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in Character is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04
카린은 뭐든지 도와준다고 말했다. 그 말에 잠깐 대달라고 해볼까 고민해봤지만, 내 이미지를 걸고 모험하진 않기로 했다. 옛날에 건전하고 깨끗한 페타 루시우스였다면 몰라도 지금은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카린은 뒤늦게 내가 등에 매고 있는 인어를 발견한 것 같았다. 그녀는 이세계인다운 감수성을 발휘하여 물었다.
“취조 대상입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뇨. 그냥 인어입니다. 노예에서 해방했으니 고향으로 돌려보내주세요.”
“죄송하지만 저도 왕국 기사단에 속한 몸인지라, 직접 바다까지 가는 건 좀 힘듭니다. 병사들을 시켜서…..”
“안됩니다. 직접 보내주세요.”
병사 새끼들은 못믿는다. 인어를 사람 취급 안하는 세상이니까. 인어가 고향에 도착해서 편지를 보낼 수도 없으니 가던 길에 창관이나 마법사한테 팔아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위험성 때문에 내가 셀루를 영지에서 안내보냈다.
“그래도 바다는 좀….”
카린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도도한 얼굴이 일그러지니 색다른 매력이 있었다. 내 등에 업혀있던 인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강까지만 데려다 주셔도 되는데….”
“강?”
“바다로 이어지는 강으로 데려다주시면 제가 헤엄쳐서 갈게요.”
“수도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강이면 중심부에 흐르는 유프스 강을 말씀하시는 군요. 그곳으로 가신다면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인계가 끝났다. 인어가 몇번이고 고개를 꾸벅숙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인간 중에도 좋은 사람이 있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니에요. 대천신교의 종사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죠.”
나는 그런 인어의 눈빛을 슬쩍 흘려넘겼다. 얘 눈빛은 이브나 셀루가 나를 쳐다볼 때 보다 더 애정이 흘러넘치는 눈빛이었다. 솔직히 이브가 마누라가 아니었으면 구해줄 생각도 안했을거라 저런 순수한 애정을 받기엔 좀 거북했다. 나는 카린에게 물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실건가요?”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카린은 팔팔 끓어서 김이 나는 주전자를 들었다. 차를 마실 생각인가 궁금했는 데, 아니었다. 컵라면이라도 끓이려는 건지 그녀는 그 주전자를 들고 옆방으로 가져갔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악!”
“빨리 네 여죄를 부는 게 좋을거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도적아.”
“저, 정말 모른다니까요! 저, 저는 억울….!”
씨발. 나는 저 소리만 들어도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다. 대충 형틀에 도둑놈이 묶여있고 카린이 물을 붓고 있겠지. 저 소리는 살이 익는 소리일거다.
치이이이익
“끄아아아악! 뜨, 뜨거워! 죽여줘!”
“사실대로 말하면 죽게해주마.”
“흐으으…..사, 살려주세요….아니…죽여주세요…제발 부탁드립니다…저, 전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방에서 나온 카린은 주전자의 물을 바닥에 탈탈 털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다시 주전자에 물을 채워 끓이기 시작했다. 인어는 그 모습을 보고는 사색이 되어 덜덜 떨기 시작했다. 내 팔을 꼭 붙잡고 울먹거리자 카린이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십니까? 왕국 기사단의 칼날은 오로지 죄인에게만 향합니다. 죄를 짓지 않은자.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 네…..”
다시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카린은 끓는 물을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살 타는 소리와 함께 비명이 울렸다. 씨발 미친년이네. 진짜. 나도 소름이 돋는데 인어는 오죽할까. 그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를 저 미친년이랑 같이 두지 말아주세요.
하지만 나는 이제 시간이 없었다. 카린이 저러는 게 조금 무섭긴 해도, 아주 착하고 참한 처자였으니까. 내게 책임지겠다고 말했으니 인어를 무사히 강으로 보내줄게 분명했다. 나는 인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괜찮을거에요. 알겠죠?”
인어는 그 말에 덜덜 떨다가 무엇인가 결심한 듯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한 번만 잡아주세요.”
내가 인어의 손을 마주잡자 그녀는 내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씩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저를 기억해주세요. 바다에 꼭 놀러와주세요. 기다릴테니까.”
“오지마세요. 항구에서 되도록 멀리 떠나시고요.”
어디 서쪽 해안 마을 이런데서 [우는 인어] 동상으로 만나는 건 씹 끔찍하니까 제발 안기다려줬으면 했다. 암만 생각해도 너무 악마적인 발상이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에 맞춰 카린이 다시 한 번 주전자의 물을 털며 나왔다. 그녀는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범죄자가 의식을 잃었군요. 이 틈에 얼른 다녀오도록 하죠.”
카린은 마치 ‘버스가 늦는군요.’ 라고 말하는 직장인 같은 어투로 범죄자의 끔찍한 현 상황을 보고했다. 나는 이 자리에 더 있고싶지 않았다. 나는 카린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 그럼 고생해주세요.”
“아닙니다. 루시우스 영주님.”
카린은 웃으면서 내 여정을 독려해주었다. 저런 얼굴만 비춰주면 참 천사같은 여자인데 하는 짓은 스플래터 영화 살인마 새끼들보다 더했다. 그게 매력이지만.
인어까지 카린에게 인계하고 나서 나는 식료품 점을 비롯한 상점에 들렀다. 북부 영주가 내게 물품을 지원해주지 않을수도 있으니 최소한의 물자를 정비해야 했다.
밧줄이나 작은 삽 같은 물건들을 챙겼다. 식량도 다시 재보급받고 나니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마차에 타서 다시 계획을 정비했다. 북부로 올라가서 일단 북부 대공 후임과 최대한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사를 나눈다. 그 다음 지도를 얻고 북부 산맥을 탐색한다.
정 못찾겠으면 아무 옷이나 주워서 용사의 흔적이라고 우긴다음 그냥 죽었다고 치기로 한다.
솔직히 내가 올라가면 용사는 거의 한달 이상 산에서 실종된 셈인데. 이 정도면 그냥 굶어 죽었거나 얼어죽었다고 봐야되는 것 아닐까? 최선의 상황은 내가 올라갔을 때 산맥에서 용사의 시체가 발견되거나 용사가 돌아와서 북부 영주성에서 차를 홀짝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서로 얼굴마주치기 거북하긴 하겠지만, 최소한 내가 산맥에서 좆뺑이칠일은 없었다. 아무리 용사가 원한에 사무쳐 있어도 영주성에서 내게 칼부림을 하진 않을테니까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용사의 귀환을 바라고 있었다. 엘프 공주를 강간한 강간범으로 역사에 남긴 싫었으니까. 나는 메이스를 쓰다듬으며 북부에서 아무 일도 없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길 기원했다.
그런데 씨발 꼭 기도하면 되는 일이 없더라. 대체 무슨 좆같은 일이 일어날까?
드래곤 산맥은 그 생김새가 용과 같았다. 거대한 등비늘을 세워서 감히 등반하려는 도전자들을 지레 겁먹게 만드는 거대한 용. 북부 사람들은 대천신교보다는 용의 존재를 더 믿었다. 그들은 비늘달린 아인들을 싫어하면서도 용은 두려워하고 또 숭상했다.
북부에 사는 사람들은 이 드래곤 산맥에 있는 동굴들이 용의 눈이라고 생각했다. 거대하고 새까만 구멍이 마치 눈처럼 북부의 땅을 굽어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북부 땅에서 산맥을 쳐다보고만 있어도 수십 개의 눈이 북부를 살피고 있었다. 깎아지를듯 날카로운 절벽 틈새로 우리를 쏘아보고 있는 동굴들을 보고 있자면, 저도 모르게 숙연함을 느끼고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용사는 아마 저 동굴들 중 하나에 있으리라. 동굴들 만큼 산에서 거점으로 삼기 좋은 공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북부에 들어서면서부터 보이는 새까만 동굴들에 기가 질렸다. 저 동굴 하나하나를 다 뒤져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코즈믹 호러를 가져다 주고 있었다. 나는 혀를 차며 북부의 마을들로 시선을 옮겼다.
게임 상에서 북부 지방은 스위스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현재 북부 대공이 다스리던 영지는 아인들의 습격으로 절반 정도는 씹창이 났고, 나머지 절반에 피난민들이 몰려와서 순차적으로 씹창이 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내가 멀리서 봤을 때 밥짓는 연기나 그에 준하는 푸근한 풍경이라 생각했던 연기는 실시간으로 마을 하나가 도적들에게 작살이 나고 있는 광경이었다.
치안을 바로 세울 북부 대공이 없어진 이후 북부에는 인재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대로 살만하다고 들었던 북부가 이렇게까지 바닥을 친다는 점에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대낮에 도적들이 당당하게 마을을 털 정도라니. 아인들이 문제인지 북부의 국민성이 문제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이들 중 몇몇은 내 마차 주변에도 몰려와서 슬금슬금 빈틈을 노렸다.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며 아주 ‘정중’하게 마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마부가 두려움에 가득찬 목소리로 물었다.
“나으리. 어, 어떻게 할까요? 그…. 잠깐 세워달라고….”
“누구시죠?”
“나으리. 거 돈많아 보이시는 데, 우리한테 적선 좀 할 생각이 없으십니까?”
얼굴에 얼룩덜룩한 때가 묻은 도적이 능글맞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그는 누렇고 새까만 구멍 산발적인 참사를 일으킨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었다. 나름대로 관리가 잘되어 깔끔했던 마차는 도적이 손을 올리자마자, 새까만 때로 지저분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얼굴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 당연히 드려야죠…. 어디….지갑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리춤에 있는 메이스를 쥐었다. 내가 정말 지갑이라도 꺼내는 줄 알았던 것일까. 사내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내 마차의 창틀을 매만지고 있었다. 대체 손을 얼마나 안씻은 것인지 갈색 마차에 사내가 손을 댈 때 마다 새까만 색이 물들었다.
“아이구, 거 천천히 꺼내십….”
“지갑이….여깄…다!”
깡!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골통이 산산조각이 났다. 통조림 양 옆에 구멍을 뚫고 프레스기로 누르면, 내용물이 구멍으로 찍! 하는 소리와 함께 빠져나간다. 도적 놈은 내 메이스 질 한방에 구멍난 참치 통조림 같이 내용물을 귀로 찍 쏟아내며 바닥에 엎어졌다. 사내 뒤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도적들이 무기를 꺼내들며 발광을 했다.
“저 놈이 카를을 죽였다!”
카를,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다음 타자가 낫을 들고 내 마차로 달려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마차 문을 걷어차서 열었다. 문짝에 쳐맞은 산적의 턱이 휙, 돌아가고 사내는 바람빠진 풍선처럼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나는 밖으로 나오며 가볍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퍽!
쓰러진 사내가 비닐봉지처럼 옆으로 굴러갔다. 마치 요가를 하는 모양새로 엎어진 도적의 모습이 다른 일당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이익….! 다, 다 덤벼! 한꺼번에 다 덤벼!”
산적 중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면서 무기를 꺼내들었다. 수십명에 달하는 산적들이 일제히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제일 먼저 달려든 산적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 쳤다. 사람 하나가 흙바닥에 처박혀서 인간 묘목이 되자 달려들던 산적들이 제자리에 멈췄다.
거꾸로 처박힌 산적은 번개맞은 피뢰침처럼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 놈들을 하나하나 이런 식으로 만들어주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나는 북부 산맥에서 용사를 찾기에도 바쁜 몸. 씹창난 북부 상황까지 일일히 신경써줄 여유가 없었다. 이럴 때는 겁을 줘서 쫓아내는 게 제일이었다. 나는 도적의 양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잘 봐라 씨발놈들아.”
나는 산적의 다리를 한쪽씩 붙잡고 있는 힘을 다해서 양 쪽으로 잡아당겼다. 흙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리고, 나는 산적의 다리를 뽑아버렸다.
“으아아아아악!”
“괴, 괴물이다!”