성직자이기 때문에 매 년 흉년이 반복될 때 마다 땅을 비옥하게 해주시옵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이 덕분에 루시우스의 영지는 제국 내에서 가장 소작료가 낮으면서 가장 비옥한 농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루시우스의 영지에 들어오면 배가 뚱뚱한 소작농들이 다른 노예들을 고용해서 농산물을 착복하며 루시우스와 대천신교의 은덕을 찬양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히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것 만으로도 무능하고 호구같은 놈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루시우스의 만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부패 현장을 목격한 용사 일행이 이를 목격하고 루시우스에게 알려줘도 루시우스는
“소작물에 대해 소작농들이 조금 욕심을 부리더라도 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용사 일행과 플레이어의 복장을 터지게 만든다.
여기에 루시우스의 영지 바로 옆에는 사악한 금발 뚱보 태닝 NTR 영주가 빌런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루시우스의 대천신교 수련생 시절 소꿉친구인 시에리는 이 NTR 영주의 땅에서 수녀로 일하고 있었다.
영주는 시에리에게 가족의 빚을 갚아주고 기부금을 많이 내겠다며 자신의 첩으로 들어오길 종용한다. 시에리는 교회의 운영권을 쥐고 있는거나 다름 없는 영주를 거절하지 못하고 루시우스의 허락을 받아야한다고 완곡하게 돌려말한다.
그리고 루시우스는 둘의 사랑이 영원하길 기원한다며 허락도 하고 축복도 해준다.
여기에 절망한 시에리는 진짜로 뚱보 영주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고, 용사 일행이 처음 옆동네 영주에게 가게되면 죽은 눈으로 영주 옆에 앉아있는 시에리를 볼 수 있다.
결국엔 이 사건은 용사일행도 건드리려고 한 사악한 NTR충 영주를 주인공이 잔인하게 살해하면서 해결이 되긴 하지만, 자기 좋다는 여자도 뚱땡이 영주한테 내주는 병신같은 모습에 게거품을 문 유저들이 참 많았다.
아무튼 이 모든 호구짓을 다 용사 일행이 해결해주고나면 용사 일행은 페타 가문이 가지고 있던 용사의 성물만 이전해서 받거나 루시우스를 같이 데려갈 수 있게 되는 데, 나는 얘 호구짓이 너무 마음에 안들어서 성물만 받고 팽해버린 기억이 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하렘파티에 남캐를 끼우는 것도 이상하기도 했고.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내가 이 호구 영주의 몸으로 들어왔다는 것.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졌다.
내가 이 호구 영주의 몸에 들어왔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잠시 고민해보던 나는 이게 이세계 전생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어차피 판타지 세상으로 넘어왔는데 못할게 뭐 있을까. 나는 허공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외쳐보았다.
“상태창.”
이름 : 페타 루시우스
직업 : 대천신교 남부 사제장
레벨 : 36
스텟
힘 : 89
민첩: 78
지능: 124
행운 : 88
특성
돌격병
단단한 구조물, 물체에 대해 두배의 피해를 입힙니다.
메이스 숙련자
메이스 사용시 명중률 패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이단심문관
상대를 악, 어둠 속성으로 선언할 수 있습니다.
악, 어둠 속성 대상에 대해 2배의 피해를 입히며 절반의 피해만 받습니다.
“뭐야 진짜 나오네.”
진짜로 상태창이 나온다는 것에 놀란 나는 상태창에 떠오른 내용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히로인 전설]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루시우스의 스테이터스는 강캐 반열에 들기 충분한 수준이었다. [히로인 전설]에서 성인 남성 정도의 힘이 4 에서 5 정도다. 애초에 20만 넘어도 성인의 4배의 힘을 내는 초인인데 루시우스 이 새끼는 시작부터 성인 남성의 18배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수치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지, 실제로 가면 더 강하거나 조금 더 약할 가능성이 있었다.
거기다가 이 [이단심문관]이라는 특성을 보자. [히로인 전설]에서 루시우스가 그렇게 호구짓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영주 자리를 노리지 않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루시우스는 존나 쌘데다가 지가 정한 선을 넘으면 가차 없었기 때문이다. 루시우스의 선은 자신과 가문의 재산보다는 아버지가 물려준 영주 자리와 아버지의 명예에 관련된 부분에서 매우 엄격했다.
마왕을 퇴치하다 죽은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어찌나 지극한지 영주 자리를 넘보거나, 자기 아버지를 모욕하는 인간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렸다.
루시우스 컷신에서도 호구 영주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는 도적이 루시우스의 아버지를 모욕하며 도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말을 들은 루시우스는 이성을 잃고 메이스를 휘둘러서 도적들을 모두 죽여버린다.
루시우스가 마냥 호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넣은 장면 같지만, 이 정도로 강한 놈이 그냥 당하고만 살기 때문에 유저들은 더 답답해 죽을 맛이었다.
“영주님. 일어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들었다. 문 너머에서 어떤 여인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하인들에게 존칭을 하던가? 그런 건 가물가물해서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루시우스라면 존댓말을 썼겠지 싶어서 일단 존대로 밀고나가기로 했다. 내가 갑자기 평소처럼 반말을 하고 갑질을 한다면 사람들이 전부 수상하게 볼테니까.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풍만한 가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주근깨가 살짝 난 귀여운 인상의 얼굴이 들어왔다. 복장은 전형적인 귀족 집안 메이드였으나, 몸매나 얼굴이 이런 곳에서 일할만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얘도 상태창이 보일까 싶어서, 마음 속으로 이 아이의 상태창을 보고싶다고 생각해 봤다.
이름: 아이라
직업 : 사기꾼
호감도: 12
레벨 : 6
스텟
힘 : 4
민첩: 8
지능: 12
행운 : 3
특성
회계사
오랜 세월 금전이 오가는 일에 종사한 결과
회계업무에 아주 능숙해졌습니다.
영지의 운영비용을 자동적으로 정리합니다.
연기
다른 직업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현재 연기중인 직업 : 메이드
숙련된 도둑질
자신의 현재 레벨 이하의 잠긴 문을 전부 열 수 있습니다.
이 수치는 도구에 따라 추가 보정을 받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이 메이드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아이라라는 이름은 몰라도 루시우스 휘하에 있던 사기꾼이라면 제법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알 수 밖에 없었다. 초반부에 루시우스가 회계장부를 맡겼던 아이가 돈을 챙겨서 도망쳤다며 한탄하는 장면이 분명히 있었다. 이 장면은 루시우스가 호구라는 것을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복선이기도 했다.
회계 능력과, 사기꾼이란 직업. 나는 알 수 있었다. 이거, 이 새끼가 범인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이라의 가슴을 바라봤다. 양손을 앞으로 모아서 더더욱 부각된 가슴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운이 좋군.”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